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의 저속노화 명심 필사 노트
정희원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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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의 저속노화 명심 필사 노트.


14일차 필사를 좀 전에 마쳤다. 챌린지로 적다보니 매일 필사 내용은 목차순으로 진행되었지만 낮에는 책의 나머지 내용들을 찬찬히 적었다. 어쩌면 필사 후 몇 자 감상의 내용이 감정과잉으로 보였다면, 그건 소개되지 않은 책의 내용을 읽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저속노화라는 단어가 이제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 대단하게 마음 먹고 인증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은 솔직히 있었다. 헌데 정말이지 5분, 5분이면 그날 분량을 필사할 수 있었고, 그 내용만 잘 새기고 지켜도 최소한 가속노화는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필사는 그저 머리로만 읽을 때와는 다른 깊은 울림과 집중을 준다. (…)

늘 글쓰기는 뇌의 근력 운동이자 명상과 같다고 이야기 해왔다. 한 자 한 자를 고르고 배치하는 과정은 뇌 곳곳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신경 연결을 일으키며, 복잡한 번뇌를 정리할 수 있다. 7쪽


올해 본격적으로 필사를 시작하면서 저자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비단 필사 뿐 아니라 낭독 역시 뇌의 운동효과를 가져다 주는데 낭독은 가족과 함께 지내거나 외부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기에 비슷한 효과를 가진 필사를 개인적으로 적극 권하고 싶다. 또 필사의 효과와 저속노화의 연결성에 대해서도 필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앞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야 하는 부담이 저속노화 습관을 멀어지게 했다고 고백했었다. 저자는 다름아닌 5분 필사가,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한 효과로 저속노화 습관을 만드는 데 견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실제 5분 필사를 하는 동안 몸을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기왕이면 식단이라 부르긴 부족해도 최소한 몸에 나쁜 것들은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 뿐인가. 필사를 시작하고 열흘 째에는 긴 시간 하지 못했던 요가를 하기 위해 매트를 꺼내기까지 했다.


기록은 숫자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리듬을 확인하는 도구다.

오늘의 개운함, 어제보다 덜 요동친 마음, 아침의 선명함을 짧게 적어둔다. 변화는 성급함을 싫어 하고, 성실한 반복을 사랑한다. 68쪽


꽤 긴 세월 아침에 일어나면 모닝페이지를 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하지만 맘과 다르게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내 아침 시간은 늘 허둥지둥 아이에 맞춰져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다 내년 이면 취학 할 때가 되자 조금씩 내 아침과 밤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오전에는 가급적 모닝페이지로 밤사이 머릿속을 거쳐간 생각들을 비웠다면 밤이면 저속노화 필사노트를 꺼내 위로를 받았다. 또 내일은 좀 더 건강하게,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필사를 마치면 급한 일이 아니라면 가급적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무리해서는 안된다. 연령에 맞는 식단과 운동량이 달라진다. 모든 사람를 위한 단 한가지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속노화의 사이클은 대개 ‘나’에 대한 집착에서 속도를 얻는다. 심리학자 융의 언어로 말하면, 의식의 중심인 에고가 전부라고 믿을 때 자신의 시야가 급격히 좁아진다. 에고는 필요하지만 삶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182쪽


집착. 저속노화를 위해 과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부상을 무시하며 걷거나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자신을 살펴야한다. 주변의 말에 휘둘리거나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말만 옳다고, 에고에 집착하는 건 저속노화를 방해할 뿐 아니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이처럼 책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마인드셋, 구체적인 식단 및 운동의 주의사항을 담은 실천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보물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아는 것이고, 필사까지 한다면 보물을 캐내는 방법을 찾은 것이며, 실생활에 적용하여 저속노화를 실천한다면 보물을 품에 안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면지에 저자의 사인이 남겨있는데, 다음의 문구가 적혀 있다.


저속노화는 삶의 덜어냄이 만든 선물 꾸러미다.


해를 마무리하는 12, 저속노화 명실필사 노트는 나의 건강과 저속노화를 위한 선물 꾸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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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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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가져다놓으면 뭐든지 다 아름다워지는 걸까? 잘 살펴보면 삼층집 정원이라고 해서 값비싼 고급 나무들로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흔한 것이건 귀한 것이건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에는 다 같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365쪽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삶이라는 정원에는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순간, 행복의 절정도 있겠지만 하루도 더 살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과 고통 그리고 상실도 존재한다. 이 사실을 강조나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아닌 포용할 수 있을 때란 언제일까. 또 그 때라는 것이 반드시 어른이 되어야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 깨달았다. 집안의 걱정이자 부끄럼이었던 ‘동구’가 희망이 사라진 할머니와 가족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동구야, 많이 상심하고 있구나. 대개 이런 일들은 어른들끼리 해결하는 게 맞지만, 어른들이라고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어른들의 해결 방법이 늘 옳은 것도 아니고. 어린 네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임에 틀림없지만 잘 생각해보면 길이 있을 거야.’ 352쪽

난독증으로 글자를 읽거나 쓰지 못하는 열 살 동구. 반면 만으로 두 돌이 되기 전에 글을 읽는 여동생 영주는 집안의 자랑이자 타인에게 애정이란 걸 느껴본적 없을 것 같은 동구 할머니에게 까지 귀염을 받는다. 그런 영주를 질투를 느끼고 괴롭히는 커녕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한없는 사랑을 주는 동구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물어봐주고 살펴주는 박영은 선생님. 목차를 보면 이 소설이 한국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 박 선생님의 고향이 광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저절로 품게 되는 불안과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조바심을 누를 만큼 동구가 보여주는 ‘어른스러움’이 아닌 인간다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없는 이타심에 생물학적 나이로는 한참 어른이 나는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런가하면 1970년 대, 보편적이었다는 심각한 고부갈등과 가족을 위해 희생이 당연시 되던 시절,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무리 읽어도 괴롭기만 했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지는 말아야 할 텐데. 온통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영주를 위로하기는커녕 나조차 이 순간에는 아버지가 정말로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영주가 한층 앙다문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아빠를 혼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307쪽

누군가를 혼내는 방법, 나아가 벌을 내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일테다. 주요 사건을 다 말할 순 없지만 아내에게 자식 앞에서 시어머니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무식한 행동이라면서 정작 자신은 아이 앞에서 제 어미를 욕한 그가 받게 될 벌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죄의 값을 치르는 것은 아닌데다 그가 잃게 되는 것이 그에게만 고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한 회복과 용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동구는 가족들을 무척 사랑하고, 친구들과도 사이가 아주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따듯하고 어른스러워서 담임인 저도 동구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동구가 자라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189쪽

한권의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다뤄지다보니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야기지만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 작가의 첫 데뷔작인 작품을 20년이 지나 읽게 되었지만 그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들이 왜그리 따뜻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심윤경 #나의아름다운정원 #소설 #서평 #추천 @hani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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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경주 - 느긋하고 깊고 다정한 경주의 사계절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3
김혜경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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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경주,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03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세 번째 책은 김혜경 저자의 ‘언제라도 경주’다. 저자 약력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잘 웃고, 또 울기도 하는 저자가 정말이지 맘에 쏙 들었다. 저자와 함께 동행 해준 지인들과 따님들과의 얘기도, 특히 맛있는 비빔밥, 칼국수 그리고 진한 커피향이 맡아지는 것 같은 생생함이 담겨 있었다.

“어? 나 이렇게 가까이서 첨성대 보는 건 처음이야!”
“아닐걸, 수학여행 왔으면 봤을걸.”
생각해 보니 첨성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기도 하고. 분명, 6학년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왔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그때를 첫 경주라 부르지 않는다.) 53쪽

저자의 논리로 따지자면 아마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어도 첨성대를 제대로 본 적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언제라도 경주를 통해 ‘타실라’라는 이름 만큼 멋진 교통수단을 알게 되었다. 하루 이용료도 단돈 1000원! 타실라만 있으면 골목이든 언덕이든 가능했고, 단순하게 정보를 안내하는 수준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타실라를 이용해서 다닌 장소가 많아 언제라도 경주와 타실라만 있으면 책에 등장하는 왠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이런 중요한 여행지 정보도 있지만 언제라도 경주의 진짜 장점이자 저자에게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가 있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겠지? 나는 혼자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먹을 거 다 해놓고, 며칠씩 비위 맞추고. 그럼 그러겠지? 내가 언제 그런 걸로 눈치 줬냐고. 진짜 안 줬을지도 모르고. 그냥 나 혼자 눈치 보였던 건지도.” 24쪽

담아두고 쌓아둬 봐야 나만 무거워지는 말들과 마음은 경주의 은행잎들과 떨어지라며 그곳에 매달아 두고 왔다. 아니 두고 오고 싶었다. ‘털어낸다고 털어지면 그게 먼지지 마음이겠냐?’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해대며 실없이 웃었다. 162쪽

저자처럼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저자가 쓴 이 책 덕분에 무거웠던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런가하면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저자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이미 익숙해져 기다려주는 배우자와 사진 찍을 줄 알고 예쁘게 담았다는 식당 주인의 한 마디는 참 따뜻하다. 덩달아 셔터를 눌러주는 것도 고맙고, 그저 아무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도 당연히 고맙지만 무심히 툭 던지는 한마디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 여행에세이의 어쩌면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맛집’에 관한 부분도 읽으면서 침이 고일 정도였는데, 잠옷에 외투 하나 걸치고 나와서 먹는 한 밤의 비빔밥이라니 서평을 적는 지금도 먹고 싶다.

‘조금 날씬해져 돌아가는 여행’이 목표라던 사람은 비빔밥에 잔치국수까지 시켜버렸다. (…)
실룩이는 입꼬리로 비빔밥과 국수를 번갈아 먹는 날 보시곤 “국수가 좀 싱겁지요? 양념장 필요하면 말해요.” 문득문득 나를 쳐다보며 뭐 더 필요한 거 없는지 살피셨다. 어째 비빔밥이 더 맛있어진 것 같다. 246쪽

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니 재방문한 곳에서 저자를 알아보는 사장님들을 만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때면 1박2일 정도로는 어림없지, 이런 경주라면 ‘한달 살기’정도는 해야하는 거 아니냐며 혼자 결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직원용 라떼와 말차 케이크와 그림책 책방과 헌손님이 되고픈 가게에 이어 종류별로 먹어보고픈 피자가게까지. 그리고 저자가 임명한 ‘그자리’에서 인증샷도 찍어야 한다. 아바타를 만나게 될 행운도 찾아올지 모른다. 이렇게 재미난 경주를 저자가 추천한 11월은 이미 지났으니 오히려 아무때나 가도 될 것 같다. 저자의 다음 책도, 언제라도의 다른 책들도 기대된다.

#경주여행 #여행에세이 #언제라도경주 #김혜경 #푸른향기

해당 도서는 출판사 @prunbook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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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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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고요로 가야겠다


시인의 시는 이월 부터다.

허나 지금이 12월 겨울을 맞이했으니 뒤로 한참을 넘겨 현재를 찾는다. 

임의접속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부터 책은, 언제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언제라도 갈 수 있었으니까.


꽃으로 화창하던 날 교만하지 않았고

찬 바람 몰아치는 날 비굴하지 않았다

오늘 담담할 수 있어야 

내일 당당할 수 있다

  • 겨울 벚나무 중 일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담담할 수 없어서, 여전히 당당하지 못했었는지도 모른다.

시집을 읽을 때면 성서를 읽을 때보다 더 마음이 서글프다. 오래 전 ‘시인이란, 누군가 해야만 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할 말은 없지만 듣고 싶었던 말들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서글픈 말이지만 분명 듣고픈 말이었다. 달리 말하면 시집을 읽고 당장 이 순간만이라도 담담하려 애쓰면 당당한 순간을 언제고 한 번은 맞이할거란 기대가 들기 때문이다.


겨울 하늘 오래 바라본다

눈앞의 들끓는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 겨울 오후 중 일부


10여년 전, 세례를 받은 이후부터 이 무렵이면 어느 때 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묵상한다. 시인과 달리 나는 이미 그 답을 알면서도 여전히 부여잡고선 ‘놓지를 못하겠어요. 허나 주님 뜻대로 마시고, 제가 알아서 잘 놓을 수 있게 시간을 좀 더 주세요.’ 하기를 매해 반복한다. 주님 뜻대로가 아닌 내 뜻대로. 그래놓고선 늘 같은 원망을 쏟아낸다. ‘왜 저에게만 이러세요.’


바람이 분다

사무치게 분다


이렇게밖에 못해서 미안하다


너를 몸부림치게 해서 미안하다


  • 바람이 분다 전문


바람이 왜 내게만 불지 않느냐고 여름에는 투정부리고, 겨울이면 왜 내게만 불어오는 것 같냐고, 그것도 황사가 부냐고 또 원망을 늘어놓는다. 헌데 시인은, 시인은 ‘이렇게밖에 못해서 미안’하단다. 시인은 내가 듣고 싶은 말대신 들어야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인가부다.


시집 안쪽에 시인의 서명이 적혀있다.

이월에도 다시 펴 보라고, 그리고 ‘우리도 겨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하며 달래주려는 손길이 마냥 헛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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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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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양솽쯔의 장편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조금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해당 여행기의 저자 ‘아오야마 치즈코’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후의 역자가 존재한다는 설정 전부가 모두 ‘양솽쯔’의 설정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초판 서문’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초반에 ‘일뤄두기’를 제대로 봐두지 않으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치만 이런 혼란마저 포용할 만큼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했다. 특히 먹방이나 음식관련 문학이나 만화 혹은 영화나 드라마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타이완을 다녀온 적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사기’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삼는다.’ 그러니까 먹을 수 있다는 건 복인 셈이지요.” 83쪽

아오야마 치즈코. 일본 규슈지방 작가로 미혼이며 ‘요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식가이자 미식가이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하려면 반년 정도 현지에서 살아보는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아오야마는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글은 쓸 수 없어 타이완 방문 기회를 포기한다. 하지만 본국 보다 조금 늦게 타이완에서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숙식은 물론 통역가까지 지원되는 타이완 순회 강연 제안을 받게 되어 어서 빨리 결혼하라는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타이완 여행을 시작한다. 책을 읽기 전에 아오야마와 현지 타이완 통역사 간의 우정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샤오첸이 통역을 담당하는 순간부터 슬슬 먹방의 시작인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필기를 정리하다가 면이 먹고 싶다고 외치면, 샤오첸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바지락 달걀 국수와 으깬 참마 국수를 내주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볶음 쌀국수, 당면탕, 삶은 국수, 날달걀 우동 비빔면을 먹겠다고 하면, 샤오첸은 식탁을 바로 빛나게 만들었다. 128쪽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타이중 숙소를 중심으로 위아래 기차를 타고 강연을 다니며 지역 특산물과 간식 부터 성찬까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는 아오야마를 위해 끼니 때마다 타이완의 현지식을 요리하는 샤오첸의 등장도 감탄 그자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무리 1930년대라 할 지라도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샤오첸의 놀라운 요리솜씨와 회화실력, 게다가 아오야마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처세술과 고난도의 심리술까지 능수능란한 샤오첸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둘의 사이가 정말 가까워질수록 샤오첸은 점점 더 아오야마에게 알 수 없는 말로 선을 긋는 듯 싶더니 급기야 통역마저 그만두기에 이른다. 샤오첸이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는데 미시마가 털어놓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제3자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는 순간 아오야마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나 또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동시에 미시마가 지적한 부분들이 내게도 있었음을 깨닫고 이미 끊어진 과거의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의 핵심내용이라 전부 말할 순 없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원저자인 양솽쯔가 이런 구성의 글을 기획했는지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제국의 강경한 방식은 확실히 불쾌하죠. 하지만 벚꽃은 죄가 없는걸요. 샤오첸과 함께 벚꽃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면, 꿈을 꾸는 기분일 거예요.
397쪽


어쩌면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 주권을 빼앗겨 본 적이 있는 국가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감상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호불호가 나뉠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다른 독자들은 물론 해외의 역사적 배경이 같거나 다른 독자들과도 감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 좋아하는 간식을 두고 혹은 차와 술을 즐기며 누군가와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1938타이완여행기 #대만소설 #책추천 #전미도서상 #양솽쯔
@matisseblu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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