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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 붉은 소파 】
조영주 (지은이) | 해냄
“붉은 소파가 왜 그곳에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처음에 몇몇 사람은 궁금했을 것이다. “소파가 왜 저기 있지? 버리려고 내놨나? 그러기엔 멀쩡한데..” 시간이 좀 흘러서, 소파는 자리를 잡았다. 이젠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붙박이 장식장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더 희한한 것은 그렇게 있다가 사라져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 그만큼 사람들은 그 자신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살인, 사진, 실종, 기억 그리고 책의 제목으로 쓰인 (붉은) 소파이다. 어느 날 붉은 소파가 공사장 펜스 앞에 놓인다. 사람이 두 명 앉을 수 있는, 좁혀 앉거나 혹은 어린아이라면 셋도 앉을 수 있는 패브릭 소재의 소파다. 이 소파의 주인은 누구인가? 쉰여덟의 사진작가 정석주. 사진경력 40년의 노장이다. 그의 나이 열아홉 때 데뷔 사진 한 장으로 그야말로 세상에 떴다. 사진의 천재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소설 초반에 묘사되는 그의 모습은 거의 노숙자 수준이다. 밖에서 이슬 맞으며 자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정석주에겐 가슴 깊이 상처가 있다. 15년 전 연쇄살인사건으로 딸을 잃었다. 그 후로 방황의 연속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제자 이주혁을 통해 사체촬영(주로 변사체)을 제안 받게 된다. ‘살인’이라는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는 정석주는 처음에 그 일을 고사하지만, 결국 그 역할을 맡게 된다. 아마도 그의 마음 속 계획과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다. 그것은 붉은 소파와 관계가 있다. 붉은 소파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딸과의 특별한 추억이 담겨있다. 붉은 소파는 딸을 죽인 범인을 찾는 미끼이다. 소파를 이용해서 불특정 인터뷰이를 촬영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 부분에선 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뭔가 단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범인의 독특한 몸의 습관, 얼굴 표정, 말투 등 분별력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작가가 소설의 모티브를 얻은 곳은 사진작가이자 비디오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호르스트 바커바르트의 동명의 사진작품집 (붉은 소파 - 세상에 말을 건네다 / 2010년, 중앙북스. 현재 절판된 상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탄생시키기 8년 전, 사진 그 자체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직접 사진을 찍고 아마추어나 프로 사진작가들을 취재했다. 사진이란 무엇인지, 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지, 사진을 찍는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고 한다. 작가는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무릎의 힘이 빠진 상태로 주저앉아만 있던 한 인간이 고통과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붉은 소파가 왜 그곳에 있는지, 이제는 조금 궁금해지셨을까요. 그리하셨다면, 많이 기쁠 거예요.” 책 말미에 담은 작가의 말이다.
이 소설은 제1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살인과 사진 그리고 비밀을 퍼즐 조각처럼 흩어두고 집중력 있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낸다. 이야기 직조술에 있어서 신뢰를 주었다는 뜻이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추리 서사 문법을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낸 점도 차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살인, 사진, 실종,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흥미의 끈을 놓지 않으며, 추리 서사로서 끝까지 독자들과 지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