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만남 - 우리 시대 최전선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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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니 떠오르는 단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누구나 마음안에는 보수와 진보가 섞여 있지요. 단지 상황에 따라 또는 몰려다님에 따라 보수도 되기도 하고, 진보가 되기도 하지요. 자주 기울이는 쪽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라 그 성향이 구분되기도 합니다. 


과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그의 저서 "똑똑한 바보들(The Republican Brain)"(동녘사이언스, 2012)에서 틀린데 옳다고 믿는 보수주의자의 심리학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니는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심리적 요구, 도덕적 직관을 포함한 여러 특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니는 책 말미에 진보주의자의 모델로 철학자 장 자크 루소를 묘사한 글로 진보주의자의 팔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토머스 칼라일이 루소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는 다락방에 갇힐 수도 있었고, 광인이라고 놀림 받을 수도 있었으며, 우리 안에 남겨진 야생 동물처럼 굶주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가 세상에 불을 지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지은이 조국 교수가 만난 사람들은 '우리를 달라지게 하고,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기 위해 결코 멈추지 않고 다그침을 계속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정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지은이가 만난 사람들 거의 모두가 진보성향으로 분류되고 있으니까요. 


지은이는 2012년 3월, 고정 칼럼을 쓰는 것보다는 인터뷰하는 것이 훨씬 시간이 덜 들것이라는 [한겨레]편집국장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조국의 만남'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인터뷰어의 수고와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지은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인정되는 부분입니다. 인터뷰이(인터뷰의 대상자)는 인터뷰어를 잘 만나면 내면 깊숙히 담겨져 있던 생각들이 석류가 익어 톡톡 알갱이들을 쏟아내주듯이 언어로 표출되는 계기가 됩니다. 


지은이는 '조국의 만남'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 분명한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자신의 영역을 파고들어 새로운 장을 연 사람들'을 모시고자 했다 합니다. 지은이 조국 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진보인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뷰어로서 그의 질문에 그의 입장이 반영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의 정치적 입장이 진보이건, 보수이건, 이 손님들(인터뷰이)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한계와 편향을 갖고 있고 진리의 부분만을 알고 있지 않던가!"


책은 4부로 나뉩니다.  '내가 싸우는 이유', '나는 세상의 불청객', '내 방식대로 세상에 말 걸기',

'야만의 시대, 원로로 살 수 없다'. 등 지은이가 편의상 분류를 해놨군요. 리뷰가 좀 길어지고 있습니다만, 두 만남을 옮겨보렵니다. 가슴이 아프고, 가슴이 뛰는 만남입니다. 가슴이 아프니 뛸 수 밖에 없지요. 


인터뷰이는 은수연(가명)입니다. 친아버지에 의한 장기간의 성폭력에도 무너지지 않은 사람. '가정'이란 이름의 지옥을 탈출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나아가 가해자를 직접 대면해 나는 더렵혀지지도 않았고 망가지지도 않았다고 선포한 사람. 그 이후 힘차게 환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의 너무도 치욕스럽고 아픈 상처를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 2012)라는 책으로 세상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아직 책은 못 읽어봤으나, 조국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고 합니다. 


"내 삶이 의미가 있을까, 내 고통의 시간들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아프고 힘들었지만 밝고 힘 있게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성폭력 문제를 다를 때 언론 등은 끔찍하고 선정적인 사건만 다루잖아요. 저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건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말이예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았었군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간 친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친어머니가 아버지의 폭력이 시작되면 어린 딸을 아버지한테 밀어붙이면서 "네가 좀 달래서 아빠 좀 진정시켜라"며 성폭력을 묵인하고 부추기기까지 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사람들이 사는 가족이란 공동체가 맞는가?  인터뷰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더 이상 미움, 분노, 원망에 묶이고 싶지 않아 용서한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가해자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크게 반성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라는 인간은 용서를 구함이 없었다는 대목에 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인터뷰이는 우리가 잘 아는 조정래 작가님입니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소설가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치열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다. 몸에 밴 강직과 절제, 그리고 여전히 청청한 기운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인터뷰 후 막걸리를 마시며 부인 김초혜 시인과의 열열한 연애 비화를 들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조정래 작가님은 지금까지 8만 매가량 되는 엄청난 양의 원고를 쓰셨지요. '황홀한 글 감옥'이란 책을 몇 해 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 소설을 쓰셨지요. 이분이 '천재'를 정의한 부분을 마음에 담습니다. 

 

 "천재는 따로 없어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천재입니다. 첫째,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무한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  둘째, 끝없이 노력하는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


특히 [태백산맥]은 이 땅에 민주화 비슷한 것이 진행된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쓰기 시작한 것이니까 작가로서는 그야 말로 목숨 걸고 쓰는 원고였지요. 선생은 [태백산맥]을 쓰면서 정신적 고통이 매우 심하셨다고 합니다. 좌익 부분을 쓰고 나면 계속 악몽에 시달렸답니다.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두드려 맞는 꿈. 그러다 보니 심한 위궤양이 생기겨서 위에 두 군데 천공이 났답니다.


결국 [태백산맥]으로 경찰 대공분실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까지 하셨지요. [태백산맥]를 쓰실 때 후배작가들이 "왜 투쟁하지 않느냐"고 비판했고, 선생님은 "그 시간에 글로써 투쟁하겠다" 고 답하셨답니다. 1980년대 후반 연일 격렬한 시위가 일어날 때 그렇게 비난했던 후배들이 9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아, 역시 조 선배가 옳았어"했답니다.


지은이 조국 교수는 마음의 부담과 세인들의 공격을 예상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게 됩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까지 세 번의 큰 선거. 지은이는 이 세 번의 선거가 우리 사회의 법적, 제도적 변화를 일으킬 중대한 변곡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은이는 많은 공격과 비방을 받습니다. 그것은 '친북좌파 폴리페서'로 요약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국 교수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래, 맞다. 나는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북좌파(親Book座派)'다!.  그렇다면, 일 주일에 평균 4~5권의 책을 읽고 리뷰로 정리하는 나 역시 '친북좌파(親Book座派)'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국 교수와 한 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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