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서재 - 나만의 도서관을 향한 인문학 프로젝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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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머리 싸매고 책과 씨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핑계를 대는 것은 '시간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으려해도 하루에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 서적들, 소위 베스트셀러 라고 내세우는 인터넷 서점의 얼굴 마담들. 그 중에서 참으로 내게 필요한 책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가며 사람과의 인연도 좋아야겠지만, 책과의 인연도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느 블로그 대문에 이런 말을 걸어놨지요.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애틋한 사랑을 만남과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정여울은 책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거대한 책더미 속에 파묻혀 길을 잃기보다는, 내 마음의 빛깔과 소리에 따라 언제든 골라 읽을 수 있는 좀 더 작고 아늑한 내 마음의 서재를 꿈꾼다."  사람을, 여행을, 문학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정여울은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삶'에 조용히 노크하기, 그것이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서재' -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난무하는 요즈음에 마음에 와 닿는 진솔한 울림입니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 추천도서 목록을 뒤지던 중 번뜩 깨달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렇게 평생 '타인의 목록'만 넘보다가는, 결코 나만의 '마음속 서재'를 만들 수 없겠구나. 그리고 뒤이은 깨달음은, '앞으로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의 목록'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이 놓일 마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저자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읽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퍼뜨려 나누는 것'이랍니다.

 

인문학, 또는 교양이 진정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면, 그것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곧 나의 손과 마음을 순수하게 보듬어안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저자는 교양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소개합니다. 사교계 데뷔를 위해 춤을 교양의 한 부분으로 익혀나가는 과정 중에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봉사하는 교양. 물론 금방 탄로가 나는 부분이지요. 주인공 토니오는 집단적 교양의 인프라에 사육당하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내면 탐구에 빠져 글쓰기와 글읽기에 탐닉하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진정한 교양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기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조용히 덧붙입니다.

 

'지름신은 콤플렉스 환자에게 해열제만 주신다' 의외로 주변에 쇼퍼홀릭이 많습니다.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소비'로 극복하려 한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명품에 집착하는 선을 넘어 '성형중독'까지도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결핍에 호소하는 소비의 형태가 '가상의 소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진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여행기를 읽고, 진짜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이 덜 위험하다고 언급합니다. 경제적이기까지 하겠지요. 콤플렉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가상으로 설정한 후, 그렇게 날조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결점을 폭로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매우 예리한 관찰입니다.
괴테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어떤 대상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지혜로운 삶은 그 어떤 대상을 찾느냐가 숙제인 듯 합니다.


'재능'이 뭘까요? 내가 찾아낸 내 안의 것일까요? 아니면, 남들이 그저 갖다 붙여준 이미지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사랑하는 일,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내 재능이고 내 적성이라고.." 무슨 일을 하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내가 잘 하는 일인가,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만한 일인가. 나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을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지요. 저자는 덧붙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 한 방'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재능=직업=인생'이라는 위험한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답니다. 재능은 삶의 토양의 '비료'는 될 수 있어도 '흙'자체가 되지 못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잔잔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좋아하는 꽃향기나 향긋한 커피내음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듯이 마음을 안정시켜줍니다. 그 이유는 저자의 겸손하면서도 내면적인 힘이 묻어 있는 글들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책은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만나야 하는지, 책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느니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후 아니면 그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투명한 나 자신과 만나는 비밀 통로로서 '글쓰기'를 권유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정면에 내세워 '마음의 서재'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정작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사랑, 삶, 아픔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나답게 세운 상태에서 열린 마음으로 서로가 만나는 세상을 꿈꾸며 그렇게 살아가자고 손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이러한 삶을 '책'이 곁에서 조용한 친구가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저자의 마음을 전달받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詩가 있어서 옮겨봅니다.
미국 시인 윌리스 스티븐스의 '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라는 詩입니다.

 

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
독자는 책이 되고 여름 밤은

 

책의 살아 있는 마음 같았다
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

 

말은 책이 없는 양 말하여지지만
독자는 지면 위에 몸을 굽히고

 

굽히고 싶어하고, 무엇보다도 책이
진리인 학자이고 싶어하고, 그에게

 

여름 밤은 생각의 완전함 같기를
집은 고요하고 고요할 수밖에

 

고요함은 의미의 일부, 마음의 일부
그것은 지면에 다다가 차오른 완전함

 

그리고 세상은 조용했다, 조용한 세상의 진리
그 안에 다른 의미가 없는, 그것은 바로

 

조용함이며, 바로 여름이며 밤이며
독자가 몸 굽히고 그 자리에 책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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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시선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박용래 지음, 이선영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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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_ 겨울밤



박용래 시인을 만나봅니다. '눈물의 시인', '정한의 시인'이라 불리웁니다. 두만강 철교를 지날 때 내리던 눈을 회상하며 아침 9시 반부터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종일을 쉬지 않고 울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시(詩)에선 강한 서정성이 눈물보다 먼저입니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담담한 애틋함이 담겨 있습니다.  


 

살아 무엇하리 / 살아서 무엇하리

죽어  / 죽어 또한 무엇하리

겨울 꽝꽝나무 / 꽝꽝나무 열매

울타리 밑의 / 인연

진한 허망일랑 / 자욱자욱 묻고

'小寒에서 / 大寒사이'

家出하고 싶어라 / 싶어라.          _ 自畵像 3


     * 꽝꽝나무 : 감탕나뭇과의 상록 활엽 관목.


 

소리가 잘 조합되어 예술적 효과를 거둔 것이 음악입니다. 시에서도 특히 음악적인 요소, 리듬감은 詩를 詩답게 만들지요. 박용래 시인은 그런 음악적 리듬감을 그의 詩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호두 깨자
눈 오는 날에는

 

눈발 사근사근
옛말 하는데

 

눈발 새록새록
옛말 하자는데

 

구구샌 양 구구새 모양
미닫이에 얼비쳐

 

창호지 안에서
호두 깨자

 

호두는 오릿고개
싸릿골 호두.

        

         - '미닫이에 얼비쳐'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며 습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내립니다.
제아무리 뒷짐 지고 양반 걸음을 걷다가도 소나기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바빠집니다.
어쩌면 소나기는 우리 살아가며 만나는 일상의 변화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웠는 사람보다 앉았는 사람 앉았는 사람보다 섰는 사람
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보다
송아지 두, 세 마리 앞세우고 소나기에 쫒기는 사람.

               

                             - '소나기'

 

 

이제 곧 산들은 새 옷을 갈아입을 것입니다.
스산한 겨을 바람을 여전히 잘 견뎌냈지요.
내 몸은 겹겹히 껴입은 채, 산 나무들의 벌거벗기운 형상을 보는 것은 참 미안합니다.
내 몸의 옷껍질을 하나, 둘 씩 벗을 때 나무들은 오히려 덧 입겠지요.
시인이 바라보는 산을 소개 해드리렵니다.


 

산은
산빛이 있어 좋다
먼 산 가차운 산
가차운 산에
버들꽃이 흩날린다
먼 산에
저녁 해가 부시다
아, 산은
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 '둘레'

 

'가차운' 이라는 표현이 정겹습니다.  당신과 나의 거리는 가차운가요?


요즘 들어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을 안해서 잊혀져만 가는 우리말이 더욱 애틋합니다.
아니, 좀 더 진솔한 표현은 무슨 뜻인지 선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시인, 소설가들 덕분에 국어사전 속에서나 자리하고 있을 언어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보니 박용래 시인은 눈, 바람, 새, 꽃, 비(雨)를 많이 그렸군요.
그리 어려운 단어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장마가 지난 뒤 열기를 품었던 대지에서 풍기는 흙내음같은 우리말이 담겨 있는 詩를 옮겨 봅니다.


 

건들장마 해거름 갈잎 버들붕어 꾸러미 들고
원주막 처마 밑 잠시 섰는 아이 함초롬 젖어 말아 올린
베잠방이 알 종아리 총총걸음 건들장마 상치 상치 꽃대궁
白髮의 꽃대궁 아욱 아욱 꽃대궁 白髮의 꽃대궁 고향 사람들
바자울 세우고 외넝쿨 거두고.   

        

                    - 건들장마

 

 

이 시집에는 80편의 詩가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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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점령하라 - 자본주의 넘어서기
리처드 울프 & 데이비드 버사미안 지음, 한상연 옮김 / 돌베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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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무겁습니다.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점령운동 등이 키워드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울프를 상대로 인터뷰 전문작가인 데이비드 버사미언이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부터 떠오른 경제적 자유주의 중 하나입니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개인이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낸 돈은 비용으로 인정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 CEO나 은행가가 뉴욕의 값비싼 레스토랑 포시즌스에서 점심식사를 하면 기업의 비용으로 인정받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경제적 불균형에 대해 이런 질문만큼 리얼한 것이 없을 듯 합니다. 기업과 부자가 고용한 로비스트의 압력으로 세법에 예외조항이 덧붙여져 이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 로비스트들의 목표는 단 하나,부자와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소득세법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은 속절없이 뺏기고 맙니다. 부자와 기업은 더 악착같이 절세, 감세에 대해 무섭게 파고듭니다. 이들이 고용한 세무사나 변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편법과 꼼수가 동원됩니다. 평범한 개인이 점심 때 샌드위치를 사 먹은 식비나 가족과 함께 호숫가에서 주말을 보내며 지출한 휴가지를 공제 대상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수입에서 공제 가능한 비용 항목의 폭이 무진장 좁습니다. 기업과 부자가 공제받는 세금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기업과 부자가 회피한 납세의무를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으면 줄어든 세수를 확보할 길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미국의 상황입니다.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주로 노동 시장의 유연화 (해고와 감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규제없는 시장은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며, 경제 성장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유화(민영화, Privatization)입니다. 국가 소유의 공기업, 상품과 서비스를 사적 투자자에게 팔고 있습니다. 민영화 대상에는 주요 산업체, 철도, 유료 고속도로, 전기등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시설물들이 포함됩니다. 종종 요구 되는 효율성의 증대라는 미명하에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는 주로 몇몇의 손에 부를 집중시키며 대중들이 수요를 위해서 보다 많은 지출을 해야 하는 결과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점령운동은 2011년 9월 17일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 캠프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4개월 앞선 5월 중순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전역과 세계로 확산되었단 사실을 추가합니다. "우리가 바로 99퍼센트다!"라며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계속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다수 대중의 저항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욕의 점령운동을 도화선으로 삼아 한때 운동은 급속히 확산되어 불과 한 달 만에 세계 82개국의 95 도시에서 점령운동의 캠프가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 기간에 600개 이상의 커뮤니티에 캠프가 설치됩니다. 행정당국은 처음에는 비교적 관용의 태도를 보였지만 운동이 계속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두 달 만에 태도를 바꾸어 2011년 말까지 대부분의 운동캠프를 강제로 철거합니다. 전체 운동의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워싱턴 D.C와 런던캠프도 2012년 2월에 결국 철거됩니다. 막강한 공권력의 승리입니다. 

 

점령운동이 자본주의의 정당성이라는 중차대한 쟁점을 놓고 토론을 요구하고 나서자 자본주의의 품 안에서 편히 지내온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은 허둥대기만 합니다. 점령 운동의 요구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 정치인들은 그저 진행과 확산을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자진해서 악역을 맡은 자는 누구인가? 뉴욕 시장 볼룸버그입니다. 선진국에서 제일 지저분한 지하철 시스템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방치한 인물, 고작해야 만화가의 영감을 불러 일으킬 뿐인 제설 시스템을 관라한 데 그친 무책임한 인물. 도시 미관을 핑계로 점령운동을 탄압합니다.

 
이 책에 실린 대담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억압하는 분위기에 도전하고 저항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소득불평등이 더욱 확대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출 삭감정책은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직접 생산과정에 참여하지도 않는 몇몇 이사진으로 구성되는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자본주의 기업 내부의 대다수 노동자와 그 인근 지역사회 주민의 삶은 순식간에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중병에 걸린 '자본주의'를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점령운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 출현할 행동주의 세대의 역량과 단결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의식과 개념, 원칙과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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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정석 - 일반인을 위한
배상복 지음 / 경향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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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사람들이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피눈물 나는 노력에 의해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 놈은 문학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어’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구둣발로 엉덩이를 세차게 걷어차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답니다. 누가 이렇게 심한 말을 했냐구요? 감성 마을에 입성한 후 표정이 좀 더 밝아지신 이외수 선생입니다. 굳이 '글쓰기'를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 묶어 놓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문학적 소양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까짓 엉덩이 한 번 걷어차이는 셈 치고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선생은 '글쓰기'와 '글씨 쓰는 것'을 혼동하는것은 아니신지요. 글씨 쓰는 것이야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훈련 하다보면 악필이 명필이 될 수도 있지만, 글을 잘 쓰는 것은 틀리지요. 글 쓰는 재능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재미는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렇거든요. 아직은 재미 수준입니다. 솔직히 재능까지는 자신 없습니다.

 

 

작가가 될 생각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글쓰기를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까지는 좀 무리 인듯 하구요. 그냥 조금이라도 잘 쓸 수 있으면 다행이지요. 그래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1987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현재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기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에 장기 연재하고 있는 '우리말 바루기' 와 블로그 '우리말 산책'을 통해 어렵고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우리말과 글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씀으로써 일반인들이 우리말과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다보면 이전에 몰랐던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해리포터'의 저자 로앤 롤링은 비서일과 영어 강사를 그만둔 뒤 이혼 상태에서 일자리 없이 어린 딸과 생활 보조금으로 연명하다 단칸방에서 심심풀이 겸 동화를 쓰게 됩니다. 카페에서 다 식은 커피잔과 딸을 곁에 앉혀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아뭏든 쓰기 시작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꿈꾼 것이 아니라, 처음엔 '치유의 글쓰기' 였었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인 '해리포터'는 출판사에서  여러 차례 거절 당한 끝에 힘겹게 출간이 되었지만, 결국은 초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조앤 롤링 역시 이전에는 자신에게 글 쓰는 능력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지지 않는 이유는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의 교육이 잘 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그래도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준 문제점이지요. 독서량의 절대 부족도 한 몫 하리라고 생각듭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몇 가지 Tip을 공유합니다.

- 글에도 리듬이 있다 : 가능하면 긴 문장 다음에는 짧은 문장, 짧은 문장 다음에는 긴 문장이 와야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 일관성 있게 써야 한다 : 조리 있게 말을 해야 하듯이 글도 조리 있게 굴러 가야 한다. 조리가 있다는 것은 앞뒤가 잘 들어맞고 체계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 군더더기를 없애라 : 군더더기란 없어도 되는 말을 뜻한다. '~이다'를 '~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는 '~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 하거나  '~해'를 '~하는 과정을 통해'라고 하는 등의 군더더기를 없앤다.

- 수식어를 절제하라 :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아주'  '상당히'  '많은'등 수식어를 마구 덧붙이는 경향이 있으나 수식어가 많으면 문장이 늘어지고 읽기 불편하다.

- 접속어를 남용하지 마라 : 예) '더는 기다릴 수없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그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런데를 빼니까 문장이 깔끔해집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그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 쉼표가 많으면 지저분해진다.

- '들'을 줄여 써라 : 복수에 꼬박꼬박 '들'을 붙여 쓰는 것은 영어식 표현이다.

- '의'를 줄여 써라 : '~의'는 일본식 표현에서 온 것으로, 불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절제하는 것이 좋다.

- '것이다'를 줄여 써라.

- 제목을 잘 달아야 한다 : 핵심 내용, 흥미를 끌 수 있는 것, 공간에 맞는 길이, 지나친 명사 나열을 피한다.

 


책에는 실용문외에 기획서, 보고서, 자기 소개서를 잘 쓰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기 블로거가 되는 10가지 방법에 시선이 머뭅니다.

@ 하나의 주제로 특화해야 한다.  @ 글보다 시청각적인 것이 낫다.  @ 글은 짧게 써야 한다.

@ 제목이 반이다.  @ 매일 하나씩 올려라.  @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 시선을 끌만한 편집이 필요하다  @ 퍼가기 좋은 것을 많이 올려라  @ 친구 관계를 많이 맺어라

@ 쪽지 기능을 적절히 활용하라.

 


책의 중간 중간에 "다시 듣는 국어 수업" 이란 Tip이 실려 있군요. 맞춤법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됩니다.   바람 / 바램 생각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인 '바라다'의 명사형은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다. '바램'은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한다는 뜻인 '바래다'의 명사형이다. 만약 사랑을 얘기하면서 '우리의 바램'이라고 하면 '우리의 사랑이 빛이 바랬다'는 얘기와 같다.

 

 

 

저자 배상복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bsb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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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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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여러 갈래로 서로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일례로 들면 기후 문제는 전염병과 연관 됩니다. 경제하고도 관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생사문제로 귀결됩니다. 지난 50년간 과학은 인간의 삶에 많은 기여를 한 만큼,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발달된 과학의 힘이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나의 목을 죌 날이 언젠가 올것입니다. 과학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편하게 만든다는 객관적인 평가가 따르지만, 삶의 질까지도 근본적으로 개선 시켜 준다는 것은 그 누구도 강력하게 주장을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도가 빠른 것이 '과학'입니다. 밀실에서 무언가 못 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그룹들도 있지만 과학은 그 빠름으로 정치, 경제, 예술, 지성의 지표를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과학은 그 동안 인간들이 궁금해 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규명해주고 있지요.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그 역할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생각이 모아져야하고, 대화가 필요합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유대인 사상가 중 하나로 알려진 마르틴 부버는 그의 책 『나와 너』를 통해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부버에 의하면 관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와 그것’ 이라는 독백(monologue)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너’라고 하는 대화(dialogue)의 관계라는 것이지요. ‘나와 그것’의 관계는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그 이용 가치로 따져보는 관계입니다.  반면 ‘나와 너’라고 하는 대화(dialogue) 관계는  서로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함이 없이, 순수한 두 존재가 그대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생긴 유대관계에서는 서로 북돋아주고 서로 자라게 해주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이 책을 보면 이미 오래 전 이 땅을 떠난 마르틴 부버가 흐뭇해할 것 같습니다. 책에 소개되는 2인 1조의 대화를 보면, 한 테이블에서 서로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 각기 입맛에 맞는 음식에 젓가락을 자주 움직이면서 정겹게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과학과 문화'입니다. 과학이니 인문학이니 구분을 둔 것은 완전히 인간의 편의상 구분이지요. 과학 속에 인문학이 있고 인문학 속에 과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과학 그룹에 속하면 과학적으로, 인문학 그룹에 들어가면 인문학적인 사고로 생활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사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왕따가 될지 모르니까요.



22개의 테이블에서 44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생물학자와 철학자가 만나고, 심리학자와 소설가가, 저술가와 안무가, 예술가와 생물학자, 환경운동가와 기후학자, 영화감독과 심리학자, 수학자와 큐레이터, 진화 심리학자와 다큐멘타리 영화 제작가 등등. 어찌 생각하면 서로 대화의 공통점이 모아지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각기 화기애애한 테이블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들이 각기 그들의 분야에서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귀는 없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겸손'입니다. 


그 중 한 테이블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이라는 생물학자와 대니얼 데넷이라는 철학자가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책도 많이 쓰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 테마는 [진화철학]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을 먼저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  철학자는 우리가 철학을 제대로 하려면 '철학사'를 공부하라고 권유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같은 소리를 또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점에 대해 생물학자도 공감합니다. 과학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이 서로 융합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표현하는군요. 마치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서서 밧줄로 서로를 묶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서로 상대편 배에 밧줄을 던지기는 했지만 배는 아직도 서로 삐걱거리며 부딪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밧줄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두 분야가 워낙 오랫동안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해온 터라 상호간에 불안감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일단 서로 단단히 묶이기만 하면 괜찮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두 척의 배는 심하게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힐 것이고, 지금 우리가 이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점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햄릿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자네가 배운 학문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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