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3 -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 시가 내게로 왔다 3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거꾸로 가본다. 저자 김용택 시인의 촌평 내지는 감상부터 적어본다.

“유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등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배짱도 좋다. 영화판이 어떤 곳이라고 거기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 유하는 가슴속에 잉잉거리는 호박벌 떼를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호박벌 떼를 가두어놓고 있으니, 속이 얼마나 잉잉거리고 복잡하고 뜨겁겠는가. 그는 그런 자기의 속을 황홀한 감옥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지옥

-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


윤제림 시인의 시를 옮겨본다.


[가족]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 한 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원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 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랫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저자의 멘트를 본다.

“이 시에 대해서 할 말 없다. 이 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은 각자가 알아서들 하고, 할 말들 다 각자 알아서 하라.”

그래서 내가 몇 마디 덧붙여본다. 이 시의 1연과 2연의 공통점은 ‘딱 한번’이다. 한번씩 밖에 안 입은 옷들이다. 시인의 서운한 마음? 아니다. 그런 건 안 보인다. 그냥 정겹다. 여유롭지 않은 삶 속에서 어렵게 장만한 옷 한두 벌,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온 식구들 거다. 같은 상황도 해석하기 나름이고, 소화시키기 나름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이 ‘가족’이다.


이 책의 저자 김용택은 시인이자 선생이다. 선생은 2008년도에 정년퇴직했다.

책 띠지에 있는 저자 사진은 그의 나이를 다시 보게 만든다. 동안이다.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진짜 웃음이다. 1948년생이니까 64살?

정년퇴임 스케치를 일간지 문화면에서 본 듯하다. 그가 가르쳤던 초등학생이 성년이 되어서(시인이 되었다던가?)퇴임식에 참석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 같다. 산골에서 선생을 하면서 문학에 빠져들어 14년을 혼자 공부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외 8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여러 권의 시집, 산문집을 출간했다.

산골마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단순히 ‘지도’라고 표현하기엔 그의 역할이 컸다)순박하고 부드러운 그 마음속에 시 씨앗을 심어주었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보고 가슴이 찌르르 하던 기억이 있다. 김용택의 책상엔 로댕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살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는 자존심과 열정, 그리고 의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 시집은 그가 평소 아껴온 시들을 모으고 그만의 감상평을 붙인 시선집 이다.

앞서 출간된 『시가 내게로 왔다』 1,2권은 우리나라 근대 서정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 이용악에서 박용래와 김수영, 서정주와 고은을 거쳐 장석남, 유하에 이르기까지 근대 초창기 시에서부터 근, 현대 시사(詩史) 100년에 빛나는 아름다운 시들을 두루 엮었다.

이 책은 그 시리즈 3권이다.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라고 되어 있다. 저자의 아는, 모르는 시인후배들의 시작품이리라. 이 책에서처럼 현시대에서 시를 자아내는 젊은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봄직하다. 저자의 감상평은 덤이다.



‘엮으면서’중 일부를 옮긴다.

“모아진 시들을 다 읽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나는 딴 세상에 와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답답한 굴속에서 막 빠져나온 후련함을 맛보았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는 쉽게 말해왔다. 우리 시가,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쉽게도 젊은 시인들을 외면해왔다. 추억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고 이것저것 쓸데없이 ‘보수’하게 만든다. (‥‥) 젊은 시인들의 시 속에서 나는 근대를 넘어선 현대의 짙은 음영을 본다. 자본이 만든 도시의 음울하고 잔인한 음모가, 그 검은 손길이 인간을 넘보는 불안과 긴장의 냄새를 맡는다. 정말 너무나 난감해서 감당하기 힘든 문명 이전 같은 이 야만의 시대에 낯선 시들이 찾아와 나를, 내 온몸을 떨게 한다. 시인에게 꿈은 욕이다. 그러나 이 어인 헛것인가. 저기 저 강굽이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흐르는 물 위로 늘어져 물을 보며 새 눈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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