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줍기 철학자 - 제6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사계절 중학년문고 44
이빛 지음, 이내 그림 / 사계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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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나는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며, 마음에 드는 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곤 했다. 멀리 떠나는 여행지에서만 기념품을 수집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네를 산책하다 유난히 반짝이는 작은 돌을 발견하면 주워 오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잎을 책장 위 작은 화분에 살포시 올려두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산책하는 아들도 길을 걷거나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소소한 무언가를 하나둘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남편의 눈에는 그저 돌이고, 잎이고, 파편일 뿐이다.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혹은 아이가 무언가를 ‘득템’했다는 기운을 풍길 때면 남편은 엄중한 어투로 말한다.

“안 돼. 놔둬.”

그럴 때면 마치 이빛 작가의 창작동화 <우리 동네 줍기 철학자>의 중해가 엄마를 설득하듯 나와 아이도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중해처럼 거북이 인형까지 주워 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물론 중해의 엄마 역시 인형이나 장난감을 결사반대하지만, 책은 읽고 싶었거나 사야 할 책이면 통과! 안타깝게도 작은 우리집에서는 ‘책’이 금기 1호다. 물론 중해에게도 중요한 줍기 철학이 있다.

빵점짜리가 아니면 줍고 본다.
주인이 있는 물건은 갖지 않는다.
위험해 보이는 것은 줍지 않는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세 가지 원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에게 ‘철학’이 무엇인지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예가 있을까 싶다.
철학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번 세운 원칙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고민하고 판단하며 조금씩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중해에게 ‘철학’을 알려준 좋은 어른이 있었듯,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아이에게 철학이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시련을 마주할 때도 있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거나 갈림길에 서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거창한 정답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른인 나에게도 삶의 중심이 되어 줄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또 그동안은 가볍게 줍기템의 이유를 물었다면, 이 책을 함께 읽고난 후에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책은 아이에게 철학을 알려주는 책인 동시에, 어른에게도 삶의 철학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동네줍기철학자 #이빛 #이내 #사계절어린이문학상 @sakyejul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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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썸머 에디션)
이디스 워튼 지음, 민지현 옮김 / 머묾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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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 여름.✉️

오래 전, 그러니까 출산은 물론 결혼도 하기 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사랑에 실패한 슬픈 이야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야기란 모름지기 결말도 중요하지만 장면 장면에 등장하는 말, 그 말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채리티는 감수성을 너무 쓰지 않아 퇴화해버린 듯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니의 애정보다도 그의 말에 더 놀라고 감동했다. 206쪽

마치 나의 그런 마음에 화답하듯, 위의 문장을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그때는 분명 슬픈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읽어보니 결말이 그렇게 또 불행하게만 느껴지지도 않았다. 왜냐면 채리티의 나이가 아직 너무 어렸고, 어리다는 것은 앞으로 얼마든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채리티가 근무했던 곳, 현대의 풀타임 근무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식으로 임명된 마을 도서관의 사서였으며, 정규 교육도, 어떤 실습이나 자격없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리티, 너를 산에서 데려온 게 로열 씨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거라.” 53쪽

산에서 태어난 채리티를 가난하고 작긴 해도 어쨌거나 ‘산골 농민들의 야만적일 정도의 빈곤에 견줄 만한 것은 없(287쪽)’는 집에서 길러졌다. 그랬기 때문에 초반에는 지나치게 당돌하게 느껴졌다. 사실 초반에는 내가 이토록 나이를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숙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산에서 데려온’ 사람이 로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이 서글퍼지게 된 것은 내가 만약 채리티를 작품의 한 소녀, 사랑에 빠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철없이 소녀가 아니라 ‘내가 낳은 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감상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서두에 발췌한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채리티가 자란 마을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저 그런 삶에 익숙해질 뿐(145쪽 참조)’인 곳에서 달콤한 말로, 그것도 당당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높여주는 하니와 같은 이성을 만났을 때 반하지 않을 여성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로열의 입장에서 하니와 채리티의 만남은 시작부터가 실패한 관계였다. 채리티 역시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기에 ‘결혼’이란 단어를 꺼낼 수도 없었고, 그를 기다리는 시간 온갖 의심과 고통에 시달려하면서도 막상 둘만 함께할 때는 그 모든 질문을 삼켜버린다. 신기하게도 이런 이성문제는 ‘여름’이 집필되었던 시대 이전이나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고전, 고전, 고전이라고 하는것일테다.

🏔️“산으로 가겠어. 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거야.” 전에는 그런 말을 하더라도 진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곰곰이 따져본 지금,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185쪽
여러분이 사는 고장에 유익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곳에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221쪽

쓰라린 시련앞에 무너져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채리티는 상황만 다를 뿐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졌거나, 혹은 되돌아가는 이유가 된다. 채리티에게 하려던 말은 아니었겠지만 청중들을 향해 변호사 로열의 연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소설 역시 6월부터 그리고 8월의 끝자락에 일어난 일들로 어느 때보다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여름, 로열의 저말이 힘이되어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여름 #고전 #summer @meomum_books #이디스워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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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신세계 - 동물이 가르쳐준 인간의 12가지 경이로운 감각
재키 히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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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의 신세계 / 재키 히긴스 / 위즈덤하우스

작가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 즉 예술활동을 통해 평소에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던 사물이나 대상 혹은 관념들을 감상자들로 하여금 ‘감각’하게 만든다. 특히 AR증강현실이나 VR 장치를 통해 가상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작품앞에서 우리는 오감 그 이상의 것을 통해 자유로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감각에 대한 연구는 동물 연구를 통해 입증되거나 그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재키 히긴스의 <감각의 신세계>는 문자그대로 정말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책으로 읽기 전후를 비교할 것도 없이 거의 대부분이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었다. 그중에서 감각과 관련하여 오해하고 있었던 내용들을 토대로 서평을 적자면 목차와 무관하게 ‘여성이 대체적으로 더 민감하다’라는 가설이었다. 이 내용은 이전에 연구결과들이 뒷받침 해오고 있었는데 동물계에서 가장 빠른 킬러의 영예를 가진 별코두더지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촉각 민감도의 차이는 성별로 결정되지 않는다. (…)
별코두더지나 인간이나 메르켈세포가 ‘촉각 이미지’의 조각들을 받아 뇌로 보내고, 촉각수용기인 메르켈세포의 밀도가 높을수록 이미지는 더욱 선명하다. 따라서 여성의 촉각 민감도가 더 높은 이유는 세포의 능력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더 가는 손에 촘촘히 분포한 세포 배열이 별코두더지와 비슷해 손끝으로 세계를 더 섬세하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0~141쪽

별코두더지를 통해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흔히 두더지와 같은 포유류는 시력이 낮아 예민한 후각으로 방향을 알고 먹이를 사냥할 수 있다고 배웠었다. 헌데 후각보다 촉각이 더 민감하기 때문에 위에 발췌한 것처럼 가장 빠른 킬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평형감각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도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균형은 전정계만큼이나 시각에도 크게 의존합니다. 귀가 단순한 청각기관이 아니듯, 눈도 단순한 시각기관이 아닙니다. 두 기관 모두 균형에 관여하죠.” 324쪽

위의 내용은 빠른 속도를 달릴 수 있도록 놀라운 평형감각을 자랑하는 치타를 통해 알게 된 부분으로 이족 보행을 하는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지점 역시 이 균형과 관련되어 있다. 참고로 이는 반고리관의 발달과 관련되어 있다. 또 일반사람들과 달리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수차례 회전하면서도 어지러움을 덜 느끼는 건 귀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촉각과 평형감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고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사실 초반부터 나를 놀라게 한 감각은 따로 있다.

고니시 연구진이 원숭이올빼미의 뇌에서 최초로 구성한 감각 지도는 두 귀로 들어오는 소리 정보를 마치 눈으로 인지하는, 즉 “일종의 망막 지도”처럼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지도였다. 116~117쪽

대부분의 sf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연구목적이나 우연들이 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능력을 가져와 ‘괴물 or 히어로 되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감각의 신세계>를 읽으면서 다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할 수 없는 것과 감각이 가능한 세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촉각, 즉 ’손 끝의 닿는 감각’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광활하며 신비로울까를 기대하게 만든 책이었다.

우주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과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감각의신세계 #재키히긴스 #감각 #서평 #우주클럽_과학방
@woojoos_story
@wisdomhouse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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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 지음, 강선형 옮김 / 이학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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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 자크 데리다 / 완독서평

그동안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서평을 적을 때 ‘사유한다’라는 표현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던가. 그때의 사유는 단순하게 스치듯 생각하는 것을 넘어, 진지하게 개념을 인식하고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타이틀의 저 문장은 데리다가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철학자 알랭이 남긴 것이며, 이 책은 이를 주제로 데리다가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처음 몇 페이지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수용이나 포기가 아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 주어진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이 ‘사유한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그 ‘아니오’가 단순한 반대나 거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겼다. 특히 베르그손을 다루는 부분에서 비판이 아닌 그의 논리를 따라가며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반복한다’는 말의 의미가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르그손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철학자를 비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비지성의 영역에서 움직이게 되는 형편없는 행위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베르그손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세 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베르그손주의를 반복하는 것이다. 111쪽

반복한다는 것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었다. 베르그손의 사유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반박하는 대신, 그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면서 다시 질문을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아니오’라고 말하기 위해서도 어떤 ‘예’가 이미 전제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부정하려면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긍정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유는 단순히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주의와도 다르다. 오히려 이미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부정 자체가 어떤 조건 위에서 가능한지를 다시 묻는 과정에 가깝다. 이러한 문제는 베르그손뿐만 아니라 후설과 사르트르를 거치면서 ‘무’와 ‘부정’의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사르트르의 논의를 통해서는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닌 것’이나 ‘아직 아닌 것’, 다른 가능성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물이 실제로 무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사유의 능력이다. 바로 그 가능성이 우리가 세계를 하나의 고정된 상태로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즉 즉자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화되는 것, 사르트르의 표현에 따르면 대자에 의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전체의 무화를 가능하게 하는 대자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물어야 한다. 139쪽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사유한다’는 것을 주어진 지식을 바탕으로 질문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후에는 ‘사유란 무엇이다’라는 하나의 정의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의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알랭의 “사유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그래서 단순한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조건과 가능성까지 되묻는 사유의 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이 책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우주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클럽_철학방 #사유한다는것은아니라고말하는것이다 #자크데리다
@woojoos_story @ehaksa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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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
아나벨라 로페스 지음 / 아트북프레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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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방에라도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보오. 단 하나, 궁궐 제일 꼭대기 방에는 들어가지 마오. 🗝️

성서의 선악과 열매를 포함 해 ‘단 하나’ 안될 뿐 인데 꼭 그 하나를 참지 못해서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모티브는 우리에게 더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희안하게 새롭지 않은 그 이야기는 자꾸만 듣고 싶고 읽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상상이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아나벨라 로페스 작가의 글과 그림으로 다시 만든 <푸름 수염>은 앞뒤 면지부터 푸른 수염으로 가득 채워져 이야기가 끝난 순간까지도 그 강렬함이 지속된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질문의 대한 답을 고민하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 한 나의 남편이 ‘단 하나, 궁궐 제일 꼭대기 방’에만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 때 바로 납득하고 응해줄 수 있을까?



‘남편이 나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나? 그 이상한 방에는 뭐가 있을까?’



푸른 수염에 대한 의심으로 아내는 집에 놀러와 남편의 엄청난 부에 감탄하고 있는 친구들의 칭찬은 들리지도 않는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편이라 굳이 열쇠로 닫혀져 있는데다 배우자가 경고한 방에 들어간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최근 알게 된 한 연쇄살인사건 다큐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수십년을 가정과 직장은 물론 이웃에게 변함없이 다정했던 한 남성이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렇게 말하고 출장을 간다면 그 방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작품 속 푸름 수엽 역시 여자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딸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음침한 집안과 분위기로 만나볼 생각이 없었던 자매를 성대한 파티를 열어 찬찬히 거리를 좁혀가며 결국 강제가 아닌 사랑으로 결혼한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원작에 으스스한 스릴러는 그대로 유지하고 ‘여성 모두를 위한’ 그림책으로 재탄생한 <푸른 수염>.


결코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혹은 보여줄 수 없는 ‘궁궐 제일 꼭대기 방’에 숨겨둔 것은 무엇일까. 파랑은 우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꺼내어 보여주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치유도 어렵다고 말한다. 내 안의 숨겨둔 방이 상처이자 아픔이라면 이 책이 열쇠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푸른수염 #아나벨라로페스 #Barbazul
@artbook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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