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함께 사는 법 - 오늘을 살리는 과거 청산의 현대사
김지방 지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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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벌써 느낌이 온다. 죄악, 청산, 용서, 화해 그리고 공존이라는 단어들이다.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중에서 '용서'라는 단어는 참으로 마음이 힘든 부분이다. 혹자는 용서는 나를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풀어야 한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은 모두 공감하리라고 생각든다.

 

2. 저자 김지방은 시종일관 무거운 주제를 끌고 가는 마음의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프로필은 우선 독자를 무장해제시킨다.

"청소년신문 '트임'을 창간했다가 말아 먹고 국민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다. 금융 분야를 취재했을 때는 주가가 폭락했고, 교회를 취재할 때는 안티기독교가 창궐했다.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할 때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2008년 인터넷 생방송 뉴스를 만들고 '촛불시위 참가했다 군홧발에 밟힌 여대생'을 보도해 얼떨결에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3. 기자들이 쓰는 글은 추측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상대로 저자는 이런 말을 적고 있다. "이 책에 묘사된 인물의 자세한 내용까지도 99%는 당시 언론에 혹은 그 뒤의 역사적 자료를 통해 기록된 내용에서 찾아내 옮긴 것이다."

 

4.「오늘을 살리는 과거청산의 현대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과거청산의 현대사 7꼭지의 글이 실려 있다. 이 땅을 휩쓸면서 아직도 그 깊은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여수, 순천 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 청산,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 청산,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 청산, 프랑스의 제2차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청산, 미국의 흑인 차별 역사 청산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올린 한국의 두 가지 사건과 앞서 열거한 외국의 사례의 차이점은 한국의 두 사건은 진정한 '청산'이 붙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5. 남아공의 흑백 분규를 보느라면, 생각나는 가요가 있다.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노래한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 깊은 산 작은 연못  /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에 붕어 두 마리 /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6. 아무도 살지 못할 지경이 되기 전에 다행히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한다. 남아공 성공회의 대주교 데스몬드 투투가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된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7,112명이 사면 신청을 했고 그 중 1,200여 명이 사면을 받았다.

 

7.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는 초법적 국제 사법 절차와 특별법 도입으로 킬링 필드를 처벌한다.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은 오월광장 할머니 모임의 힘이 그 빛을 발하고, 피해자들이 연대해서 과거 청산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청산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과거 청산은 실패했다고 토로했다. 프랑스에선 과거청산보다는 숙청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미국의 흑인 차별 역사에는 마틴과 말콤이 기록되어있다. 동 시대에 태어난 두 사람은 흑인인권운동에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말콤 엑스는 증오를 이야기했다. 마틴이 숨진 뒤에도 40년이나 지나서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적지 않은 성취를 가둔 것도, 흑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한 역사의 책임자로서 과거의 청산과 극복을 주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8. 자, 이제 드디어 한국의 상황이다. 아직 미결의 두 가지 사건은 여전히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 1948년 10월 여수, 순천에서 벌어진 10월의 군사 반란 사건. 이 사건은 당시 제주도의 4.3 사태와 단독정부 수립 과정의 혼란 속에서 군인과 민간인들이 동족상잔의 토벌에 반발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들은 '반란 사건'이라는 명칭보다는 '봉기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여순사건은 당시 한반도 상황의 축약판이었던데다가,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국가의 성격을 규정한 역사의 축약판이기도 했다. 2005년에서 2010년까지 조사를 펼친 진실화해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국가는 군인과 경찰,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쟁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법률과 국제인도법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전시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인권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관료들이 우선적으로 받아야 할 사항이다.

 

9. 1980년 5월 18일 광주. 직접 그곳에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 없다. 남아 있는 이들은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광주 시민의 43.2%가 "5.18 민주화운동을 생각할 때 매우 강한 정서(분노, 슬픔, 죄의식)를 느낀다"고 답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과거청산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피해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흔을 적극적으로 치유하지 못한 점에 대해선 점수를 못 받고 있다.

 

10. 다시 '용서'란 단어를 생각해본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투사이자 제2차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하기도 했던 스테판 에셀은 이런 말을 했다. "용서라는 낱말은 희생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덧붙여 유신정권때 금지곡에 오르기도 했던 김민기의 '작은 연못'은 날이 갈수록 좌,우로 치우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의 현시점에서 다시 불러야 할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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