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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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시온공원에서 지내는 노숙자 ‘나‘는 고향 후쿠시마에서 생계를 위해 12살 때부터 집을 떠났다. 밭일부터 바닷가에 이르기 까지 그는 가리지 않고 일을했고 도쿄올림픽을 위해 도쿄에 경기장을 건축할 무렵에는 높은 보수를 위해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단 두 번, 명절뿐이었다. 아들이 타고 싶다던 헬기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태워주지 못했을 때, 그 아쉬움과 속상함이 그렇게 오래 남겨질 줄은 몰랐다. 21세. 아들이 죽었을 때의 나이다. 아들의 죽음은 더이상 그를 ‘살아있게‘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거울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끝난‘상태였다. 아직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아내와 딸이 남아있기에 그는 다시 집을 떠나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모든게 끝난 것 같았어도 죽은 것은 아들이고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돌아갈 곳은 ‘집‘이었던 그가 어쩌다 돌아갈 집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을까.


공원에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엄청나게 비밀스럽거나 감동적이지 않다. 아내없이 혼자서 밥을 차려먹지 못하는 남편을 둔 가정주부, 말린 정어리에 대한 극찬과 건강을 염려하는 중년들의 대화 등 우리가 쉽게 말하는 ‘소소한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식인처럼 보이는 시게를 통해 우에노시온공원의 역사를 들여주고, 그 역사속에서 위대한 장군이 역적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삶의 아이러니까지 덤덤하게 이야기는 이어진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다 어떻게 잘 듣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인지 글의 초반과 후반, 그리고 중간 곳곳에 단서를 보여준다.


작가는 노숙자들이 천황과 그의 가족들의 행행차로 인해 강제퇴거 당하는 일들을 소설을 쓰기 전에 취재했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연을 취재하는 동안 한 노숙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집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비단 노숙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후쿠시마를 먼 나라에서 바라보는 이들과 그 안에서 이유없이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후쿠시마 사람들의 입장도 나는 그저 안타깝다 정도밖에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역할이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저자의 말처럼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그 말대로 이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일본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만 비판할 뿐 정작 후쿠시마 안에서 이미 다 잃었으면서도 생을 잃지는 못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잠시라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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