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점령하라 - 자본주의 넘어서기
리처드 울프 & 데이비드 버사미안 지음, 한상연 옮김 / 돌베개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무겁습니다.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점령운동 등이 키워드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울프를 상대로 인터뷰 전문작가인 데이비드 버사미언이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부터 떠오른 경제적 자유주의 중 하나입니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개인이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낸 돈은 비용으로 인정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 CEO나 은행가가 뉴욕의 값비싼 레스토랑 포시즌스에서 점심식사를 하면 기업의 비용으로 인정받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경제적 불균형에 대해 이런 질문만큼 리얼한 것이 없을 듯 합니다. 기업과 부자가 고용한 로비스트의 압력으로 세법에 예외조항이 덧붙여져 이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 로비스트들의 목표는 단 하나,부자와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소득세법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은 속절없이 뺏기고 맙니다. 부자와 기업은 더 악착같이 절세, 감세에 대해 무섭게 파고듭니다. 이들이 고용한 세무사나 변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편법과 꼼수가 동원됩니다. 평범한 개인이 점심 때 샌드위치를 사 먹은 식비나 가족과 함께 호숫가에서 주말을 보내며 지출한 휴가지를 공제 대상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수입에서 공제 가능한 비용 항목의 폭이 무진장 좁습니다. 기업과 부자가 공제받는 세금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기업과 부자가 회피한 납세의무를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으면 줄어든 세수를 확보할 길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미국의 상황입니다.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주로 노동 시장의 유연화 (해고와 감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규제없는 시장은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며, 경제 성장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유화(민영화, Privatization)입니다. 국가 소유의 공기업, 상품과 서비스를 사적 투자자에게 팔고 있습니다. 민영화 대상에는 주요 산업체, 철도, 유료 고속도로, 전기등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시설물들이 포함됩니다. 종종 요구 되는 효율성의 증대라는 미명하에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는 주로 몇몇의 손에 부를 집중시키며 대중들이 수요를 위해서 보다 많은 지출을 해야 하는 결과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점령운동은 2011년 9월 17일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 캠프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4개월 앞선 5월 중순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전역과 세계로 확산되었단 사실을 추가합니다. "우리가 바로 99퍼센트다!"라며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계속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다수 대중의 저항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욕의 점령운동을 도화선으로 삼아 한때 운동은 급속히 확산되어 불과 한 달 만에 세계 82개국의 95 도시에서 점령운동의 캠프가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 기간에 600개 이상의 커뮤니티에 캠프가 설치됩니다. 행정당국은 처음에는 비교적 관용의 태도를 보였지만 운동이 계속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두 달 만에 태도를 바꾸어 2011년 말까지 대부분의 운동캠프를 강제로 철거합니다. 전체 운동의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워싱턴 D.C와 런던캠프도 2012년 2월에 결국 철거됩니다. 막강한 공권력의 승리입니다. 

 

점령운동이 자본주의의 정당성이라는 중차대한 쟁점을 놓고 토론을 요구하고 나서자 자본주의의 품 안에서 편히 지내온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은 허둥대기만 합니다. 점령 운동의 요구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 정치인들은 그저 진행과 확산을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자진해서 악역을 맡은 자는 누구인가? 뉴욕 시장 볼룸버그입니다. 선진국에서 제일 지저분한 지하철 시스템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방치한 인물, 고작해야 만화가의 영감을 불러 일으킬 뿐인 제설 시스템을 관라한 데 그친 무책임한 인물. 도시 미관을 핑계로 점령운동을 탄압합니다.

 
이 책에 실린 대담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억압하는 분위기에 도전하고 저항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소득불평등이 더욱 확대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출 삭감정책은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직접 생산과정에 참여하지도 않는 몇몇 이사진으로 구성되는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자본주의 기업 내부의 대다수 노동자와 그 인근 지역사회 주민의 삶은 순식간에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중병에 걸린 '자본주의'를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점령운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 출현할 행동주의 세대의 역량과 단결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의식과 개념, 원칙과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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