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②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괴테도 있다. 그는 물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뿐만 아니라 『파우스트』를 쓴,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바로 그 독일 시인이 맞다. 결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심지어 그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조차도 등장 인물로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소설 속 가공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천연덕스러워 도무지 소설인지 실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어쨌든 '소설 속의 화자'인 그(쿤데라 선생님)는 살아생전에 활동했던 괴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괴테까지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그 가운데 내게 정말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죽은 괴테'가 '죽은 헤밍웨이'와 나누는 대화였다.

 

헤밍웨이가 문득 부드럽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그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물었다. "한데 요한, 당신은 이제 사후 나이가 몇 살이나 되셨죠?"

 

"백쉰여섯 살입니다." 괴테가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그런데도 아직 죽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요?"

 

그 환상적인 소설을 읽으며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떠올렸었다. '불멸'에 대해서, 그리고 '불멸'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몸짓들'에 대해서...

 

괴테가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만났는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다. 이 소설은 그런 부스러기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직 '불멸'과 관계된 이야기에만 집중된다.

 

이 '불멸의 시인'에게 아주 뜻깊은 날은 언제였던가? 바로 1808년 10월 2일이었다. 그날에 그는 '불멸의 전략가'인 나폴레옹을 만났던 것이다. 그 둘의 만남이 얼마나 인상깊었는지에 대해서는 니체조차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 독일 철학자는 자신의 불멸의 작품인 『선악의 저편』에서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괴테를 만났을 때 나폴레옹의 놀라움을 깊이 있게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좋다 : 이것은 수세기 동안 '독일 정신'이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한 인간이 있다!" ㅡ 나폴레옹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 "이 사람은 실로 남자가 아닌가! 나는 오직 독일인을 만나리라고 기대했을 뿐인데!"(14)

 

원저 편집자 주

(14) Goethe, Unterredung mit Napoleon, 1808(1808년 10월 2일자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가 나를 주목하며 바라보았을 때, 그는 '여기에 한 인간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몸을 굽혀 인사했다"). Annalen oder Tag- und Jahres-Hefte von 1749 bis 1832.

 

 - 니체, 『선악의 저편』<제6장 우리 학자들> 중에서

 

다시 쿤데라의 소설 속으로 되돌아 오자. 그 소설 속에서도 '괴테'는 '나폴레옹'과 만난다. 왜 아니 그랬겠는가. 물론 쿤데라가 포커스를 맞춘 날도 1808년 10월 2일이다. (참고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니체의 '영원회귀'를 화두로 삼을 만큼 그 철학자를 깊이 탐구한 작가다. 『배신당한 유언들』에 그런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쿤데라의 소설 속 문장은 이렇다.

 

나폴레옹은 정말 프랑스인다웠다. 수많은 죽음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거기에다 작가들의 예찬까지 받고자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는 자신의 문화 고문에게, 오늘날 독일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높은 권위를 행사하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고문은 첫 번째 인물로 괴테를 꼽았다. 괴테! 나폴레옹은 이마를 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이집트 원정 중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사관들이 그 책에 깊이 빠졌음을 확인했더랬다.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자신이 잘 알았기에, 그는 열화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그런 감상적인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다며 사관들을 맹비난하면서, 앞으로는 어떤 소설도 읽지 못하게 했다. 어떤 소설도 말이다. 어째서 훨씬 더 유익한 역사물을 읽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괴테가 누구인지 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워 나폴레옹은 그를 초청하기로 결심한다. 고문의 말에 따르면, 괴테가 특히 극작가로 유명하다고 하니 그는 더한층 기쁜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소설과는 달리, 연극은 전쟁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이 매우 좋아하는 장르였다. 그 자신이 위대한 전쟁의 창작자요, 게다가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연출가였던 만큼, 내심 그는 자신이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위대한,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비극 시인임을 굳게 믿었다.

 

나폴레옹이 얼마나 '자신'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여겼던지는 수많은 일화가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나 또한 오래 전에 이집트에 갔을 때 '나폴레옹이 남긴 흔적'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는 룩소르 대신전 앞에 양쪽으로 웅장하게 서 있던 오벨리스크 가운데 하나를 '통째로 뽑아' 프랑스로 옮겨 갔던 것이다.(지금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바로 그 오벨리스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카르낙 대신전의 웅장한 석벽을 바라보면서 또다른 놀라운 생각을 떠올렸다. 그 드높은 석벽을 바라볼 때 받았던 깊은 감동과 함께, 어디선가 밀려 오는 까닭모를 분노와 경쟁심 때문에 결국 그는 애꿎은 병사들을 닥달해서 '흙으로 만든 벽돌'로라도 그만큼 높이 쌓아올리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 룩소르 신전 입구. 짝을 이뤘던 또 하나의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콩코드 광장으로 가져갔다.

 


 - 16만평 규모의 카르낙 신전 입구의 거대한 석벽. 나폴레옹이 거기에 덧대 쌓았던 흙벽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카르낙 대신전은 무려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온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다.

특히 134개나 되는 거대한 돌기둥들은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 웅장하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이야기만 짚고 넘어가자.『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집트의 놀라운 건축물들에 대해 뭐라고 말했던가.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놓아두라'고 말했다. 절대권력을 움켜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살아서 누린 영광으로도 부족해서, 죽은 뒤에라도 자신의 '불멸'을 위해, 혹은 '부활'을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바로 피라미드와 대신전들이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인가. 그가 룩소르 대신전에서 뽑아낸 거대한 돌기둥을 멀리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까지 힙겹게 끌고 가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봤더라면 뭐라고 일갈했을지 궁금하다.

 

내 눈앞에는 아직도 천신만고끝에 오벨리스크를 전함에 실어 마침내 이집트의 나일강에 띄웠을 때 나폴레옹이 떠올렸을 '만면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그만 이쯤에서 다시 쿤데라의 소설『불멸』로 되돌아 오자.

 

초청장을 받았을 때, 괴테는 (자신이 실레테임은 꿈에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금방 깨달았다. 그는 육십 대에 이르러 있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고 죽음과 더불어 불멸 또한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이미 말했듯이 죽음과 불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도,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로렐과 하디보다도 더 아름다운, 분리할 수 없는 한 쌍의 커플을 이룬다.) 괴테로서는 불멸자의 초청을 가벼이 여길 수가 없었다. 자기 작품의 절정이라 할 『색채론』집필 때문에 몹시 바빴지만, 그는 원고를 팽개친 채 에르푸르트로 떠났고, 거기에서 1808년 10월 2일, 불멸의 시인과 불멸의 전략가의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쯤에서 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쿤데라 선생님의 소설 속 문장들이 기어코 나를 붙잡아 이끌며 이야기를 여기서 조금 더 밀어나가 보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 소설가는 '괴테와 나폴레옹이 만나는 장면'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기어코 나로서는 결코 잊지 못하는 놀라운 '물건' 하나까지도 불쑥 내 앞에 내밀었기 때문이다.(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다시 소설로 들어가 보자.

 

분주한 유령 사진사들을 대동하고서, 괴테는 나폴레옹 부관의 안내에 따라 넓은 층계를 오른다. 그런 다음 층계를 또 하나 오르고, 여러 복도를 지나 어느 거대한 홀로 향하는데, 그 홀 깊숙한 곳에서 나폴레옹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제복 입은 사내들이 서성이며 여러 가지 보고를 올리고, 그는 계속 뭔가를 씹으며 그들의 보고에 대답한다. 잠시 후 부관이 그에게, 한쪽 편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괴테를 가리켜 보인다. 나폴레옹이 눈을 치뜨더니 오른손을 상의 안쪽으로 밀어 넣어 손바닥을 위장에 갖다 붙인다. 사진사들에게 에워싸일 때, 그가 버릇처럼 하는 몸짓이다. 그는 입에 든 음식을 급히 삼키고서(음식을 씹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사진 찍히는 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초상화들에 눈독을 들이는 사진사들의 심술을 알기에 말이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한 마디 던진다. "사람이 왔군!"

 

두 사람이 서로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눈 다음 장면이 점점 더 내게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나폴레옹이 진지한 어투로 묻는다. "예." 괴테가 가볍게 몸을 숙이며 대답한다. "그럼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들놈 하나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장군 한 명이 나폴레옹에게 다가가 중요한 소식 하나를 전한다. 나폴레옹이 생각에 잠긴다. 상의 속에 넣은 손을 빼내 포크로 고기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고는 (이제 무대는 촬영되지 않는다.) 질겅질겅 씹으며 답한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야 다시 괴테의 존재를 생각해 낸다. 진지한 관심을 내비치며 그가 묻는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예." 괴테가 몸을 가볍게 숙이며 대답한다. "그럼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들놈 하나가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좀 더 심각한 대화가 이어진 다음 장면이 내게는 결정적이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다시 중단된다. 장군들이 홀로 들어오고, 나폴레옹은 상의에서 손을 빼내 식탁에 앉아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찍더니, 각종 보고들을 들으며 우물우물 씹기 시작한다. 물론 유령 사진사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괴테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림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잠시 후, 자기를 안내했던 부관에게 다가가, 알현이 끝났는지 어떤지 물어본다. 부관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나폴레옹의 포크가 일어서고 괴테는 떠난다.

 

나폴레옹의 포크가 일어서다니! 이 대목에 이르자 나는 마침내 '나폴레옹이 들렀던 식당'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일어났던 '포크 사건'을 어떤 식으로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불멸의 유혹'을 더이상 억제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년 전 여름 베를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 네 명은 베를린에 도착할 때부터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우여곡절들을 겪었는데 그런 소소한 사건들은 다음날에 일어났던 여러 기막힌 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베를린에서 이틀째를 맞은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돌아보고 난 뒤에 '시티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베를린을 아주 편안히 앉아서 둘러볼 수 있는 아주 좋은 투어였다.

 

 - 베를린에 가면 꼭 '시티투어 버스'를 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볼 게 참 많았다.

 

 

 - 독일판 '공동경비구역 JSA'인 '체크포인트 찰리'

 

 

 - 몇 달 전에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 에서도 '체크포인트 찰리'가 나왔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동안 베를린 시내를 일람한 뒤에 우리는 다음 코스로 카라얀 거리에 있다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면서 연주하는 콘서트홀을 걸어서 찾아갔다. 거기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가방을 뒤졌더니, 아뿔싸~ 거기엔 내가 찾는 '카메라 렌즈'가 없었다. 시티투어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잠시 눈앞이 아찔했다. 렌즈를 다시 갖추는 일도 큰 문제였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할 생각을 하니 더욱 아찔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엔 망원렌즈가 달려 있었고, 없어진 렌즈는 24mm-70mm짜리 표준줌렌즈였다. 차라리 망원렌즈를 잃어버렸다면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텐데, 표준줌렌즈가 없으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우리는 '기적적으로' 그 렌즈를 도로 찾았다. 독일 국민들의 정직성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 카라얀 거리

 

 

 -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 기적적으로 카메라 렌즈를 다시 찾고 나서 기념촬영(?)을 했다.

   내가 탔던 버스를 찾아 내고 운전기사와 연락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준 아가씨와 '시티투어 버스 기사'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고 나서 한결 기분이 나아진 우리는 '아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물론 단체 경비를 쓰는 게 아니었다. 나의 불찰로 일행들에게 크게 '민폐'를 끼쳤으니 내가 한 턱 쏘는 저녁식사였다. 우리가 고심 끝에 찾은 식당이 바로 '나폴레옹이 들렀다는 아주 오래된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은 추어 레츠텐 인스탄츠(Zur Letzten Instanz)

 

 

 -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잠시 짬을 내어 '나폴레옹이 앉았던 자리'를 사진에 담았다.

    저 자리는 워낙 유명해서 오래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좀처럼 앉을 수 없다고 한다.

 

 

 -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생선 요리'에 '돼지고기 요리' 두 접시를 곁들였다.

 

와인도 맛있었고 음식맛도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할 만큼 아주 좋았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네 사람이 넉넉히 먹고도 남을 만큼 정말 푸짐하고 맛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세 접시나 되는 음식을 한창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 느닷없이 제법 덩치가 좋은 40대 여종업원이 '돼지고기 요리' 두 접시를 받쳐 들고 우리 앞에 떡하니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부드럽게 손사레를 치며 "No! No!"를 연발했다. 우린 이걸로 충분하고 추가로 음식을 주문한 적이 없다고 부지런히 설명했다. 그런데 여종업원이 우리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눈알을 크게 부라리며 다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우리가 분명히 "투 포크"를 더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 주문을 받을 때 자신도 몹시 의심스러워 재차 확인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한테까지도 '당신들도 듣지 않았었느냐'고 거듭 확인까지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우째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싶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린 막무가내로 '결코 두 접시를 더 시킨 적이 없다'고 강하게(?) 버텼다. 마침내 여종업원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찬 바람을 쌩~ 하고 일으키면서 '두 접시'를 도로 집어들고 홱 돌아서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모든 사단이 그 여종업원의 '거친 몸짓' 하나에 의해 순식간에 밝혀졌다. 그 우락부락하게 표정이 뒤바뀐 몸집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종업원이 느닷없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포크'가 가득 담긴 '포크 통'을 통째로 우리 테이블 위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 놓고는 쌩~ 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맙소사!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투 포크'를 더 주문한 게 확실해졌다. two fork를 달라는 게 그만 two pork가 나왔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가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세면장으로 손을 씻으러 간 사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일어나 나폴레옹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는 그 유명한 테이블을 구경하러 자리를 잠시 뜬 사이에, 남아 있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두 개의 포크'를 더 달라고 그 여종업원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테이블엔 '포크'가 딸랑 두 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넷인데 말이다.(그 이름난 식당에서 포크를 미리 손님 숫자에 맞춰 식탁 위에 세팅해 놓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진 이상 '사죄'하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찬바람을 쌩쌩 휘날리며 우리 테이블을 지나칠 때마다 사나운 눈길을 심심찮게 건네던 그 아주머니를 조용히 불러 '자초지종'을 다 밝히고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건넸다. 내친 김에 와인도 한 병 더 주문했다. 계산을 치를 땐 "체인지 이즈 유어즈"를 곁들여 팁까지 그녀에게 듬뿍 내밀었다. 그 이후 그 아줌마는 서빙하러 테이블 사이를 누비는 내내 엉덩이를 연신 살랑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투 포크 플리즈~' 사건은 제법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그녀의 변화무쌍했던 몸짓들'과 함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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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_Shin 2016-06-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크`가 가득 담긴 `포크 통`을 통째로 놓으면서...
사건은 해결된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oren 2016-06-16 00:01   좋아요 0 | URL
나폴레옹의 포크 때문에 그 식당과 그 아주머니와 포크 통이 눈앞에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답니다. 앞으로 어딜 가든지 돼지고기 요리가 나오는 음식점에서는 결코 `포크`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을 듯싶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