발칸의 전설 대산세계문학총서 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신윤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근래 동유럽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다. 한국의 번역 현실에서 동유럽 문학을 마주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번역자들의 발품과 손품이 정성스레 녹아 있는 작품들이 여기 저기 있어 반갑게 읽고 있다. 창비는 근래 세계문학전집을 마련하며 폴란드 소설선을 출간했는데 꽤 이채로운 작품들이 실려 있다. 유럽 문학의 중심이라는 영국, 독일, 프랑스 사이에 끼어있는 폴란드 소설선이 외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동유럽을 챙겨준 출판사가 고맙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 헤르타 뮐러의 소설도 꼼지락, 꼼지락 보고 있다.  

  동유럽 소설을 보며 우선 갖는 인상은 '끼어서 부대낌'이다. 독일, 프랑스, 터키,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어 부대끼는 모습을 문학은 그려내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하는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주체성을 지키려는 모습이 가련하다.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책은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욥코프의 단편소설선이다. 작가는 외교관이기도 한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려는 조국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불가리아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소설을 썼다 한다. 소설은 대체로 슬프다. 연인과 가족, 인간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음을 맞는다. 싸움의 상대는 불가리아를 지배했던 터키인들이다. 혹은 지배층에 빌붙은 불가리아인들이다. 터키의 이슬람 문화 강요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과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노력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역자에 따르면 이 소설은 '불가리아인의 성서'란 별칭을 갖는다 한다. 짧은 편폭 속에 사람과 시대의 아픔이 잘 녹아있다. 책을 덮으니 별칭마저 슬프게 다가온다.

 

Yordan Yovkov(1880–193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07-1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리아 하는게 막상 떠오르는게 아무것도 없네요.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는데도 다른 나라에 관하여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네요 --

불가리아 하니까 고작 생각한게 불가리스 라니 쩝~ 이렇게 무식해서야~ 휴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1: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소설 보며 불가리아 현대사에 대해 조금 알게 됐어요.그저 이름만 아는 나라였는데 말이죠.국제관계학이 전공이세요?어려운 공부 하셨네요.사회과학 가운데 꽤 관심이 가는 분얀데 말이죠.

반딧불이 2010-07-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유럽에 대해 아는게 너무 없다는 걸 저는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불가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또 도움을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3:30   좋아요 0 | URL
동유럽 여행을 가셨다면 무지한 저에게도 도움을 주셨을텐데요^^ 저도 아쉽네요.
 
무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0
이광수 지음, 정영훈 엮음 / 민음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를 어슴하게나마 알던 젊은이가 근대 아닌 사회를 살아간다.
 

  그가 부딪쳐 깨지는 것은 근대가 부서지는 것이다.

 

  이광수가 알던 근대는 이형식에게 녹아있다.

 

  그의 몰이해가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적 근대의 의미와 함께. 

LeeGwangSu.jpg 

              이광수(1892-195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7-0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시기를 살던 루쉰, 소세키, 이광수의 작품을 보면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 가르치려 드는 이형식류의 계몽에 짜증이 나다가도 웃어버렸던 기억이 새롭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0 12:17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에요.나쓰메까지 갈것도 없죠.전에 말씀 드린 후타바테이의 <뜬 구름>과만 비교해봐도 <무정>이 얼마나 너저분한지 알 수 있죠.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루하게 읽은 유일한 황석영의 소설이다. 작가도 대하소설을 '낡은 방식'이라 말하는데, 대하소설로 이 작품을 대했다면 그 지루함이 오죽했으랴? 소설의 지루함을 확 깼던 게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이었다. 황석영은 몽자(夢子)류 소설의 예로 <홍루몽(紅樓夢)>을 들며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이 꿈처럼 덧없다고 덧붙이며, 하여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江南夢)'이라 지었다 말한다.   

  작가는 최근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조설근의 <홍루몽>을 추천하는 책으로 꼽았다. 중문학계에선 <홍루몽>만을 연구하는 '홍학(紅學)'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홍루몽>은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소설이다. 대중적 인지도만을 놓고 보면 우리의 <춘향전> 정도가 비교될 듯 하다. 황석영은 <홍루몽>을 말하며 변혁을 얘기하지만, 글쎄 난 아니라고 본다. 변혁보단 허무에 방점을 찍어야할 듯 한데 말이다. 작가 조설근의 삶을 비추어봐도 몰락한 현실을 인정하긴 싫지만 현실을 바꾸기 보단 과거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강하다. 중국인의 감성도 소설에 녹아있는 허무에 대한 편애가 더 강한 듯 하고 말이다.  

  황석영이 변혁을 얘기하지만 근래 그의 언행을 보며 난 허무를 느끼곤 한다. ‘광주사태 같은 것은 유럽에서도 있었던 것’이라 말할 때도 좌우의 문제보단 허무를 느꼈다. 'MB정부는 중도실용이다'는 말도 그렇고 말이다. <강남몽>에선 변혁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는데 작가가 변혁을 얘기하길래 뚱딴지 같아서 하는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07-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인데 벌써 읽었네요 ^^ 부지런 하셔라~

김훈이 그러더군요. 자기 또래 중에 현역으로 뛰고 있는 사람은 황석영이랑 자기

밖에 없다고~ 나머지 사람들은 병들었거나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07 14:59   좋아요 0 | URL
남성작가로만 놓고 봐도 김원일이나 박상륭은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김훈과 황석영처럼 활발하게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김훈의 친교 범위에서 하는 말인 것 같은데요......
<오래된 정원>을 읽을 땐 설렘이 있었죠. 대학 1학년 때 출간되었는데 읽으며 일종의 감격도 있었구요.
황석영에게 바람이 있다면 그저 소설을 묵묵히 써 주었으면 하는 거에요. 그도 청춘은 아니니까요.

미지 2010-07-0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석영의 근래 언행에 허무를 느끼는 또 한 사람입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08 18:1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래도 신간을 챙기는 걸 보면 저는 여전히 황석영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쟈 이현우도 언뜻 얘기한 적이 있지만 '감각의 독서가'라는 정혜윤식의 글 읽기가 나도 마뜩치 않다. 작가나 인물들에 푹 빠져 써 내는 거리감 제로의 서평은 그런 빠짐이 잘 되지 않는 나 같은 독자를 지치고 소외되게 한다. 조동일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빠지면서 읽는 것보단 따지면서' 읽는 걸 좋아한다. 이 책의 곳곳에 책과 저자에 대한 날카로운 따짐이 숨어 있어 반가웠다.  

  내가 저자에게 한 가지 따지고 싶은 건 조지 오웰에 관해서다. 스페인 내전 참전을 앞두고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오웰과 헨리 밀러를 두고 저자는 오웰의 식민지 경험이 한 이유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비약인 듯 한데, 스페인 내전이 제국과 식민지간의 전쟁이 아닐 뿐더러 오웰의 식민지 경험을 저자는 너무 비싸게 사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근래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을 보며 오웰의 버마를 비롯한 동양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물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웰에 대한 비판에 큰 빚을 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웰의 <버마 시절(Burmese Days)>을 읽게 되면 좀 더 분명한 생각을 가질 것도 같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논한 서평에서 저자는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서경식의 관심이 좀 부족하다는 얘기를 꺼낸다. 서경식의 애독자로서 몇 마디를 하자면 서경식 부부는 팔레스타인 아이 하나를 양자로 받아들여 양육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니 양육비와 교육비를 보내주는 형태일텐데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서경식이 디아스포라로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이가 이 책에 등장하는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이다. 그와 더불어 자주 언급하는 사람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디아스포라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내겐 균형감이 있어 보이는데 저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 책은 저자가 마련한 이벤트를 통해 얻게 되었다. 저자의 깐깐한 시선과 글쓰기를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파란여우님, 많이 배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7-03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4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 박형규 회고록,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박형규 지음, 신홍범 정리 / 창비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민주화운동에 있어 종교계의 역할을 잊어선 안 된다. 기독교로만 시각을 좁혀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기독교의 본래 의미-catholic의 본래 뜻-인 '보편과 종합'의 의미를 받들어 차이에 연연치 않고 민주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가톨릭에선 김승훈과 문정현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두 분의 삶은 한국방송에서 제작한 '인물현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자로서의 사제가 갖는 역할을 두 분은 온 몸을 던져 해내고 있다. 김승훈 신부는 작고하셨고, 문정현 신부는 여전히 젊은이처럼 활동하시는데 근래 병원에 자주 계신다는 얘기를 듣곤 마음이 아팠다. 정연주 사장 시절에 제작한 '인물현대사'인데 두 분의 일대기를 기록으로 남겨놓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한 듯 하다. 지금의 한국방송에선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말이다.  

  개신교에선 김재준, 문익환,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박형규 목사를 꼽을 수 있다. 앞의 두 분은 '인물현대사'에서 다루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기독장로회에 속한 분들이다. 이 책에서도 잠시 이야기하지만 숫자로만 보면 가장 많은 예수교장로회에 속한 많은 목사들이 학살자의 민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했더랜다. 무엇을 위로하고, 무엇을 축복했을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저자를 비롯해 관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 분들을 보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서 5장 24절)를 되새기게 된다. 이분들은 모두 이 말씀처럼 살아간 분들이다. 이 말씀처럼 살아가려 노력했다면 적어도 학살자의 민머리에 손을 얹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얹었더라도 '회개하라' 소리쳤을 것이다.

 

                 박형규 목사(19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