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사 -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통찰
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 박수철.유수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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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초의 언어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어느 한 사람이 어딘가에서 최초의 단어를 내뱉었고, 다른 누군가가 그 말을 이해했다? 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문자로 기록 될 수 있는 것만 언어일까? 식물도 말을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통상 말이라고 표현하지만 동, 식물 간에도 엄연히 소통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단지 우리가 입에서 내는 소리만 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스티븐 로져 피셔(Steven Roger Fischer)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 소장으로, 100여권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하고 편집했다.

이 책은 『문자의 역사』『읽기의 역사』와 함께 언어에 대한 그의 탐구를 정리한 3부작 중 하나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에서 현대를 거쳐 미래까지, 모든 동물의 언어에서 인간의 언어까지,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다른 언어학 관련 서적에 비해 다른 면이 있다. 다른 책들은 잘 알려지거나 재생되고 있는 인류의 언어들에 대한 언어학적 변화를 전문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 책은 인간의 언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생물의 언어까지 아우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조류와 고래류, 영장류를 대상으로 행해진 혁신적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언어의 역사에는 인간 언어외의 언어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원시 형태의 언어들은 여전히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 존재를 깨닫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연계의 의사소통들을 감지해내는데 현대 기술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실험에 정밀한 모니터 징비들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외 동물의 ‘언어’라는 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단지 실제적으로는 비언어인 것에서 언어적인 면을 억지로 읽어내어 동물들에게 언어를 ‘부여’하고 있을 뿐인가?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야생에서 이루어지는 대형 유인원의 의사소통은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유인원사이의 의사소통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몸짓 언어와 소리의 풍부한 결합으로 구성되는 반면, 후자는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해서 인간의 상징기호나 단어에 유인원이 반응하게 만든 것뿐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험이 행해진 결과,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일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아무리 매개수단이 인위적이고 그 결과가 훈련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동물 사이에 의미 있는 정보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이미 존재하는 신경통로를 이용해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와 대화를 나눈다.


인간의 음성 언어 역사에서 핵심이 되는 근본적인 의문이 두 가지 있다. 어떻게 ‘단어’가 출현했으며, 어떻게 ‘구문체계’가 생겨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문제에 가장 잘 대답하기 위해서는 언어 보편소들을 조사해볼 수밖에 없다. 가장 기본적인 ‘어휘목록’은 그 표현법이 개미는 페르몬으로, 꿀벌은 춤으로, 호미니드는 음성언어로 각기 다를지라도 모든 생물이 똑같이 공유하는 법이다. 그러나 유아의 음성 어휘목록 속 어휘들은 더 긴 구조의 문장으로 결합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단어로 설명되지도 못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의 언어처럼 유아의 언어에는 구문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어린이들에게는 ‘내재적 소인’이 있어서 문장을 만들 때 어떤 공식적인 원칙을 저절로 선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인공 언어가 이러한 원칙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으면 인공 언어는 익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통의 어린이가 자연 언어를 익히는 것만큼 ‘쉽고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가설은 실험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내재성’이라는 개념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이 개념은 역동적인 사고 과정에서 유추되는 보편적인 언어의 특성을 규명하기보다는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내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음성언어는 수십만 년에 걸쳐서 인간의 뇌와 발성기관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다. 인간의 뇌 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말이 더욱 명료해졌고 이와 동시에 화학적 신호나 몸짓 언어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졌다. 이렇게 되자 발성기관은 더욱 특화되었고 말의 발달로 사회는 더 복잡해졌으며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뇌 용량은 더욱 늘어났다. 이렇게 인과관계는 양방향으로 작용했다. 한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을 촉진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낸 것이다. 점진적인 진화의 속도에 발맞춰 원시적인 사고와 말은 더욱 정교한 사고와 말로 발전해갔다. 현대의 인간 언어도 이런 식으로 계속 진화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원시적인 화학적 신호나 몸짓 언어는 거의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물러난 듯 보인다.


언어적 분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형적 분류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계보적)분류이다. 유형적 분류는 특별한 언어적 현상을 기반으로 해서 언어를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 같은 언어는 고립어에 속한다. 고립어는 단어 하나가 하나의 형태소(뜻을 가진 최소의 언어 단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가 많은 형태소로 이루어져있고 그 경계가 불분명한 언어도 있다. 이런 언어를 굴절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라틴어를 들 수 있는데, 문장에서의 쓰임새에 따라서 하나의 단어가 corporis, corpori, corpore 등으로 형태가 달라진다. 세 번째 유형의 언어는 교착어로, 하나의 단어가 많은 개별적인 형태소로 이루어지는 언어이다. 또한 이 형태소에는 독립형태소와 종속형태소가 있다(영어의 ‘drive'처럼 홀로 설 수 있는 형태소는 독립형태소이고, 영어 ’driver'의 ‘~r'처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홀로 설 수 없는 접미사 같은 것들이 종속형태소이다).


문자언어의 세계를 더듬어본다.

약 4,000년 전에 익명의 수메르 사람이 “입과 손이 서로 어울리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서기이다.”라고 점토에 새겨 넣었다. 문자는 말없는 그림으로부터 서서히 ‘진화’하지 않았다. 문자는 애초부터 실제적인 인간의 말의 도해적(圖解的) 표현으로 출발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남아있다. 심지어 자칼에게 불멸의 생명을 부여한 기원전 3400년경의 가장 오래된 이집트 성각문자(hieroglyph)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칼’이라는 이집트어 단어를 즉각 떠오르게 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레너드 블룸필드는 “언어과학은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의 한 수단이다.”이라고 썼다. 그 수단은 수천 년을 가로지른다. 문어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고대인들은 인간의 말을 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로 신성시했고, 그런 믿음은 아직도 서로 무관한 여러 문화에서 남아 있다. 체계적인 언어 연구는 기원전 1000년기에 인도와 그리스에서 출발했고, 지금까지 상호보완적인 전통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라틴어로 번역한 그리스어 문법용어, 즉 명사. 대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관사. 타동사. 자동사. 어형변화. 격변화. 시제. 격. 성(性). 주어. 목적어 등은 지금도 대부분의 서양사회에서 언어를 설명할 때 쓰인다.


저자는 결어(結語)를 이렇게 맺고 있다.

“언어는 인류의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학자 로버트 딕슨의 말이다. 아닌게아니라 인간사회는 언어 없이 상상하기 어렵다. 언어는 우리 삶을 규정하고,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나타내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원천이다. 그러나 언어는 영구적, 안정적, 고정적 존재가 아니다. 줄기차게 흐르는 역사의 강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부단한 흐름 속에 있고, 끈질기게 변하고,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바꾸고, 죽어가고, 생기를 되찾고, 자란다. 비록 수천 년에 걸친 언어 변화의 일반적인 특징을 확인 할 수는 있지만, 개인용 컴퓨터 같은 기술혁신을 통해 변화 자체의 동력이 바뀌어 전례 없는 양상의 언어 변화가 나타날 수 도 있다. 이런 식으로 언어는 인간사회의 가장 가변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으며,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는 한 항상 언어는 존재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언어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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