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한번 당신의 내부에 자리 잡으면,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신의 내부에서, 외부에서,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꾸준히 작용한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저자 서문> 중에서


 * * *


책을 읽는 행위에도 '6하 원칙' 같은 게 필요할까? 언뜻 생각해 보면 여섯 가지 질문들 가운데 세 가지 물음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누가, 언제, 어디서 책을 읽었는지는 독서의 본질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별로 궁금한 문제도 아니다. 우리에게 늘 필요한 물음은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느냐에 집중된다. 그게 책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라딘에서는 이상하게도 누가, 언제, 어디서 책을 읽었는지를 무척 궁금해 한다. 2년 전 이맘때 책의 날을 맞아 기획됐던 '10문 10답'만 해도 그렇다. '누가, 언제, 어디서'를 매우 강조했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책에 대한 문답인데도 침대, 화장실, 무인도 등등이 질문과 대답에서 쏟아졌었다. 왜일까? 쉽게 말하자면 그(알리딘)는 책을 팔아야 하는 장사꾼이기 때문이다.


나도 오늘은 알라디너라는 신분에 걸맞게 '책 장사'에 보탬이 되는 글을 좀 써볼까 싶다. 물론 이 말은 반쯤은 농담이다. 내 글이 '알라딘의 분위기'에 맞추는 글이 될 수밖에 없어서 미리 변명조로 늘어놓는 말이지, 정말로 책 장사에 도움을 주기 위한 글을 쓰겠다는 의도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 세 가지(무슨 책을, 어떻게, 왜) 보다는 '누가' '언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게 이 글의 못난 점이자 한계임을 미리 밝히고 양해를 구한다는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내가 지금까지『평생 독서 계획』에 담긴 저자의 책을 읽은 건 얼마나 될까? 이런 질문이 이런 잡다한 글을 쓰게 만들었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질문이야말로 책에 대한 곁다리 질문들인 누가, 언제, 어디서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본질적인 질문 세 가지(무엇을, 어떻게, 왜)는 벌써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니 '책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 책 속으로 되돌아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앞선 내 질문에 대해 자문자답식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독서계획』에 담긴 133명의 저자 가운데 대략 3할 정도인 42명의 저자를 만나왔다.' 3할이면 좋은가? 나쁜가? 아무도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이 질문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1할이면 낮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5할이 넘으면 준수하다는 평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왜' 읽는가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들을 더러 읽다가 두세 번쯤 놀랐다. 처음엔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을 때였다. 정말 뜻밖에도 그 책 속에는 『평생 독서 계획』에 대한 '저자의 놀라운 경험담'이 담겨 있었다.


내가 열두세 살의 소년이었을 때 우연히 ㅡ 엄밀하게 말하면 절도에 가까운 행위에 의해 ㅡ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이라는 문고판을 손에 넣게 되었다. 당시 나는 '고전'에 대하여 별 흥미가 없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스토리, 신비와 모험의 이야기, 예전에 로맨스라고 불렀던 그런 이야깃거리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치웠는데, 이 패디먼이라는 사람의 위대한 책들이 그린랜턴 만화나 타잔 문고판처럼 재미있다고 설명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전혀 현학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패디먼은 『오디세이아』, 『신곡』, 『오만과 편견』등 100편의 고전에 대하여 독자 대 독자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는 이런저런 경로를 거치면서 패디먼의 '독서 계획'에 들어 있는 책을 거의 다 섭렵했다. …… 그 후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1997년 패디먼의 『평생독서계획』의 수정 4판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존 S. 메이저가 중동과 아시아의 고전 33편을 추가하여 133편으로 만들어 놓았다.


 - 마이클 더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중에서


아하, 그랬구나. 문학 평론 부문에서 퓰리처상까지 받은 마이클 더다도 『평생 독서 계획』에서 크나큰 도움을 받았구나 싶었다.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두 번째로 놀란 건 거기에 소개된 88명의 작가 가운데 내가 만났던 작가는 고작 8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그들은 다음과 같다. 키케로, 플루타르코스, 야콥 부르크하르트, 대니얼 디포, 쥘 베른, 안톤 체호프, 오비디우스, 에드워드 기번) 더욱 놀라운 건 나머지 80명의 작가들과 작품들 가운데 내게는 이름마저 생소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이었다. 


세 번째로 놀란 건 헤럴드 블룸의『교양인의 책읽기』(원제는 『How to Read and Why?』, 절판된 후『헤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로 재출간)를 읽을 때였다. 그 책엔 44명의 작가(단편소설_9명, 시인_17명, 장편소설_15명, 희곡_3명)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만나본 작품과 작가는 고작 5명에 불과했다! 나름대로 고전을 좋아하고 또 열심히 읽어 왔다고 여겼는데 두 '문학평론가'의 책을 읽고 난 후엔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고전은 무슨 개뿔~ 이런 생각부터 엄습했다!


그런 충격에서 벗어날 길이 무엇일까를 곰곰 생각해 보다가 문득 떠올린 책이 『평생 독서 계획』이었다. 그 책 속의 목록을 뒤져보면 그래도 '타율'이 훨씬 더 올라갈 여지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나는 '3할'이라는 숫자를 간신히 얻고 나서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니 '내 마음 속 감정의 기복들'이 문득 『평생 독서 계획』에서 발견했던 키케로와 셰익스피어의 말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그리고 한참 있다가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고 하다.


"Ego mihi placui(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키케로의 이 말에는 세익스피어의 비극『오셀로』4막 1장에 나오는 다음 대사가 곧바로 뒤따라야 정말 제맛이다.


"Alas, poor caitiff!(이 한심한 화상아!)"



『평생 독서 계획』이라는 책까지 잔뜩 거슬러 올라 가니, 문득 그 책보다 훨씬 더 오랜 연원을 가진 '옛날 책' 한 권도 새삼 떠오른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할 때 만난 아주 자그마한 책인데, 내겐 이 책 속에 담긴 '독서 지침'이 알게 모르게 그동안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왔다. 이 조그마한 책 속에 '책을 읽는 즐거움'이나 '양서와 악서' 혹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나' 등등에 대한 여러 훌륭한 지침이 알차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도 아주 요긴하게 제시되어 있어서 그걸 무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때 만난 책. 159쪽에 정가 1,800원짜리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아주 단단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율리씨즈'로 소개되어 있다. 여주인공 마리언 블룸에게 몰래 편지를 보낸 애인 '보이란'은 요즘엔 '보일런'으로 번역된다. 요즘엔 보기 드문 『서부전선 이상없다』라는 책도 소개되어 있다.)



(8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이니만큼 책 제목들은 한자 사용이 기본이었다. '몽테뉴'는 '몽테에뉴'로, '니체'는 '니이체'로 표기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을 만났을 때 내가 읽은 고전이라고는 몽테뉴 『수상록』과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뿐이었나 보다. 밑줄이 두 권에만 그어져 있는 게 그걸 증명하는 듯하다. 36년 전에 그은 밑줄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이쯤에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읽은 『평생 독서 계획』속의 책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단체 기념사진'이라도 찍을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내 방 안에 얌전히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누가 몰래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엿보았더라면 그게 좀 우스울 뿐이었다. 어쨌든 이런 작업이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사진이라도 남겨 놓아야 혹시라도 먼 훗날에 내가 문득 과거로 눈길을 돌렸을 때  '오늘 남긴 기록'을 보고 새삼 놀라운 감회에 젖을 기회라고 가질 수 있을 게 아닌가.



사진 1_호메로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이들의 작품은 '고전 중의 고전'이므로 '다른 고전'으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할 우주정거장과 같은 구실을 하는 책들이다. 숱한 문학작품의 '발원지'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 책들'에 닿는 경우가 많다.



사진 2_헤시오도스, 오비디우스, 아폴로도로스, 이윤기

서양 문학과 예술의 또다른 '발원지'는 바로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평생 독서 계획』에는 빠진 책들이지만, '서양 고전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신화'를 찾아 읽을 수밖에 없다.



사진 3_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서양 고대 역사뿐 아니라 서양 세계의 '온갖 다양한 뿌리들'이 책 속 곳곳에 박혀 있다. 훗날 서양의 역사를 기록한 중요한 책들에서 끊임없이 인용하는 책들이기도 하다.



사진 4_플라톤, 아리스토파네스

플라톤은 설명이 필요없는 철학자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비극보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고대인의 웃음' 뿐 아니라 '현대인의 웃음'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묘하고도 재미있는 책이다. 아리스토파네스와 플라톤의 책을 함께 붙여 놓으니 문득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플라톤 또한 삶을 ㅡ 그가 부정했던 그리스적인 삶을 ㅡ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ㅡ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ㅡ " 『선악의 저편』중에서

 



사진 5_아리스토텔레스, 베르길리우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미건조하고 따분한 철학자이지만 학문의 깊이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최대의 시인이자, 라틴 시문학의 시조이며, 단테의 스승이니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진 6_아우렐리우스, 단테, 마키아벨리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탁월한 황제이자 후기 스토아학파 철학자였다. 단테는 타락한 민중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신곡』을 썼다기 보다는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그려냈다. 마키아벨리는 플라톤 이후 '국가의 가능성과 한계'를 전혀 새롭게 바라본 인물이다.



사진 7_라블레, 몽테뉴

라블레는 '하느님과 술 취한 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작가였다. 몽테뉴와 라블레를 함께 놓고 말하자면 두 사람만큼 진지하고 쾌활하면서도 인생을 사랑한 작가는 당대 프랑스 사람들 가운데 찾기 어려웠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사진 8_세르반테스, 대니얼 디포, 조너선 스위프트

이들 세 작가는 누구라도 한번 만나면 다시는 잊지 못할 독특한 '인간 유형'을 창조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돈키호테, 산초,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를 모르는 어른들은 아마도 거의 없으리라. 심지어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읽는 작품은 아이였을 때 읽었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르다.



사진 9_볼테르, 에머슨

볼테르와 에머슨은 당대와 후세 사람들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에 비해 오늘날 그리 폭넓게 읽히지 않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느끼는 이런 격차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다.


사진 10_찰스 다윈

다윈만큼 겸손한 과학자도 드물다. 그의 주장이 엄청났던 만큼 후세 사람들의 반발과 왜곡도 그만큼 심했다. 다윈 이후 쏟아져 나온 보다 진보한 이론들이 다윈의 업적을 깍아내리는 건 아니다. 훌륭한 과학자로서의 다윈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독자들은 다소 힘겹더라도 다윈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필요가 있다.



사진 11_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는 언제나 진실에 호소한다. 소로우의 영향력이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진 12_톨스토이, 마크 트웨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만큼 '위대한 장편'은 아마 다시 창조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가 규모 면에서 그에 필적할 만하다 싶지만 '웅대함'에서는 톨스토이가 앞선다. 클리프턴 패디먼의 권고대로 『전쟁과 평화』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읽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소설이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을 이해하는 방법'이 소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그게 타당하다는 점을 증명해 보인다.



사진 13_니체

니체는 언제나 강인하고 격렬하면서도 과격하다. 그러나 니체를 만나면 분야를 막론하고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왜곡'인지 배울 수 있다. 그는 철학, 종교, 도덕, 역사, 음악, 문학 등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사진 14_제임스 조이스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너무 일찍 다가갈 필요가 없다.『율리시스』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그럴 만나기 위해 너무 늦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클리프턴 패디먼의『평생 독서 계획』속에 담긴 책을 대략 3할 정도 읽고 나서 『율리시스』를 만나는 건 꽤나 좋은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http://blog.aladin.co.kr/oren/8597281



사진 15_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사무엘 베케트

어쩌다 보니 이들 유별난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카프카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손색이 없을 만큼 전례가 없는 소설들을 써냈다. 아무리 다가가려 애써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성, 느닷없이 소송에 휘말린 죄없는 요제프 K. 마침내 벌레로 변신해야만 했던 그레고르 잠자의 '비인간화' 등은 카프카가 아니었으면 결코 창조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카뮈의 소설이나 베케트의 희곡과 같은 부조리 문학 또한 내게는 카프카의 자식들처럼 여겨진다.



사진 16_두 줄로 쌓아 올린 『평생 독서 계획』에 담긴 42명의 작가들의 책

내가 글을 쓰기 전부터 구상했던 '책 탑'이 완공됐다. 대체로 오래된 책들부터 쌓아 올렸다. 옆에서 보면 불안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지만,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은 의젓하기만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내가 만난 42명의 작가의 책들 가운데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참석할 수 없게 된 '옛날 책들'은 불가피하게 빠졌다는 점이다. 결석생들은 토머스 홉스, 괴테, 스탕달,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안톤 체호프, D.H.로렌스, 헤밍웨이,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의 책들이다. 그들의 '불참' 덕분에 '책탑'이 그나마 자세를 튼튼하게 유지했는지도 모르겠다.



'독서 계획'이라는 게 어디 마음만 먹는다고 다 뜻대로 이루어질 리는 없다. 더군다나 '평생 독서 계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평생 독서 계획'은 다른 숱한 장기 계획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지도 모르겠다. '내집 마련 계획' 하나만 보더라도 이치는 간단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값도 끝없이 움직이고, 집을 마련하려는 당사자의 직장이나 소득 혹은 지출도 계속 변할 테니까 말이다. 그에 비한다면 '평생 독서 계획'은 얼마나 안정적인가. 그 책 속에 담긴 책들은 거의 변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책을 읽는 독자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독서력'이 점차 향상되는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다른 장기 계획들에 비하면 얼마나 고무적인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의 <독서>라는 장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중에서

'어느날 갑자기 우리 마을에 이사 온 멋진 신사' 가운데는 플라톤 보다 훨씬 미남이고 다정다감하고 상냥한 빙리 씨도 있었다. 그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진정한 주인공인 다아시 씨도 그 마을에 끌어 들인다. 그 유명한 소설의 시작 부분을 여기서 다시 떠올려 보자.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중에서

우리가 플라톤이나 다아시 같은 인물들을 이웃으로 두고도 서둘러 '만나야 할 인물'로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들의 첫 인상이 너무 오만하거나 혹은 남을 우습게 무시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우리가 미리 '어울릴 사이'가 아니라고 지레 포기한 때문은 아닌가, 혹은 그들이 지닌 고귀한 명성과 높은 학식과 신분 때문에 우리가 미리 주눅부터 든 때문은 아닌가, 혹은 그들의 고고한 태도와 까다로운 예의범절이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너무 강하게 작용한 때문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책은 결코 우리에게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미리 정해진 날짜에 맞춰 복장을 차려입고 만날 필요도 없다. 정찬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야만 그들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격식을 차린 대화도 필요없다. 우리가 내킬 때 아무 때나 덥석 그들을 붙잡고 얘기를 나누면 그만이다. 그들은 우리가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언제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었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오만과 편견'을 모두 극복하고 나서야 마침내 펨벌리의 멋진 풍광을 온통 차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마저 들어보자.


엘리자베스는 금방 기가 살아 다시 발랄해졌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어떻게 자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길 원했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죠?" 하고 그녀는 말했다. "일단 시작을 하고 나서는, 멋지게 계속하신 것 알아요. 그렇지만 처음에 어떻게 시동이 걸렸죠?"


"시동을 건 시각이라든가, 장소라든가, 표정이라든가, 말이라든가 하는 것을 꼭 집을 수는 없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가 시작했구나 알았을 때는 벌써 한참 지났더군요."


그들이 소설의 말미에서 나누는 저토록 행복한 대화는 '평생 독서 계획'을 세우고 또 끈질기게 밀고 나가려는 독자들과 책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도『평생 독서 계획』속에 담긴 책들을 계속 읽어나갈 작정이다. 앞으로 매년 6명의 작가를 만난다면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60명을 더 만날 수 있다. 그러면 133명의 작가 가운데 이미 만난 42명을 더해 102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다. 혹은 더 욕심을 낼 수도 있다. 매년 6명씩 15년을 계속 만난다면 90명을 더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마이클 더다처럼 '『평생 독서 계획』에 담긴 저자들을 거의 다 섭렵했다'는 말을 당당히 입에 올릴 수도 있으리라. 한 마디만 덧붙이자. 펨벌리처럼 광대한 영토와 멋진 풍광을 지닌 장원을 독서를 통해서나마 차지할 수 있다면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는 많을 수록 좋으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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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5-03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oren님께서 이미 읽으신 책들 중 많은 책을 저는 앞으로 읽어야 할 것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저자와의 만남이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도 다른 저자를 만나기 위해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 요즘입니다...

oren 2017-05-03 14:14   좋아요 2 | URL
『평생 독서 계획』에서 권유하는 제안 가운데 아마도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대목이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일 겁니다. 그래서 저도 이들 가운데 한 작가를 만나면 가급적 서두르는 법이 없이 오래도록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심정으로 그들을 대했던 적도 많았던 듯합니다. 물론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여태껏 만나지 못한‘ 다른 작가들을 만날 때도 최대한 서두르지 않고 만나보겠다고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경우도 있었고요. 만남을 미룰수록 더욱 만나고 싶어질 때, 바로 그럴 때 만나야 그 만남이 훨씬 더 반가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가끔씩은 수많은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온통 한꺼번에 만나자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무슨 겨를이 없을 떄도 있겠지요. 겨울호랑이 님처럼요.

cyrus 2017-05-03 0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독서 취향이 저와 조금 비슷합니다. 저는 피터 박스홀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에 소개된 책(번역본)들을 모으는 중입니다. 이 작업도 어떻게 보면 ‘평생 독서 계획‘입니다.

고전을 좋아하는 oren님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입니다. 《1001》에 소개된 작품입니다. 《황금 당나귀》에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가 수록된 오래된 작품입니다. 이 책이 품절인데 가끔 중고매장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

oren 2017-05-03 14:32   좋아요 1 | URL
피터 박스홀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에 소개된 책의 목록들을 살펴보니 어마어마하네요. 영화화된 작품들도 꽤 많은 것 같고요. 단지 ‘소설‘로만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는 게 좀 아쉽긴 하고요. cyrus 님께서 추천해 주신《황금 당나귀》도 기억해 놓겠습니다. 사실, 저는 독서의 범위를 계속 넓히기 보다는 적당한 범위로 한정시키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답니다. 분야 또한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역사, 과학 등과 병행하고 싶고요. ‘문학‘을 전공한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문학작품을 읽은 ‘문학평론가‘들의 책을 읽어보면 때때로 철학,역사,과학 등이 아예 배제된 책들도 있던데,『평생 독서 계획』은 그런 면에서 여러 분야별로 골고루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히 제가 더 호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피북 2017-05-03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끔했습니다 ㅎ 무엇보다 오뒷세이, 일리아스는 ‘반드시 거처야 할 우주정거장‘ 이란 말씀처럼 그런 마음으로 구입했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와 돈키호테, 몽테뉴수상록도 구입해 두고선 읽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제 서재를 점검해보는 글이었습니다 ㅎ ‘평생독서계획‘이란 멋진 표현도 배웠고요. 책탑과 멋진 서재도 구경 잘 했습니다 ㅎ 그리고 읽었던 책도 몇 권 보여서 남몰래 반가워 했답니다 ㅋㅋ

oren 2017-05-03 14:47   좋아요 1 | URL
해피북 님 반갑습니다^^ 제가 호메로스의 책에 대해 너무 거창한 표현을 동원한 듯해서 괜히 쑥쓰럽군요. 저 표현은 어디서 듣고 모방한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불쑥 내놓은 저의 솔직한 내심을 담은 표현이라고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어떤 책들은 보르헤스의 표현대로 ‘우주의 비밀을 다 담은 듯한‘ 책도 있거든요. 그에 비한다면 ‘우주 정거장‘은 매우 협소한 비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막한 우주와도 같은 인간의 정신 세계를 탐험한다고 할 때, 우주정거장과 같이 아늑하고도 물자가 풍부한 장소를 몇 군데쯤 알고 지낸다면 한결 마음이 푸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숱한 고전들이 ‘쉬운 교제를 방해하는 오만한 모습‘을 지닌 것도 부인할 수 없겠지요. 졸탁동시(卒啄同時)라는 말도 있듯이 언젠가 ‘멋진 계기‘가 찾아오면 ‘편견‘도 없어지고, 고전이 지닌 특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날도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그랜드슬램 2017-05-28 1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병희 선생님 책이 가장 눈에 들어오네요^^

oren 2017-05-28 23:31   좋아요 1 | URL
천병희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고대 희랍 고전들을 도대체 ‘어떤 책으로‘ 읽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정말 너무나 고마운 분이시지요.

그랜드슬램 2017-05-28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왜 그 가치를 몰랐는지,아니 지금이라도 알게되어 감사할 따름이지요! 덕분에 읽지 못한 책들 한권씩 구입하여 읽어보겠습니다! 항상 묵은지처럼 맛갈나는 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oren 2017-05-28 23:36   좋아요 1 | URL
괜히 심심할 때 ‘이런 저런 책들‘을 쳐다보면 뭔가 끄적거리고 싶을 때가 생기더라구요. 그냥 ‘심심풀이로 읽는 독서 체험담‘쯤 되는 글인데, 혹여라도 이런 글들이 ‘잠재적인 독자분들‘께 조금이라도 ‘책을 접하는 통로‘를 밝혀줄 희미한 빛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으로 쓰게 된답니다. 저 또한 다른 분들이 쓰신 ‘이런 류의 글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아무쪼록 그랜드슬램 님께서도 좋은 책들을 더 자주 가까이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