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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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독서계획
클리프턴 패디먼.존 S. 메이저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평점 :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뛰어남이란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건 다 마다하고 최고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면 그걸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서머셋 모옴
당신이 하는 것, 꿈꾸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으니, 시작하라.
대담함에는 천재성과 힘과 마력이 들어있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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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현자들의 너무나 많은 명언들이 널려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클리프턴 패디먼은 익히 알려진 명언들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재치있는 답을 내놓는다. "고전을 다시 읽게 되면 당신은 그 책 속에서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이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다방면에 걸쳐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다. 대중적으로는 라디오 퀴즈 쇼의 사회자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고 하는데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얘기이다. 그의 경력 가운데 내 눈에 가장 띄는 대목은 50년 동안 '이 달의 책' 클럽에서 수석 심사위원을 지냈다는 점이다. 그런 경력의 그가 '평생 독서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책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다 싶고, 그의 평생 독서 경험을 녹여낸 이런 훌륭한 역작을 우리에게 남겨줘서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 책은 초판이 나온지도 이미 60년이 흘렀다. 그래서 이 책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청소년 시기를 보낸 미국 학생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정판을 거듭해 오다가, 저자가 생애 말년에 췌장암에 걸려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심혈을 기울여 손을 본 결정판이 1999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어쨌든 그만큼 오랜 세월의 테스트를 훌륭히 견뎌낸 덕분에 이 책은 '고전을 설명하는 고전'이라는 부제가 따라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고전을 설명하는 책들은 대개 천편일률적이어서 내용도 따분할 뿐만 아니라 읽기에도 지루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의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의 재치있는 말솜씨에 있다. 그 나머지들은 그의 풍부하고도 오랫동안 축적된 독서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책이 '고전을 설명하는' 책이니 만큼, 이 책 속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걸작들을 남긴 위대한 저자들을 거의 대부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패디먼은 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을 필요한 대목이나 장소마다 자기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기가 막히게' 불러내는 재주가 있다.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그냥 막연히 위대해 보이기만 하는 걸작들의 저자들도 금방 우리의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쉽게 말해서 고전 걸작들의 저자들도 패디먼의 펜 끝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많은 애로를 겪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 물론 가끔씩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찌 되었건 수십 년 혹은 수천 년의 세월의 간극을 사이에 두고, 전세계의 곳곳에서 저마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다가 떠나간 위대한 작가들을 걸핏하면 여기저기서 불러내어, 키가 컸다느니 작았다느니, 결혼생활이 행복했다느니 불행했다느니, 여자관계가 복잡했다느니 혹은 평생 숫총각으로 살았다느니, 돈 걱정이 없었다느니 혹은 늘 가난했다느니 하면서 이들 작가들의 인생을 여러모로 대비시켜 주는 저자의 솜씨는 어디서도 쉽게 접할 수 없으리만큼 독특하고도 읽는 재미가 넘쳐나게 만든다.
패디먼의 글은 저자들의 '실제적 삶'에 대한 흥미로운 대비가 특히 매력적이지만, 그들이 남긴 걸작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졸작들도 함께 다루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작가들에 대한 대비와 더불어 작품들에 대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대비들도 무척 흥미롭다. 어떤 작가의 걸작들이 어떤 세월을 거쳐 걸작으로 올라서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들을 읽어보면 그 작가와 작품이 마치 주가가 오르내리듯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갖게도 된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걸작들에 대한 온갖 솔직한 비평들을 종횡무진으로 쏟아내고 있는 저자의 얘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선 시대의 걸작들에 대한 열렬한 애독자 신분이었던 또다른 걸작들의 저자들에 관한 얘기도 수없이 만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들 작품들을 '어린이용'으로 만났건, 교과서 속에서 만났건, 혹은 인생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이후에 만났건 간에, 가장 중요한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을 이 책 속에서 지속적으로 꾸준히 마주치게 된다는 점에서 '고전다운' 매력을 느껴볼 수도 있다.
'고전'에 대한 이야기의 범위를 단지 책에만 국한시키기엔 다소 아쉽다. 인류가 남긴 무수한 걸작들의 목록에는 책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조각, 건축, 공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작품들을 우리가 어떻게든 접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작품들의 위대함을 온전히 제대로 알고 느끼기에는 참으로 힘든 여러 현실적 난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명음악과 명연주에 대해서는 멋진 해설서가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고 듣기 어려운 클래식의 명곡과 명연주라도 그런 해설서들을 거치고 나면 그 작품들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해설서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본들 명연주 한 곡을 직접 귀로 듣는 데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의미도 '명곡 해설서'와 닮은 것 같다. 이 책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걸작들에 대해 그 어떤 책들보다 흥미롭고도 깊이있는 이야기를 명쾌하고도 재미있게 들려 주는 책이다.
책에 관한 설명을 담은 책은 그런 책을 쓴 저자의 관심분야와 독서편향에 특히 과도하게 의존하기 마련인데 패디먼은 너무나 풍성한 독서경험을 쌓은 인물이고 특히 문학 분야에서는 그런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이 책은 '세계 문학의 거대한 지형을 굽어볼 수 있을 정도로' 드넓은 시각을 자랑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고전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거목들과 울창한 수풀과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소리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수시로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시원한 바람을 뚫고 드높이 날아올라 거대한 산맥들을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장쾌한 광경을 보는 느낌도 안겨준다.
여러모로 훌륭한 책이지만, 주례사 서평으로 그치기엔 뭔가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수정판을 거듭하면서 서양 문학에 집중되었던 예전 판본들에 비해서 전 세계 문학으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인 중심적' 시각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정은 역자가 책 말미에 붙여놓은 '참고문헌'만 보더라도 명백한데, 133명의 작가들에 대한 판본들을 살펴보면 국역본이 없는 작가들이 무려 10%를 초과한다(절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대략 15명의 작가에 대해 아직까지 국역본이 없다). 아쉬운 점을 하나만 더 더 보태자면, 문학에 치우쳐 역사와 철학, 좀 더 좁게는 과학과 경제 분야의 고전이 (인류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너무 빈약하게 담긴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든다.
서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세운 제사(題詞) 문구에 걸맞는 다소 '까칠한' 얘기들을 늘어놓으며 이 서평글을 마치고 싶다. 양주동 선생님의 고칠현삼제(古七現三制)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런 책의 결론은 너무 명백하다. 결국 오래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라는 얘기일 테니까 말이다.
한겨울 추위처럼 잠에서 확~ 깨게 만드는 소로우의 얘기부터 꺼내자면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더욱 과격하다. "좋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을 읽는다고 해도 문맹인 사람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책이 별로 없었을 것 같은 시대에 살았던 세네카 조차 "마음만을 즐겁게 하는 평범한 책들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따라서 의심할 바 없이 정신을 살찌우게 하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라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아나톨 프랑스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존숭하는 책, 그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지침을 따를 필요가 있다.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 대목에서는 러스킨도 맞장구를 친다. "인생은 짧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은 읽을 수가 없다." 물론 괴테처럼 오래오래 살면서 파우스트처럼 "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책과 마주하고 있으면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기를 갈망했던 소로우는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소로우가 곧바로 이어서 한 말이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대와 만날 수 있는지!"(Henry David Thoreau)
패디먼도 이 책에서 강조했지만 좋은 책을 일생 동안 천천히 여러번 읽을 필요가 있다. 루소는 "읽은 것을 아는 것이라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한번 읽은 것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지나친 독서는 주제넘은 무식꾼을 만들어 낼 뿐이다."고 지적했다.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고 너무 지나친 겸손을 떨었지만, "독서의 참다운 즐거움은 몇 차례고 거듭하여 읽는데 있다."고 말한 D.H. 로렌스의 말에 많은 공감이 느껴진다. 세네카는『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에서 오래 살기 위해서는 '철학을 하라'고 했지만, 좋은 책만 읽어도 우리는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에머슨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년은 더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쇼펜하우어가 지적했듯이 "악서는 읽지 않으려 해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양서는 반드시 읽고자 해도 기회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 많은 독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수많은 걸작들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벅찬 독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읽고 또 배워야 할까? 늦었더라도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 그 가르침의 선견지명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평생 독서 계획』의 원대한 취지이다."
소로우가 했던 말로 서평글을 끝맺고자 한다.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 * *
'이런 리스트가 늘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만큼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 자유롭게 이 리스트를 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늘릴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더 줄여본 '평생 독서 계획'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제1부 : 호메로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제2부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
제3부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장 자크 루소
제4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제5부 : 지크문트 프로이트 ∼ 치누아 아체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