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 : 당전과·포과편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9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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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배가 조금 아프거나 날씨가 쌀쌀할 때면 설탕 녹인물을 조금씩 마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마법과도 같았던 그달달한 물을 성장하며 약이나 차, 코코아 그리고 커피등을 마시면서 조금씩 잊고 살았다. 대신 시럽이 듬뿍 묻혀진 정과류와 도너츠 등을 신체적, 심리적 기운이 떨어졌을 때 ‘당 떨어졌어‘라며 먹고 있기에 <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의당전과, 포과편이 정말 반가워 읽고 싶었다. 


이 귀한 설탕을 얻는 방법은 사탕수수를 재배해야 가능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에도 제대로 된 사탕수수 재배가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책에서도 여러차례 언급되는 것처럼 좋은 식재가 있음에도 정작 설탕이 없어 제대로 조리되지못하고 보관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설탕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살을 찌우는 것, 당의 수치를 높여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각종 차나 청을 만들 때에도 설탕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근 조림도 설탕을 넣어 조리하는데 책에서소개된 방식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수비드 조리법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천천히 밀봉 상태로 조리하면서 설탕이 재료에찬찬히 그리고 깊게 잘 배어 향과 맛이 그윽하다고 한다. 평소에 빠르게 조리하여 청을 넣거나 꿀 등을 입혀 반짝 반짝 윤이 나게 만드는 방법과는 조금 다른 방식인 것이다. 앞서 어릴 적 엄마가 타준 설탕물을 아프거나 서늘해지면 마셨다고 했는데 실제 설탕이 과거에는 약으로 쓰였다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옛날에는 설탕이 약으로 쓰였다. 비위를 상하게 하거나 몹시 쓴 약을 먹은 다음에는 입가심용으로 설탕을 먹었다. 소화가안될 때도 설탕을 먹었고 심지어 배가 아플 때나 피곤할 때도 설탕을 물에 타먹었다. 93쪽


입이 심심할 때 흔하게 찾게 되는 것이 오징어, 육포 등인데 과일 또한 말려서 포로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흔히 변비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먹는 말린 자두 푸룬은 이건(자두)방으로 불리는데 자두 보다 더 끌리는 레시피는 다름아닌 살구 였다. 살구를 참 좋아하지만 과육 자체가 워낙 부들부들 해 보관이 어려운 데 행포(살구)방으로 만들면 보다 더길게 즐길 수 있다. 행포방 또한 이건 방처럼 변비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 빛이 말린 자두 보다 환하고 고와 고명으로 사용하기에 훨씬 더 활용도가 높아보였다. 


설탕과 관련된 조리법 중 가장 익숙한 것은 다양한 과일을 활용한 청으로 담그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유자청이 간절한데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유자를 청으로 담그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 오히려 유자에게는 미안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조지>와 <규합총서> 속에 있는 조리법만 봐도 지금보다 쓰임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자 껍질과 속을 꿀에 조려 정과를 만들거나 전복 김치에 유자를 채 쳐 넣어 귀한 전복에 향을 더했다. 동치미에도 유자를 통째로 넣고 나중에 썰고 국물에 꿀을 타고 석류에 잣을 뿌려 먹으면 맑고 산뜻하여 맛이 좋다고 했다. 243쪽


부유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설탕은 몇년 전 정제 방식에 따라 더 좋고 나쁨이 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흔히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더 좋다거나 둘다 어느 정도 수고가 더해지므로 갈색 설탕이 가장 안전하다는 내용들이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덕에 달고나가 유행하면서 설탕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시점, 설탕을 이용한 다양한 과자와 청을 옛방식에 현대의 기술을 더한 이 책을 보며 조리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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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1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유구의 정조지에 놀라운 음식이 많던데 이런 과자류까지 대단합니다. 저도 살구 좋아라하는데요 행포방 이름도 고와라. 리제 님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mini74 2021-10-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제가 아는 그 실학자 서유구인가요? ㅎㅎ 조선시대 설탕 요리법 재미있어요 ㅎㅎ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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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시온공원에서 지내는 노숙자 ‘나‘는 고향 후쿠시마에서 생계를 위해 12살 때부터 집을 떠났다. 밭일부터 바닷가에 이르기 까지 그는 가리지 않고 일을했고 도쿄올림픽을 위해 도쿄에 경기장을 건축할 무렵에는 높은 보수를 위해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단 두 번, 명절뿐이었다. 아들이 타고 싶다던 헬기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태워주지 못했을 때, 그 아쉬움과 속상함이 그렇게 오래 남겨질 줄은 몰랐다. 21세. 아들이 죽었을 때의 나이다. 아들의 죽음은 더이상 그를 ‘살아있게‘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거울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끝난‘상태였다. 아직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아내와 딸이 남아있기에 그는 다시 집을 떠나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모든게 끝난 것 같았어도 죽은 것은 아들이고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돌아갈 곳은 ‘집‘이었던 그가 어쩌다 돌아갈 집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을까.


공원에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엄청나게 비밀스럽거나 감동적이지 않다. 아내없이 혼자서 밥을 차려먹지 못하는 남편을 둔 가정주부, 말린 정어리에 대한 극찬과 건강을 염려하는 중년들의 대화 등 우리가 쉽게 말하는 ‘소소한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식인처럼 보이는 시게를 통해 우에노시온공원의 역사를 들여주고, 그 역사속에서 위대한 장군이 역적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삶의 아이러니까지 덤덤하게 이야기는 이어진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다 어떻게 잘 듣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인지 글의 초반과 후반, 그리고 중간 곳곳에 단서를 보여준다.


작가는 노숙자들이 천황과 그의 가족들의 행행차로 인해 강제퇴거 당하는 일들을 소설을 쓰기 전에 취재했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연을 취재하는 동안 한 노숙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집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비단 노숙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후쿠시마를 먼 나라에서 바라보는 이들과 그 안에서 이유없이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후쿠시마 사람들의 입장도 나는 그저 안타깝다 정도밖에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역할이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저자의 말처럼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그 말대로 이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일본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만 비판할 뿐 정작 후쿠시마 안에서 이미 다 잃었으면서도 생을 잃지는 못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잠시라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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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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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여태껏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하긴 쥐 탓도 아닌 것이, 야영지에 쓰레기를 버려 썩게 한 공사판 사람들 잘못이다.
152쪽

소설 <장엄호텔>를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지금보다 수십년전, 늪 주변에 들어선 호텔의 모습은 음침하고 우울한 기운만 느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호텔을 물려받고, 호텔의 운영권과 함께 두 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삶은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유쾌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데다 엄마와 함께 수많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호텔에서만 머물던 사람보다 더 갇힌 삶을 산 것 같은 폐쇄적인 성격은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에 적당한 선을 두고 지켜보는 이들에게만큼은 호의적이다.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동생의 수고 덕에 청소도, 빨래도 심지어 아다의 병간호까지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삶은 그럭저럭 동생에 비하면 괜찮아 보였다. 짙은데다 꽤 오랜시간을 공들여야 괜찮아보이는 병색이 짙은 아다 역시 맘대로 부릴 수 있는 막내가 있어 그나마 괜찮은 듯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늪의 냄새가 호텔에 더 번질수록 두 자매 뿐 아니라 장기간 투숙하던 공사 인부들마저 병들어 떠나버린다. 글에는 유머러스함도 없고 일말의따스한 인간미도 없었다. 그런데도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늘은 사람들이 배수구 때문에 불평을 하고, 어차피 빚은 여전하고 이렇다할 희망사항도 없지만 살아가는 것, 불평사항이 줄지도 늘지도,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것이 생겨나도 그랬다. 역자의 후기를 읽지 않아도 서두에 발췌한 문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팬데믹 시대, 지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였다. 특정한 누구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작정 평화로운 삶도 아닌 지금, 나 또한 이 소설의 화자처럼 그렇게 약간의 불편과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 같은 짐들의 무게를 견딘다는 느낌도 없이 견뎌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들은 벌써 조금은 잊혔다. 나도 기억력이 나쁜가보다. 풀이 무덤을 덮기 시작한다. 호텔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멀리 호텔이 보인다. 159쪽

독자의 시선으로 보면 호텔은 부동의 짐이자 삶의 시작이며끝이다. 저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참이라면 화자에게 십자가는 호텔 그 자체였을 것이다. 늪은 한 번 삼키면 제스스로 결코 토해내지 않는다. 누군가 잡아당기려 해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화자에게 가족이 늪과 같았는지, 아니면 호텔이 그러했는지 독자인 나는 명확하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엄호텔에 머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앞서 언급한 팬데믹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출할 때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언제 벗을 수 있을까 했던 불편함이 이제는 마스크에 색을 입히고 디자인을 변형하는 듯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화자가 장엄호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처럼 그렇게. 소설의 담담한 문체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과 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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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 - 자수성가 백만장자들의 압도적 성공 비밀
롭 무어 지음, 이진원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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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간 대부분을 강점을 키우는 데 집중적으로 쏟고, 중대한 약점을 만족할 만한 수준정도로만 끌어올리는 데는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라. 그리고 나머지 일은 아웃소싱이나 동업을 통해서 해결하라. 당신이 서툰 일은 당신이 뛰어난 일에 의해 균형이 맞춰진다. 본연의모습을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 당신의 성격 대부분이 이미 형성된 상태인 이상 자신을 완전히 바꾸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런 흐름에 편승하는 게 현명하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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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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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세파 수녀의 <그림이 기도가 될 때>는 그림을 통한 묵상이 담겨있는 책이다. 수녀님이 계신 곳은 봉쇄수녀원으로새벽 3시 30분에 기상, 저녁 8시까지 기도, 독서와 노동으로 채운다고 한다. 그토록 거룩한 곳에서 읽고 쓰는 행위가 지속된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그림이라는 추억의 매개가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물론 제목에 드러나듯 종교적인 부분이 강하지만 자신의 양심과 명상의 방법으로 이 책을 읽어도 좋은 이유를 감상에 더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가 익히 아는 화가들의 작품이 자주 등장 해 학교에서 배운 내용,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제발로 전시회에 찾아가 마주한 그림의 감상은 같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벅차거나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밀레의 <만종>이란 작품을 노동 후에 감사와 고뇌가 담긴 숭고한 작품으로 배웠다면 사실 부부 앞에 놓인 농작물은 죽은 아기였다고 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작품의 실제 이야기는 충격이며 애끓음그 자체였다.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서 있는 것일까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고통의 승화를 예술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겼던 내게 참된 부모와 스승이야 말로 매일 매일 고통을 승화하여 자녀와 제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가하면 뭉크의 <절규>는 어떤가. 지독한 어지러움과 소리마저 삼킨 절망이 두 귀를 막아버리게 만든 것 같은 이 작품을 보고 저자는 놀라운 해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절망을 뒤집어보면, 이렇듯 깊디깊은 절망은 희망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려낼 수 없지 않을까요?
81쪽


크게 절망할 수 있는 것이 결국 희망을 알기 때문이라는 말에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의 절망을 생각해본다. 찬란했던 순간을 너무 잘 알아서 그렇게 울고 불고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에 희망을 찾기란 너무 어렵다. 이에 저자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절망이라고 강조한다.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작품은 미소년이 물에 비친 추한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안과 밖의 다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추한 모습도 결국 내 모습이며 이를 억지로 떼어내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 아닌가라며 이야기한다. 추함의 역사와 현재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외적 혹은 내적 추함은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평소에 묵주기도를 통해 자주 접했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이유는 코로나시대의 사회적거리두기로 이전과 같은 대면만남이 어려울 때 필요한 단상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신실한 믿음으로 견뎌낸다지만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와 수군거림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마리아가 임신 하기에는 이미 나이든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마찬가지로 임신은 하였지만 남편 즈키르야의 침묵과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그 불안과 두려움속에서 마리아의 소식 또한 큰 위로와 응원이 되었을 것이다. 두 여성의 만남은 ‘복받은 이‘라는 신에 대한 감사로 채워진다. 개인의 노력이나 저 혼자 받은 축복이라는 교만이 아닌 겸손과 감사의 나눔만 가득한 만남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분명 이 작품을 마주한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으리라. 이외에도 읽는 동안 나의 잠재된 폭력성, 억울하다는 심정의 참모습을 깨닫는 등 알지 못하거나 못본 척 했던 나를 맞 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그림을 배워온 정보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감상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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