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유혹 - 한 지식인의 중국 깊이 읽기 글항아리 인문에세이 4
쉬즈위안 지음,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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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의 유혹 】- 한 지식인의 중국 깊이 읽기 | 글항아리 인문에세이 4

_쉬즈위안 / 글항아리 원제 : 極權的誘惑



“한 중국 지식인의 내면일기”


“만약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1980년 광주와 1989년 톈안먼 비극이 두 민족에게 가져다준 엄청난 상처와 아픔을 기억할 것이다. 중국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심지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1988년 서울 올림픽처럼 중국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중국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전에 저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쉬즈위안(許知遠)은 베이징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전공인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활동에 깊이 빠져든 것 외에도 각종 유명 매체에 현실 비판적 기사를 기고하며 문명을 날렸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주로 2009년 여름에서 2010년 가을에 걸쳐 쓴 것이다. 그때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클레어홀에서 방문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한국에선 2012년 번역출간).


이미 10년이나 지난 글들이지만, 책을 읽다보니 중국의 내적 상황은 달라진 점이 별로 없는 듯하다. 현 중국의 사정은 오히려 더 심각하지 않을까. 중국의 정치체제가 중국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매우 단편적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독재의 유혹(極權的誘惑』을 프랑스 작가 장 프랑수와 르벨의 동명 작품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전에 이 제목을 사용해 소련모델을 숭배하는 프랑스 지식인을 묘사했다. 현재 중국에서도 독재가 유혹하는 대상에는 경제의 고도성장을 숭배하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인 자신까지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의 이미지 변화, 검열제도, 사회 심리 그리고 개인 반항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신속하게 굴기(崛起)한 새로운 제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중국 국내에선 다시 국가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여러 부문에서 중국은 ‘만족을 모르는 괴수’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진보의 신념, 전제의 왜곡, 자본주의, 산업화, 정보화 등의 현상이 엇섞이며 자원에 대한 재난성 약탈이 빈발하고 있고, 여기에 현란한 기술문명이 보태져서 조급하고 탐욕스러우며 물질숭배로 전락한 추악한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


왜 마오쩌둥이 부활하고 있는가?


내가 예전 근무처가 천호동에 있을 때, 근무처옆 건물엔 제법 큰 중식당이 있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식당에 들어서면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벽면 하나를 차지하고 있기에 생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과 대기근으로 중국인민들이 참담한 시간들을 보내게 한 장본인인데, 주인장이 마오 가문인가?(식당이름도 마오였다)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현재 중국에는 마오가 부활하고 있다. 이미 중국 전역의 공공기관, 대학, 광장 등엔 수많은 마오쩌둥 전신상이 설치되어있지만, 창사(長沙)에도 100피트 높이의 마오쩌둥 (머리 부분)조각상이 설치되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마오쩌둥의 실제모습과는 다른 이미지(젊은 시절 모습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 모습은 역사적 실존 인물의 모습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스핑크스랑 비슷하잖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가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인의 사상과 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다. 마오쩌둥 신드롬은 1990년대 초에 전국을 휩쓸었다고 한다. 1980년대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는 ‘사인방’ 못지않게 마오쩌둥 자신도 그 죗값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지식인들은 과거를 반성하기 시작했고 마오쩌둥의 ‘개인숭배’가 온갖 재난의 원인이었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보통사람들에겐 마오쩌둥은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인물이었다. “날개 돋친 물가, 곳곳에 만연한 부패, 정체된 임금, 신속하게 이뤄지는 빈부격차 등의 사회 현상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며 불안해했다. 일부 사람들에게서 마오쩌둥 시대의 평등, 즉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큰 격차도 없었던 시절의 평등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다.”


국가주의자들에겐 중국이 국제적으로 다시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하자 대외적으로 강경노선을 추구하던 마오쩌둥의 태도에 더욱 큰 동경심을 갖게 된다. 대중들은 사회가 붕괴, 분리되는 것을 느끼면서 과거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효력을 잃었지만 미래도 애매모호하다고 느끼고는 사상적 혼란과 정서적 미망에 빠져든다. 이에 마오쩌둥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마오쩌둥은 정치적 인물일 뿐만 아니라 민족 영웅이며 반인반신(半人半神)의 대중적인 우상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마오쩌둥은 중국의 스탈린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레닌이기 때문에 그를 부정하는 것은 공산당 전체 역사의 합법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표명된 마오쩌둥의 공과 과오를 70대 30으로 발표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마오쩌둥처럼 ‘법도 없고 하늘도 없는’ 방종의 권력을 갈망한다. 식욕이나 성욕과 마찬가지로 권력욕도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그러나 중국 사회보다 더 집중되고(정치, 경제, 문화 권력이 늘 혼합되어있고, 뒤의 두 가지는 항상 전자에 종속된다) 더 불평등한 사회는 아주 드물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이러한 형태를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지적을 하며 저자는 탄식한다. 즉 자신이 무한한 권력과 자유를 보유하든지 아니면 다른 권력에 비참하게 노역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의 형태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 한다. “6년 전 나는 열정적으로 글 한편을 써서 197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 사람들의 사명과 희망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인터넷과 소비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편협한 세계로부터 걸어 나와 이 진실한 사회를 영접해야 한다. 사회의 모든 전환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중국도 지난한 일과 마주하고 있다. 우리 이 세대와 미래의 몇 세대는 우리의 열정과 정력을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 쏟아 부어야 한다. 우리에겐 암흑을 폭로하는 신문기자, 정의감이 풍부한 변호사, 사회적 양심을 가진 상인, 개혁 추진을 원하는 관리, 존경받을 만한 비정부 조직 등이 필요하다. 그들은 각각 유사한 원칙을 고수하며 미래에 대해서 비슷한 동경을 품고 있다. 그들은 소극적인 조롱대신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을 견지하고 있으며, 허망하게 절규하는 대신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행동하고 있다. 풍부한 격정은 오히려 충분한 냉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쉬즈위안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에 태어났다. 중국에서 신시기로 불리는 개혁, 개방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저자와 같은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층이 두터워지고 생명력이 길어진다면, 중국의 미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더 보편적이고 평화적이며 세계적, 민주적)으로 발전해나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금씩이라도 그렇게 변화된다면,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후세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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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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