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 성장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미래에는 교과서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동안 어느새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경제학'분야에서 두드러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경제학 분야가 다른 어떤 사회과학 분야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과연 앞으로도 그렇게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단지 경제학 분야에만 국한 시킬 수는 없겠지요.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도움을 줄 수 있는 통합된 지식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요즈음입니다.


저자인 리처드 하인버그는 경제학자인 제임스 K. 갤브레이스의 거의 양심선언적인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생각과 논리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학계를 주도하는 학자들은 (...)중요한 정책 사안에서 매번 잘못된 선택을 했다.(....)이들이 예언하는 재앙은 결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리라 말하는 사건은 반드시 일어난다. 가장 기초적이고 타당하고 현명한 개혁에 반대하고, 그 대신 위약(僞藥)을 처방한다. 경기 후퇴처럼 곤란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언제나 화들짝 놀란다."


결론 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입니다.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끝났다. 아니 결딴났다 입니다. 물론 지역이나 국가나 산업에 따라 당분간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이나 국가나 산업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능한 성장은 '상대적 성장'뿐입니다. 세계 경제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으며 승자들이 나누어 가질 몫은 줄어만 갑니다.


저자는 앞으로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은 다음의 세 가지라고 합니다. 

@ 화석연료와 광물을 비롯한 주요 자원의 '고갈'.

@ 자원의 채굴과 이용 -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 - 으로 인한 '부정적 환경 영향'의 확산.

@ 기존의 통화, 금융, 투자 시스템이 자원 고갈과 치솟는 환경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20여년 동안 쌓인 막대한 정부, 민간 부채가 도를 넘어 - 경제가 위축하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 발생하는 '금융 붕괴'.


이 정도로 그치면 다행인데, 살아가면서 당장 몸으로 부딪는 일들이 더욱 문제입니다. 더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 기후변화 때문에 국지적 가뭄, 홍수, 심지어 기근이 일어난다.  - 에너지, 물, 광물이 부족해진다.  - 은행 도산, 회사 부도, 주택 압류가 속출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암담한 소식만 접하게 되면, 그나마 삶의 희망과 의욕을 잃을까 염려가 되는지 그래도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장이 계속 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우울해진다. 하지만 이 심리적 장애물을 넘으면 꽤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 성장이 종말에 이르렀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질마저 종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신나고 안전하고 보람 있게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성장이 끝장난다고 해서 변화나 개선까지 끝장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장하지 않는 경제 또는 평형 경제에서도 손재주, 예술적 표현, 기술 등은 끊임없이 발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서의 삶보다 평형 경제(equilibrium economy)에서의 삶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장은 일부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경쟁을 부추기지요. 누군가는 완승하고 또 누군가는 완패하는 와중에 공동체 안의 인간관계가 허물어 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는 점입니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낫게'를  추가하는 삶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경제 활동을 증가 시킬 것이 아니라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제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7 챕터로 나누어 그의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사와 경제학의 기초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경제 성장이 휘청거린 이유를 세계 통화, 금융 시스템 내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경제가 회복하여 다시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금융 시스템 외부에서도 찾고 있습니다. 효율과 대체 논리.  세계 경제 성장이 주춤하면서 인구 통계, 세계 발전, 화폐 전쟁, 지정학적 경쟁 등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파헤칩니다. 그 다음엔 성장 의존형 경제에서 위축하는 경제 또는 정상 상태 경제로의 불가피한 전환을 무난히 수행하기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상황 변화를 대비하고 탈성장, 탈탄소 경제와 생활 방식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개인과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합니다. 희망적인 신호이자 기회로서 전환 운동과 공동안보클럽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국제 유동성 증가'와 '자산버블' 그리고 금융위기의 확산과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가 그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인한 국제유동성 증가는 훗날 글로벌 금융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부동산 가격 급등 등 자산 버블의 매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감독 및 평가 체계의 미흡으로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주요국들의 금융 시스템과 리스크 고려가 미흡한 다양한 파생상품들의 양산이 자산 버블의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처럼 내실에 기반하지 않은 자산의 버블은 결국 붕괴로 이어졌고, 이와 연관된 많은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되거나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된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이러한 원인이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로 이어지게 되면서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 '금융불안과 실물경제 위축'의 진행 과정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외국의 전문가들이 보는 금융 위기는 어떨까요?  마이클 쿰호프와 로맹 랑시에르는 국제통화기금 보고서 [불평등, 레버리지, 위기]에서 금융 위기의 단순한 모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1) 불평등이 커지면 중산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부유층의 소득이 증가한다.  (2) 중산층은 소득이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도 생활 수준을 계속 향상시키려고 부자들의 돈을 빌린다.  (3) 이를 중개하려고 금융 부문이 팽창한다.  (4) 결국 신용 위기가 발생한다.  이 역학 관계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삶은 속도를 올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 모한다스 간디 (민족 운동 지도자)


저자는 책의 상당 부분에서 암울한 경제 전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참으로 한숨만 쉬다 말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대안과 희망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미래의 경제적, 환경적 위기를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고 지켜 내기가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정치, 종교, 문화를 공유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힘든 시기가 닥칠 때 서로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안면을 트고 신뢰를 쌓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정자나무 가지치기를 어떻게 할지 묻거나 텃밭에서 남은 채소를 나눠 주는 등 무난 한 것부터 시작하기 바란다는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복원력"을 위해서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 운동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화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뜻이 모아져서 '공동 안보 클럽(Common Security Club)'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점차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채택한 클럽이 많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이 공동 안보 클럽은 세 갈래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 공동 학습.  - 상호 부조.  - 사회 참여  등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 앞에 놓인 미래는 정치 지도자들이 단타성으로 제시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의 손자, 손녀가 맞이할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 그 누구도 선명하게 그려 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한시적인 우리 삶에서 그저 내가 숨쉬다 가는 그런 세상으로 마감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 후까지도 좀 더 평안하게 살게 되는 지구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