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의 기적 20 - ‘공부’에서 ‘무기’로 바꾸는
서보경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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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마인드셋의 기적 20

서보경 2026 세종서적




단기 어학도 다녀오지 못한 나의 영어실력은 아주 간단한 응대 수준으로 스몰토크 조차 불가능하다. 그런 나도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 내년을 목표로 영어로 전시해설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만 10년을 했으니 이제 외국인 관람객을 상대로 활동하고 싶은 바람이 무리는 아니었다. 스크립트는 어떻게든 외운다하더라도 질의응답은 어떻게 할 것이며 누가봐도 정통국내파 발음은 제대로된 영어 공부를 하기도 전에 나를 절망케 했다. 그런데 '영어 마인드셋의 기적 20'이란 책을 발견했다. '영어로 생각하라, 뭐 이런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영어마스터 비법서'랑은 무언가 달랐다.


당신의 귀가 막힌 게 아니다. 머릿속 '데이터'가 부족한 것이다. 오늘부터 무작정 이어폰을 꽂는 대신, 먼저 텍스트를 읽어라. 그 작은 순서의 차이가 당신의 영어 인생을 추월차선에 올려놓을 것이다. 41쪽


방구석에서 이어폰을 꽂고 1시간 동안 토익 지문을 들었던 경험이 내게도 있었다. 물론 이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작정 듣기 전에 필요한 과정, '데이터 심기'가 선행되어야 했다. 직접적인 지문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들으려는 지문의 주제와 핵심 단어를 먼저 접한 후 들어야 지루하지 않고 익숙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가하면 이 책을 통해 '확' 와닿았던 부분, 영어를 명품백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택배' 이자 '도구'로 생각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유려한 발음으로 자랑하듯 하려면 24시간 영어만 해도 부족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영어권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영어로 생각하려는 시도때문에 핵심을 말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해외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오히려 제2외국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근무한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영어 마인드는 대단한 국제회의나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엥서만 필요한 스킬이 아니다.(...) 영어를 진열장에 모셔두는 '트로피'처럼 대하지 마라. 영어는 억울할 때 소리치고, 기쁠 때 환호하기 위해 움켜쥐어야 하는, 현실적인 '생존 무기'다. 83쪽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마음이 놓였던 부분은 영어권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 제2외국어를 할 수 있는 비율이 3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반면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로 대화를 하고 업무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다고는 해도 사업이나 연구 발표에서 이를 무기삼아 쉬운 단어로 짧게만 말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들어서 안되면 읽어서라도 준비하라고. 이를 '근육 기억' 5단계라고 표현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뮬레이션, 두괄식 작성(결론부터 말하기), 낭독훈련(1~50회까지 소리 내어 읽기), 임계점 돌파(50회 이후부터 100번까지 말하기). 마지막으로 키워드 스피킹. 스크립트 없이도 핵심 단어만 보고도 문장 전체를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준비가 된 것이다. (113쪽 참조)


실제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전시해설 준비를 할 때나 독서지도를 위한 강의를 할 때 혼자 집에서 자료를 안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이 없을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줄곧 연습을 했었다. 그렇게 연습을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 특히 작품을 창작한 작가가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질문하는 경우에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그런 맥락에서 영어도 말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원어민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제2외국어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익히는 단어의 양은 적게는 5배, 많게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니 그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약어나 농담들까지 능숙해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리였다.


이제 머리와 입 사이에 있는 거대한 '검문소'를 철거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려서라도, 써서라도, 온몸을 써서라도 전달하라. 그 뻔뻔함이 당신을 다음 레벨로 이끌어줄 것이다. 190쪽


발음은 좋지만 사용하는 단어가 유아틱 하거나 저급하다면 결코 그에게 영어를 잘 한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발음이 좋지 않더라도 핵심 단어가 정확하게 들리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한다면 누구도 그의 발음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외국인들의 반응을 비교한 영상을 너튜부에서 찾기란 정말 쉽다. 그런데도 명품백처럼 영어를 대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또 영어에 노출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몇 번 몰입하다 그만두었던 잘못된 방식도 이젠 다 비워야겠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으니 이제 100회 반복과 같은 실천을 통해 영어로 전시해설을 해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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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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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없어



"네가 왜 유자야?"

(...)

"니는 같은 반인데 아직 내 이름도 모르나."

"아니, 알아. 너 유지안이잖아."

"그래. 성이 유씨니까 유자."

전학생이 아아, 학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한테 유자 향이라도 나는 줄 알았어." 48쪽


성이 유씨이자, 유자빵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소설 속 화자인 '나' 유지안은 지안이라는 이름 대신에 '유자'라고 불린다. 또 같은 반 김해민은 중학생 때 전학왔지만 고1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이름이 아닌 '전학생'으로 불리고 있다.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뿐인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이름이 아닌 '유자'와 '전학생'으로 불리는 두 사람과 유자의 절친이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교를 점점 결석하고 있는 '수영'이 등장한다. 수영은 별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두 사람과 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이름은 물론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학원폭력이나 청소년 대상 범죄와 같은 내용은 없지만 충분히 공감할 만한 고민들을 다뤘다.


거가대교를 통해 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바다를 지나도록 만든 터널이 있었다. 남들은 바닷속이라고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만 오가는 터널인데, 나는 그곳을 지나는 상상만 해도 귀가 먹먹해졌다. 

게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도 전부터 선택지 하나를 박탈당하고 시작하는 느낌.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까?

61쪽


소설의 배경이 거제도인데 어쩌다보니 태어나서 한 번도 못가본 곳이라 너튜브로 거제도 풍경과 음악을 검색해서 파도소리를 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소설 속 유자가 보았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낯설게 볼 수 있는 것, 심지어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 있음'에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유자는 거제가 불편하다. 하지만 거제와 이웃한 부산으로 넘어가고픈 마음은 공황으로 인해 쉽사리 그녀를 먼곳으로 나갈 기회를 희망할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해도 유자의 바람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 그것도 아주 먼 곳으로 달아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말로 꺼낼 수가 없었다. 자신도, 자신의 배경과 환경 모두를 부정하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 100명이 안되는 작은 학교에서 유자는 전교 1등이었다. 학교에서는 유자라는 별명과 동시에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이 줄곧 그녀의 '본질'을 가로막고 있었다.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19등을 했을 때, 석차 자체로는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왜 괴로울 수 밖에 없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 그것이 유자를 괴롭게 만들었다. 


나도 전교 1등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그 정체성이 없었다면 이번 석차는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을 거다. 내가 모래중 전교 1등 유지안이 아니었다면. 내가 아니었다면. 87쪽


자신을 부정하는 삶이란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안으로는 점점 더 피폐해질 뿐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꾼다고 부정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진 않는다. 결국 방법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인지를 상실한 우매한 대중의 말들이 결코 사실도, 진실도,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부터 인정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쓰다 보니 알겠떤데? 남들은 저 팀 망했다. 망했다. 그러는데 진짜 망한 건 아니더라고. 내가 대사 한 줄도 못 쓰게 된다면 그땐 정말 자포자기 망한 거겠지.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 148쪽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나는 유자와 전학생 그리고 수영처럼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현실에 맞지 않거나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불가능해진 꿈들을 정리하지 못해 방황하는 꼴이 그들보다 더 어리숙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세 사람과 혜현 언니의 상황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나를 지우고 싶은 간절함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바꿔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유자는 없어'를 권하고 싶다. 우리에게 있는 것, 내가 나라서 좋은 이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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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획하는 일 - 기획자는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읽는가
편은지 지음 / 투래빗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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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획한다'는 말은 어딘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을 어떤 틀에 넣어 계획하고 도식화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 기획이란, 누군가를 틀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고유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발견하고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194쪽

위의 내용은 본문을 지나 '별첨' 부분에 등장하는 첫 문장으로, '사람 기획의 A to Z'를 소개하기 위한 글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은 뒤 마주한 '그 사람 고유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발견하고 설계하는 과정'이란 문장은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는 동안 배우고, 만나고 나누며 살아가는 모든 것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 편은지PD는 잘 알려진 예능<살림남>을 기획한 사람이다. 덕분에 잘 알려진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연예인들의 이야기, 특히 진솔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현재 사는 집에는 TV가 없다보니 오히려 아주 가끔 명절에 보는 예능은 낯선 만큼 재미있긴 했다. 어느샌가 생활밀착형 예능이 전부인데다 나보다 다 잘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굳이 봐야하나 싶기도 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보통 '열악함'이라는 단어에서 긍정적 요소를 발견하긴 어렵습니다. 열악함은 곧 곤궁한 현실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열악하다는 것은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낼 여력이 없다는 의미로, '유일함'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145쪽

<살림남>이 기존 예능에 비해 제작비가 열약하다는 것을 자주 본 게 아니라서 잘 몰랐다. 어쩌면 자주 안봐서가 아니라 열악함을 유일함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기획할 줄 아는 저자의 능력이었는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참 좋았던 것은 대책없이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보아 제대로 볼 줄 아는 힘'을 키워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는 거였다. 그런 시선으로 나 자신을 봐주면 어떻게 될까. 누구의 말도 아닌 나의 말로 나의 삶을 '살아내는 것'의 가치를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인정할 때 다른 사람들도 응원하게 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수줍은 약자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87쪽

위 발췌문은 저자의 브런치 소개글에 적힌 문장이다. 예능을 보면서 당연히 웃으며 옆을 돌아볼 때도 있지만 함께 공감하고 훈훈해지다 결국 눈물이 흐를 때도 있는 건 결국 저런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출연자들을 이끌어내는 기획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담아낸 <사람을 기획하는 일>을 읽고 나면 적어도 내 자신만큼은 그렇게 바라봐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 해를 또 웃으며 시작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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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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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을 고르라면 아마도 여름일 것이다. 해당 소설을 영화로 만난 독자라면 두 사람이 함께 수영하던 장면이나 거의 모든 장면에서 상의 탈의를 보여준 엘리오 역의 티모시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다. 그만큼 여름 별장에서 누릴 수 있는 지적인 향연을 담아낸 소설을 휴양지나 적당히 시원한 방 침대 위에서 읽고 있는 것 자체가 휴가였다. 헌데 이 책을 연말 이벤트 선물로 받았고, 실제 다시금 푹 빠져 읽었던 지금의 계절은 겨울이다. 그런데도 좋았다. 엘리오에게 올리버와의 만남이 마음 속 혹한의 겨울을 여름으로 바꾸었듯 말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어요.(…)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 눈보라 속에서 찬란한 여름을 되찾아오는 쉬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23쪽


다시 읽어도 이 두 사람의 초반 밀당은 정말 같이 설레고 좋았다. 책으로는 오랜만에 다시 읽는거라 이토록 빠르게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빠져들었는지도 새삼 놀랐고, 어쩌면 그렇게 빠르게 상대에게 전부를 주고 싶다고 고백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며 엘리오의 아버지의 반응도 조금 납득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좀 아쉽게 등장하는 두 사람의 문화예술 경쟁도 책에서는 정말 원없이 마주할 수 있는데다 시선을 엘리오가 아닌 주변인에게 두면 또 그 나름의 재미도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 집에 머문 지 벌써 3주째인데도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와 주세페 벨리, 파울 첼란을 아는지 물었다.

“들어 봤어요.”

“난 너보다 열 살 가까이 많은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 사람 모두 전혀 알지 못했어. 이해가 안 되는군.”

“뭐가 이해 안 돼요? 아버지는 대학 교수이고 어릴 때부터 집에 TV가 없었어요. 이제 이해돼요?”

“그냥 다시 기타나 뚱땅거려!” 42쪽


마지막 문장이 아주 와닿는다. 우리집에도 TV는 없지만 우리 집에 사는 아이는 물론 또 다른 성인도 저 세사람을 모두 모르니까. 그런가하면 엘리오가 기타를 뚱땅거리면 올리버가 정말 잘 때도 있었겠지만 자는 척 듣고 있다가 관심을 보이면 집 안으로 들어가 바로 피아노로 들려주는 엘리오의 음악성은 봐도 봐도 멋지기만 하다. 올리버 또한 그 곳에 머물게 된 계기가 부모님의 원고를 손보기 위한 젊은 학자 중 하나다 보니 두 사람의 대화 자체가 남다르다. 하지만 이런 유희보다 엘리오가 올리버의 마음을 알지 못해 애태우고 괴로워하는 장면과 함께 소년이었던 엘리오가 나중을 떠올리며 현재 자신이 느끼는 초라함과 비참함을 견뎌내는 모습도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의 후회도 없다. 위험천만한 모험, 수치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무지, 그 무엇도 후회되지 않는다. (…)

내가 나중에 이 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훨씬 더 잘 살 수도 있지만, 그 시절 내 방에서 보낸 오후마다 내가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 207쪽


여름이면 SNS에 등장하는 짧은 작문 중 ‘…..여름이었다.’로 끝나는 문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이 주제를 가장 잘 살린 소설이 <콜 미 유어 바이 네임>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연애소설로, 혹은 금기로 다가오겠지만 성인이 되기 전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금기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런 맥락에서 이토록 예술적인 방법으로, 문학적인 표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이번에 다시 재독할 때도 공통적으로 자문하게 되는 것은 부모로서 엘리오의 아버지처럼 ‘너희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드물고 특별한’ 것이라며 위로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엘리오처럼 그 파도를 잘 넘어 무사히 곁에 있어준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덧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읽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나 두 사람과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다시금 그리워지니 후속으로 출간한 <FIND ME>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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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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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오사무 #문장이의기억 #필사책 #고전필사 #명언 #박예진 #SENTENCE #필사추천 #필사노트 #추천


"모두를 사랑하고 싶다?라고 눈물이 날 만큼 생각했다.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으면, 점점 하늘이 변해간다. 점점 푸르스름해진다. (...)

지금처럼 나뭇잎이나 풀이 투명하게, 아름답게 보인 적이 없었다. 살짝 풀잎에 손을 대보았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 sentence 060, 90쪽


위의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에 나오는 문장으로 살고자하는 의지와 동시에 스스로 삶을 끝내고야 만 작가의 마음이 잘담긴 문장 중 하나이다. 엮은이는 해당 문장을 '삶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것'이라 요약했다. <문장의 기억 필사>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고전을 접하려는 이들에게 추천하고싶은 책이기도 하다. 필사를 위해 멋있어 보이는 문장을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작품을 해설해주는 문학 도슨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두에 밝힌 <여학생>편 이전에 대표작이기도 한 <인간실격>이 먼저 등장하는 데 사실 오래 전에 읽고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도 저자와 요조를 별개로 생각할 수 없어 괴롭기만 했다. 희망이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어떻게든 사랑으로 안아주던 여인에게서 도망친 요조에게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음의 정리글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요조는 자신의 고독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멸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은 완전하지 않으며, 완전하지 않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과 함께 요조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마침내 실패, 낙오, 상실과 맞닿은 삶 또한 인간 존재의 한 방식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이처럼 <인간실격>은 단순히 절망의 기록이 아닌, 실패 속에 서도 인간으로 남으려는 몸부림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52쪽


저자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작품을 대하면 편협한 시선으로 읽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실격>은 물론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혹은 종교는 없어도 예수의 선함을 부정하지 않는 이에게 <직소>와 같은 작품은 그저 못나보이기만 했던 유다의 상황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런가하면 자식 때문에 혹은 가정을 위해 고단한 세월을 지나온 부모라면 '아이보다 부모가 더 소중하다고, 아이보다 부모가 더 약한 존재라고' 말하는 <앵두> 작품을 그저 울거나 못난 아버지를 탓하는 일차원적인 입장만을 고수하진 못할 것이다. 연약하기 때문에 사랑하면서도 죄를 짓고, 연약하기 때문에 지켜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 한 송이를 보고도 다시 살고자 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마음이 작품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잘 담아 문장으로 적어볼 수 있도록 구성된 '문장의 기억'. 역시나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이제 막 시작하거나 읽었으나 정리가 되지 않았던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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