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플까 - 몸과 마음의 관계로 읽는 질병의 심리학
대리언 리더 & 데이비드 코필드 지음, 배성민 옮김, 윤태욱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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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은 왜 병에 걸리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가?
이러한 질문을 놓고 정신분석학자와 과학자가 질병의 비밀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다.

이 책은 과학적 분석과 신뢰 가는 결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학과 함께 심리학과 정신의학적인면의 경계면에 서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개하고 있다. 공저자의 일인인 대리언 리더는 정신분석가가 증상이나 억압 같은 정신분석학의 개념보다, 환자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사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것을 촉구한다.

이 책은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난 감정이 신체 질병의 발생은 물론이고, 질병의 경과가나 치료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다. 또 우리의 무의식과 상징이 질병에 끼치는 영향을 다룬다. 대리언 리더는 라캉과 프로이트를 연구하고 임상에서 정신분석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코필드는 응용수학, 수학철학,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응용수학에선 인체와 관련된 통계를 가지고 질병을 설명하며, 정신신체의학에 속하는 현상들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은 왜 병에 걸리는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병을 걱정하는 태도도 병을 유발할 수 있다. 여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체험을 처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인간은 문제를 처리하는 존재이다. 선사시대 동굴 벽에 새겨진 사냥 그림에서 감방 벽에 새겨진 낙서까지 인간은 여러모로 사건을 기록한다. 말하기와 쓰기는,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말하고 쓸 수 없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몸의 질병이 소통양식을 대체하는 사례가 있을까?

이 문제를 탐구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 무엇보다 정신신체질병(psychosomatic illness)은 없다. 주요 질병 가운데 오직 마음의 문제 때문에 걸리는 병은 하나도 없다. 마음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질병도 없다. 결국 몸과 마음은 잠재적으로 얽혀있다.”

“신체증상이 같아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일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으며, 심리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도 서로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개개인에게 어떤 요인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물론 몸이 쉽게 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별을 경험하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등 ‘생명’과 같은 소중한 것을 상실하게 될 때 특히 위험하다. 우리는 힘들고 때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하면 우리 몸은 쉽게 망가진다. 그렇게 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뚜렷한 원인 없이도 건강이 쉽게 나빠진다.”

“환자들은 짜증을 자주 낸다. 일반 의사들이나 전문의의 빡빡한 스케줄에서 환자는 그저 한줄짜리 일정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입원환자는 의료진이 자신과 소통하는 방식보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에 더 만족한다고 한다. 일반 진료에서도 컴퓨터가 점점 더 많이 사용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서 키보드로 자주 자료를 입력한다는 뜻인데, 그러다보니 환자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환자가 초진을 받을 때 의사가 입을 떼기 전에 환자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23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언론매체에서 새로운 질병을 소개하면서 이런저런 의학적 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건강 서적이 늘어나면서 질병의 명칭도 확실히 늘고 있다. 절대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증상도 지금은 질병이 되었고, 심지어 20세기 후반에는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인도 아예 질병으로 분류된다. 고혈압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잠재 변수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질병이 되었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임상적 비만도 다른 질병을 유발 할 수 있는 요인이었지만, 오늘날은 이것들 자체가 질병이다. 위산 역류도 질병 목록에 추가되었다. 위산 역류는 그저 평범한 속 쓰림 증상이었지만,지금은 위산 역류질환으로서 질병 목록에 올랐다. 새로운 명칭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는 더 쉽게 약을 요구할 수 있다.”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룩생크는 1931년 영국 의학심리학 학회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언젠가 감정에 북받쳐 우는 것도 ‘발작 눈물 흘림 증상’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이 질병은 손수건과 소금기 없는 식단, 수분 섭취 제한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눈물샘을 초기에 없애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프랜시스의 농담은 정말 실현되었다. 이런 연유로 안과 의사를 찾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안과 의사에게 이런 말만 들었다. “당신은 지금 우는 겁니다!”

의사가 아는 해부학과 환자가 생각하는 해부학은 다르다. 환자는 특정 부위가 아프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의사가 살펴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환자는 특정 부위의 장기가 아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장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19세기에 의사들은 이런 문제를 세세하게 연구했다. 그들이 보기에 환자가 느끼는 몸은 해부학에서 말하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가 지적하는 아픈 부위나 장기는, 적어도 환자 본인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다.

단어가 상상 속의 몸을 이룬다.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 “저 사람은 눈엣가시여.” 이런 표현은 정말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 증상이 일어난다고 상상하는 신체부위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이탈리아 이민자가 세운 로세토라는 마을이 있다. 이민자들은 19세기 후반 남부 이탈리아 로세토 발 포르토레 출신이다. 로세토의 인구는 1,600명 정도 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몇 년 동안 건강 조사를 하고 이웃 마을과 비교 연구한 결과,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률은 신기하게도 이웃 마을이나 미국 전체와 비교해도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로세토 주민들은 특별한 건강식을 먹지도 않는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흡연량도 이웃 마을과 같았다. 하지만 연구자는 로세토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상부상조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의 자녀도 부모만큼 건강했다. 하지만 로세토를 떠난 이민자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게 병에 걸렸다. 사실 이와 비슷한 스터디 결과는 종종 있어왔다. 여러해 전 일본의 최고 장수마을인 오키나와에서 연구된 결과물도 같은 결론을 냈다. 섭취하는 음식물, 환경 등도 장수의 요인으로 거론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네트워크가 많을수록 건강하고 장수했다는 리포트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환자가 될 수 있다(이미 환자인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우리의 내러티브를 의료 체계에 도입해야한다. 하지만 의료계가 내러티브를 다루려면 많은 것을 구비해야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저런 일을 해볼 수 있다. 질병 이론과 치료 사례를 조사할 때 우리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개인사를 표현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을 위한 조건이 있다. 환자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의학 훈련의 근본 문제를 꼬집어보자. 의사에게 가장 적절한 배경 지식이 꼭 자연과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듣고 해석하는 기술을 철저히 익힌다면, 의대에 들어오기 전에 수행하는 과학적 연구 못지않게 이런 기술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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