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 -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의
김진만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도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방송국의 PD를 칭할 때 한글의 '피디'를 적용해서 (피)곤하지만 (대)단한 직업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물론 '대단한'이라는 부분은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PD의 영역과 역량은 대단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 김진만 PD는 대학 재학중 고시에 패스해서 모범적이고 착한 법관이 되려던 꿈을 접고, 보다 가슴 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불현듯 피디가 됩니다. MBC에 입사해서 예능국, 교양국, 시사제작국, 편성국 등을 두루 거칩니다. 그가 다큐멘타리 피디로 지내는 동안 정글 한복판에서 원시의 삶을 살아가는 조에족과 남극 대륙에서 홀로 겨울을 견디는 황제펭귄을 만납니다. '지구의 눈물' 시리즈 중 하나인 [아마존의 눈물]은 한국 다큐멘타리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남극의 눈물]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극장판 3D 영화 [황제펭귄 펭이와 솜이]로 재탄생됩니다. 


이 책은 저자가 다큐멘터리 피디로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특히 지구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방송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사연들, 화면 뒤편에 숨어 있는 웃음과 눈물, 고난 등을 일기 쓰듯이 솔직하게 드러내며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애초에 계획한 대로 실현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무수한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고 그 순간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대의 권력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최고 스타들의 삶을 따라가 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감동적인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들이었다고 합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남을 위해 헌신하고 세상을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고 교훈이었다고 합니다. 


아마존의 많은 부족들이 문명화에 휩쓸려 그들의 역사마저도 상실되어가는 시점에, 자신들의 전통을 꿋꿋이 지켜가며 올곧게 살아가는 조에족. 사냥을 해도 절대 무리하게 하지 않는다. 딱 먹을 만큼만 합니다. 시간 약속을 할 땐 손으로 태양의 고도를 가리킵니다. 하늘의 중간을 가리키면 낮 12시지요.


아마존의 또 다른 부족 자미나와족의 무궁한 약재 활용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름 그대로 생약입니다. 단적인 예일 수도 있겠지만, 알라시아라는 자미나와족 여인의 이야기는 문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문명인가 그 반대인가 말입니다. 알라시아는 페루에서 온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합니다. 도시에 가서 생활하던 중 자궁암에 걸립니다. 죽더라도 고향에 가서 죽겠다고 친정 아버지곁으로 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 치료, 약초치료로 병을 깨끗이 고친 후 새 추장이 됩니다.  그리곤 본인처럼 도시로 향한 부족민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귀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촬영팀은 눈을 질끈 감고 악어 고기도 먹습니다. 그들의 만찬에서 인상을 쓰고 앉아 있을 수가 없지요. 

 

비록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은 어디나 똑같습니다. 진심과 진실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던 일도 됩니다. "소통을 하려면 진심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연애처럼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 가식적인 모습은 상대가 귀신처럼 알아챈다. 진심이 통하면 기대 이상으로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훨씬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김피디는 '열바다'에서 '썰렁해'로 무대를 옮깁니다. 남극으로 날아갑니다. 이미 남극에는 여러 나라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각 나라들은 언젠가 나눠 가질지 모를 남극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군요.  이 중 아르헨티나가 막대한 국가지원으로 이미 1952년부터 사람이 살기 힘든 땅 남극에 유일한 인간 마을 에스페란사를 건설한 것은 참 선견지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극에 간 김피디는 아델리 펭귄과 황제 펭귄들을 밀착 취재합니다. 특히 황제 펭귄들이 암수가 만나 짝을 짓고 알을 부화시키고, 키우는 과정은 정말 눈물겹습니다. 아마도 사람은 그렇게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들은 알을 발등으로 받아 4개월 동안 눈만 먹으며 암컷들이 바다에 가서 영양보충을 하고 다시 돌아 올 때까지 키워야합니다. 바닥에 떨어뜨리면 다시 발에 올리지도 못하지만 수 분 내로 알이 얼어버린답니다.

 

책을 참 재밋게 봤습니다. 촬영팀은 취재 기간 300일 동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겠지만, 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읽는 재미는 참 쏠쏠합니다. 제법 많은 사진들이 글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제작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글도 잘 쓰네요.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부분이 제법 많았습니다. 저자가 책 말미에 적은 부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때론 사람이 세상의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

황제펭귄이 황제펭귄답게 살아가려면 조에족이 조에족답게 살아가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오늘 내가 기록한 조각들이 누군가에게, 그리고 세상에 자그마한 희망과 치유의 힘이 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지구는 여전히 둥급니다. 제목으로 쓰인 '세상 끝'은 사실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원의 특징이자 장점이지요. 굳이 이 책을 읽기 전이라도, 힘들고 어려운 지금 그 자리가, 그대가 다시 시작하는 '스타트 라인'이 되길 소원하는 마음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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