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2014-146
『 스피노자 학설 』 프리드리히 야코비 / 지만지
1. 고전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철학자, 사상가의 저술들은 원저보다도 해설, 주석서가 더 많다. 스피노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2. 유복한 유대인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철학자로 묵묵히 렌즈를 깎으며 독신으로 살다간 스피노자. 스피노자가 다시 읽히고 있다. 〈에티카〉는 신에 대해 정신의 본성 및 기원, 감정의 기원과 본성,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해 마치 기하학적인 도식처럼 풀어나가고 있다.
3. 최근에 출간된 스피노자와 에티카 관련 서적들도 상당히 많다. 대충 추려 봐도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오월의 봄), 〈비참할 땐 스피노자〉 (자음과모음), 〈에티카를 읽는다〉 (그린비), 〈스피노자 :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텍스트), 〈강신주의 감정수업〉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민음사),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동녘) 등이 있다.
4. 여기에 한 권 더 보탠다면 프리드리히 야코비의 《스피노자 학설》 (지만지)이다. 원저가 출간 된지도 꽤 오래되었다(1785년). 이 책은 프리드리히 야코비가 1785년 《모제스 멘델스죤 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룬 스피노자 학설》이 텍스트이다.
5.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흥미로운 인간관계가 배경이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은 계몽주의자 레싱을 중심으로 야코비와 멘델스존의 관계가 펼쳐진다. 세 사상가의 공통 관심사는 그때까지 학계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스피노자다.
6. 야코비와 멘델스존의 관계는 각자의 저술이 출판되는 과정에 엮어지고 풀어진다. 사적인 편지가 공개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그 당시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더군다나 서신 교환의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이 출간 되었다니 야코비라는 저자의 마인드가 궁금해진다. 무소의 뿔 같은 배짱이 느껴진다.
7. 어쨌든 이 책은 야코비가 멘델스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스피노자론(論)이다.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는 누구인가? 1743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21세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설탕공장을 물려받아 경영인이자 무역상이 되었다. 서른에 접어들면서 철학과 문학에 몰두하기위해 공장운영과 무역업을 정리한다. 잠시 뮌헨의 각료가 되어 정치에도 참여한다. 야코비는 많은 지식인들과 친분을 유지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교정하고 상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8. 야코비는 스피노자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다. 스피노자 철학이 그의 마음에 꽂힌 것이다. 그(야코비)는 개념의 필연적 연관성에만 집중하는 철학은 범신론이며 범신론은 곧 숙명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스피노자를 좀 더 깊이 알고 보니 스피노자의 철학이 범신론이고 범신론은 곧 숙명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즉 이 책을 통해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비판하고 있다.
9. 스피노자에겐 다소 불편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오히려 득이 된다. 이를 시점으로 스피노자에게 쏠리는 관심은 흥미롭게도 칸트 이후 철학의 중심 문제로 떠오른다. 스피노자는 칸트가 남긴 숙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된다. 스피노자야말로 칸트의 이원론을 넘어설 수 있는 철학체계라고 인정을 받게 되는 셈이다.
10. 스피노자 철학의 태동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야코비와 멘델스존, 야코비와 레싱의 논쟁을 통해 18세기 말 철학이 계몽주의에서 초기 낭만주의 및 독일 관념론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스피노자 논쟁이 결국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