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죽었다
박원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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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예술은죽었다 #원앤제이갤러리 #박원재 #예술 #교양 #인문 #샘터 #샘터사 #art 

예술은 죽었다. 그 선언은 과장이 아니라 냉정한 진단이다. 우리는 예술을 삶의 언어로 받아들이기보다 소유의 대상으로 다뤄왔다. -에필로그 중에서

‘예술은 죽었다.’ 라는 타이틀이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시선이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예술이 죽었다고 저자는 느꼈던 것일까. 책을 읽기 전 개인적으로는 예술을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기업이나 단체 혹은 자본주의 서열 최고위층이 아닌 평범(이란 단어가 애매하긴 하지만)한 사람들마저 수집하는 요즘 만큼 예술이 살아있던 때가 있었을까 싶었었다. 10년 째 전시 해설사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변화도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해설을 들으러 오는 분들 뿐 아니라 ‘도슨트’를 희망하는 사람들 자체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여전히 ‘해설’이 필요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 작품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다양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소장하려는 작품이 신진작가나 비주류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권위있는 상을 수상했거나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국내 작가인데도 해외에서 ‘인정’받지 않으면 외면당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보이스와 부르주아의 작업은 예술이 개인과 공동체 모두를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146쪽

저자는 단순히 자본주의에 휘둘리고, 소수에 의해 인정받은 작가들만이 존재하는 예술 측면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의 ‘예술의 역할’과 그의 부합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독자에게 전달하며 예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강제나 독단이 아닌 ‘연대’와 ‘함께’라는 현 시대의 가장 필요한 덕목과 연결지어 이야기한다. 이런 연대를 위한 예술,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지역사회의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경우외에도 ‘다름을 인정하는 매체이자 주체로서의 예술’을 언급한 부분이 특히 와닿았다. 최근 여성, 노인 그리고 장애와 퀴어를 주제로 전시에서 여러 ‘손’을 전시한 후 그 손 위로 유리를 놓아 관람객이 유리 한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잡은 듯한 체험을 유도한 작품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손’을 간접적으로 맞잡거나 포개는 그 잠깐의 행위를 통해 ‘다름’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시선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다양성은 이제 윤리도 미덕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현실이다. 140쪽

그리고 예술의 장점이자 가장 큰 특징이 규칙에 의한 획일화 혹은 폭력에 의한 강제가 아닌 존중에 의한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를 도울 수 있는 방식으로서의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언급하기도 한다. 저자가 예로 든 작가외에도 SNS를 통해 매일 자신의 하루를 사진으로 혹은 드로잉으로 연작처럼 전시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팬데믹 이후 그 시절 직접 마주할 수 없었던 도시와 개인의 집안을 촬영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경우도 있다. 이런 행위가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훔쳐보는 일탈이 아니라 ‘혼자서도 잘 해내야 하는’ 강박에서 꺼내어 직접적인 몸과 몸이 아닌 시선과 시선으로도 충분히 공감과 위로를 끌어낼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다름을 보는 눈’이 아닌 ‘다름을 느끼는 몸’을 갖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며,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다시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 가장 깊은 이유다. 113쪽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혹은 인용한 학자들의 ‘예술이란 ~이다.’라는 정의를 마주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목적과 역할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책에서 언급한 부르주아 전시와 바스키아의 작품이 현재 전시중이라 책을 읽으면서 전시를 다녀와서 그 감상을 이곳에 풀어내면 좋을 것 같아 서평을 늦추려는 마음과 하루라도 빨리 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찾았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심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예술의 부활’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예술이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접근성, 체험 그리고 소장과 공유의 방법들이 전혀 없거나 아주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다. 이미 시작된 것들의 안정화와 확대 무엇보다 예술 자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아마도 저자가 기대하는 독자의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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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에서, 시인의 농담에서, 개정판
전영애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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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여백서원 #괴테마을 #청림출판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34쪽

전영애 교수의 <인생을 배우다> 서평의 시작을 어떻게 적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최근에 종방한 드라마에서 다룬 이야기자, 연말 산타 할아버지가 생각도 나길래 소원과 관련된 발췌문으로 시작했다. 소원. 사실 내게는 소원이 단 하나이거나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밤새 떠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때로는 허무하고 허망했다. 전영애 교수님의 여백서원과 관련된 다큐를 몇 년 전(이라고는 해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TV에서 알게 된 후 저자의 저작(역서를 포함)을 찾아 읽었다. 지인 중에는 교수의 책을 정말 맘에 들어하는 분들도 계셨다. 참 순수한 분이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지를 아는 분이라고 그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내게 주어진 삶의 고비고비를 넘다보니 잊혔다가 지난 주 개정판으로 다시 <인생을 배우다>를 마주했다. 개정판이라고 하면 많은 부분 수정하거나 새로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더 좋았다. 세월이 흘러 자꾸 수정되는 이야기는 애초에 이야기에 감흥받은 독자들에게 왠지모를 서운함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책을 읽었으나 세월이 흘러 읽는 내가 그때와 다르지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제법 많았다. 그때는 저자를 보며 롤모델 혹은 닮고 싶은 부분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깨달은 것은 ‘감사함의 중요’ 였다.

“문학은 사람을 만듭니다.”
유럽에서 어떤 국가적 차원의 문화정책이나 발전된 문화 시설보다도 더 부러운 것이 그런 여유들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런 교양 시민층이다. 그것은 물론 사회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또한 그런 개인들의 여유가 사회의 여유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44쪽

개인에게 여유가 있으려면 사회차원에서 안녕과 안정을 보장해줘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그런것들이 보장된다고 개인의 노력없이 교양 시민이 되는 것일까 하면 그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자와 같은 나눔의 삶이 가능한 이유가 내게는 개개인이 가지는 ‘감사’에 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나라 안팎에서 연구하는 삶은 누군가에겐 말도 못하게 부러운 환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녀가 자주 오해받았던 것처럼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감사함과 기회를 나누기 위해 애쓰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녀가 들려주는 어려운 날들의 이야기 속에도 누군가를 향한 ‘날선 비난, 혹은 분노’ 보다 배려와 충만한 베풂에 감사하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 그런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또 얼마나 차분해지고 겸손해질 수 있었는지. 특히 제자들이 낸 문집을 언급하며 비춰지지 않은 수많은 빛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연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보며 비난하거나 힐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가치있고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력은 그에 비해 얼마나 하였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런 화사함 속에서도 지인들의 부고와 그에 대한 애도도 적잖케 섞여 있다. 11월은 가톨릭 교회에서 ‘위령 성월’이다. 죽은 모든 이를 애도하는 이 11월에 이 책을 읽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독여본다. 아직 살아 남은 이들에게는 분명 헤야할 일들도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백서원을 짓게 된 배경과 과정을 읽으며 죽은 이와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을 찾아올 이들에게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그의 ‘일’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내게 주어진 날들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 해본다.

도시에서 시달리던 사람들이 와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백과도 같은 공간은 그렇게 구체화되었다. 그렇게 ‘오해’되어도 참 좋은, 실은 남을 ‘여’자가 아니라 같을 ‘여’를 쓰는 여백서원이다. 여백은, 아버지의 호이다.(…)
‘여백을 위하여’는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이름 그대로 흰빛처럼 맑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는 뜻을 담았다. 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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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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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수잔 스캔런의 <의미들>의 부제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다. 먼저 읽은 독자의 친절함을 걸치고 저자가 직접 쓴 예상 독자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쓸 때, 책을 읽으며 내가 이 사람일 수도 있어, 하고 생각할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내가 패트릭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건 나야,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420-421쪽

‘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우울감을 가지고 있고, 외로움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며 관계에 어려움을 가질 뿐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잃거나 잃어가는 중이며 무엇보다 자신을 더이상 살아가도록 놔둘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경험했거나 그런 충동이 일어날 것 같은 슬픔을 느꼈던 사람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차마 병리적으로 정신의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꽤 긴 시간 입원하거나 내원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 가령 열 살 이전에 엄마를 사별한 일,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말을 하고 걸어다니 던 시절부터 이미 엄마는 ‘암환자’였고,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그렇게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의 자리를 채운 사람이 안타깝게도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달려간 아빠에게 ‘나를 그곳에 버리고 갔다’라며 피해자의 위치마저 질투하는 새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 어떤 경우에라도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며, 때때로 혹은 그보다 자주 언성을 높이며 싸우더라도 곁에 머물며 화를 낸 후에는 반드시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자리가 비워진 후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그다지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일 수 없다고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저자가 직접 표현한 것처럼 그런 상실과, 정신병동에서 스스로 체결한 수동적인 상황에서 결국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록산이 말했다. 치료의 80퍼센트는, 그 이상은 아닐지 몰라도 바로 너야. 환자라고.(...)
네가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네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고. 의사들뿐 아니라. 네 가족들도. (...)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지 않았다. 366쪽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결심한 것은 퇴원 후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그러나 ‘미쳤다는 소리‘를 듣거나 정반대로 결코 ’아프지 않다‘라고 강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소리를 낸 여자들을 알았다. 그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서 혹은 에세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약물로 인해 정신이 정말로 흐릿해져 기억이 소멸되는 순간이 늘어날 때에도 병원에서 그녀는 계속 읽고, 계속 썼다. 그리고 학교에 다녔던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누구나 다 죽는 그 삶‘에서 순위를 지나치게 앞다투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읽기에 대해, 쓰기에 대해 그리고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저자를 통해 마주하는 기분은 사실 슬프고 또 슬펐다. 아이를 낳은 후 결코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될 일은 없을거라 확신했던 저자처럼 출산과 양육은 그 어려움과 고통에 비례할 정도로 삶의 의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끌어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적어도 지금까지는 여자들만이 가능한 그 경험들의 숭고함보다 여자이기 때문에 인식하지도 못한 채 받았던 상처들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감히, 저자의 표현대로 상투적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내게 이 책은 인생책, 단 한 권의 책만 남아, 남아 있는 생에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 신앙과 관련된 책을 제외하고는 이 책을 서슴없이 고를 것 같다. 아프고 아픈 사람들, 너무 아파서 오히려 정신병원으로 도망쳐야했던 그들에게 위로(달리 무슨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와, 자신의 소리를 내주었던 그녀들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의미들 #인생책 #엘리 #수잰스캔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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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10 영한대역 단편소설 - 토플·편입영어·공무원 영어단어 빨리 외우는 법
Mike Hwang 옮김 / 마이클리시(Miklish)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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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 #단편소설 #영한단편 #추천 #영어단편소설추천





도슨트 활동을 시작한지 어느 덧 10년이 되었다. 10년 동안 미술관련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편입도 하고, 문화예술사 교육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또 한 곳에서만 활동하는 것 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작품과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추가적으로 도슨트 보수 교육 등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늘 희망했던 것이 한국어는 물론 외국어로 해설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관련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영어공부를 좀 더 구체적인 활동과 계획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학원 졸업을 위해 영어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과제도 있기는 했다. 이런 직접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AI의 통번역 기술이 아무리 좋아진다 하더라도 바로 들리고 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외국어 실력이 필요한데 특히 영어의 경우는 내가 잘 하는 것, 소설을 읽으면서 영어공부도 함께 하는 방식이 잘 맞다고 생각하던차에 TOP10 영한대역 단편소설 도서를 만나게 되었다. 



단어를 외워도 해석이 안 되는 이유는 '단어만' 외우기 때문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나처럼 소설의 원문을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영어교재 아닐까. 물론 AI를 활용해서 좀 더 용이하게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책에 기재된 QR 코드를 통해 저자의 카페에 가입하여 관련 정보를 더 얻으면 좋다. 무조건 책을 구입해 시작하기 보다는 목차 이전에 등장하는 책 활용법을 숙지하는 것이 참 좋은데 다음의 사항은 개인적으로 꼭 영한단편소설을 통해 공부하기 전 참고하였으면 좋겠다.


  1. 가능한 한 오른쪽 페이지(한글)은 읽지 말고 해석이 잘 안되거나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확인하기

  2. 모르는 단어를 적어두고 이 책 자체를 단어장처럼 활용하기

  3. 소설을 완독하기 전 원어민이 읽어주는 것을 먼저 듣기(쉐도잉)


위의 세 가지 항목을 꼭 기억해두고 책을 읽으면 우선 좀 당황할 수 있다. 평소에 마주하던 영한대역은 직역이 아닌 역자가 읽기 쉽도록 의역한 상태로 소설 자체를 읽기에는 좋지만 사용된 단어를 공부하거나 할 때는 또다시 원문을 확인해가며 찾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그런데 해당 책에는 문장 마다 해석이 따라오기 때문에 듣거나 읽으면서 바로바로 기존에 몰랐던 단어와 이미 알고 있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그 의미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다고 영어공부만을 위한 책으로만 이 책을 활용하기에는 아쉬울 것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평이 담겨 있긴 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 후에 작가와 작품에 관한 내용이 한 페이지에 담겨 있어 영한 대역이나 영어로 된 단편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태블릿을 활용하며 책 저자가 제시한 한 달 스케쥴에 가깝게 공부하였는데 이전보다 갑자기 영어실력이 확 늘었다기 보다는 단어 자체를 전보다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비단 외국어 뿐 아니라 한국어를 잘 하기 위해서도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저자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독해보다 영어회화를 먼저 배우는 것'이 더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회화가 쉽지 않다면 자신이 평소에 잘하는 것, 나처럼 소설 읽는 것이 좋고 편하다면 영어 단편소설을 활용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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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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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 교수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부제는 '삶의 무의미를 건너는 연습'이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거나 특정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허무하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저자의 전작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으며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던져진 질문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란 기대감에 읽기 시작했다. 

요컨데 우리는 존재 유지에 골몰하기에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며, 혀가 즐겁기 때문에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식사는 존재 유지를 위한 노역의 일부가 아니라, 이 노역으로부터 잠시 풀려나 얻는 휴식과 쾌락이 된다. 16쪽

60분, 즉 한 시간 정도였던 점심시간이 복지가 잘 되어 있는 회사의 경우에는 그보다 30분가량 더 주어지거나, 아예 근무시간 내에 자유롭게 카페테리아를 드나들 수 있는 경우도 있다. 20여 년 전, 내가 처음 마케팅 부서 신입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회사에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회사를 운영하고자 했던 대표님의 지원으로, 몇 차례 마케팅 세미나에 참가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 본 사무실은 책상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마치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작은 사무실을 가진 듯한 구조였고, 넓은 창을 통해 들여다본 공간은 외화 드라마 속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꾸며져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창의적인 공간’을 재현해 둔 것 같았다. 그때 함께 세미나에 참가했던 동료와 나눈 첫 소감이 이랬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없던 창의력도 생겨나겠네.”

그곳에는 함께 어울려 가볍게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저자가 말하는 ‘먹방에 심취하는 것’과 동시에 ‘홀로 식사하는 것’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근무할 때는 철저히 자신의 방 안에서 ‘고독’한 상태에 있다가, 그 문을 여는 순간 ‘더불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 — 이는 ‘고독’과 ‘더불어 있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양자를 오가는 무한한 순환 궤도가 인간의 운명이며, 이 궤도를 혹시 선순환의 고리로 만들 수 있을지 인간은 골똘히 궁리해볼 뿐(62쪽).”

그런가 하면, 당시 마케팅 업무를 배우던 나의 현재 직업은 그와 크게 관련이 없다. 물론 “마케팅과 무관한 직종은 없다”는 말이 있으니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한 기업이나 단체의 마케팅 담당자는 아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그 길을 계속 걸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때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또 어땠을까?

아니면, 애초에 내가 마케팅을 그만둔 이유가 악덕 거래사 대표 때문이었다면?

숲속의 길 가운데 하나로 들어서듯, 한 사람을 만나거나 지나치거나 하는 작은 차이가, 여러 가능 세계 가운데 하나를 우리 미래의 현실로 만든다. 29쪽

우리가 선택하는 것만 우리의 결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사소하게는 먹었던 음식이나 입었던 옷 마저도, 그런 작은 차이가 우리의 현실과 결말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은 개개인의 독자적인 경험,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험으로 이루어진다.'(139쪽)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주 인용되는 작품과 철학가 그리고 사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빠르게 정독하고 싶고 좀 더 깊이 마주하고 싶은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책의 시작부터 그리고 어느정도 나의 삶 속에 철학적 지점과 연결된 부분이 확인되어가는 지점에서 다시금 인용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언가 앎이나 예언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경험'을 통해 나아가게 되는 방향이 헤겔의 <<정신현상학>>과도 이어진다. 또 그 경험을 통해 우리가 특정 경험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회피하는 것에 대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하는 다음의 부분은 책의 초반, '악'조차 다양성에 속해있다는 것이 결국 좋은 성공의 경험만으로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장도리로 못을 박는 경험을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내가 장도리를 잘 다루는지, 못을 잘 박는 재주가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경험만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험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즉 우리가 어떤 '유한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143쪽

책의 도입부가 '음식'과 관련한 내용이라 아주 용이하게 철학책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삶을 잘 살기 위한'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데 역시나 좋았다. 철학자 한 사람에서 출발하는 방법도 나름의 이점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잘 버무려서 최고의 맛을 내는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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