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던 사이언스 - 무엇이 왜 과학의 무대에서 배제되는가
현재환 지음 / 뜨인돌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던 사이언스』            현재환 / 뜨인돌

 

 

이 책엔 용의자 X’가 등장한다. 용의자 X가 즐겨 다루는 대상은 과학이다. 저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모티브를 잡았다. 주인공인 수학 교사 이시가미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야스코와 그녀의 딸이 전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탁월한 수학능력을 바탕으로 냉철하고 논리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 목적은 모녀의 혐의를 벗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의 동창이자 라이벌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이를 밝혀내고, 결국 이시가미는 자수한다.

 

 

정치, 사회면만 부각되던 한국의 일간지는 점점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광우병과 촛불 시위, 신종플루 사태, 삼성반도체 백혈병 논쟁, 후쿠시마 원전 사태이후 방사선 문제, 메르스 등등의 이슈들은 더 이상 우리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 용의자 X가 숨어있다. 아니 드러내놓고 활동한다. “과학 논쟁 과정에서 정부, 기업, 언론 등 권력기관이나 반대편의 시민운동가들, 또는 제3의 배후세력이 정치적, 상업적인 이유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해서 진실을 오도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시가미같이 진실을 은폐하거나 오도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유가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이 책에선 현대 과학기술 논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라는 용어를 빌리고 있다. 본래 언던 사이언스라는 용어는 미국의 과학기술자이자 과학운동가인 데이비드 헤스와 그의 동료들이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특정 지식에 대한 체계적 비생산이 이뤄진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생산되지 않은 지식들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이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지금까지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종류의 지식들이 주로 생산되었는지, 그 결과 어떠한 종류의 지식들이 무시되고 배제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언던 사이언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언던 사이언스,수행되지 않은 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생산되고 사용되는 과정에서 왜 어떤 것들은 강조되고 어떤 것들은 배제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지식의 정치를 검토한다는 뜻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선 용의자 X에게 이용당한 과학의 전형적인 사례들을 살펴본다. 유럽과 북미에서의 여성호르몬 연구, 일본제국의 조선인 연구, 나치 독일의 장애인 연구사례를 돌아본다. 2부에선 비록 형태와 양상은 다르지만 현대에도 과학지식의 생산이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들과 교차하면서 특정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럴 수밖에 없음을 보인다. 그리고 과학과 사회가 교차하는 방식을 언던 사이언스의 렌즈로 살펴보는 법을 익힌다.

 

 

 

각종 유전체 프로젝트에서부터 임상시험, 유방암 진단 검사, 가축전염병 관리에 이르는 현대 생의학과 규제과학 영역을 중심으로 유전체학과 인종, 구제역, 임상시험과 지구적 평등, 유방암 연구 및 젠더 정치 등이 언급된다. 3부에선 우리와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언던 사이언스의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광우병 논쟁, 대만의 락토파민 논쟁, 대만 RCA암 사례와 한국 삼성백혈병 논쟁 등 산업재해와 관련된 지식투쟁이 담겨있다. 아울러 동아시아 전역에 큰 상흔을 남긴 후쿠시마 원전 해일 사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저선량 전리방사선 위험 논쟁을 재고한다.

 

 

과학은 전공자들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문외한 지역이 된다. 요즘 우리의 일상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수/진보, 우파/좌파, 자본가/노동자, 거짓/진실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리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첨예한 부딪힘이 발생할 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언던 사이언스의 관점을 적용시켜 보는 방법도 유용하리라 생각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해유 2016-01-2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라뷰 잘 보고 갑니다.^^

쎄인트saint 2016-01-21 15: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평안하신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