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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평점 :
사망의 이유가 노화가 아니라 가난인 미래사회, 임플란트 장기 대여로 보통의 인간은 백세시대를 훌쩍 넘겨 살아간다. 새로운 장기로 교체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인간의 뇌에 '버드'를 심어 기억을 저장하는 기능은 물론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버드를 심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현 시대의 흙수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모든 경쟁은 물론 생존마저 위태로운 사회다. 그다지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 가애 '유온'이 있다. 유온은 아내와 어떤 이유로 떨어져 지내고 있고, '수애'라 불리는 이제 곧 죽음(임플란트 대여 종료)을 맞이하는 이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그들의 유산을 자신의 장기 대여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그에게 사랑은 감정이나 연애가 아닌 '생존' 그 자체다. 새로운 장기를 대여해서 젊은 시절처럼 열심히 일하면 대여료를 지불하는 것이 그다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겠지만 교체했다고 해서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을 뿐이다. 또 제대로 손상의 이유가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라면 벌점이 생기고, 누적이 되어 누적 단계가 높아지면 그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을 매년 지불해야하니 지금이나 미래나 어짜피 넉넉한 자본을 보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영생은 '불가능'에 가깝다.
100세 전후에 누진 2단계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인생을 잘 살아왔다면 누진 2단계를 그럭저럭 버텨내며 생활 할 수 있다.(...) 누진 3단계는 대 다수에게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내가 어릴 때 자주 쓰던 재벌이나 부자라는 단어가 이제는 4단계 혹은 5단계라는 단어로 대체되어가고 있다.54쪽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진2단계 유온은 쉴 틈없이 수애를 찾아 나선다. 인생의 끝을 달리는 수애는 몸에 좋지 않은 주류와 음식을 가리지 않기에 수애와 만나지 않는 동안 유온은 버디의 조언대로 음식을 조절하고 검사 직전에는 관리에 들어간다. 미래에는 운이라는 것도, 축복받은 체질이라는 말도 큰 의미가 없어 어찌보면 평등한 것도 같은데 달리 말하면 자본이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씁쓸해진다. 아내와 떨어져 지내며 여러 명의 수애를 보냈으면서도 유온에게 죽음은 낯설기만 하다. 우리가 평소에 죽음생각하지 않는 것, 저자의 말처럼 젊은 시절에는 20대에 죽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살고 싶지 않은 이유와 동시에 죽음은 더 두려워진다. 오히려 끔찍한 고통속에 죽어갈 일은 없지만 '대여 종료'라는 명백한 소멸시한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책을 읽으며 더 끔찍하게 느껴진 것은 장기를 교체하듯 피부이식을 통해 겉으로는 20-30대의 얼굴과 몸을 가지고서도 스스로 100세가 넘은 노인이라는 자각을 떨쳐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내용이 전부라면 몰입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이책 시장은 언제나 망할 것 같은 기류를 풍기면서도 절대 망하지 않았다. (...)
한 때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 줄어들고 있다며 페이퍼-리스를 주장하던 목소리는 쏙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 종이는 친환경의 상징이자 먼 나라의 향취였다. 209쪽
유온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낙엽이 떨어진 후 끊임없이 비가내리는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면 사이사이 등장하는 책이나 문학덕분이 귀를 통해 끊고 싶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는 아쉬움이 오래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