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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 ㅣ 구텐베르크 클래식 시리즈
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태환 옮김 / 구텐베르크 / 2026년 3월
평점 :

《 펭귄의 섬 》 | 구텐베르크 클래식 시리즈
_아나톨 프랑스 (지은이), 김태환 (옮긴이)
구텐베르크(2026-03-03)
열정적이고 신심(信心)충만한 사제 마엘 신부가 대형 사고를 쳤다. 펭귄 무리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그의 크나큰 실수에 이해되는 부분은 있었다. 우선 마엘 신부가 나이가 많이 들었다(90대). 더군다나 북극의 빙판에서 반사된 강렬한 빛 때문에 노인의 눈은 이미 설맹으로 침침해져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생물체들을 보고 마엘은 그들이 원시부족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긴 펭귄을 멀리서 어렴풋하게 본다면,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키가 작은 것이 흠이지만..). 그는 즉시 복음을 전파할 준비를 했다. 문제는 그들(펭귄들)에게 가까이 가서도 순박한 이교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성 마엘은 꼬박 사흘 밤낮없이, 날개 달린 군중에게 쉬지 않고 세례를 베풀었다.
‘펭귄 세례’사건이 저 윗동네(천상계)에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긴급회의가 소집된다. 짐승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성불능자에게 혼인성사를 허락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과 세례는 누가 집행하느냐가 중요하지 누가 받느냐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펭귄들이 받은 세례는 유효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격렬한 논의 끝에 결국 펭귄들에게 준 세례를 인정하고,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단지, 펭귄이 인간이 되면 펭귄이었을 때는 짓지 않았을 죄악들을 숱하게 범할 것이라는 것과 그냥 그대로 펭귄으로 사는 것이 저들의 운명에는 더 이로울 수 있다는 아쉬움만 남는다.
바야흐로 펭귄(이라 쓰고 인간이라 읽는다)의 연대기가 시작된다. 인간이 되면서 그들의 가슴엔 ‘불안한 영혼’이 자리 잡았다. 그 ‘불안감’은 나의 가슴에도, 당신의 가슴에도 있지 않던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년)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소설가, 비평가이다. 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간내면의 추악한 구성요소를 드러내준다. 탐욕, 광기, 거짓, 위선, 오만, 폭력성 등등이 만들어간 인간의 역사를 일부나마 보여준다. 책은 여덟 챕터로 나뉜다. 앞서 언급한 펭귄이 인간으로 만들어진 기원부터 고대, 중세와 르세상스, 근대(4챕터) 그리고 미래이다.
풍자문학이지만, 실제역사를 패러디했다. 흥미롭다. 현 시대의 감성에 어울리는 번역과 번역자의 친절한 주석이 고맙다. 아울러 서양역사의 한 귀퉁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프랑스가 프랑스했다. 작가는 프랑스 역사를 스캐닝한다. 프랑크왕국의 성립부터 카롤루스 대제시절, 백년전쟁, 르네상스/종교개혁, 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 전쟁, 드레퓌스 사건, 벨 에포크 사건 그리고 20xx년 등이다. 후반부 근대파트에선 반유대주의 광풍이 몰아친 ‘드레퓌스 사건’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아나톨 프랑스와 무관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일까? 매우 상세하고 리얼하게 그려졌다(분량도 많다). 작가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에밀 졸라 등과 함께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반유태주의와 반드레퓌스파에 맞서 싸웠다. 훗날 에밀 졸라가 의문의 가스중독 사고로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명문의 조사를 바쳤다.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하며 끝없이 반유태주의를 퍼뜨리던 로마가톨릭교회는 에밀 졸라의 모든 작품들과 함께 아나톨 프랑스의 모든 작품들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놀랍고 놀라운 것은 제8권(챕터) ‘미래’파트이다. 100여 년 전(1908년)에 쓰인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시대의 모습이 선명하다. 고층빌딩, 더욱 깊이 들어가는 지하터널, 24시간 켜있는 조명, 매연과 검은 비 등 기후변화, 급증하는 우울증 환자, 은둔형 외톨이들,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지 않는 인간들, 사회적 에너지의 발현으로 간주되는 폭력. 인간사회에서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도덕, 문화와 예술. 증가하는 테러와 핵전쟁 등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예언 같은 기록을 만나게 되기까지 내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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