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파워 - 부와 권력을 결정짓는 토지의 힘
마이클 앨버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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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파워
부와 권력을 결정짓는 토지의 힘

농업 중심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무슨 말을 보태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특히 <랜드 파워>의 저자는 한반도의 경우 분단된 상태라서 ‘특별한 울림이 있다(8쪽)’고 했다. 게다가 광복 이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여전한 부를 누리는 친일파들의 토지 소유만 보더라도 토지가 부와 권력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대재편’이란 표현으로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토지 관련 사태를 특정 국가를 통해 잘 보여준다. 초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토지가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시기’에서 인류가 증가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을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정착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생존을 위한 정착이 나중에는 정복과 부의 축적으로 인해 결국 토지 소유가 전쟁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볼리비아의 토지재분배 과정은 여성의 권리와도 관련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챕터별로 정리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본다.

📌유럽 열강은 르네상스 시대와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기 위한 수 세기에 걸친 전쟁이 끝날 때쯤부터 멀리 떨어진 땅을 탐험하고 정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 영토의 지배권을 놓고 수십차례나 전쟁을 벌였으며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드넓은 땅덩이를 사고 팔았다. 하지만 이 땅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토착민들이 이미 그곳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55쪽

유럽이 토착민의 땅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고 폭력적이었다. 무력으로 빼앗거나 다수의 정착민을 현지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국가별로 정착민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토지 매입을 위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있지만 죄수 등을 그리로 보내 자국의 보안과 안녕을 도모하는 방법도 자행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국가가 답습했다. 그 과정에서 백인 우월주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인데다 한숨이 나왔다. 미국의 경우 아메리카 원주민의 강제 이주와 관련된 부분은 제대로된 기록문서 조차 남아있지 않은데 그 이유가 ‘세금을 내지 않는 인디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토착민과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약탈외에도 중국에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경제부흥과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질 정부가 했던 우매한 결정들도 있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에 뒤이은 토지 집단화와 탈집단화로 대규모 삼림 파괴, 초지 초토화, 토양 침식, 지하수 오염이 일어났다. 현재 중국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 재앙을 치유하느라 허덕이고 있지만 결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154쪽

토지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 위한 아마존 공략은 다방면에서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정책보다 장기적으로 파멸적인 환경 피해를 낳은 것은 군사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었다. 특히 도로 건설은 숲을 억지로 열어젖혀서 정착지로 만들었으며 나날이 증가하는 자원 채굴과 개벌을 뒷받침했다. 171쪽

최근 관람한 영화 ‘호퍼스’에서는 출퇴근 시간의 교통난을 해소를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는 시장과 대립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해당 영화에서는 동물들의 거구지를 파괴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고속도로가 생길 때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책에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제대로 보여준다. 귀여운 비버들이 불쌍해서’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토지와 관련된 문제는 서두에 밝힌 것처럼 성별과 관련한 불평등과도 관련되어 있다.

📌많은 여성이 집 안에 매여 있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존중, 가정 문제에 대한 여성의 발언권, 권력과 권위를 지닌 위치에서 남성과 나란히 일하는 능력 등이 2000년대 초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발전했다. 토지는 이러한 역사적 변화에서 주춧돌 역할을 했다. 271쪽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시대에서 아주 척박한 작은 곳까지 누군가의 소유가 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토지재분배가 안정적으로 안착되기 위한 제도적인 변화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진다. 우선 발전적인 의미의 공동체가 존재해야 하고,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의 확대도 필요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인구는 앞으로 계속 감소할 것이다. 권력이 소수에게 치우치지 않기 위해 토지재분배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랜드파워 #마이클앨버터스 #토지 #인플루엔셜 #서평
@influential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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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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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는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두 편의 시를 묶은 책이다. 타이틀에서 언급된 제인 오스틴을 향한 그녀의 찬가를 잠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열다섯 살의 제인이 그저 가족을 웃기기 위해 혹은 집안에서만 소비될 글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니라 (…) 모두를 위해, 자신의 시대를 위해, 또 우리 시대를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제인은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작가’였다. 29쪽

제인 오스틴의 재능은 놀라울 만큼 균형이 잡혀 있었다. 완성된 소설들 가운데 실패작은 없었고, 수많은 장들 중에서 수준이 뚜렷하게 떨어지는 것도 거의 없다. (43쪽,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 중에서)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게 아니라 완벽한 작가였던 제인 오스틴도 시대와 시스템으로 인한 제약은 분명 존재했다. 특히 울프의 말에 따르면 ‘초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작가가’(85쪽,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중에서)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다. 당시에 그들이 누렸던 작가로서의 부는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평생 작업만을 위한 대저택 및 관리를 위한 하인들까지 아마 요즘 아이들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이돌’이 아니라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것 같다. 이렇게 시대가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울프로 부터의 시간도 한참 흐른 요즘도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


교양속물은 어중간한 지성을 가진 남녀입니다. 그들은 울타리 이쪽저쪽을 어슬렁거릴 뿐,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좇지 않습니다. 예술도 아니고 삶도 아닌 것이죠. 그리고 이 두 세계를 돈과 명성, 권력, 지위와 뒤섞어 구별할 수 없게 만들고, 예술이든 삶이든 어딘가 불쾌한 방식으로 그것을 추구합니다. 131쪽 (내가 교양속물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서)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다리를 놓아주려는 시도를 할 뿐 그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울프의 지적에 작가 뿐 아니라 대부분의 독자들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교양속물의 정의와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 묘사에 떳떳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물론 자신을 순수 지식인으로 칭하는 현실 자체를 풍자하는 솜씨도 놀랍기만 하다. 무엇보다 자본과 전쟁 그리고 정치가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내용들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들에게 영향을 당연히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만의 전쟁’이었던 과거에는 작가들은 전쟁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좀 라디오를 통해 그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세대를 막론하고 터치 한 번이면 전쟁의 참혹과 이기심을 넘치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씁쓸하기만 하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해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울프는 작가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예술가는 정치와 무관하다는 이들에게’ 편에서 설득력있게 풀어냈다.


말미에 수록된 두 편의 시 울프의 언니인 바네사의 딸과 아들과 관련된 시로 울프의 비평가적인 면모외에 이면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독자로서, 이쪽도 저쪽도 닿지 못한 교양속물로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었다.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서평단 #버저니아울프 #누가제인오스틴을두려워하랴 #아티초크 #제인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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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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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상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한동안 속지 않을 수 있고, 몇몇 사람은 항상 속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속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법하다. 139쪽

위의 발췌문은 슬라보예 지젝의 <진보에 반대한다>에 등장하는 구절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격언 중 ‘그러나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를 저자가 현안을 보며 수정한 것이다. 우리는 속고 있다는데 무엇에 속고 있는가. 우리는 그렇게 우매한 대중 혹은 시민이자 인류라고 비판하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시키고자 하는 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차 질문이 나올 것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지젝이 그러했듯 보다 쉽게 접근하자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험한 말(욕설)을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들 뿐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아름다운 말’ 대신 ‘반복적인 비속어’로 대화가 시작되고 끝이 난다. 지젝의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좋은 말’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자 ‘권위 있는 부모 혹은 스승’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지젝은 <더 와이어> 영화를 통해 온통 비속어로만 가득채워진 수사 현장을 언급한다. 수사하는 당사자들의 지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볼 때 ‘좋은 말’을 알지 못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상황에 딱 맞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진보에 반대한다>는 타이틀을 갑자기 소환하고 싶어질 것이다. 진보와 욕설, 그리고 속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만나지는 걸까.

내 전제는 이 모든 갈등이 사이비 갈등이라는 것이다. 그 갈등이 매우 위험하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할지라도, 그 모두는 우리의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 닥친 진정한 적대성을 회피하거나 모호하게 하려는 시도(…)’ 91쪽

우리는 속고 있으며, 당장의 위태롭지 않은 상황을 유지하고자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저 누군가의 잘못된 탓, 그것이 교육일 수도 있고, 능력부족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지도자의 자질’과 관련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고정된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에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변화되려고 하지 않으면, 누군가 어느 때에 적재적소에 나타나줄거라는 애매한 기대와 희망이 현실적 문제를 가중시키고 ‘파국’에 도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란말인가.

아무리 우여곡절과 부침을 겪어도 결국 역사는 퇴보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좌파의 오래된 믿음 자체가 전 지구적 파국에 크게 일조했음을 자각하자는 메시지가 이 책에서 가장 울림이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자 해설 중, 171쪽)

지켜보기만 하면 안된다. 귄위(있다는) 한 사람을 믿고 바라만 봐선 안된다. 참정권을 그토록 간절하게 외쳤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꿀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다소 거친듯한 타이틀에 물러서지 말길, 이보다 친절하고 쉽게 돌파구를 제시하고 안내해주는 철학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 @woojoos_story 진행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서평단 #우중몽 #슬라보예지젝 #진보에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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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치 있다 - 마음을 회복하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안드레아스 크누프 지음, 박병화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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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소리들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면 이미 익숙해져 깨닫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설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 소리(비평가든 잔소리꾼이든)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어떨까? 소리가 시키는대로 나를 비판하고, 변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 실패의 책임도 오롯이 자신에게 돌린다.

정말로 당신 자신을 비난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가?

타인과 비교하며 경쟁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 살면서 그런 패턴을 버리고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기란 사실 어렵다. 또 오랜 기간 심리학에서 조차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었으며, 현실에서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 높은 자존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란 비싸고 좋은 차, 부러워할 만한 직업, 누가봐도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외모 등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사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이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왜 실패하는가에만 주목해왔다. 그런데 정말로 당신 자신을 비난 할 일인가? 우린 이대로 행복하면 안되는걸까.

내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자기개발서를 읽을 때, 매번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다른 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였다. 나는 지독히도 오랜 기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구체적이며 합당할 수준의 이유도 있었다. 그 부분을 고치지 않고선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커졌고, 때때로 일부의 사람들은 못난 부분까지 사랑해주면 된다고, 사랑해주지 못하는 포용력까지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런 내게 <당신은 가치가 있다>의 저자는 말한다. 정말 자기애란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느냐고. 그렇지 않았다. 이런 점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까지다. 힘들게 애써서 고칠 필요는 없다. 물론 변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온전히 나를 위해 변화할 수는 있는 것이다. 무작정 이런 점이 잘못되었으니 고쳐! 라고 나를 몰아세우지 않을 뿐이다.

내가 자기 돌봄을 하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을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나에게 된다고 말하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184쪽

저자는 반복적으로 ’내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우리의 인식을 깨운다.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한다거나, 무능력하거나 무가치하다는 마음의 소리에서 벗어나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지만 분명 우리안에 되고싶은 것, 하고 싶은 욕구들이 존재한다. 그 생각들을 부정적인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우선 나누어야 한다. 책에서 제시한 사례에서는 한 남성이 매일 야근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것 등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면, 매주 하루는 무조건 쉬고,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과 절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구분하여 목록을 만드는 것을 추천했다. 이외에도 자기 돌봄을 위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 눈을 감고 질문을 떠올려 보는 것 처럼 간단한 훈련부터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훈련까지 상세하게 나와있다. 돌봄은 누군가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 책은 나를 포함해 부디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 비난을 멈추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다.

#당신은가치있다 #자기돌봄 #심리 #안드레아스크누프 #북파머스
@_book_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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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한 작가님으로 부터 손글씨 편지를 받았다. 내게만 보내주신 편지는 아니었지만, 그 편지의 적힌 다음의 문구가 참 좋았다.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즐겁고 또 위안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부 발췌

다수에게 보내신 편지라도 전문을 다 보이고 싶진 않았다. <이상능력자> 작가분의 이 편지는 책을 읽기 전엔 ‘조금이라도 즐겁자’라는 마음이었고, 읽고 난 뒤에는 ‘잘 간직해야지’하는 마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능력자, 수안이 그리고 예리. 그리고 이 두사람의 곁에 또 한 사람. 이제 막 정식 출간된 소설이니 과한 스포는 자제하면서 서평을 적어본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아이들이 있다. 폭발과 동시에 그들에게는 ‘이상능력’이 생기고, 문자 그대로 초능력이 아닌 이상능력이라고 명명된 것만 보더라도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수안이의 경우는 이상능력자을 경계하던 사람이었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까닭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폭발할 가능성을 가진 이들을 미리 확인하고 예방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두려움을 가질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위험을 가진 사람들임과 동시에 이상능력자들은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능력을 과하게 사용하면 생명도 위험하기 때문에 조절장치를 이식한 까닭에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편가르기 식의 사회를 빗댄 것처럼 보이지만 대상이 청소년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사한 내용을 담은 만화와 드라마 그리고 영화도 떠올랐지만 이전 작품들과 이상능력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를 악용하는 세력과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빼앗거나 선을 긋는 역차별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이들을 가로막는 상대가 누구인지, 또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위험성을 낳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상능력이 생긴 후 수안이가 느끼는 고민과 갈등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 지나치게 클 때,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볼 수 없는 나약함과 한계까지 살피다보면 어째서 그들이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능력자’가 되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또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보고자 했던 것을 결국 보고야말겠다는 직간접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배아를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에게 후손에게 어떤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길 바라며 ‘날개가 있는 아이’를 원했다고 한다. 날개가 있다면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기엔 좋은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날개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 속의 그 아이는 우생이 아닌 ‘돌연변이’로 살아가야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능력자>의 아이들은 과연 그 능력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까. 아이들이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조금이라도 즐거운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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