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적 의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조르주 풀레 지음, 조한경.이현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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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스개소리로 넘길 이야기지만,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이 비평가 또는 평론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책이 있으면 작가가 있고, 독자가 있고, 비평 또는 평론가 그룹이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비평, 비평가이다. 이 책에선 일관되게 '비평가'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독자는 모두 비평가이기도 하다.

 

2.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정한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라고 할 수 있는 독서 행위는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를 전제한다." 그러나 두 의식의 일치를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그에 앞서 열렬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비평이 가능하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행동하게 된다.

 

3. 저자 조르주 풀레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프루스트를 들고 있다. 프루스트에겐 글을 쓰는 창작 행위에는 독서가 필요하며 독서를 통한 문학의 비평적 발견을 전제한다. [장 상퇴유], [희열의 나날들], 그리고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전 그(프루스트)는 단순한 비평가이자, 단순한 독자였다. 그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가 무엇보다도 먼저 꿈꾼 것은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도전 의식이 꿈틀댄다. 목표로 할 만하다.

 

4. 프루스트는 작가이면서 비평가였다. 월터 스트로스는 비평적 활동이 그의 부차적인 활동이였다고 했지만, 샹탈은 반대로 프루스트가 비평의 첫걸음을 내디딘 다음에야 비로소 소설에 손댈 수 있었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작가와 비평가의 행보를 같이 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 [장 상퇴유]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서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에 몰두한 독자다. 독자는 독서에 골몰하다가 작품 세계에 빠진다.

 

5.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독서를 하다가 발자크 또는 플로베르의 리듬에 순치된 우리는, 우리의 내밀한 목소리는, 독서를 마치고 나서도 그들의 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런 느낌이 나도록 책을 읽어야 하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과 보조를 맞추는 일보다 독자와 작가를 가깝게 해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독자와 작가를 하나 되게 한다. 독자에게 작가의 가장 내밀하고도 은밀한 사고방식, 감각방식,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독서란 "자기 안에서의 재창조다."

 

6. 한 작가의 작품 하나만 읽어보고 그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한 작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한 작품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비평에 관한 한 확인이 없는 인식이란 없다. 그래서 '전작주의'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다양한 모든 작품에서 그들 전체에 대한 어떤 공통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자체가 무리 일 수 있다. 그것은 한갖 꿈으로 그칠 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총체적 우주의 조각난 이미지에 불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런 면에선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독서는 필요하다. 그 조각들을 서로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진정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 저자 조르주 풀레는 비평가이다. 스무 살 때부터 비평가의 소명을 절감했다고 한다. 시간, 공간이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의의에 대해 몰두했던 조르주 풀레는 비평의 업적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주로 교제한 비평가들로는 마르셀 르몽, 장 루세, 장 스타로뱅스키 등이 있는데,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스위스, 특히 주네브였기 때문에 그 일단의 비평가들을 주네브학파라고 부른다. 이 책은 비평의 비평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들레르, 프루스트, 가스통 바슐라르, 사르트르 처럼 작가와 비평가로 두 집 살림을 한 인물들과 순전히 비평가 그룹에서만 활동한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8. 저자는 [비평적 의식의 현상학]이라는 챕터에서 책과 독자, 독서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텅 빈 방, 책상 위에서 책이 독자를 기다린다. 모든 문학작품들은 그런 상태에서 최초의 상황을 맞는다.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무기력한 하나의 단순한 대상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누군가가 자신을 그러한 무기력과 물질성에서 구해주기를 도서관 서가나 서점 진열장에서 기다린다.(...) 진열장에 꽂힌 책들은 내게 구매자가 나타나 선택해주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장의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안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동물은 사물 취급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자가 관심을 보이지 전까지 책은 모멸을 안은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이따금 책들이 희망에 차 있음을 본다. '나를 읽어 주시오'라고 금방이라도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책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공감한다. 특히 내 체온이 전해지면 더욱 그러하다. 이젠 책이 더 이상 그냥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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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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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맞춰보시렵니까?
하고 있는 일에 스스로 만족한다. 자기 일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무슨 일이든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시작한다. 밥그릇을 걸고 일을 한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작곡을 하건 다작(多作)이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전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두루두루 관심을 갖는다. 깊고 넓게 판다. 평생학습을 모토로 한다. 물 먹은 경험이 있다. 매사에 개방적이다. 실력이 있기에 자신감이 충만하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비록 나에게 맞지 않는 일 같아도 최선을 다한다. 개인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한다. 결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 사람을 만난다. 미리미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다. 적게 일하고도 많이 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잠은 안 자도 되고, 라면만 먹고 살아도 된다. 생활이 심플하다. 잡다한 약속이 없다. 규칙적이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지 않는다. 할 일이 명확하다. 리듬 깨지는 것을 싫어한다. 일을 할 때는 온전히 일에만 집중한다. 그들만의 루틴이 있다. 외국여행이나 출장 갈 때 기내 반입용 슈트케이스 하나면 된다. 이 외에도 한량없이 많지만, 이쯤에서 줄입니다. 이들은 바로 고수(高手)들입니다.

 

2. 그럼 좀 밑으로 내려가 볼까요? 고수가 있으면 상대적인 호칭 하수(下手)가 있겠지요.
하고 있는 일이 영 맘에 안들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한다. 결심만 계속한다. 누군가 나를 평가한다는 것에 엄청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만나는 사람이 늘 한정되어 있다. 일상생활이 폐쇄적이다. 쉽게 포기한다. 공부는 학교에서 한 것으로 만족한다. 오래 일하지만 버는 것은 신통찮다. 주변 환경이 늘 정신없다.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 생활이 불규칙하다. 변수가 많다. 일관성이 떨어진다. 쓸데없는 약속이나 이벤트가 많다. 차분히 앉아 있지 못한다. 감투 쓰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국회의원에 출마라도 할 것처럼 늘 바쁘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눈에 띄는 열매가 없다. 대충대충 넘어간다. 고수가 디테일에 대한 집념에 몰두할 때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뭘 저렇게까지 하나. 대강 하지. 저래서야 피곤해서 어떻게 살까?" 여핼 갈 때 온갖 살림을 다 챙겨간다. 사흘이 아니라 한 삼년 살다 올 사람같다. 이 외에도 많고도 많지만 이쯤 줄여볼까 합니다.

 

3. 그대는 고수입니까? 하수입니까? 아니면, 이 책에는 나오지도 않는 용어지만 중수(中手)입니까? 고수를 향해서 전진 중이시라구요? 그러셔야지요. 저 역시 그러합니다. 그저 막연히 생각하던 고수의 개념이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잡혔습니다. 고수, 멋진데요. 적게 움직이면서도 많은 수확이 있습니다. 몸이 덜 고생합니다. 누구나 고수가 되고 싶지요. 그러나, 나와 내 주변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처음에 좀 망서려졌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이 자기계발이지요. 그래서 큰 기대를 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읽게 되었습니다. 고수에 올라서는 것도 이유가 있고, 하수에 머무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4. 그렇다면, 나의 삶에서 고수라 이름 붙일만한 것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의 직업적인 면에서는 물론 자신있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늘은 왠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쓰는 일입니다. 일주일에 평균 5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씁니다. 의외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5. 어떻게 그렇게 책을 읽느냐? 무슨 비결이 있냐?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게 된 것은 약 2년 전 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그저 마음 내키면 한 달에 3~4권 정도 리뷰를 남기곤 했지요.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약 1년 전 부터입니다. 매일 2시간 이상씩 책 읽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이젠 일상화되었습니다.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술친구가 없는 것도 나에겐 다행입니다. 책을 좀 빨리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가 그냥 눈에 들어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리뷰를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눈은 책을 읽고 있으나 마음 한 자리엔 이미 리뷰가 써지고 있지요.

 

6. 리뷰를 안 쓰고 책만 읽으면 일년에 한 400 권 이상은 읽을 것 같습니다만, 올해 목표는 300 리뷰입니다. 현재 172 권째 올렸으니까 무난히 목표점에 도달 할 것 같습니다. 딱히 비결은 없는 듯합니다. 아직은 저에게도 일이 있고, 직장이 있습니다. 업무시간이 적은 편이 아닙니다. 시간이 한가한 것도 아닙니다. 평일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 공휴일도 거의 출근합니다. 어떤 땐 점심 시간도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바쁜 일상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서 리뷰를 쓰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업무 시간에 책 읽을 시간은 내기 힘듭니다).

 

7. 막연한 이야기를 적은 것 같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책의 키포인트가 그냥 눈에 들어오고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역시 쉽게 그려지는 것은 그 동안 꾸준히 읽고 써온 습관 탓이라고 말씀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원래 고수는 자기 자랑을 안한다고 하는데, 자랑처럼 늘어 놓는것을 보면 아직은 좀 먼듯합니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잘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만, 현재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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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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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학문이 그러하지만 특히 인문학은 사람이 중심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Sudia Humanitatis)'에서 출발했습니다. 과거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문학 장소는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운영하던 아테네 근교에 위치한 '아카데미아'가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라톤 아카데미'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이곳 아카데미아에서 아테네 리더들에게 파이데이아(Paideia) 즉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2.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은 키케로라고 합니다.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을 통해 리더가 갖추어야 할 지도자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키케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합니다. "인문학(Studia)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멋진 표현입니다.

 

3. 내 마음대로 한 줄 더 붙이고 싶습니다. "인문학은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이 땅에 살아가야 할 목적과 의미를 불어 넣어줍니다." 사실 한 없이 낮아진 자존감(자기 존재 감각)만 회복된다면, 좌절할 이유도 자살할 이유도 없어지지요. 이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될 책은 아니지만, 저자 최준영이 인문학 관련 글과 강의를 통해 현재 낮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 이야기부터 풀어놨습니다.

 

4. 저자는 전작 [결핍을 즐겨라]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 치유 인문학'을 전했지요. "비어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결핍은 희망을 품고있는 가능성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에서도 역시 인문학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만난 생각들' 그리고 그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펼쳐집니다.

 

5. 저자의 장점은 그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장과정, 학력, 가정사,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등을 매우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이야말로 저를 키우는 밑거름이자 자양분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어쩌면 부끄러움을 먹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의 다른 말은 '결핍'입니다. 극복하지 못한 결핍과 그 결핍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게 바로 저이고 저의 책입니다."

 

6. 힐링이란 단어가 여기저기 뜨는 요즈음입니다. 그 만큼 우리 모두가 힘들다는 이야기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힐링이란 단어가 너무 남발되다보니 멀쩡하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마음병 환자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힐링과 이웃인 '위로'라는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저자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임할 때마다 가슴에 새기는 말이 있답니다. 우산을 받쳐주는 위로가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위로'를 생각한답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겠냐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7. 지난 10년 간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한 저자는 인문학을 통한 성과라는 표현보다는 '인문학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의미에 힘을 주고 있군요.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빈곤은 '분배의 문제'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문학의 관점에서 빈곤은 분배의 문제 이전에 '관계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점 역시 공감합니다. 노숙인, 미혼모 시설 엄마들, 여성 가장들은 생활고보다도 사람들과의 관계 단절과 편견, 선입견 때문에 더욱 마음들이 힘들어지곤 하지요. 그 힘든 마음들에 에너지를 채워주는 일에 인문학이 처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해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 보다는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지요.

 

8. 책의 후반부엔 저자의 독서 생활이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내 이야기를 쓴 것 같기도 합니다. 글쓰기에 대해 쓴 부분이 눈과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저는 글을 잘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꾸준히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글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면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글쓰기 능력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묵묵하게 꾸준히 쓰는 것이야말로 글쓰기 실력을 쌓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박에 늘지 않습니다. 꾸준히 쓰면 조금씩 감각이 생기는데, 그것도 아주 더디게 진행됩니다."

 

9. 현재 나의 글쓰기는 일 주일에 평균 5권 정도되는 북리뷰 쓰기가 전부입니다. 책을 읽으면 거의 리뷰를 쓰는 편이지요. 어떤 땐 리뷰를 쓸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먼저 따지기도 합니다. 읽기 전에 오는 감이라는 것이 있지요. 다른 리뷰어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지 몰라도 다른 리뷰는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특히 읽어야 할 책은 출판사 리뷰나 홍보의 글도 외면합니다. 자칫 그 단어나 문구에 붙잡히면 정작 내가 리뷰를 쓸 때 내 나름의 느낌을 그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0. 평소 마음에 담고 사는 생각으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무엇인가 기대 하는 일, 무엇인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지금 많이 힘드시다구요.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가슴이 촉촉해지고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게 되는 부분이 한 두 군데 쯤은 있으리라 생각듭니다. 그럼 됐지요. 참..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는 일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말엔 당연히 나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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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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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한 리필이 가능 한 것 중에는 인간의 욕망도 포함이 될 것이다. 욕망의 끝은 무한대로 펼쳐진다. 재물, 명예 또는 권력 그리고 섹스까지 그 욕망의 범위는 넓기도 하다. 그 욕망의 확대에 제동을 거는 의미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때로 '포기'라 써놓고 그저 읽을 때만 '마음 비움'이라고 하지 않았나 돌아보기도 한다.


2. 인간의 마음 속에 욕망이 자리잡으면 전후좌우 돌아 볼 여유 없이 그저 앞만 보고 치닫는 경우가 있다. 때로 경고음이나 불이 들어와도 절대 무시한다. 아니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오직 이글거리는 욕망의 화신으로 변해 있을 뿐이다. 


3. 일단 이 소설은 재밋다. 템포가 빠르다.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중간 중간 아드레날린도 솟구친다. 주인공 한석호는 잘 나가는 음악방송 진행자이다. 인기절정이고 자신감 충전이다. 그러나, 너무 잘 나가다 보니 길이 없는 곳도 길을 만들어가곤 한다. 물론 남들에겐 알려주고 싶지 않은 그만의 길이다. 


4. 제동이 걸린다. 그가 가는 길을 막자고 작정하고 나선 사내가 나타난다. 잘 나가던 한석호가 주춤한다.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욕망의 목표지점을 코 앞에 두고 무릎을 꿇느냐, 치고 나가느냐 둘 중 하나이다. 그만의 비밀인 줄 알았더니만,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는 그 사내 앞에서 한석호는 이미 그의 밥이 되고 있다.


5. 궁지에 몰리기도 하고 답답해진 한석호. 그가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알게 된 의대생을 생각해낸다. 그는 현재 정신과 의사로서 제법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는 이렇게 조언해준다. "특별한 욕망의 메커니즘이 있어. 극소수의 성취지향적인 인물들이 공유하는 감정기제라고 할까.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 그때그때 푸는 사람도 있고 참는 사람도 있고, 푸는 방법, 참는 방법 모두 사람마다 제각각이지. 그런데 사회적인 지위와 유명세가 높아질수록 스트레스 역시 점점 커져.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쾌락도 그만큼 커져야 해. 그런데 말이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 습관으로 굳어져. 넌 스트레스를 여자로 풀었어. 거기엔 어머니의 불륜 장면을 목격한 때의 충격이 강한 작용을 했지."


6. 두말 할 나위 없이 어릴 때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지배한다. 그 트라우마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상처받은 어린 아이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아이가 칭얼대거나 보듬어주길 원할 때마다 본인이 의식 못하는 사이에 난폭해지거나 감정의 제어가 힘들 수가 있다. 그 스스로는 인정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수가 있다. 그래서 주변에 심하게 까칠한 사람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이 너무 예민하고 철저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7. 한석호는 그가 걸어 온 길, 그가 갖고 있던 생각이 크게 잘 못 되었다는 뉘우침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의 목이 조여오는 것을 느끼면서 철이 들었다고 할까. 해피 엔드로 끝났으면 좋긴 하겠지만,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재미는 감소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그의 욕망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다쳤다. 다른 세상으로 간 사람도 있다. 그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너무 크고 무거웠나보다. 


8. 작가는 말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번만큼 작가의 말을 쓰기 힘든 적도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창작의 의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오로지 읽는 쾌감만을 위해 쓴 소설이니까요. 소설을 통해 누구를 가르치려고 들거나 거창한 감동을 유도하지 않았습니다. 시뻘건 육회 한 접시를 내놓은 주방장의 기분입니다." 


9. "욕망해도 괜찮아~!!" 즐겨 듣는 음악 방송의 진행자가 청취자들에게 방송국에 협찬으로 들어온 상품들을 날리면서 하는 멘트이다. 욕망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욕망이라는 전차를 잘 만 몰고 달릴 수가 있다면 멋지다. 그러나, 일그러진 욕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욕망도 욕심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다가는 삶은 그냥 숨만 쉬다 가는 것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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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장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신경림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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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광(廢鑛)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 소리개차가 감석을 날라 붓던 벼력 더미 위에 / 민들레가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 지까다비를 신은 삼촌의 친구들은 / 우리 집 봉당에 모여 소주를 켰다./ 나는 그들이 주먹을 떠는 까닭을 몰랐다./ 밤이면 숱한 움막에서 도깨비가 나온대서/ 칸델라 불이 흐린 뒷방에 박혀/ 늙은 덕대가 접어준 딱지를 세었다./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 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에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


광복절에 이 詩를 읽고 옮기는 마음이 아려옵니다. 이 詩의 시간적 공간은 일정시대 막바지인 1945년으로 짐작됩니다. 민들레가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다시 4개월이 지나 8월이 되어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지만, 마을 젊은이들은 돌아올 생각을 안하는군요. 아니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오는 길을 가고 있는게지요. 신경림 시인이 1935년 생이니까, 아마도 어린 시절 그 기억을 더듬어 쓴 詩인가 봅니다.



2) 유아(幼兒) / 1/ 창밖에 눈이 쌓이는 것을 내어다보며 그는 / 귀엽고 신비롭다는 손짓을 한다. 손을 흔든다./ 어린 나무가 나무 이파리들을 흔들던 몸짓이 이러했다.// 그는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까닭을, 또 거기서 아름다운 속삭임이 들리는 것을/ 그는 아는 것이다 - 충만해 있는 한 개의 정물이다.// 

2./ 얼마가 지나면 엄마라는 말을 배운다./ 그것은 그가/ 엄마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다.// 꽃, 나무, 별,/ 이렇게 즐겁고 반가운 마음으로 말을 배워가면서 그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하나하나 잃어버린다.// 비밀을 전부 잃어버리는 날 그는 완전한 한 사람이 된다.//

3./ 그리하여 이렇게 눈이 쌓이는 날이면 그는 / 어느 소녀의 생각에 괴로워도 하리라.// 냇가를 거닐면서/ 스스로를 향한 향수에 울고 있으리라.


 시인의 심상에 비춰진 객관은 언어로 표현되면서 그 비밀이 없어진다는군요.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아이가 말을 배워나가는 것은 한 단어 속에 함축된 의미만 담게되지요. 다른 시인의 표현처럼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지만, 작은 손 안에 움켜 쥘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듯이 한 단어 속에 깊은 의미까지 모두 안을 수는 없지요. 비밀을 전부 잃어버리는 날,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면서 우린 그저 울고만 있을 수도 있지요.



3)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 하네/ 산 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요즘은 가본 지도 오래 되었지만, 노래방 가서 마이크를 잡게 되면 부르는 첫 곡이 양희은의 '한계령'입니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대목에선 공연히 목줄기가 뜨거워집니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하는 부분에서 그래도 나에게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계장터'는 신경림 시인의 이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구름과 땅의 바람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잡초를 일깨우는 잔바람도 소중합니다. '산 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는 부분에선 비록 살아가며 무릎을 굽힐 때도 있겠지만, 마음까지 바닥에 내려놓지 말라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석삼년에 이레쯤 천치가 되어 떠돌이도 되고, 바람도 되고, 잔돌이 되어 살아간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내 몸과 마음에도 생기가 돌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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