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동물' 이야기, 그 뒤를 잇는 '비슷한' 생각들

 

(밑줄긋기)

 

집주인 되는 회색 말은 종인 갈색 말에게 시켜서는 그 동물 중에서 가장 큰 놈을 풀어가지고는 마당으로 데리고 나오게 했다. 그러더니 그 짐승과 나를 나란히 세워놓고는 주인과 종이 다같이 우리의 모습을 번갈아가면서 비교해보고는 "야후"라는 소리를 여러 번 했다. 그 역겨운 짐승이 인간의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이나 공포심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짐승은 나와는 다르게 얼굴은 평평했고 코는 납작했으며 입술은 두툼했고 입은 컸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차이점은 다른 야만족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 야만족들은 아기를 바닥에 눕혀놓거나 업고 다닐 때 얼굴을 등에 밀착시키기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다. 그 야후라는 짐승의 앞발과 내 손의 차이는 그 짐승의 것이 손톱이 더 길고 손바닥은 더 거칠며 더 밤색이고 손등에는 털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발도 손과 마찬가지였고 차이가 없었다. 내가 양말과 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말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외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미 말한 것처럼 털이 많다는 것이나 색이 약간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294∼295쪽)

 

 

 -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4부 말의 나라 여행기> 중에서

 

 * * *

 

 

나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가축의 주인이 아니라 가축이 사람의 주인이며292 가축이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왔다.(100쪽)


주석

292.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를 인용한 듯하다. 이 책에서는 말처럼 생긴 후이늠이 인간을 닮은 야후의 주인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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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희롱하고 있자면

자만심은 타고난 근본적인 병폐이다. 모든 생령들 중에서도 가장 재난당하기 쉽고 취약하며, 동시에 가장 오만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우주의 가장 나쁘고, 죽어 없이지며 비천한 부분에 못 박혀, 하늘의 끝없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최후 단계의 주거로, 여기 이 세상의 진흙과 분뇨통 속에서 세 가지 동물들(조류·포유류·어류) 중의 가장 나쁜 조건에 있는 동물들과 함께 자기를 보고 느끼고 한다. 그러고도 그는 상상력으로 달의 궤도 위에 올라서 하늘을 자기 발밑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바로 이 공상력으로 그는 자기를 하느님과 견주며, 하늘의 거룩한 조건을 자기가 차지하고 자기 자신을 따로 골라 다른 생령들과는 구별해 놓고, 자기 동료며 친구인 동물들에게는 그들의 몫을 갈라 주며, 그들에게 자기 멋대로 정한 소질과 힘을 부여한다. 그는 어떻게 자기 지성의 힘으로 동물들의 내적 움직임과 비밀을 안단 말인가? 그는 어떻게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며, 동물들에게 어리석은 성질을 주고 있는 것인가? 내가 고양이와 희롱하고 있자면,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소일하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소일하는 것인지 누가 알 일인가?



 

짐승들과 우리 사이의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게 된 결함이 어째서 그들에게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는 말인가?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짐승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로 우리가 그들을 짐승이라고 보는 만큼, 그들도 우리를 짐승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크게 괴이한 일은 아니다.

 

자연은 보편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포용한다. 그리고 생령 중에서, 자연이 그의 생명 보존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아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사람들이(그들은 방자한 생각으로 때로는 자기를 구름 위에 올려놓고, 때로는 그 반대편 극단 속에 집어넣는다) "우리는 속박당하고 잘 씌워져서 대지 위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단 하나의 동물이며, 남이 내버린 물건으로밖에 자기를 싸감아 무장해 볼 거리도 없다. 반면에 다른 피조물들은 자연이 그들을 조개껍데기·깍지·덧껍질·털·모사·가시·가죽·잔털·날개짓·거북·등껍질·양털 가죽, 돼지털 등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대로 옷을 입혀 주고, 그들을 발톱·이빨·뿔 등으로 무장시켜서 공격하고 방어하게 하고, 자연이 헤엄치기·달음질치기·날기·노래하기 등 그들에게 맞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우는 것 외에는 배우지 않으면 길가기·말하기·밥먹기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481∼482족)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中에서

 

 

 * * *

 

 

그들이 짐승을 섬긴다고 말해야 옳다

디오게네스는 부모들이 자기를 노예에서 해방시키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어버이들은 미쳤어. 나를 맡아 대접하고 먹여 살리는 자야말로 나의 노예요" 하고 말했다. 짐승을 먹이는 자들은 짐승이 그들을 섬긴다고 하기보다도 오히려 그들이 짐승을 섬긴다고 말해야 옳다.

그뿐더러 짐승들에게는 더한층 품위 있는 면이 있다. 사자는 결코 다른 사자를 섬긴 일이 없고, 말이 다른 말을 섬긴 일이 없는 것은, 그렇게 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짐승들을 사냥하러 가듯, 호랑이와 사자들은 사람을 사냥하러 간다. 서로간에 같은 사냥을 하고 있다. 개들이 토끼에게, 꼬치 고기가 잉어에게, 제비가 매미에게 , 매가 콩새와 종달새에게 하는 식이다.(493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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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님이 된 사자와 사자의 의사가 된 사람

감사의 심정으로 말하면(우리는 이 말을 애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예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것은 아피온 자신이 눈으로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어느 날 로마에서 시민들이 보기 드문 여러 짐승들, 그것도 아주 큰 사자들의 싸움을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는 사나운 생김새와 억세고 굵직한 네 다리와 거창하고도 무섭게 포효하는 소리로 온 관중의 시선을 독차지하였다. 시민들에게 이 짐승과 싸우기로 소개된 여러 노예들 중에, 다키아 출신의 안드로두스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집정관의 직위를 가진 한 로마 귀족의 노예였다. 사자는 멀리서 그를 알아보더니, 먼저 깜짝 놀란 듯 딱 멈춰 섰다. 그러고는 마치 옛 친지와 상면하려는 것처럼 부드럽고 평화로운 태도로 아주 온순하게 접근해 왔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찾던 것을 확인해 보고는 개들이 주인에게 아첨하는 식으로 꼬리를 흔들며, 미리 공포에 눌려 정신을 잃은 이 가련한 노예의 손이며 엉덩이에 주둥이를 대고 핥기 시작하였다. 안드로두스는 이 사자가 순하게 구는 데 정신을 차려 눈을 똑바로 떴다. 마주 쳐다보고는 서로 알아보고, 그러고는 노예와 사자가 서로 쓰다듬으며 기뻐하여 마지않는 광경은 보기에도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이때 시민들은 기뻐하며 환호성을 울렸다. 황제는 그 노예를 불러 오게 하여 이 일의 내력을 물어 보았다. 안드로두스는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신기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제 주인이 아프리카의 총독으로 있을 때, 저를 잔인하고도 혹독하게 부리며 날마다 매질만 하였기 때문에 저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지방에서 권세가 있는 그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숨으려고,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사람이 살 수 없는 외딴 사막으로 달아났습니다. 먹고 살 방법을 찾을 길이 없으면 자살할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햇볕은 극도로 강렬하고 더위는 참을 수 없이 심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찾아 낼 수 없는 어느 은밀한 동굴에 이르러 그 속에 쓰러지듯 들어갔습니다. 바로 뒤따라 갑자기 이 사자가 들어왔습니다. 사자는 한쪽 발을 다쳐서 피를 흘리고 몹시 아파 신음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가 들어왔을 때에 저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가 그의 집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제게로 가까이 오더니 다친 발을 내밀며 구원을 청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곧 사자 발에 박혀 있는 나뭇조각을 뽑아 내고, 사자와 조금 더 낯을 익힌 후에, 상처의 고름을 짜내고, 할 수 있는 한 깨끗하게 닦고 씻어 주었습니다. 아픔이 다소 진정되었는지 사자는 발을 제 손에 맡긴 채 누워서 잠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자와 저는 3년 동안 같은 고기를 먹으며, 그 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사냥을 나가 잡아오는 짐승의 가장 좋은 부분을 제게 갖다 주었습니다. 저는 불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햇볕에 말려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이 짐승과의 야만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하고, 사자가 사냥을 나간 틈에 그곳을 떠났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병사들에게 발각되어 아프리카에서 이 도시로 끌려와서 제 주인에게 인도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주인은 즉시 저를 사형에 처하여 짐승들에게 던져 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사자도 바로 뒤에 잡혔고, 상처를 보살펴 준 은혜를 지금 이 시간에 갚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안드로두스가 황제에게 말한 이야기이다. 이 소문은 한 입 두 입을 거쳐 시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래서 모두의 요구에 따라 그는 사면 판결을 받아 자유를 얻었고, 시민들의 명령에 따라 그 사자도 풀려 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안드로두스는 이 사자를 짤막한 줄로 매어 로마의 주막집들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던져 주는 돈을 받아서 살아가고, 사자는 사람들이 던지는 꽃으로 덮여 있었다.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저기 사람의 손님이 된 사자와, 사자의 의사가 된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고 아피온은 말한다.(510∼512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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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숭이, 어찌도 그리 우리를 닮았는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짐승은, 모든 짐승들 중에서 가장 추하고 못난 짐승이다. 과연 외부에 나타난 모습과 얼굴의 형태로 보아서, 그것은 원숭이일 것이다.

가장 못난 짐승인 저 원숭이, 어찌도 그리 우리를 닮았는가!                                                   (엔니우스)

내부와 생명이 매인 부분들로 보면 돼지가 그렇다. 아주 벌거숭이로 해놓은 인간을, 그의 오점이나 타고난 굴종과 완전하지 못함을 생각해 보면,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우리가 몸을 감싸고 다니는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보다 더 혜택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서, 그들의 미로 우리를 장식하고, 그들에게서 벗겨 온 물건 밑에 우리를 가리려고, 털실·날개깃·털·명주실 등을 빌려 오는 것은 너그러운 눈으로 보아 달라고 해야 할 만한 일이다.(51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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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중 단연 뛰어난 것은 1726년에 발간된 『걸리버 여행기』로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내각의 각료에서부터 유아원의 유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환영했다. 루이스 멈포드가 한 다음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기이한 작품이다. "문장은 어린이용이지만 의미는 성인용이다." 어린아이들은 이 소설의 첫 두 권(소인국과 대인국)을 특히 사랑한다. 스위프트는 "세상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진지한 목적 아래 이 소설을 썼다. 『걸리버 여행기』는 다양한 해석을 자아내는 의미심장한 책이다. 나는 스위프트가 인간의 진정한(때로는 혐오스러운) 얼굴에 거울을 들이대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위프트는 인간이 환상을 버리고, 거짓말을 내던지고, 합리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합리성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야후(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가 되어 있다.

 

스위프트의 작가 정신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권인 마인국(馬人國)에 잘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 혐오증은 야비한 인간성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힘 아래 인간이 자신의 이상주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가 허약한 인간성을 맹렬하게 공격하기는 하지만 스위프트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작성한 자신의 라틴어 묘비명은 그의 내적 갈등을 암시한다. 그는 마침내 세인트 패트릭 성당의 지하에 평화롭게 묻혀 있다. 그곳은 "씁쓸한 분노가 그의 가슴을 더 이상 물어뜯지 못하는 곳"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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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와 『모비딕』은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탁월한 성공을 거둔 걸작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순전히 오락용 책자로 이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나중에 나이 들어 재독해 보면 이 소설이 왜 불후의 명작인지 깨닫게 된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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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섬에 온 지 열흘 내지 열이틀이 지났을 때 책과 펜, 잉크가 없으니 날짜 계산을 못하고 심지어 평일과 안식일도 구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이프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가 처음 착륙했던 해변에 세워 놓았다. 나는 거기에 <1659년 9월 30일 처음 섬에 도착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이 네모난 기둥 양 옆면에 매일 칼로 금을 새겨 날짜를 기록했다.(92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 * *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87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 (52쪽)


주석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87. 토머스 모어(Thomas Moore, 1779-1852)가 동양의 화려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아 쓴 이야기체 시 「랄라 루크」에서 "과거와 미래-두 영원! / 두 끝없는 바다 사이의 이 좁은 지협"을 빗댄 표현으로 여겨진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 * *

 

내 이성이 의기소침해져 있던 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을 그보다 더 나쁜 상황과 구분하고, 내 불운한 상황을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과 견주기 시작했다. 나는 이 두 가지 상황, 즉 내가 겪은 비참한 불운과 내게 기쁨을 준 위안을 부기 장부의 차변과 대변처럼 매우 공평하게 열거해 보았다.

 

모든 걸 고려하면 이 장부는 나와 같은 비참한 처지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런 내 처지에도 <부정적인> 면과 감사해야 하는 <긍정적인> 면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러니 내 사례가 세상의 온갖 상황 중 가장 비참한 상황을 경험한 데서 나온 지침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늘 우리에게 뭔가 위안을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지침, 그리고 행운과 불운 양쪽을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은 회계 장부가 있다면 가급적 행운을 기록한 대변 쪽에 마음을 기울이라는 지침 말이다. (94∼95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나의 생각)

제임스 조이스가 『로빈슨 크루소』에 대해서 말한 '특징'이 작품 곳곳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의 말대로 '그에게는 남성다운 독립심, 무의식적인 잔인성, 불요불굴의 집요함, 느리지만 효율적인 지성, 성적 무감각증, 계산적인 과묵함 등 전적으로 앵글로-색슨족 특유의 기상이 넘쳐난다.'

 

 * * *

 

인간의 감정이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혹은 알 수 없는 다채롭고 은밀한 샘물들에 의해서 얼마나 급하게 이리저리 떠밀려 내려가는가! 오늘 우리는 내일이면 우리가 증오하게 될 것을 사랑한다. 오늘 우리는 내일이면 우리가 회피하게 될 것을 찾아 나선다. 오늘 우리는 내일이면 우리가 두려워하게 될 것, 아니 그 두려움으로 몸조차 벌벌 떨게 될 것을 갈망한다. 바로 이 사실이 발자국 사건 당시의 나를 통해 상상 가능한 가장 생생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다. 내게는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된 것 같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과 절연되어 내가 무언의 삶이라고 부르던 삶을 살도록 저주받았다는 생각, 끝도 없는 바다에 둘러싸여 외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나는, 하느님께서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놈, 다른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놈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과 같았다. 그러니 그런 내가 나와 같은 종인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나 매한가지이든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최고의 축복인 구원 다음으로 위대한 축복처럼 여겨질 일이었다. 그런데, 말하자면 바로 그런 내가 사람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지금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것이고, 섬에 사람이 발을 내디뎠을지도 모른다는 그림자처럼 희미한 가능성과 무언의 흔적 때문에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괴로움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것이 들쭉날쭉 고르지 못한 인간 삶의 상황인 것이다. 이 생각은 이후 발자국 사건으로 인한 최초의 충격에서 조금 회복되고 난 후에도 내게 많은 상념을 제공해 주었다.(214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 * *

 

아아, 사람이란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이성이 제공하는 해결 수단마저 박탈해 버린다. (……)

 

이런 것들이,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 온통 새로운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찬 내 머릿속 상념의 주제였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온통 침울한 망상들로 가득 찼다. 이처럼, 눈앞에 뻔히 존재하는 위험에 대한 가상의 공포감이 실제 위험 자체보다 천배는 더 무시무시한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걱정하는 불운한 재난보다 불안감이라는 부담 자체가 훨씬 더 괴롭다는 것을 잘 안다.(218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 * *

 

"불행으로 겪는 고통은 상상한 고통보다 덜 느껴진다"(퀸틸리아누스)고 한 말은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한 작가에게서 실제로 나온 말이다.(1170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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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②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괴테도 있다. 그는 물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뿐만 아니라 『파우스트』를 쓴,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바로 그 독일 시인이 맞다. 결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심지어 그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조차도 등장 인물로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소설 속 가공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천연덕스러워 도무지 소설인지 실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어쨌든 '소설 속의 화자'인 그(쿤데라 선생님)는 살아생전에 활동했던 괴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괴테까지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그 가운데 내게 정말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죽은 괴테'가 '죽은 헤밍웨이'와 나누는 대화였다.

 

헤밍웨이가 문득 부드럽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그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물었다. "한데 요한, 당신은 이제 사후 나이가 몇 살이나 되셨죠?"

 

"백쉰여섯 살입니다." 괴테가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그런데도 아직 죽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요?"

 

그 환상적인 소설을 읽으며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떠올렸었다. '불멸'에 대해서, 그리고 '불멸'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몸짓들'에 대해서...

 

괴테가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만났는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다. 이 소설은 그런 부스러기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직 '불멸'과 관계된 이야기에만 집중된다.

 

이 '불멸의 시인'에게 아주 뜻깊은 날은 언제였던가? 바로 1808년 10월 2일이었다. 그날에 그는 '불멸의 전략가'인 나폴레옹을 만났던 것이다. 그 둘의 만남이 얼마나 인상깊었는지에 대해서는 니체조차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 독일 철학자는 자신의 불멸의 작품인 『선악의 저편』에서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괴테를 만났을 때 나폴레옹의 놀라움을 깊이 있게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좋다 : 이것은 수세기 동안 '독일 정신'이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한 인간이 있다!" ㅡ 나폴레옹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 "이 사람은 실로 남자가 아닌가! 나는 오직 독일인을 만나리라고 기대했을 뿐인데!"(14)

 

원저 편집자 주

(14) Goethe, Unterredung mit Napoleon, 1808(1808년 10월 2일자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가 나를 주목하며 바라보았을 때, 그는 '여기에 한 인간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몸을 굽혀 인사했다"). Annalen oder Tag- und Jahres-Hefte von 1749 bis 1832.

 

 - 니체, 『선악의 저편』<제6장 우리 학자들> 중에서

 

다시 쿤데라의 소설 속으로 되돌아 오자. 그 소설 속에서도 '괴테'는 '나폴레옹'과 만난다. 왜 아니 그랬겠는가. 물론 쿤데라가 포커스를 맞춘 날도 1808년 10월 2일이다. (참고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니체의 '영원회귀'를 화두로 삼을 만큼 그 철학자를 깊이 탐구한 작가다. 『배신당한 유언들』에 그런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쿤데라의 소설 속 문장은 이렇다.

 

나폴레옹은 정말 프랑스인다웠다. 수많은 죽음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거기에다 작가들의 예찬까지 받고자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는 자신의 문화 고문에게, 오늘날 독일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높은 권위를 행사하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고문은 첫 번째 인물로 괴테를 꼽았다. 괴테! 나폴레옹은 이마를 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이집트 원정 중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사관들이 그 책에 깊이 빠졌음을 확인했더랬다.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자신이 잘 알았기에, 그는 열화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그런 감상적인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다며 사관들을 맹비난하면서, 앞으로는 어떤 소설도 읽지 못하게 했다. 어떤 소설도 말이다. 어째서 훨씬 더 유익한 역사물을 읽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괴테가 누구인지 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워 나폴레옹은 그를 초청하기로 결심한다. 고문의 말에 따르면, 괴테가 특히 극작가로 유명하다고 하니 그는 더한층 기쁜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소설과는 달리, 연극은 전쟁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이 매우 좋아하는 장르였다. 그 자신이 위대한 전쟁의 창작자요, 게다가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연출가였던 만큼, 내심 그는 자신이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위대한,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비극 시인임을 굳게 믿었다.

 

나폴레옹이 얼마나 '자신'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여겼던지는 수많은 일화가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나 또한 오래 전에 이집트에 갔을 때 '나폴레옹이 남긴 흔적'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는 룩소르 대신전 앞에 양쪽으로 웅장하게 서 있던 오벨리스크 가운데 하나를 '통째로 뽑아' 프랑스로 옮겨 갔던 것이다.(지금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바로 그 오벨리스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카르낙 대신전의 웅장한 석벽을 바라보면서 또다른 놀라운 생각을 떠올렸다. 그 드높은 석벽을 바라볼 때 받았던 깊은 감동과 함께, 어디선가 밀려 오는 까닭모를 분노와 경쟁심 때문에 결국 그는 애꿎은 병사들을 닥달해서 '흙으로 만든 벽돌'로라도 그만큼 높이 쌓아올리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 룩소르 신전 입구. 짝을 이뤘던 또 하나의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콩코드 광장으로 가져갔다.

 


 - 16만평 규모의 카르낙 신전 입구의 거대한 석벽. 나폴레옹이 거기에 덧대 쌓았던 흙벽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카르낙 대신전은 무려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온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다.

특히 134개나 되는 거대한 돌기둥들은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 웅장하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이야기만 짚고 넘어가자.『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집트의 놀라운 건축물들에 대해 뭐라고 말했던가.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놓아두라'고 말했다. 절대권력을 움켜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살아서 누린 영광으로도 부족해서, 죽은 뒤에라도 자신의 '불멸'을 위해, 혹은 '부활'을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바로 피라미드와 대신전들이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인가. 그가 룩소르 대신전에서 뽑아낸 거대한 돌기둥을 멀리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까지 힙겹게 끌고 가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봤더라면 뭐라고 일갈했을지 궁금하다.

 

내 눈앞에는 아직도 천신만고끝에 오벨리스크를 전함에 실어 마침내 이집트의 나일강에 띄웠을 때 나폴레옹이 떠올렸을 '만면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그만 이쯤에서 다시 쿤데라의 소설『불멸』로 되돌아 오자.

 

초청장을 받았을 때, 괴테는 (자신이 실레테임은 꿈에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금방 깨달았다. 그는 육십 대에 이르러 있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고 죽음과 더불어 불멸 또한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이미 말했듯이 죽음과 불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도,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로렐과 하디보다도 더 아름다운, 분리할 수 없는 한 쌍의 커플을 이룬다.) 괴테로서는 불멸자의 초청을 가벼이 여길 수가 없었다. 자기 작품의 절정이라 할 『색채론』집필 때문에 몹시 바빴지만, 그는 원고를 팽개친 채 에르푸르트로 떠났고, 거기에서 1808년 10월 2일, 불멸의 시인과 불멸의 전략가의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쯤에서 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쿤데라 선생님의 소설 속 문장들이 기어코 나를 붙잡아 이끌며 이야기를 여기서 조금 더 밀어나가 보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 소설가는 '괴테와 나폴레옹이 만나는 장면'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기어코 나로서는 결코 잊지 못하는 놀라운 '물건' 하나까지도 불쑥 내 앞에 내밀었기 때문이다.(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다시 소설로 들어가 보자.

 

분주한 유령 사진사들을 대동하고서, 괴테는 나폴레옹 부관의 안내에 따라 넓은 층계를 오른다. 그런 다음 층계를 또 하나 오르고, 여러 복도를 지나 어느 거대한 홀로 향하는데, 그 홀 깊숙한 곳에서 나폴레옹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제복 입은 사내들이 서성이며 여러 가지 보고를 올리고, 그는 계속 뭔가를 씹으며 그들의 보고에 대답한다. 잠시 후 부관이 그에게, 한쪽 편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괴테를 가리켜 보인다. 나폴레옹이 눈을 치뜨더니 오른손을 상의 안쪽으로 밀어 넣어 손바닥을 위장에 갖다 붙인다. 사진사들에게 에워싸일 때, 그가 버릇처럼 하는 몸짓이다. 그는 입에 든 음식을 급히 삼키고서(음식을 씹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사진 찍히는 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초상화들에 눈독을 들이는 사진사들의 심술을 알기에 말이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한 마디 던진다. "사람이 왔군!"

 

두 사람이 서로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눈 다음 장면이 점점 더 내게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나폴레옹이 진지한 어투로 묻는다. "예." 괴테가 가볍게 몸을 숙이며 대답한다. "그럼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들놈 하나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장군 한 명이 나폴레옹에게 다가가 중요한 소식 하나를 전한다. 나폴레옹이 생각에 잠긴다. 상의 속에 넣은 손을 빼내 포크로 고기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고는 (이제 무대는 촬영되지 않는다.) 질겅질겅 씹으며 답한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야 다시 괴테의 존재를 생각해 낸다. 진지한 관심을 내비치며 그가 묻는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예." 괴테가 몸을 가볍게 숙이며 대답한다. "그럼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들놈 하나가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좀 더 심각한 대화가 이어진 다음 장면이 내게는 결정적이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다시 중단된다. 장군들이 홀로 들어오고, 나폴레옹은 상의에서 손을 빼내 식탁에 앉아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찍더니, 각종 보고들을 들으며 우물우물 씹기 시작한다. 물론 유령 사진사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괴테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림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잠시 후, 자기를 안내했던 부관에게 다가가, 알현이 끝났는지 어떤지 물어본다. 부관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나폴레옹의 포크가 일어서고 괴테는 떠난다.

 

나폴레옹의 포크가 일어서다니! 이 대목에 이르자 나는 마침내 '나폴레옹이 들렀던 식당'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일어났던 '포크 사건'을 어떤 식으로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불멸의 유혹'을 더이상 억제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년 전 여름 베를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 네 명은 베를린에 도착할 때부터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우여곡절들을 겪었는데 그런 소소한 사건들은 다음날에 일어났던 여러 기막힌 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베를린에서 이틀째를 맞은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돌아보고 난 뒤에 '시티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베를린을 아주 편안히 앉아서 둘러볼 수 있는 아주 좋은 투어였다.

 

 - 베를린에 가면 꼭 '시티투어 버스'를 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볼 게 참 많았다.

 

 

 - 독일판 '공동경비구역 JSA'인 '체크포인트 찰리'

 

 

 - 몇 달 전에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 에서도 '체크포인트 찰리'가 나왔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동안 베를린 시내를 일람한 뒤에 우리는 다음 코스로 카라얀 거리에 있다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면서 연주하는 콘서트홀을 걸어서 찾아갔다. 거기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가방을 뒤졌더니, 아뿔싸~ 거기엔 내가 찾는 '카메라 렌즈'가 없었다. 시티투어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잠시 눈앞이 아찔했다. 렌즈를 다시 갖추는 일도 큰 문제였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할 생각을 하니 더욱 아찔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엔 망원렌즈가 달려 있었고, 없어진 렌즈는 24mm-70mm짜리 표준줌렌즈였다. 차라리 망원렌즈를 잃어버렸다면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텐데, 표준줌렌즈가 없으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우리는 '기적적으로' 그 렌즈를 도로 찾았다. 독일 국민들의 정직성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 카라얀 거리

 

 

 -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 기적적으로 카메라 렌즈를 다시 찾고 나서 기념촬영(?)을 했다.

   내가 탔던 버스를 찾아 내고 운전기사와 연락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준 아가씨와 '시티투어 버스 기사'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고 나서 한결 기분이 나아진 우리는 '아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물론 단체 경비를 쓰는 게 아니었다. 나의 불찰로 일행들에게 크게 '민폐'를 끼쳤으니 내가 한 턱 쏘는 저녁식사였다. 우리가 고심 끝에 찾은 식당이 바로 '나폴레옹이 들렀다는 아주 오래된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은 추어 레츠텐 인스탄츠(Zur Letzten Instanz)

 

 

 -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잠시 짬을 내어 '나폴레옹이 앉았던 자리'를 사진에 담았다.

    저 자리는 워낙 유명해서 오래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좀처럼 앉을 수 없다고 한다.

 

 

 -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생선 요리'에 '돼지고기 요리' 두 접시를 곁들였다.

 

와인도 맛있었고 음식맛도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할 만큼 아주 좋았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네 사람이 넉넉히 먹고도 남을 만큼 정말 푸짐하고 맛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세 접시나 되는 음식을 한창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 느닷없이 제법 덩치가 좋은 40대 여종업원이 '돼지고기 요리' 두 접시를 받쳐 들고 우리 앞에 떡하니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부드럽게 손사레를 치며 "No! No!"를 연발했다. 우린 이걸로 충분하고 추가로 음식을 주문한 적이 없다고 부지런히 설명했다. 그런데 여종업원이 우리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눈알을 크게 부라리며 다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우리가 분명히 "투 포크"를 더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 주문을 받을 때 자신도 몹시 의심스러워 재차 확인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한테까지도 '당신들도 듣지 않았었느냐'고 거듭 확인까지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우째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싶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린 막무가내로 '결코 두 접시를 더 시킨 적이 없다'고 강하게(?) 버텼다. 마침내 여종업원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찬 바람을 쌩~ 하고 일으키면서 '두 접시'를 도로 집어들고 홱 돌아서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모든 사단이 그 여종업원의 '거친 몸짓' 하나에 의해 순식간에 밝혀졌다. 그 우락부락하게 표정이 뒤바뀐 몸집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종업원이 느닷없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포크'가 가득 담긴 '포크 통'을 통째로 우리 테이블 위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 놓고는 쌩~ 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맙소사!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투 포크'를 더 주문한 게 확실해졌다. two fork를 달라는 게 그만 two pork가 나왔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가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세면장으로 손을 씻으러 간 사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일어나 나폴레옹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는 그 유명한 테이블을 구경하러 자리를 잠시 뜬 사이에, 남아 있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두 개의 포크'를 더 달라고 그 여종업원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테이블엔 '포크'가 딸랑 두 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넷인데 말이다.(그 이름난 식당에서 포크를 미리 손님 숫자에 맞춰 식탁 위에 세팅해 놓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진 이상 '사죄'하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찬바람을 쌩쌩 휘날리며 우리 테이블을 지나칠 때마다 사나운 눈길을 심심찮게 건네던 그 아주머니를 조용히 불러 '자초지종'을 다 밝히고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건넸다. 내친 김에 와인도 한 병 더 주문했다. 계산을 치를 땐 "체인지 이즈 유어즈"를 곁들여 팁까지 그녀에게 듬뿍 내밀었다. 그 이후 그 아줌마는 서빙하러 테이블 사이를 누비는 내내 엉덩이를 연신 살랑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투 포크 플리즈~' 사건은 제법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그녀의 변화무쌍했던 몸짓들'과 함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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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_Shin 2016-06-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크`가 가득 담긴 `포크 통`을 통째로 놓으면서...
사건은 해결된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oren 2016-06-16 00:01   좋아요 0 | URL
나폴레옹의 포크 때문에 그 식당과 그 아주머니와 포크 통이 눈앞에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답니다. 앞으로 어딜 가든지 돼지고기 요리가 나오는 음식점에서는 결코 `포크`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을 듯싶어요. ㅎㅎ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몇 권과 그가 쓴 에세이 『배신당한 유언들』을 읽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까지 단숨에 넘어 왔다. 이 기이한 '초기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예전에 사 두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가 궁금해졌다. 라블레의 소설에 등장하는 '엄청난 리스트'가 혹시 그 책에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과연 그랬다. 그 책에 나오는 수많은 목록들 가운데에서도 '라블레의 리스트'는 단연 독보적인 데가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 책에서 고작 한두 번 인용되는 형편인데, 그는 무려 일곱 차례나 그것도 매번 '엄청나게 길게' 인용되고 있었다.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내노라 하는 '궁극의 리스트'를 올린 작가들을 모두 따돌린 그는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올린 셈인가.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 작가들을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소개하면 이렇다. 세 번 인용됨으로서 단독 2위를 차지한 작가는 이탈로 칼비노였다.(『보이지 않는 도시들』,『운석들』, 『만약 겨울밤에 한 여행자가』) 두 번 인용된 공동 3위는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멕베스』, 『리처드 2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선택의 가능성』,『생일』), 움베르코 에코(『장미의 이름』,『바우돌리노』), 빅토르 위고(『93년』으로 두 번),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거꾸로』로 두 번), 조르주 페렉(『파리의 몇몇 장소에 관한 묘사 시도』,『나는 기억한다』) 등이다. '리스트'에 일가견이 있는 숱한 나머지 작가들은 에코로부터 단 한 번만 간택되는데 그쳤다. 그 작가들을 오로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괴테, 단테, 베르길리우스, 보르헤스, 세르반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위고, 조이스, 마크 트웨인, 마르셀 푸르스트,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어쨌든 모두 대단한 작가들이고,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리스트들도 일일이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대충만 살펴보더라도 하나같이 놀라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리스트를 발굴해 낸 움베르토 에코 또한 대단한 인물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그가 『궁극의 리스트』라는 책을 완성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리스트'와 '작품'과 '작가들'을 자신의 책에서 마침내 배제했을 것인가가 더욱 궁금하다!)

 

나는 그 책에 담긴 '빽빽한 목록'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책은 차라리 '백과 사전'이나 '사전'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그 책들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생각은 전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 책 속에 담긴 멋진 그림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데 한동안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현기증 나는 목록>, <혼돈스러운 열거>, <신기한 것들의 목록>, <정상적이지 않은 목록> 보다는 어쨌든 그 책에 담긴 놀라운 그림들이 훨씬 더 보기 좋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작품이 내 눈에 번쩍 띄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에 데시무스 아우소니우스의 『모젤 강』이 인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용인 즉슨 그 강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온갖 물고기들이 산다'는 내용이었다. 아, 나는 그 강에 가서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구경해 보지 못했는데, 그 강에 그렇게 많은 고기들이 살고 있었더란 말인가 싶다가도, 아, 그 강변에 자라나는 포도나무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 맛보았던 그 '모젤 와인'은 또 얼마나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던가, 하는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또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또 얼마나 많은 포도주를 마셨던가도 떠오르고...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대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약간의 시도'는 해 볼 수 있지 싶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 애쓴 여러 흔적들도 우리는 이미 조금씩 엿보아 왔으니 말이다.

 

형언불가의 토포스, 곧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수사법은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나온다. 예를 들어 『오디세이아』제4권 240행(<물론 나는 참을성이 많은 오디세우스가 겪은 전투들을 모두 다 말하거나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어요 ……>)이 그렇고 『오디세이아』11권에 나오는, 오디세우스가 하데스에서 만난 죽은 사람들의 목록은 말할 것도 없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부분을 모델로 삼아 아이네이아스의 지하 세계 여행을 묘사했다(『아이네이아스』6권, 264행).

 

우리는 고대 문학사에서 헤시오도스부터 핀다로스까지, 이어서 라틴 문학과 베르길리우스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수사법이 나타난 예를 거의 무한하게 계속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농경시Georgica』(2장 157행)에서 온갖 포도와 덩굴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보라! 그 종류는 얼마나 많고 그 이름들은 또 무엇인가 / 말할 수도 없거니와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그것을 알기 위해 열거하는 자는 또한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열거해야 하리 / 리비아 평원에서 / 제피르에 굴러가는 모래알은 얼마나 많은가(……) / 이오니아 해에서 뭍으로 굴러 오는 / 파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중략)

 

그렇지만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 만큼 혀와 입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그러고 나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은 채,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표현을 다양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과,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처럼, 또는 『모젤 강La Mosella』에서 물고기들을 열거했던 아우소니우스처럼, 불완전하게나마 표본을 사용해 어떤 식으로든 열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다르다.

 

 -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 <4.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중에서

 

그렇다. 내가 모젤 강을 찾아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우리 일행은 거기에 닿기 전까지 적잖은 도시들을 거쳤다. 우리들이 들렀던 도시들의 '목록'을 나열하면 이렇다. 뭰헨, 뉘른베르크,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베를린,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안트페르펜, 브뤼셀, 브뤼헤 등) 마침내 우리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내가 눈으로 보고 혀로 맛보았던 '모젤 강변의 포도나무'와 '모젤 와인' 또한 마찬가지다.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나는 그걸 '사진'으로나마 여기에 다시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이 얼마나 편리한 방식인가! 하마터면 까마득히 묻힐 뻔했던 2년 전 사진들이 이렇게 해서 다시 빛을 보게 되다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 * *

 

 - 나를 순식간에 모젤 강으로 떠나게 만든 바로 그 페이지. 세상에, 저런 작가의 저런 책도 있었다니~

 

 

 - 지금 문득 네이버로 찾아 보니 이 분은 마침 '프랑스 보르도 출신'으로 로마의 집정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고, 로마 제정 말기의 시인이었으며 라틴문학 쇠퇴기인 4세기에 활약했다고.

 

 

 -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 일행은 이날 아침 일찍 브뤼셀을 떠나 다시 독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여행중 아침마다 차에 오르면 주로 듣던 음악이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가운데 '아침의 기분'이었는데,

   이날 아침은 그 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마침 인적이 없는 한적한 숲을 만나 차를 세우고 그 기분을 만끽했다.

 

 

 - 산책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으나 벨기에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차를 세웠다.

    때는 바야흐로 7월 초였고, 온 들판이 라벤더 꽃향기로 가득했다. 정말 여유롭고 한적한 여름 아침이다.

    지금 이곳은 아마도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경계 어드메쯤 될 것 같다. 어쨌든 '모젤 강'으로 가는 중이다.

 

 

 - 30분, 아니면 40분쯤? 실컷 '여유'를 부리며 마음껏 쉬고 난 뒤 다시금 차에 올라 길을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네비게이션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라고 알려 준다. 아직은 룩셈부르크인 모양이다. 

 

 

 - 누렇게 익은 '밀밭' 사이로 자전거를 매단 차량들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우리와 함께.

 

 

 - 밀밭이 끝도 없이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빵이 주식(主食)이니 밀밭도 어마어마하게 넓어야겠지 싶었다.

 

 

 - 그냥 아무데서나 잠시 차에서 내려서 또 쉬고 싶어 정차했더니, 밀밭이 펼쳐진 풍광이 참으로 이국적이다.

 

 

 -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어디론가 계속 더 가 보고도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갈 길'이 먼 나그네 신세였다. 더군다나 예정에도 전혀 없는 아주 낯선 데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 드디어 룩셈부르크 국경과 아주 가까운 '모젤 강변 최대 도시'인 '트리어 시내'에 들어왔다.

    평일 오후인데 사람들이 한가롭게 벤취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앉아 있다. 참 기분 좋은 느긋한 오후다.

 

 

 - 건물 이름도 모른다. 그저 트리어 시내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중심가 광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뿐.

 

 

 - 관광객도 많고 건물도 많으니 '점심'은 아무 데서나 편하게 먹을 수 있겠거니 싶었다.

    아뿔사! 어렵사리 찾은 '스시집'과 '중국집' 모두 닫혔다. 하필 점심 시간이 지나 '잠시 휴업중'이었다.

 

 

 -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꼬마녀석들도 오늘은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보란 듯이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내보이며 포즈를 취해 준다. 귀여운 녀석들~

 

 

 - 생각보다 아주 수월하게 오늘밤 묵을 호텔을 찾았다. 위치와 시설, 서비스와 가격 모두 대만족이었다.

 

 

 - 호텔 레스토랑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호텔방에서 컵라면을 끓이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니 화창한 여름 오후다.

 

 

 - 컵라면에 햇반까지 말아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에 발걸음도 가볍게 트리어 시내 관광에 나섰다.

    여기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목욕'했다는 '황제의 목욕탕'이다. 트리어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

 

 

 - 황제의 목욕탕 주위로 관광객들이 제법 몰려 들었다.

    이 친구들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포즈부터 취한다. 몹시 기분이 좋은 듯하다.

 

 

 - 목욕탕 바로 옆에 깔끔한 호텔들이 죽 늘어서 있다. 가운데쯤 있는 호텔이 방금 우리가 짐을 푼 호텔이다.

 

 

 - 트리어는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트리어 대학'도 유럽에서 알아주는 대학이라고 한다.

 

 

 - 저녁때 '와인 한 잔' 할 때 '안주'로 삼기 위해 미리 가게에 들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맛이 정말 끝내줬다.

 

 

 - 트리어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분위기가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 트리어 중심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이 그림같다. 하늘도 맑고. 햇살이 조금 따갑다.

 

 

 - 트리어는 휴양도시로도 유명하다고는 하나 관광객보다는 젊은이들이 훨씬 더 눈에 띈다.

 

 

 - 뜨거운 여름 햇살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자 짙은 그늘이 생긴다. 돌아다니기가 한결 수월하다.

 

 

 - 로마 목욕탕에서 광장까지 쭉 뻗은 길이 '트리어 시내 메인 도로'인 셈이었다.

 

 

 - 시내를 벗어나 어느새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우리는 '모젤 강변'을 산책했다.

    그토록 유명하다는 '모젤 강'이지만 아직은 그다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 모젤 강변에서 벗어나 다시 호텔로 되돌아가는 길에 '광장'을 다시금 지나쳤다.

    벌써 밤 아홉시가 넘어서 그런지 인적이 몹시 드물다. 돌로 만든 광장 바닥이 조명에 반들거린다.

 

 

 - 트리어는 생각보다 훨씬 외진 곳인가 보다. 아직은 초저녁인 셈인데 인적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 목욕탕 주변에도 인적이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도 몹시 배가 고프다. 빨리 호텔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

 

 

 - 우리가 묵을 호텔 앞도 고요하기만 하다. 사정이 이러니 '호텔방 예약'이 그토록 쉬웠던 모양이다.

 

 

 - 드디어 '모젤 와인'을 맛 볼 시간이다. 다시금 침이 꼴깍 넘어간다.

 

 

 - 이날밤 마신 와인이 내가 여태껏 마셔 본 중에 최고였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온갖 과일 향기가 어쩌면 그토록 그윽하고 향기로울 수 있는지, 모두가 기막힌 와인 맛에 뿅~ 갔다.

 

 

 -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무턱대고 '모젤 강변'을 따라 차를 몰았다.

    가다 보면 어딘가에선 '멋진 와이너리'도 떡하니 버티며 우릴 기다리겠지 하는 맘뿐이었다.

 

 

 

 - 길이가 무려 544km에 이른다는 모젤 강이다. 여기는 독일과 룩셈부르크 국경지대를 흐르는 유역이다.

 

 

 

 

 - 이 정도면 분명 '와이너리'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제법 큰 마을로 들어섰는데도 와이너리는 보이지 않는다.

   포도농사에 바쁜 농부를 만났는데, 이 분을 붙잡고 10분 이상을 물었는데도 도대체 말이 통하질 않았다.

   우리는 독일어를 할 줄 몰랐고, 이 분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와이너리'를 모르겠단다.

   (네이버에 물어 보니 Winery를 독일어로는 Anbaugebiet(안바우게비이트)로 표현한다고. 그랬구나...쩝.)

 

 

 - 도대체 '와이너리'는 어디에 있는 건가? 상심한 우리는 잠시 모젤 강변으로 나와 휴식을 취했다.

    검색도 좀 해보고 이리저리 궁리도 좀 해봤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 이렇게 큰 마을에 '와이너리'가 한 곳도 없다니 말이 되나 싶어서 하릴없이 '안내간판'만 보다가 결국 돌아섰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마을은 해마다 '모젤 와인 축제'가 벌어지는 제법 유명한 동네였다.)

 

 

 - 마을을 벗어나자 '높은 언덕'에 전망 좋은 휴식처가 있었다. 아주 가끔씩 관광객도 잠시 들렀다 지나쳤다.

 

 

 - 여기도 마치 하회마을처럼 물이 휘감아 돌아가는 곳이 있었다. 강 건너 마을은 Trittenheim이라는 곳이었다.

 

 

 - 모젤 강 주변이 온통 포도밭으로 뒤덮여 있었다. 강을 따라 움직이는 배들도 대부분 '와인 산업용'이지 싶었다. 

 

 

 - 결국 우리는 '와이너리'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모젤 와인'도 더는 맛보지 못하고 여길 떠났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하이델베르크까지 가자면 아직도 길이 멀었다. 배도 고팠다.

 

 

 -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포도밭만큼은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언덕마다 오로지 포도, 포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 포도밭만 실컷 구경하고 가는구나. 우리에겐 정작 당장이라도 마실 수 있는 '포도주'가 절실할 뿐인데 말이다.

 

 

 - 우린 그렇게 '모젤 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맛'을 언제 다시 맛볼지도 모른 채로.

    더군다나 이 강에 그렇게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이 산다는 '고기'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새까맣게 모른 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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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2016-06-1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사진도 주인장님을 닮아서 읽고 보기에 참! 좋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겸손한 글 잘읽고 갑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oren 2016-06-12 00:56   좋아요 0 | URL
그랜드슬램 님 반갑습니다.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모젤 강`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진을 뒤늦게나마 올리게 되는군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덧 이곳 날씨도 점점 `여름의 기분`을 더 자주 느끼게 해주는군요.
그랜드슬램 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밑줄긋기)

 

실용적 목록과 시적 목록 교환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나 워싱턴의 의회 도서관 같은 거대한 도서관의 카탈로그이다. 그것들의 목적은 확실히 실용적이지만 그 모든 책 제목을 읽고자 하고, 그것들을 무슨 호칭 기도처럼 중얼거리고자 하는 애서가라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호메로스가 전사들을 마주했을 때의 그 상황과 똑같음을 발견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테오프라스토스 전기』, 42∼50)가 끌어낸 테오프라스토스의 저작 카탈로그를 읽을 때 일어난다. 여기서 (그 대부분이 사라진) 책들의 제목은 우리에게 하나의 목록이라기보다 주문(呪文)처럼 다가온다. 라블레가 생 빅토르 수도원에 보관된 장서 카탈로그를 지어 낼 때 생각했던 것도 아마 바로 이런 식의 끝없는 목록이었을 것이다. 명백하게 실용적인 라블레의 목록은 그럼에도 시적이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동물적 야만의 무한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기이한 책 제목들인지 아니면 그 목록의 크기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목록에 대한 취향은 세르반테스부터 위스망스, 칼비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켜 왔다. 더욱이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탈로그(확실히 실용적 목록으로 만들어진)를 무릉도원이나 욕망의 땅에 대한 황홀한 묘사처럼 읽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쥘 베른의 독자들이 고요한 심해 탐험이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얻듯이, 그들은 책 목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376∼377쪽)

 

 - 움베르토 에고, 『궁극의 리스트』, <20. 실용적 목록과 시적 목록의 교환> 중에서

 

 * * *

 

이 일이 있고 나서 팡타그뤼엘은 일행들과 파리로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러 밖으로 나왔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파리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더할 나위 없는 바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단히 경탄하며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자기 암말의 목에 달아주려고 노트르담 성당의 종을 가져갔던 것처럼, 궁성을 다른 곳, 어떤 외진 지역으로 옮기지나 않을까 하는 큰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는 얼마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일곱 가지 교양과목 모두를 열심히 공부한 다음 파리가 살기에는 좋지만 죽기에는 좋은 도시가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생 지노상 묘지에 사는 거지들이 죽은 사람들의 뼈를 태워 엉덩이를 덥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특히 생 빅토르 도서관에서 찾은 몇몇 책들 때문에 그곳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구원의 막대,

법률의 앞주머니,

교회법의 실내화,

악덕의 석류,

신학의 실꾸러미,

튀르뤼팽이 쓴 설교자들의 깃털 먼지떨이,

용자(勇者)들의 코끼리 불알,

주교들의 사리풀,

오르벨리스의 주석이 첨부된 마르모트레의 비비(狒)와 원숭이,

화류계 여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파리 대학의 시행령,

해산 중인 푸아시의 수녀에게 나타난 성녀 제르트뤼드,

오르투이누스 선생 저, 모임에서 정직하게 방귀 뀌는 법,

고행을 행하는 겨자 장수,

가죽 각반, 일명 인내의 장화,

기예의 소굴,

도미니크파의 실베스트르 드 프리에리오 저, 수프의 사용법과 정직한 음주법,

법정에서 기만당한 자,

공증인들의 속임수,

결혼의 보따리,

명상의 도가니,

법률의 객설,

포도주의 자극,

치즈의 박차,

사들 때 벗기는 솔,

타르타레 저, 대변 배설법,

로마의 축제행렬,

브리코 저, 수프의 다양성,

규율의 밑바닥,

겸손의 신발,

건전한 배를 가진 배불뚝이,

고결함의 냄비,

고해사들의 장애,

사제들의 과자,

바바르드리 관구의 뤼뱅 신부님 저, 비계 식사법, 3권,

대리석 박사 파스키노 저, 교회가 금지한 교황절 기간에 아티초크를 곁들인 염소 고기를 먹는 법,

사기단이 공연한 등장인물 여섯이 나오는 신비극, 성스러운 십자가의 제조,

로마 순례자들의 안경,

마요리스 저, 순대 제조법,

고위 성직자들의 풍적(風笛),

베다 저, 내장 요리의 탁월함,

현물 대납 제도 개혁에 대한 변호사들의 청원,

소송대리인들의 소동,

주석을 첨부한, 비계를 넣은 완두콩,

면죄부의 잡다한 이점,

쌍방 법률에 정통한 필로 라클드니에 박사 저, 아쿠르시오 주석의 어리석음에 대한 처방, 명백하고 확실한 재론,

자유사수 바뇰레의 전술,

갱도병 테보가 등장하는 병법론,

숫말과 암말의 박피법과 효용성, 저자 우리의 스승 케베퀴 선생,

하급 성직자들의 소박한 음식,

우리의 스승 로스톡의 암노새 다리(Rostocostojambedanesse) 저, 보리옹 선생의 각주가 첨부된, 식사 후 겨자의 용법, 14권,

성직 재판관들이 제공하는 선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10주 동안 논의된 미묘한 문제, 허공 속에서 포효하는 키메라가 2차적 의도를 먹을 수 있는가?

변호사들의 탐욕,

스코투스의 실수,

추기경들의 박쥐 날개 모양의 관(冠),

알베리쿠스 드 로사타 선생 저, 박차 제거법, 11 곱하기 10장,

상동, 두발의 군사적 점령, 3권,

앙투안 드 레브의 브라질 상륙,

마르포리우스, 학사 겸 로마 장학생 저, 추기경들의 암노새들을 세척하고 염색하는 방법,

교황의 암노새는 기분 내키는 때만 먹는다고 주장한 자들을 반박한 상기인의 변론,

우리의 스승 몽상가 선생이 제공한 '실비우스 트리크비유'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예언,

부다랭 주교 저, 젖짜기의 효용성, 9일 기도 9회와 3년간 한시적인 교황의 윤허가 부여됨,

숫처녀들의 교태,

과부들의 껍질 까진 엉덩이,

수도사들의 두건,

셀레스틴회 사제들의 형식적인 기도,

탁발 수도회의 통행세 징수,

천민들의 이 부딪치는 소리,

신학자들의 함정,

문예학사들의 나팔 구멍,

첫 삭발례를 받은 오캄의 문하생들,

프리프소스 선생 저, 교회법에 따른 기도시간에 관한 자세한 연구, 40권,

작자 불명의 동업자 조합의 전복,

대식가들의 공동(空洞),

이니고 형제가 장엄하게 찬송한 에스파냐인들의 악취,

빈민들의 구충제,

이탈리아 식 소송사건의 융통성, 저자 브륄페르 선생,

레몽 륄, 군주들의 오락,

저자 이단 심판관 야콥 호히슈트라텐 선생, 위선의 보지,

쇼큐이용 저, 현재와 미래의 신학박사들에 관한 음주론, 매우 우아한 책, 8권,

레기스 편저, 교황의 교서집필 담당자, 필경사,ㅡ 서기, 서신집필 담당자, 문서보관 담당자와 비서관들,

통풍 환자와 매독 환자들을 위한 항구적 연감,

에크 선생 저, 화덕 소제법,

상인들의 끈,

수도원 생활의 안락함,

편협한 신자들의 잡탕 요리,

장난꾸러기 요괴 이야기,

낭비벽이 있는 자들의 빈곤,

종교재판소 판사들의 어리석은 속임수,

재무관들의 삼 부스러기,

궤변론자들의 농담,

성가신 자들의 양면적 의미에 관한 토론(Antipericatametanaparbeugedamphicribrationes merdicantium),

엉터리 시인들의 달팽이,

연금술사들의 실험,

세라티스 형제 저, 연보 모금하는 성직자들의 주사위 놀이,

종교의 속박,

종치기의 막대,

노년의 팔걸이,

귀족의 입마개,

원숭이의 주기도문,

신앙심의 사슬,

사계제일(四季齋日)의 냄비,

정치적 인생의 법모,

은자들의 파리채,

고해신부들의 두건,

방탕한 수도사들의 유희,

루르도 저, 멋쟁이들의 생활과 정직성에 관해서,

뤼폴드 선생 저, 소르본 신학자들의 박사모에 대한 윤리적 해석,

여행자들의 잡동사니,

술꾼 주교들의 물약,

로이힐린의 반대파 쾰른 박사들의 소동,

귀부인들의 방울종,

똥싸개들의 밑이 뚫린 반바지,

피에드비유 형제 저, 정구 경기 조수들의 회전,

진정한 용기의 군화,

장난꾸러기 요정과 꼬마 악마들의 가장 무도회,

제르송 저, 교회의 교황 폐위권,

작위와 학위 소지자들의 썰매,

요한 디트브로디우스 저, 파문의 가혹함, 표제가 없는 책,

귄골푸스 저, 남녀 악마 소환법,

영속적 기도의 잡탕 요리,

이단자들의 무어 식 춤,

가에탕의 목발,

지품(智品) 천사 박사 무이유그룅저, 위선자들의 기원과 거짓 신앙가들의 의식에 관해서, 7권,

기름때 묻은 번쩍이는 성무일과서, 69권,

다섯 탁발 수도회의 뚱뚱한 배,

앙겔루스의 『전서』에 삽입된 『황갈색 장화』에서 발췌한 부랑자들의 모피,

양심 문제의 몽상가,

재판장들의 뚱뚱한 배,

신부들의 당나귀 자지,

쿠튀리에 저, 저자를 사기꾼이라고 부른 자에 대한 반론과 교회가 사기꾼을 벌하지 않는 문제에 관한 논의,

의사들의 변소,

점성술의 굴뚝소제부,

S. C. 저, 관장의 영역,

약제사들의 관장약,

외과적 관장술,

유스티니아누스 저, 위선자 제거법,

영혼의 해독제,

메를랭 코카이 저, 악마의 나라

 

이 책들 중에 몇 권은 이미 인쇄되었고, 나머지는 지금 고상한 도시 튀빙겐에서 인쇄중이다.

(307∼317쪽)

 

일러두기

 - 이탤릭체로 표시된 부분은 원서에서 프랑스어 외의 라틴어를 비롯한 외국어 표기임

 - 위 인용문에 딸린 역자의 방대한 주석(104번∼151번)은 분량상 생략함

 

 - 프랑스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제7장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파리로 갔는가, 그리고 생 빅토르 도서관의 훌륭한 장서에 관해서>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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