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승주연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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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묾 출판사,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16살입니다.” 44쪽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의 화자이자 16살 소년, 블라디미르. 그리고 소년이 사랑한 여자 지나이다. 지나이다는 소년보다 나이가 많고 무엇보다 소년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소년의 시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첫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소년인 것처럼 보이지만 글을 읽다보니 반드시 소년만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첫사랑이 과연 무엇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레이몽 라디게의 <열여섯의 정원>도 떠올랐다. 물론 그 소설에 비하면 블라디미르와 지나이다의 나이차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 이보다 더 나이가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보니 굳이 지나이다의 나이가 크게 각인되진 않는다. 열여섯과 첫사랑. 두 단어는 그냥 떠올리기만 해도 설렌다. 설렘은 종종 아픔가 상처로 남고,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 같다.


혹은 비밀스러운 경쟁자라도 나타나 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오? 91쪽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설렐 때도 있고, 내 사랑도 아닌데 내가 다 억울하고 사무치게 괴로워질 때도 있다. 블라디미르가 사랑한 그녀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그랬다. 자전적 소설이란 말에 그리고 지주였던 어머니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가난하지만 잘생긴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투르게네프가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인생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가장 원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산 사람이었다. 78쪽


사실 이 소설을 10여년 전에 만났더라면 오롯이 블라디미르 아니면 지나이다의 안타까운 사연에만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블라디미르 정도의 나이가 될 아이가 있어서인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다룬 부분도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성적을 비롯해 소년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때때로 그 거리가 좁혀질 때면 소년도 아이처럼 아버지의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소년의 뇌리에 오래도록 멋진 말을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보여지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여러가지 다채로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woojoos_story 모집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서평단 #첫사랑 #머묾 #이반투르게네프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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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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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데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아니면 우리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모르거나.’홀로그램식‘ 사유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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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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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꿈을 잘 기억하는 왼손잡이였던 나. 당연하게도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집어 들었다.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낯선 작가도 아니고 이미 <국경시장>으로 작가의 매력적인 상상력과 필력은 잘 알고 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목차순으로 읽으려다가 역시나 표제작,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부터 읽었다. 소설 속 중심인물 우경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 끝, 꿈에서나마 떠나는 세계여행은 그녀에게 매일 매일 현실을 살아가게 만드는 ‘꿈같은 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악마라고 짐작되는 한 남자가 그녀가 이전에 잘 하던 ‘시소’게임을 제안한다. 고단한 현실을 견디게 해줄 만큼 좋았던 꿈을 삭제하는 대신, 진짜 현실에서 꿈을 차례로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우경의 입장에선 당장 매일 매일 숨쉬는 것 조차 힘겨우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꿈에서 깬 며칠은 그저 운이 좋은 줄 알았던 그녀가 월셋 방에서 전세로 집을 옮기고 남편과 함께 자리를 잡으면서 진정 거래가 성립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렴 어떠랴. 아침에 나가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 성적이 점점 올라가는 아이들, 주말에 치킨 두 마리를 배달해 저녁으로 먹으면서 우경은 이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 (중략)

“이 정도가 딱 좋아. 이 정도가!” 우경은 누가 듣기라도 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악마와의 계약에 ‘정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106쪽)


그럼 그렇지. 정도가 없는 악마와의 계약이 처음에야 좋았던 꿈이 사라지는 수준이라 좋았지만 점차 현실에서 꿈의 크기가 커질수록 진짜 꿈들은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간다. 기어이 온몸에 단추가 꿰어지는 생각만해도 소름끼치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녀는 이제 밤이 오는 순간 자체가 끔찍하기만 하다. 분명 현실에서 그녀는 성인이 된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을 만큼 결혼도 시켰고, 사별한 전남편보다 훨씬 다정한 연하남편과 재혼도 했지만 잠을 잘 수 없는 밤은 이제 낮에도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시소에 현실과 꿈을 올려놓은 뒤 계약을 종료한다. 계약이 종료된 우경의 삶까지 모두 이곳에 적을 순 없으니 사견을 더하자면, 아주 오래 전 이 소설 속 우경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꿈에서 악마가 찾아와 내게 거래를 청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부터 친할머니와 방을 함께 쓰다가 중학교 때 할머니가 본가로 가시면서 드디어 방을 나 혼자 사용하게 되었다. 새 침대와 새 책상까지 마련해주신 덕분에 하루하루가 ‘꿈 같을 줄’ 알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밤마다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져 엄마가 결국 매일 밤 1시가 지나도록 내 곁에서 함께 해주셨다. 그렇게 3주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괜찮아졌지만 소설 속 우경처럼 그때는 밤이 오는 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우경도, 나도 어쩌면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설 속 마지막 그 문장을 읽었던 밤, 꿈꾸기가 무서웠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다른 작품들도 엄청 흥미로웠지만 사족이 길어져 다른 단편은 다음 기회에 후기를 남겨야겠다.


#왼손잡이는꿈을잘기억한다 #김성중 #한국소설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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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 - 시공간을 공명한 천문학자×음악가의 우주적 평행이론
지웅배.김록운.천윤수 지음 / 롤러코스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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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연주하는 특별한 기술은 없다. 올바른 음을 정확하게 건드리면 악기가 스스로 연주할 뿐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57쪽)


<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는 잘 알려진 천문학자들과 음악가들을 각각 조율, 변주, 불협화음 그리고 공명이란 주제로 탐색해본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함께 ‘조율’ 이란 주제로 등장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케플러’다. 바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지금 우리가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을 있게 해준 사람, 그야말로 아버지 격인 사람으로 오랜시간 교회음악을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케플러 역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신의 의도와 설계를 다름아닌 하늘에서 찾으려 했던 사람이다. 바흐가 음악을 하늘로 보냈듯이 케플러 역시 땅을 위한 도구였던 망원경을 제일 처음 하늘로 향하게 방향을 바꾼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가하면 스릴러 소설에서 마주할 법한 공통점도 있는데 이는 곧 이 책을 읽게 될 분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두겠다. 맨 위에 발췌문을 서평 시작으로 둔 이유는 ‘올바른 음을 정확하게’라는 표현에서 이미 음악이 ‘수학적’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장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변주편에서 갈릴레이와 드뷔시편은 한층 더 흥미진진한 비교로 출발한다.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던 드뷔시의 반전 인성이 이 책에서도 등장하기 때문에 역시나 2부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특히 갈릴레이의 아버지, 그가 누구였냐면 1부에서 등장했던 음악에서 평균율을 찾아낸 ‘빈센초 갈릴레이’다. 갈릴레이는 달의 표면이 결코 매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정설이었던 무거울수록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틀렸다는 것을 밝힌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교황청의 반대로 인해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을 통해 학자로서의 자신의 의견을 결코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천국이 가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110-111쪽)

안타깝게도 갈릴레이의 시련은 죽을 때까지 이어져 장례식조차 치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 제자들이 나중에 제대로 된 무덤으로 옮길 당시 손가락 뼈 몇개를 훔치는 일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과학과 예술의 혁명은 언제나 손가락에서 시작됐다.’는 말이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갈릴레이와 함께 등장한 드뷔시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숨겨졌던 그의 인성을 알아버려서 정도로 마무리 하고 싶다. 3부 불협화음은 음악을 떠올렸을 때 결코 놓칠 수 없는 쇤베르크가 등장한다. 천문학자는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별빛을 통해 핵융합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한스베테까지. 앞의 1, 2부도 흥미로웠지만 3부는 같은 상황 다른 선택이라는 지점에서 쇤베르크와 하이젠베르크의 상황에 깊게 빠져들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새로운 위협 앞에서 떠나는 대신, 조국에 남아 나치정권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다. 선구적 물리학자들이 연이어 독일을 떠나면서 과학이 무너지고 있었기에 그 잔해 속에서 독일 물리학을 지키고자 홀로 남았던 것이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충성이 아니었다. 조국의 학문적 유산을 보호하려는 고뇌 어린 결단이었다. 161쪽


물론 저자의 말처럼 하이젠베르크의 속내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외로움을 자신의 자화상에 담아낸 쇤베르크의 이야기도 꼭 언급하고 싶었다. 사실 쇤베르크를 떠올렸을 때 ‘아름다움’ 보다는 ‘난해함’, 작곡자인 쇤베르크 뿐 아니라 그의 음악을 추종하는 이들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백남준의 졸업 논문이 쇤베르크였고, 그와 관련된 작품이 존재할 만큼 그의 작품을 해설하며 쇤베르크의 작품을 지나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쇤베르크 뿐 아니라 드뷔시 그리고 베토벤 그리고 달까지 백남준의 세계에서 이들을 감상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권하고 싶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자리를 헤아리고, 피아노 혹은 음표를 따라 전진하는 선율을 따라 마음을 헤아린다. 그러기 위해선 맨 처음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음’을 두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어떠했고, 사랑과 최후마저 드라마틱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고뇌할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그 열정만큼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우주클럽 #천문대에피아노가떨어졌다 #우주서평단 #롤러코스터출판사 #지웅배 #김록운 #천윤수 


@woojoos_story 우주 모집, 롤러코스터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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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 언제나 꺼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영화 한 그릇
오토나쿨.박지완 지음 / 유선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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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무언가 먹으면서 보는 영화는 뭐 더 보태지 않아도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이다.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쿠킹에 진심인 두 저자가 만났으니 읽기도 전에 이 책은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을것인가 기대가 컸다.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책에 소개된 작품과 음식 조합 그대로를 한 장 한 장 음미하며 사진으로 남기는 호사를 누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책의 첫 시작은 영화 <걸어도 걸어도>와 소면이다. 미리 고백하자면 소개된 영화를 거의 다 봤지만 신기할 만큼 그 장면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냉소면은 안도 사쿠라 주연의 <어느 가족>이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데 그 영화를 보면서 가족과 식구라는 단어를 참 오래도록 떠올렸던 것 같다. <달콤한 인생>도 에스프레소? 가 등장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개해준 가게와 동시에 김지운 감독님의 작품들을 다시 차근차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진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그런가하면 몇 안되는 아직 못 본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와 콩나물 냉국 조합이라니. 콩나물 냉국은 개인적으로 계절과 상관없이 즐겨 먹는데 콩나물 자체를 좋아해서 그런것도 있다. 또 이야기 마다 레시피가 소개된다는 이야길 빼놓을 뻔 했다. 레시피를 보면서 기존에 내가 해먹던 방식이랑 무엇이 다른가 찾아보는 재미도 있는데 신기하게 콩나물국은 다른 누군가의 레시피를 참고한 적이 없었다. 아마 콩나물을 좋아해서 누가 끓여도 전부 다 맛있다고 느끼는 단순한 입맛이라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그 맛있었다는 콩나물국, 아마 독자들은 다들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다. 뭐 그래도 다들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전남친토스트 같은 추억이.

와! 이거 뭐야? 너무 맛있다! 어떻게 만든 거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절대 말 안해 줄거야. 넌 분명 나랑 헤어지고 나면 딴 여자에게 만들어줄 사람이니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라는 동전의 뒷면을. 70쪽

음식과 영화이야기, 그리고 저자들의 일기를 읽다가 눈물을 글썽이게 된 순간도 당연히 있었다. 삼계탕. 삼계탕이 수프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제 수프하면 경양식 돈까스의 크림스(이건 스라고 적어야만 할 것 같다)프나 달달한 단호박수프가 아니라 삼계탕이 생각날 것 같다.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분들이 온전히 머물지 못할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 뭐 하나 달라진 것 없는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양영희 감독의 영화 속에서 시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흘러가면서 섬세한 태피스트리를 짜는 것 같다. 그저 카메라로 찍어놓은 일련의 일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과 현재의 모습이 교차되는 과정에서 과객들은 인물의 인생을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09쪽

전시장에서 작품해설을 하다보면 다큐영상을 소개해야 할 때가 많다. 그 영상들이 소재로 삼은 사건 혹은 내전은 나라도 대상도 전부 다르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된 진실규명이나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같았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런 아픔을 놓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에술은 아무나하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도 분명 그런 맥락이 있기 때문에 내게는 소중하게 다가온다.

서평을 적다보니 저자들의 이야기를 잘 읽긴 했는데 이상하게 내 이야기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잘 차려진 한 권의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까? 그것도 포트럭파트처럼 각자 준비해서.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된다.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과 주제들로 가족과 함께 나누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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