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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평점 :
#차별 #차별금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이 랜덤으로 주어진 걸텐데‘,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요. 같은 이유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262쪽
우리가 차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 대상은 여성, 장애인 그리고 성소수자일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 그 대상이었다. 1800년대만 하더라도 흑인과 여성이 당연하게 백인, 남성보다 열등하며 심지어 그들을 보호(소유)하지 않으면 우울증은 물론 신체적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차별하는 ’정상인‘은 자신이 누군가를 차별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또 기득권층이 세운 ’합리적 결정’ 과 ’사회적 합의‘를 근거로 소외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차별 자체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눈앞에 보여지는 통계와 상처가 아니면 무수한 외침과 요구에도 결코 ’응답‘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응답‘된 것으로 간주한다. 과연 그럴까. 저자가 현장(세월호와 천안함 생존자, 쌍용자동차 노조, 장애인 및 성소수자 관련 단체 등)에서 설문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이에 대해 개선이나 보상을 요구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우울증 등의 유병확률이 훨씬 높다고 나와있다. 그나마 응답을 받기라도 한다면 나아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처음부터 낙담하고 말하지 않은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느꼈다고한다. 이렇게 제대로 응답받지 못한 고통들이 어떤 위험을 낳을까. 답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탓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결국 생의 의지를 꺾이고야 만다. 자살률을 낮춘다면서 당장의 회유와 인식개선만으로는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자살하는 사람을 두고 가장 쉽게 하는 말이, ’그 힘으로 살지‘라는 말일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의 나약한 탓으로 돌린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성급하게 낙인을 찍고 ’사실관계‘ 혹은 ’맥락‘없이 기득권이 주도권을 쥔 미디어의 방향에 따라 끌려간다. 나는 결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책에도 언급되는 모 웹툰작가의 장애를 가진 자녀와 관련된 사건을 봐도 그렇다. 그 작가와 해당 교사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피해자인 경우보다 가해자였을 때 훨씬 크게 보도하면서 그들은 결코 우리와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만들면서 위험한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처럼 유도하지만 그런식이라면 해당 질환이 없는데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정상인‘들 모두를 잠정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당연히 가족들 마저도 떨어져 지내야만 안전할 것이다.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알려진 북유럽의 두 나라는 장애인들만을 위한 기관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장애인 인구수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장애인구수를 명확하게 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난민, 성소수자, HIV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스스로 결코 차별한 적이 없다고 자신한다면 책에 실린 다음의 문장들을 천천히 읽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여기서부터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준비가 시작된다.
한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던 몸은 항상 기득권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기득권은 소수자의 몸을 두고 매번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었지요. 48쪽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201쪽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이나 인식 개선 캠페인 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여기에 지원을 요청해야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함께 길러야 하고, 그런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225쪽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응답을 잘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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