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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십팔사략 ㅣ 현대지성 인문서재 1
증선지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십팔사략(十八史略)』
증선지
/
현대지성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의
역사는 부득불 중국의 역사와 매우 인접해있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은
중국 고대시대부터 송나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지은이는
송나라 말기 때의 사람 증선지이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
진수의
『삼국지』,
방현령의
『진서』,
위수의
『후위서』,
이백약의
『북제서』,
영호덕분의
『후주서』,
위징의
『수서』,
이연수의
『남사』,
이연수의
『북사』,
구양수의
『당서』,
구양수의
『오대사』,
그리고
탁극탁이 지은 『송사』까지
당시 중국에 존재했던 정사(正史)
18가지
책을 요약해서 알기 쉽게 편찬했다.
그래서
『십팔사략(十八史略)』
이란
책 제목은 18가지
역사책을 요약하였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증선지는 송나라 말기에서 원나라
초기에 살았던 학자다.
송나라
15대
도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지방관리를 비롯하여 법관을 역임했다.
그는
정무를 지극히 공평하게 집행하여 명성이 높았다.
특히
그는 송나라 충신 문천상의 후배로서 충절로 가득 찬 학자였는데,
불행하게도
그의 시대에 조국 송나라가 몽골에 의해 멸망당했다.
송나라가
멸망한 후 그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여 이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집필했다.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였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황제로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3황
5제의
전설시대
중국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인물은 바로
황제이다.
그는
황하 유역을 평정하여 한족 문화를 일으켜 마치 우리나라의 단군처럼 중국 문명의 개조(開祖)로
추앙받고 있다.
황제
이후 성군으로 칭송받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시대가 된다.
나라의
부침(浮沈)은
왕이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
나라가
멸망하는 세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술,
여자,
포악한
성격 등이다.
하나라,
은나라
등이 대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라에
걸이라는 왕이 있었다.
공갑의
3대손이다.
걸왕은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학했다.
힘이
매우 좋아 굵은 쇠사슬을 손으로 휠 정도였다.
걸왕이
유시국을 공격했을 때 유시국은 항복 조건으로 매희라는 절세미인을 바쳤다.
걸왕은
매희에게 완전히 넋을 빼앗긴다.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궁중에는
산더미와 같은 날고기와 숲처럼 많은 마른 고기를 쌓아두었다.
커다란
연못을 파서 그 안에 술을 가득하게 부어 배를 띄우며 놀았다.
이
당시 사용한 술지게미 만해도 10리
에 이르는 제방을 쌓을 정도였다.
북소리가
울리면 3천
여 신하들이 일제히 소처럼 엎드려 연못의 술을 마셨다.
매희는
그런 광경을 보고 즐거워했다.
이
때 충신 관용봉이 걸왕에게 눈물을 흘리며 간하였다.
“폐하,
너무
심하십니다.
폐하의
몸에 해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그러자
걸왕은 관용봉을 당장 끌어내 죽이고 말았다.
갈수록
하나라의 국운은 기울어만 갔고,
백성들의
민심은 걸왕으로부터 멀어졌다.
이
무렵 인심을 크게 얻고 있던 은나라 탕왕이 군사를 일으켜 걸왕을 쳤다.
결국
걸왕은 명조라는 곳까지 달아나 그곳에서 죽었다.
그리하여
하나라는 우임금이 나라를 세운 기원전 21세기부터
17대
432년
만에 멸망당했다.
망하면
혼자만 망하고 말지 나라를 말아먹으니 문제다.
우환은 나라 밖에 있지 않고 나라 안에
있다
발해 이야기를
해본다.
한
때 발해군은 기근이 들어 도둑이 들끓고 인심이 흉흉했다.
선제는
공수라는 사람을 발해군 태수에 임명했다.
공수가
부임하기 전에 선제를 만난다.
“공은
어떠한 방법으로 그 어지러운 고장을 다스릴 생각이오?”
이에
공수가 답한다.
“발해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아직 폐하의 은덕이 미치지 못해 백성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구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상하게 만듭니다.
이는
아이들이 칼을 가지고 늪에서 장난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에게 무력으로 이들을 누르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덕으로 다스려 그들이 폐하의 은혜를 깨닫고 평안히 살 수 있도록 하기를 바라십니까?”
“짐이
훌륭한 사람을 뽑아 태수로 임명하는 것은 물론 그 지방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오.”
공수는
매우 대담하고 지혜롭게 발해를 평정시켜 나갔다.
선제는 북방의 흉노가 약해진 틈을
타서 흉노 정벌에 나서려했다.
그러자
승상 위상이 말했다.
“세상의
어지러움을 구원하고 포악한 군주를 토벌하는 군사를 의병이라고 합니다.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는 사람은 천하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 나라가
강한 것만 믿고 백성이 많음을 자랑하여 위력을 적에게 보이기 위해 싸우는 군사는 교병(驕兵)이라고
합니다.
교만한
군사는 결국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맙니다.
흉노가
국경을 범하여 쳐들어오지 않는데도 출병하여 공격하는 군사는 신이 어리석어 무슨 군사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아들이나 아우로서 그 아버지나 형을 죽인 자,
아내로서
남편을 죽인 자가 220명이나
됩니다.
이는
결코 조그만 변고가 아닙니다.
폐하를
모시는 신하들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어려움은 전혀 염려하지 않고 오직 출병하여 멀리 있는 흉노에 대하여 극히 조그만 원한을 풀려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계손자가 근심하는 전유가 아니라 바로 담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바로 오늘의 사태와 똑같은 것입니다.”
5대
10국
시대
당나라가
907년에
멸망한 뒤 약 50년
동안은 혼란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중원에는 후량,
후진,
후한,
후주의
다섯 왕조가 계속 이어졌는데,
이를
‘5대(五代)라
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짧게는 불과 4년에서
길어야 20여년으로서
모두 단명 정권이었고,
천하를
완전히 아우르지도 못한 채 중원지방만을 그 영토로 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그 영토가 3백
60주에
이르고 있었는데,
그를
이어받은 후량은 고작 70여
주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섯 왕조의 주인은 최초의 후량과 최후의 후주만 한족일 뿐,
나머지는
모두 사타 돌궐족이었다.
혼란의
세월이었다.
결국
후주의 뒤를 이어받은 송나라 조광윤이 천하의 주인 자리에 오르게 된다.
부록으로는 중국 역사 연표가 실려 있다.
방대한
역사적 사료를 시대 순으로,
소설
형식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역사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독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