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 - 인문의 새로운 길을 향한 중국 지식인의 성찰과 모색
백원담 엮음 / 푸른숲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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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이 거창한데, 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중국 문학계의 '인문정신논쟁'을 정리한 책이다. 논쟁은 1993년에 시작되는데, 이 무렵 중국은 안팎으로 큰 변화속에 있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정치적 체제 굳히기에 성공한 중국 지도부는 이어 1992년 덩샤오핑이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한다. 이후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에 급격히 통합되어간다. 중국의 사회불평등은 도농간, 계층간, 지역간 할 것 없이 커져만 간다.  

  이 때 일군의 문학비평가들이 인문정신의 회복을 말하며 논쟁을 시작한다. 이들이 말하는 인문정신은 도학적 개념인데, 이에 반하는 일부 작가들-여기엔 영화감독 장이머우도 속한다-의 상업성, 선정성을 거론하며 비판한다. 문학적 지성의 지식인으로서 본래 모습을 찾자는 주장에 얼마전까지 문화부장(장관)을 지낸 작가 왕멍이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논쟁은 격렬해진다. 왕멍은 상업작가로 비판 받는 작가들을 두둔하며 상업화가 아닌 다원화라 주장한다. 논쟁을 일으킨 비평가들을 향해 그들이 주장하는 인문정신이란 문학에서 도학적 가치만을 따지는 또다른 전제주의라 비판한다. 소장 비평가들이 원로 작가와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 논쟁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으로까지 번지다 끝나게 된다.  

  이 논쟁도 인문학을 이야기하지만 기실 정치적이다. 문화대혁명의 상흔이 깊지 않은 젊은 비평가들이 톈안먼의 소요가 잠잠해지자 중국 지식인의 전통을 꺼내며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는데, 문혁의 상흔이 깊은 작가 왕멍은 다시금 그 때로 돌아가자는 얘기냐며 반대를 한다. 왕멍은 고래로 그 위상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 루쉰을 거론하며 "지금 시대에 왜 루쉰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루쉰의 강한 정치성을 부담스레 여기는 대목인데, 문혁과 톈안먼 사태를 겪은 노작가로서는 문학의 정치성 복원을 주장하는 젊은 비평가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실제 왕멍은 문혁 때 16년 간 위구르로 하방되었고, 문화부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톈안먼 사태의 책임을 지고-실은 쫓겨나는 것이지만-부장직을 그만둔다.  

  이 논쟁에서 승자 같은 건 없었다. 이들은 제각각 중국 문학의 한 부분씩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왕멍 쪽으로 기운 듯 한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감독한 장이머우를 보며 "그대가 승자군!"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사실 왕멍과 장이머우 사이의 거리는 꽤나 먼 편인데 열심히 싸우지도 않았던 이가 승리한 격이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무어라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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