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옻칠의 무한한 표현력을 사랑한다. 옻칠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대로 나타내준다. 화려하면서도 풍요로운 색감에 붓질을 더하면 현대 회화 작품보다 더 현란한 색채가 뿜어져 나온다. 패널 작업은 내가 단순한 칠장이가 아니라 옻칠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는 칠예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내 의지의 산물이다. 나는 독학으로 옻칠을 배운 뒤 늘 나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과 싸워왔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한 글자 차이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무척 멀다. 좀 더 나아가 평범한 삶과 비범한 삶 역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역시 천지 차이일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측면(평범, 평범한 삶 그리고 비범, 비범한 삶)의 차이를 나를 위한 삶이었느냐? 아니면, 좀 거창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타인 또는 세상과 인류를 위해 무엇인가를 보탠 삶이었느냐 로 결론 내린다.

나름대로 그 기준을 정해놓고도 비범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몸을 맡기고 있기에, 나와 반대의 삶 그것도 매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분들이나 지금도 살아가고 계신 분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을 물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채찍질하는 계기가 된다.

“너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전용복 - 그는 누구인가?  6.25 전쟁 통에 태어나서 그때에는 누구나 겪었던 피폐한 생활 속 어린 시절을 보낸다. 배우고 싶은 열망은 있으나 주변 상황이 발목을 붙잡는 힘든 여건 속에서, 꿈을 꾸는 시간조차도 사치였던 일상. 군제대후 몇 군데 직장을 전전하던 중, 우연히 목재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전국에 합판을 공급하는 유통 업체였다. 이곳에서 근무 중 가구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순한 가구가 아닌 작품성 있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옻칠을 접하게 된 것이 저자의 삶이 ‘외길 한평생’으로 치닫게 된 동기가 되었다. 옻칠 공예와 작품제작을 지도해줄만한 여건이 안 되었던 척박한 국내 실정에 비해 옻칠 분야에서 훨씬 앞서가 있는 일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가 옻칠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그 후 저자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는 비교할 만한 시설이 없기에 선뜻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지만, 일본의 유서 깊은 연회장 메구로가조엔의 옻칠과 자개작품의 복원공사는 그의 삶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저자를 그곳에 붙잡아 둔 힘은 무엇인가?

메구로가조엔을 방문해서 ‘송학도’를 접한 저자는 그의 표현을 빌리면, ‘숨이 콱 막힐’정도의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나전에서 장식된 어른 키만한 큰 학들을 들여다보던 중 작품의 한쪽에 죽파(竹波)라는 일본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고 그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광신(光信)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광신이라는 이름은 죽파라는 일본화가가 도안한 그림에 자개를 새겨 넣은 조선의 무명 장인이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그리곤 어디선가 희미하게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조선의 칠 쟁이다. 오래전 이곳으로 끌려와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이 지금은 이렇게 흉하게 낡았다. 네가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다오.”

그 후 저자의 삶은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단순히 어려움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미약한 위기상황을 넘기고 또 넘기면서 저자는 옻칠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의 작품 그 이상의 감동을 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왜 굳이 한국인 전용복이 옻칠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에선 설 자리가 없어 무수히 많은 그의 귀한 작품들을 일본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자리 잡았다.

3,000명에 달하는 일본 최고의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 끝에 일본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우는 메구로가조엔의 복원공사를 맡게 된 후, 간절히 바라던 것을 얻게 된 그는 너무나도 기쁘고 감격해서 한국의 여러 매스컴과 동북지역 총영사관 등지에 전화를 걸었다. 이 때 그들의 반응은 그의 이를 더욱 악물게 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 한국의 장인들이 일본의 문화재급 작품들을 복원하는 연구소를 완성했습니다. 한 번 와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응들은 냉담했다. “당신들 개인 일에 갈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바쁜 줄 아시오.!” 거두절미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쿄의 모 신문사 특파원은 한 술 더 떴다.
“우리가 그 먼 곳 까지 왜 갑니까?.  작은 중국집 하나 수리하는데 무슨 난리요?”

몇 년이 지나 저자는 옻칠 악기에 도전하게 된다.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능가하는 명품악기를 만들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여 KIST에 넘겨주었는데, 그 자료는 정부에 의해서 묵살되고 만다. 저자의 옻칠 악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안 어떤 사람이 이미 특허를 내버린 것이다. 평생 손에 옻칠 한 번 묻혀보지 않은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금에 눈이 멀어 특허를 받아 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학자의 양심을 포기한 상대방들과 법정에서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옻칠 악기에 대한 꿈을 접게 된다.

그 후 옻칠을 한 세계 최고가의 명품 시계를 탄생시키기까지의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의 목표는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옻칠 장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옻칠 종주국인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한 끝없는 도전 정신이었다. 한국에선 앞서와 같이 무관심의 존재로 일본에서는 그네들의 질시어린 시선과 모함 속에서 그는 더욱 굳세게 일어섰다.

안일했던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이 땅에 태어나서 과연 무엇에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며, 채우며 살아왔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 귀한 책이자 열정적인 삶과의 만남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