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나는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실제로 바꾼 놀라운 실험
이브 로드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 메이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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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나, 내용에 크게 끌리지는 않았었다. 집안일을 100장의 카드로 정리해 게임을 하듯 그것을 나누라니. 시작부터 못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거나 아예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한동안 나도 내가 하는 집안일을 모조리 종이에 써보자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엇을, 어디까지 적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서 시작도 못했다. 그 대신 반대의 방법을 택해 다른 식구들에게 자기가 알아서 하는 집안일을 적어보라고 했다. 결과는 대실패. 나의 의도는 빗나가버렸다. 내가 수시로 불평하며 이야기를 해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끊임없이 반복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보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자극 요법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테이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때서야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어떤 방법이든, 그것이 집안일의 공정한 분배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어떤 책이라도 읽겠다는 마음이. 그동안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늘 고팠던 가르침 중 하나가 집안일 분배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기에. 방법에 관한 이런 책도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많이 나와야 하는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 요즘 자주 하는 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나쁘지 않아, 해봐야 겠어, 생각했다. 술술 읽히기도 한다. 단순한 일의 분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주어 좋았고. 집안일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는 격려도 좋았다. 이 프로젝트가 남편들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를 적은 부분은 그대로 보여주어도 효과가 있을 듯 하다. 협상 테이블에 앉힐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게임을 통해 진정한 삶을 되찾고 관계 변화의 경험을 누리고 싶다면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규칙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시간에 가치를 매기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각자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균형 있고 재조정한다는 목표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파트너에게 시간을 인식하는 틀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도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남편이 화상 회의를 하는 2시간은 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2시간보다 더 값진가? 즉, 무대 뒤에서 집안일을 하는 데 드는 시간은 무대 위에서 유급 활동을 하는 데 드는 시간과 같은 가치를 갖는가?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파트너의 대답은 어떤가? 당신과 파트너 모두 서로의 시간을 한정된 자원으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집안일 대부분이 여성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두 사람의 시간 모두 다이아몬드다. 둘 다 똑같이 하루 2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당신의 시간이 파트너의 시간과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스스로 확신해야만 육아와 가사 노동 분담이 동등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은 이것이 아닐까. 내 시간이 파트너의 시간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 더 나아가 확신하는 일. "남편은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해요. 그런 사람한테 집안일을 해 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같은 말들을 내뱉지 않기 위하여 내 시간과 노동력이 가치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일. 집안일을 나누자고 제안하기 전에 나의 확신을 먼저 세우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파트너가 조목조목 어쩌구저쩌구 그럴싸한 언어로 공격한다면 받아칠 여유 없이 금세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지금껏 내가 집안일 분배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일단 엎드려 자세인 것은 이것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이 남성보다 멀티태스킹에 더 뛰어나다는 가설을 뒷받침해 줄 연구는 없습니다. 사실, 멀티태스킹은 남녀 누구에게나 좋지 않아요. 우리 뇌는 한 번에 하나 이상의 복잡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성이 멀티태스킹에 더 강하다는 걸 입증하려고 설계한 연구에서도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짐작에, 여성들이 가정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건 그 일을 더 잘하는 쪽으로 생물학적 변이가 일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문화적인 영향이라고 봅니다. 여성이 그걸 더 잘한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는 거죠." 


실제 생활에서 다른 식구들(모두 남자)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못한다. 그 하지 못하는 일을 나는 한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 거란 말이지. 그리고 어쩌면 멀티태스킹을 남자들이 잘 못하는 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그러니까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집 안의 누군가가 늘 그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 옆지기는 자기 가족의 생일을 정확히 모른다. 어떻게 엄마 아빠 생일도 모르냐고 했더니 늘 (여)동생이나 형수가 챙겨 미리 알려줘서 외울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오마이갓.




"당신은 장보기 카드를 갖고 있다. 당신의 아들은 머스터드 소스를 뿌린 핫도그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런데 냉장고와 식료품 창고에 머스터드 소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것이 바로 인지(Conceive)다. 이제 당신은 매주 새로 짜는 장 볼 목록에 머스터드 소스를 추가한다. 가게에 언제 갈지 일정을 잡고 파트너와 다른 식구들에게 추가할 게 없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계획(Plan)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상점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 아들이 핫도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기 전에, 냉장고에 머스터드 소스를 넣는다. 이것이 실행(Execute)이다. 

공정한 게임에서 CPE를 한다는 것은 특정 카드를 가진 사람이 혼자 알아서 - 누가 상기시켜 주거나, 적당히 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아니면 완수한 일에 대해 '잘했다'는 칭찬을 바라지 않고 - 인지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그건 비현실적이야. 우리 방식도 아니고, 해 본 적도 없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다양한 커플들을 대상으로 시범 테스트를 한 결과, CPE를 잘 따른 부부들이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을 멈추고 공정하고 능률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함으로써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걸 수없이 봐 왔다." 


확실히 저자의 카드를 이용한 방법은 말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같다. 조금씩 집안일을 분배하려고 아이들에게 맡긴 일은 언제나 내가 그것을 '인지'시켜야 겨우 행해진다. 결국 나만 피곤한 건 매한가지인 상태. 

며칠 전 저녁의 일이다. 저녁식사 후 씽크대의 그릇 정리와 뒷마무리를 맡은(내가 맡긴) 큰넘이 세척기에 들어가지 못한 그릇들을 씻고 있었다. 옆지기가 가득 찬 주방 쓰레기통을 비우려 해서 내가 말렸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음식찌꺼기 등이 나오는데 씽크대 정리가 끝나야 쓰레기봉지를 묶을 수 있으니까. 한참 후 (옆지기에 의해) 묶인 쓰레기봉지를 작은넘이 들고 나갔다. 쓰레기와 재활용 용기 등을 현관 밖 쓰레기통에 가져다 넣는 것은 작은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옆지기에게 이 간단하고도 복잡한 일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주방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 바깥에 내다놓는 일을 세 사람이 했을 뿐 아니라, 앞서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의 집안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식구들에게 바라는 것도 저자의 말처럼 인지, 계획, 실행에 이르는, 알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하는 모습이다. 

나는 카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협상 테이블에 세 남자가 기꺼이 앉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로 문장을 바꾼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라. 단, 신중하게. 




"당신의 삶에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할 때, 아니면 그것을 꿈꾸거나 상상하기 시작할 때 그때가 바로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이라는 강풍에 떠밀려 머릿속을 시커멓게 뒤덮는 온갖 허드렛일의 짙은 먹구름에 가장 취약할 때다. 있는 힘껏 저항하라. 삶의 열정과 목적을 되찾는 것에 대해 나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시간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들은 무시해 버려라. 그런 메시지는 당신이 유니콘 스페이스에서 결실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결국 그 공간까지 삼켜버릴 테니까 말이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저편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있다. 그것을 절대 잊지 마라." 


죄책감과 미안함. 이걸 떨쳐버리려고 무진장 애쓴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면 내가 왜 미안해야 하지, 생각하면서도 찜찜한 느낌이 남는 건 아직 어쩔 수 없다. '머릿속을 시커멓게 뒤덮는 온갖 허드렛일'도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물론 잘 안 된다. 최소한의 일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어떻게 하면 계속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한다. 식구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앞으로 내가 제안할 생활규칙과 집안일분배의 기준&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 역시 쉽지는 않다. 반발도 예상된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 '두려움 저편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있다'를 잊지 말아야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협상 테이블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집안일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날을 되도록 앞당기고 싶다. 




"혹시 아내가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는 걸 보고,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자기 계발서라고 넘겨짚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하겠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될 수 있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사실 둘 다 직접적인 이익을 보지 못하면 이 게임은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당신이 공정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면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가정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새로운 언어(마침내 당신과 배우자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게 된다

- 역할과 기대치의 명확한 정의(더 이상 누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할지 헤매지 않아도 된다)

-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파트너와 함께 집안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율성 

- 당신이 할 일에 대한 확실한 소유권

- 파트너/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개인의 관심사를 쫓고 우정을 나눌 여분의 시간

- 행복한 파트너십 

- 더 만족스럽고 뿌듯한 육아 경험 

- 외가소성 향상과 수명 연장 


이 정도면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닌가? 이게 다가 아니다. 공정한 게임에 참여했을 때 잃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때 느껴지는 나쁜 기분 

- 애써서 한다고 했는데 지적당하고 비판받는 기분 

- 가정생활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에 관한 입씨름 

- 누가 더 많이 하고, 누가 더 잘했나를 따지는 일상 

- 시간에 쫓기는 기분 

- 배우자가 '이제 난 할 만큼 했어!'라고 선언하는 것에 대한 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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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30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멀티 못해요. 😭 남자가 더 멀티 못한다는 식으로 퉁쳐주는 거 ㅋㅋㅋ 싫으네요 진짜 ㅋㅋㅋ 그리구 이 글에서 느껴지는 지난한 난티님의 노동력(사랑없이는 맘먹어지지않는..)!!! 제가 다 속상하네요.. 인류 역사와의 투쟁 승리하시길! 지더라도 잘지는 싸움 하시길!! 전 사보타주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ㅋㅋ

난티나무 2021-06-30 15:23   좋아요 1 | URL
사실 여자들이 멀티태스킹을 잘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라 익숙해져서 잘 한다고 착각하고 사는 거겠죠. 한번에 하나만 할 수 있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과학적으로도 그렇다고 하고요.
인류 역사와의 투쟁! 우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요즘 저의 모습을 보면 사보타주 은근히 하고 있는 거 같으네요. (단어 뜻 정확히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고 왔어요.ㅠㅠ) 계획적이지는 않았으나 부분적으로 하고 있... 아하하... 좀더 적극성이 필요하겠어요. 아자!

공쟝쟝 2021-06-30 15:37   좋아요 1 | URL
최대한 웅장하게 싸움과 실천에 의미 부여하기 ㅋㅋㅋ 근데 사실이 그래요 ㅋㅋ 그쵸? ㅋㅋ 가부장제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