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아포리아 - 뻔한 도덕을 이기는 사유의 정거장
사토 야스쿠니 & 미조구치 고헤이 엮음, 김일방.이승연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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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1927~1987)는 인간의 도덕성 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 채점 방법을 개발하는데 30여 년의 반평생을 바치면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저 유명한 '3수준 6단계'설을 이론화해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성은 1단계에서 6단계로 발달해가는데 6단계는 좀처럼 이르기 어려운 단계로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고, 5단계에 이르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도덕교육의 목표를 제4단계, 즉 '법과 질서' 지향 단계에 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법과 질서를 지향하는 도덕성만이라도 제대로 갖춘다면 지금보다 휠씬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2. 왜 다시 '도덕'이 강조되어야 하는가?  예전에는 밀실에서 이뤄지던 비도덕적인 일들이 백주 대낮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 만큼 '도덕'이 예민한 화두가 되고 있다. 도덕이란 나만을 위한 규범이 아니다. 너와 내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데 필요한 규범이다. 사회의 안정과 신뢰감을 확보하는 주춧돌이다.


3. 이 책의 원제는 [모럴 아포리아 : 도덕의 딜레마] (2007)다. 제목 그대로 도덕적 난제 또는 난문이다. 나카니샤 출판사가 기획한 윤리학 총서 가운데 제 1권이다.  이 책의 특성은 첫째,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주제별 집필자를 전부 다르게 함으로써 주제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둘째, 기술 방식이다. 각 글 서두에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안티노미(antinomy, 이율배반) 형식의 물음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이 책의 활용도이다. 철학, 윤리학 관련 강좌나 교양 강좌에서 교재로 활용할 만하다. 


4. 오늘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성(性)과 관련된 스캔들을 비롯해서 금전과 특혜가 오간 과정이 드러난 밀실거래등이 노출 될 때마다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들은 그들이 자신의 행적에 대해, 은닉하고 변명하기 바쁘다는 사실에 거듭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5.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차별인가?  :  테제 - 남녀 간의 어떤 차이도 인정해선 안 된다.

  안티테제 - 남녀의 차이(특성)를 인정한 평등이라야 한다. 

오래 된 주제이다. 오토 바이닝거(1880~1903)는 인간이 자웅동체의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최초로 인식하고 연구했다. 그는 최초로 육체와 영혼의 '양성 이론'을 만들어 냈다. 바이닝거에게 양성이란 인간의 원래 성향이 양성적이라는 것이며,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 중에서 어느 요소가 많은지에 따라 남성 또는 여성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6. 그렇다면 이 책의 필자들은 어떤 논리를 펼치는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필자는 요코하마 국립대 교수 가나이 요시코다. 밀(J.S. Mill)과 루소를 등장시킨다. 이성은 인간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으므로 성차(性差)는 무화(無化) 내지 극소화할 수 있다는 사고는 밀의 것이다.  루소는 성차는 자연에서 유래하는 본래적인 것이라고 한다. 여성을 위한 기능평등주의의 원형을 만든 사상가이다. 자연적으로 주제는 페미니즘으로 넘어간다. 페미니즘은 그 성립 초기부터 평등론과 특성론의 상반된(그러나 긍정과 부정의 상보적 관게에 있는) 원리를 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같다'는 원칙을 적용하는 데 있어 평등화를 주장하는 흐름과, 반대로 여성의 고유성을 보존, 존중하는 의미에서 '다르지만 같음'의 평등이 있다는 페미니즘의 두 가지 주장은 여성 해방 전략을 차별화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7. 도덕적 행위는 보상받을 수 있는가?  : 테제 - 도덕적 행위는 보상받을 수 있다.  

 안티테제 - 도덕적 행위는 현세에서든 내세에서든 보상받지 못한다.  이 글의 필자는 도쿄대 세키네 세이조 교수다.

두 목소리 : 고교 동창생의 자동차가 우연히 터널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아침에 돌아가는 여성이 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출근 중인 성싱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그 때 한순간 낙반 사고가 일어나 여성은 간발의 차로 터널을 빠져나가 구출되었지만 청년은 터널에 부딪혀 암반 밑에 깔리고 말았다. 1996년 2월 훗카이도 도요하마 터널 붕괴 사고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 동창생 가운데 어느 쪽이 '도덕적'이었는가? 구체적인 것은 모른다. 아니, 굳이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까?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언론은 운명의 장난, 성실한 청년이 '보상받지 못하는' 모순, 신도 부처도 없는 것인가 하는 논조로 보도했다고 한다. 이 물음에 대해서 도덕적 행위는 보상받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의 두 목소리가 있다. 


8. 도덕적 행위의 보상 문제에 대해선 신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구약 성경의 테제는 도덕적 행위는 보상을 받는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소돔 사람들의 멸망, 70명의 형제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아비멜렉은 그 대가로 여자가 떨어뜨린 맷돌에 머리가 으스러져 숨졌다. 이에 비해 히즈키야는 역대 왕 가운데 특히 경건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열왕기하 18:3-6), "부와 명예의 혜택을 입었다." 구약에는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9 그렇다면 안티테제의 입장은?  헬레니즘 시대의 니힐리스트 코헬렛은 이런 말을 남겼다.

"악인들의 행동에 마땅한 바를 겪는 의인들이 있고 의인들의 행동에 마땅한 바를 누리는 악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또한 허무라고 말한다."  니힐리스트 저변에 깔린 것은 '신은 죽었다'라는 인식이다. 도덕적 행위가 보상받지 못하는 것은 코헬렛 당대부터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것이다. 대규모 전쟁의 살육, 광범위한 질병, 천재지변 등을 내세우며 니힐리스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낸다. 그런데 니힐리스트들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내세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인가? 내세가 있다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그것이 없다는 것 역시 '불확실'하지 않은가? 


10. 사회, 좋은 삶, 자유, 도덕의 존재에 대한 아포리아(aporia)등의 4부로 편성되어 있다.

(아포리아 ;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같은 것을 말한다. 원래는 '막다른 골목'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점을 명확히 한다는 의미에서 아포리아의 발견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로 편성된 이 책은 총 19개의 소주제를 놓고 주제마다 각기 다른 필진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길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단지 독자에게 사유(思惟)의 길을 터줄 뿐이다. 어느 쪽에 마음을 기울이느냐는 전혀 독자의 몫이다.


11. 필진을 대표해서 도쿄대 사토 야스쿠니 교수는 이런 말을 서문에 남겼다. 

"이 책은 오늘날 사회문제로서 주목받고 있는, 또 보통의 삶 속에서 쉽게 마주치는 생생한 '윤리학적 난제'에 대해 윤리학 전문가들은 어떻게 대답하는지 혹은 대답할 수 없는 경우라면 어떻게 문제점을 정리하는지를 보여주고자 기획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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