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
_한덕현, 이성우 / 한빛비즈
"우울증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깥으로 향하는 공격성이 바깥 대상을 찾지 못해서, 나에게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즉, 원망할 대상이 없으니까 지금 이렇게 우울한 상황을 만든 것은 ‘나’이구나 하고 자신을 탓해버리는 것이죠.“
살아가다보면 답답할 때가 종종 아니 자주 있다. 그 답답함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면(가능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해결 가능한 답답함이 있고, 때로는 해결책이 안 보이는 답답함이 있다. 나 역시 요즘 그럭저럭 지내오던 일상에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건수가 생겼다. 마음이 복잡하다. 몇 가지 해결 방안을 놓고 어떤 방법이 좋을까 깊이 생각하는 중이다. 그 중간 중간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방향감각을 상실할 때도 있다. 그러나 숨이 붙어 있는 한 삶은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무탈한 하루를 보내듯 그렇게 지내야 한다.
‘가수’라는 호칭보다 ‘펑크록커’라고 불리길 좋아하는 밴드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는 코로나 시기와 겹쳐서 불안장애와 불면증을 겪으면서 지인의 소개로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를 만나게 된다. 여러 차례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이 책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를 공저로 출간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과 글이 이 책에 담겨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이성우는 무대에서 가사를 틀렸다든지 삑사리가 났다든지 하면 ‘실수할 수도 있지’하고 다음 곡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고 답답해한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다른 잘한 것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잘못한 거 하나 때문에 영 기분이 찝찝하다고 한다. 아마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잘 한 것보다 잘못한 것에 마음이 묶여 있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한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실수를 해도 원래의 나로 살 수 있고, 처음 계획한 대로 시작할 수 있거나 융통성 있게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위와 같이 문답형으로만 편집된 것은 아니다. 록커 이성우가 처음 음악과 교감하고 록커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와 그간의 상황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한교수는 한교수대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된 과정을 서로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의 꿈을 풀어놓는다.
여러 이야기 중 ‘록커 이성우, 일반인 이성우’와 한교수의 ‘한 번에 하나의 공만 던져라’라는 글이 특히 좋았다. 이성우는 “참 의외네요.” “생각보다 점잖으시네요.” “이미지랑 정반대세요.” 잘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고 난 다음에 자주 듣는 말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무대의 이성우 이미지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우에겐 스위치가 하나 있다고 한다. 록커 이성우를 켜고 끄는 스위치이다. 그러나 간혹 이 스위치가 말썽을 부린다고 한다. 오프 기능이 고장 날 때가 있는 것이다. “공연을 끝내고 무대 위에서 내려왔는데도 여전히 무대 위 모습이 실생활에서도 이어지면 이거 정말 피곤해지거든요 이 스위치를 껐다 켰다 잘하면서 완급조절을 잘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온오프 스위치 있으세요?”
한교수가 답한다.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과 운동을 좋아했던 한교수에게 한 친구가 “너 그렇게 놀다가 나중에 평생 공부하게 된다”는 ‘공부 총량의 법칙’을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바로 그 ‘온오프 스위치’가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 뒤늦게 깨달은 점이 ‘멀티태스킹’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되 한 번에 하나의 일만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포츠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나서 알았다고 한다.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두 사람의 공저자가 내면 이야기를 진솔하게 주고받는다. 글을 보며 때로 미소가 지어지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