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중국일기 1 도올의 중국일기 1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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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이야기 2016-075

 

도올의 중국일기 (1) 】    도올 김용옥 / 통나무

 

 

나의 동양학 공부를 도와주는 두 분이 있다. 물론 전적으로 책을 통한 만남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하 도올로 칭함)과 고인이 되신 신영복 교수님이다. 두 분은 대조적인 성품이다. 도올의 글이나 강의는 매우 강하고 공격적이다. 반면 수인(囚人)의 삶을 20년 넘게 보내신 신영복 교수님은 마치 곁에서 이야기를 해주시듯 조곤조곤하시다. 비록 두 분이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나의 동양학 공부 길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오랜만에 도올의 책을 접한다. 도올의 책을 몇 권 읽기는 했으나, 현재 내 서가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1986, 통나무)醫山問答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두 권이 꽂혀있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재 발간되었고(2009, 통나무), 醫山問答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1994, 통나무)1999년도에 재 발간되었으나, 인터넷 서점에선 거의 품절 상태로 나온다.

 

도올 김용옥. 이 분 요즘 TV로 인터넷으로 다시 바쁘시다(쉼 없이 달리시는 분이시긴 하지만). 덕분에 도올을 통해 중국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올은 우연한 기회에, 연변자치주의 문화적 센터인 연변대학에 한 학기 객좌교수로 가있게 되었다. 그것도 단순한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중국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학점을 주는 교수로서 초빙된 것이다. 도올에겐 이 한 학기의 체험이 색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남겨 놓고 싶었다. “독자들은 도올이라는 한 인간이 하루 동안 살면서 느끼는 그 모든 것을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느낌이야말로 독자들이 중국을 이해하는 가장 정직한 루트가 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의 근세사에서 중심을 이루는 두 개의 사건

 

도올은 인류의 근세사에서 가장 에포칼한 두 개의 사건을 들라고 하면 서슴치 않고 미국의 탄생중국 공산당의 성립두 이벤트를 든다고 한다. 이 두 개의 역사는 시,공의 터전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인류의 운명을 결정해나간 가장 거대한 두 주축으로서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문명의 축적을 배경으로 하여 신문명을 탄생시켰고 중국은 자체로서 축적되어온 고문명을 바탕으로 신문명을 탄생시켰다. 중국은 고문명이지만 신세계 a New World“를 개창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도올이 보는 중국공산당의 4단계 역사 과정

 

1단계는 19217월 상해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회의가 열린 시점으로부터 1949101일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기까지의 찬란한 해방투쟁의 시기를 말한다. 2단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 후로부터 모택동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시기, 정치사적으로는 동아시아 30년 전쟁시기를 카바하고, 미국의 제국주의가 이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말아먹을 수 있다는 신념이 근원적으로 붕괴되어간 시기를 말한다. 3단계는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부터 오늘까지 진행된 시장경제도입시기를 말한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은 기실 실사구시의 실용주의 노선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그 실제적 함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무분별한 차등의 실험으로 중국의 역사를 치닫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 덕분에 중국은 G2의 당당한 위상을 확보했지만, 45천만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도 · 농의 격차가 심화되고, 대도시중심의 사회구조는 양극화의 모든 극단적 양상을 표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 과도한 에너지 낭비체제, 관료주의적 부패양상, 도덕의 해이, 가정윤리의 문란, 천박한 소비주의의 촉진 등으로 서구 천민주의가 걸어온 모든 부작용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도올은 앞으로 중국이 어떤 길을 가길 바라고 있는가? “이제야말로 중국이 제4의 도덕과 절제의 래디칼한 실험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를 초월하는 힘을 소유한 중국공산당만이 감행할 수 있는 실험이다(당은 국가 위에 있다). 세계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자원의 25%를 낭비하는 체제를 구축하여 세계 모든 국가의 적자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적자를 매년 산출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산업사회모델을 세계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이 모방하여 구조적으로 안착시킨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자원이 금방 고갈날 것은 뻔한 일이며, 인류가 공멸의 길로 들어설 것은 뻔한 이치이다.”

 

 

연변자치주의 공동현상

 

도올은 연변에 머무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헌신한 무수한 동포들의 피눈물의 금자탑인 연변자치주가 개혁, 개방이후 급속하게 무너져 나갔다. 50만의 인구가 한국으로 이동했다. 연변자치주는 정당한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동화(空洞化)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도올은 연변대학에서 강연을 했을 때 이러한 문제에 관해 명료한 언급을 했다 저는 연변이 공동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연변자치주는 그 나름대로 유니크한 문화를 유지하면서 남북통일과 세계문명의 앞날을 위하여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연변의 동포들이 한국으로 빨려왔습니다. 저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한국문명의 정화(精華)를 연변에 되돌리기 위하여, 저는 왔습니다.”

 

     

책은 도올의 연대(연변대학)에서의 강의 과정, 그 뒷이야기들과 사람들과의 만남, 시간을 내어 돌아본 사적지(史跡地)등에 대한 이야기가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기라고 해서 술렁술렁 읽어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 특유의 박식함이 거침없이 전개된다. ()이 대단하다. 사실 난 도올의 설()이 좋다. 글을 읽다보면, 내가 참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하는 생각과 나의 편협함을 돌아보게 된다. 도올의 글은 때로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깨는 바늘처럼 나의 뇌수를 강하게 찌르며 들어온다.

 

 

매사를 허투루 보내는 적이 없는 도올의 치밀한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많다. 도올을 초청한 연대 측에선 그에게 VIP대접을 해준다. 외국인교수 아파트 중에서도 제일 좋은 특별한 방이 제공되었다. 외국에서 총장급의 인사가 올 때에나 내주는 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올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신의 스타일로 바꾼다(몇 년도 아니고 단지 한 학기 머무를 방이지만). 한국에 있는 그의 보금자리를 떼 옮기는 수준으로 개조했다. 이불, 커텐, 책상, 서가, 목욕탕용품, 부엌용품 등을 모조리 그의 수준으로 맞추었다. 뒤지고 뒤져서 목공소를 찾아내어, 의자와 서가를 주문 제작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도올의 속소를 들어서면 감히 신을 신고 들어올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도올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내 방의 변모된 모습에 신기(神氣)를 감지하는 듯...”

 

    

어쩌다 그 지경까지 

 

후반부에 실린 도올과 연대 사학과의 젊은 교수 정경일과의 대화는 앞으로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혜롭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엄중한 숙제를 남겨주고 있다. 연대의 정경일 교수는 27세에 연변대학 교수가 되었다. 발해사가 전공이고, 북한에서 발굴도 많이 했다고 한다. 도올이 집안지역 답사를 계획하면서, 서로 연결이 되었다. 도올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적하면서 정교수의 견해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중국이 언제 그렇게 동북공정에 열을 올렸나요? 그렇다면 왜 연변자치주를 만들어 주었겠습니까? 고구려야말로 조선민족의 프라이드의 원천인데 그걸 죽인다면 조선민족을 죽이는 일이죠. 중국은 변방문화에 대하여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다 최근의 일이지요.” 무슨 이야기인가? “과도한 우파성향의 사람들이 좁은 소견으로 저지른 짓들이 중국 사람을 자극시켰기 때문이죠. 중국이 무리한 동북공정을 강행한 것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렇게 휘몰아간 측면이 강해요.”

 

 

이어지는 뒷이야기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역사의식이 투철하지도 못한 우파 민족주의자들이 만주지역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꼭 한민족의 고토를 회복하자는 식의 플랭카드를 중국말로, 한국말로 써놓고 다녔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은 한국사람, 그 어떤 기발한 과대망상자가 연변의 조선족을 사주하여 조선일보 사진기자들이 찍은 벽화를 통째로 도굴해가는 크나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출행도, 청룡도, 백호도, 현무도 등의 유명하고 엄청난 고구려벽화를 돌칼로 도려내서 반출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의 시설과 벽면을 다 파괴시켰다. 15백여 년의 성상을 버티어온 고분이 형편없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다. “건당 55만위엔(당시 한국돈 8,300만원)을 받고 한국인 이만식이라는 사람에게 그 벽화를 건넸다는 재판의 기록이 있습니다.” 도굴에 관련된 범인 6명이 잡혔고, 그 중 3명은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도둑맞은 벽화는 아직 못 찾았다. 직접 도굴에 참여한 사람들 외엔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 일 이후로 중국정부는 고구려벽화에 관한 공식적 사진도록도 만들지 않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창피하고,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한 개인(또는 무리일지도)의 욕심이 남긴 크나큰 과오이다.

 

 

 

연변대학의 학생들보다도 더 중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쓰는 도올(모든 강의를 중국어로 한다). 연대에 특강 차 온 외국인 교수하고도 거침없는 영어를 구사하며 토론을 벌이는 도올. 가는 곳마다 글과 사진으로 역사공부를 시켜주는 도올의 다음 행적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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