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읽기로 혼자 약속한 <가부장제의 창조>. 


어떤 역사든 간에 두루두루 잘 모르는 나라서, 이름만 들어본 것 같은 메소포타미아나 아시리아, 고대국가 이야기, 소크라테스 무슨 ~스 등의 철학자들, 솔직히 정확히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건지 매우 헷갈려서 읽는 내내 혼란 속에 헤매긴 했으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문명이 어느 위치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존재했는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기원이라는 시간의 기준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인간이 정착하여 사회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 이전부터, 세상에 이미 존재했었던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를 아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마지막 남은 챕터(11장)를 오늘 오전에 꼭꼭 눌러 읽었다. 페이지마다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려니 빨간 색연필을 들고 이 장의 첫글자부터 끝글자까지 색칠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황칠을 해놓으면 다시 보기 불편하겠지 싶어 손대지 않고 단락마다 스티커를 붙였... 이 부분을 읽으려고 나머지를 잘 견디며 읽었구나. 요약 정리도 잘 해주고 저자 참 좋다, 하다가. 390페이지의 '수다'라는 단어에 그만 넘어져 눈물이 터졌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마음속에 모형을 창조하고 상세하게 정의하고 그로부터 일반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남성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쳤듯이, 그런 사고는 감성을 배제해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들, 종속적이며 주변적 위치의 사람들처럼 여성들은 모호함에 대해, 섞여 있는 감정에 대해, 추상적인 것을 채색하는 가치판단에 대해 근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항상 자아(self)와 공동체의 현실을 경험해 왔고, 그것을 알고, 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는 오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불신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배웠다. 월경 속에 무슨 지혜가 있을 수 있는가? 모유로 가득 찬 젖가슴 속에 무슨 지식의 원천이 있는가? 일상적인 수유와 청소 속에 추상성을 위한 무슨 재료가 있는가? 가부장적 사고는 그와 같은 성별 정의된 경험들을 비초월적인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역에 소속시켰다. 여성의 지식은 단순한 '직관'(intuition)으로 되었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수다'(gossip)로 되었다. 여성들은 특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특수한 것들을 다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기능(음식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속에서, 끊임없이 방해받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분산된 주의집중 속에서, 매일 매시간 현실을 경험한다. 그 특수한 것들이 자신의 소매를 당기는 동안 사실들을 일반법칙으로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상징을 만들고 세계를 설명하는 그와, 그의 신체적·심리적 욕구와 그의 자녀를 돌보는 그녀 - 그 둘간의 간극은 엄청나다." (11장 p.390)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지금 왜 눈물을 흘리는가를 생각했다. 본문에 나오는 '모호함', '섞여 있는 감정', '가치판단' 같은 단어들이 내 눈물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 때문이라는 소리. 말하기 어려워서 억울하다는 생각. 수다,라는 단어 하나에, 그 단어 뒤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과 비슷비슷한 경험들과 한숨과 터질 것 같은 답답함과 그러면서도 어쩔 줄을 모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뒷모습들이, 그런 그들을 폄하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그들의 남편들이, '수다'조차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그들이, 그런 그들이 한심하다는 말에 동조라도 하듯 넘어가곤 했던 지난날의 내가, 겹쳐지고 겹쳐지고 겹쳐지고. 


그리고 어쩌면 나의 모습이, 남들보다 정도가 덜 하니까, 큰 탈 없으니까, 별 것 아니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누구만큼 힘든 건 아니지 않냐고, 그냥 넘겨버리려고 했던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인 나의 모습이, 스스로를 작고 작다고 여기려 했던 나의 모습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타협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이율배반에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이, 글자들 속에 박혀있는 내가. 


필연의 중간 어디쯤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나는 내 눈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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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30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6-30 0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난티나무 님도 눈물을 좋다고 마지막에 쓰신거겠지요.
마음을 담아 읽고 쓰셨다는 게 전해져서 저까지 이 글에 동조되어 가슴이 저릿해져요. 필연의 중간쯤 까지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눈물 흘리겠지만 멈추지 말고 갑시다. 가시는 길 함께 가며 응원할게요!

난티나무 2021-06-30 15:13   좋아요 0 | URL
끝은 없겠지만 출발선에 서있는 거 아닌가 싶어 중간이라는 단어 쓸 때 망설였어요. 시작과, 끝이 없는 끝의 사이라면 중간도 맞다 싶기도 했고요. 아무렴 어떠나, 아무튼 돌아갈 수는 없으니 하기도..ㅎㅎ
항상 응원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1-06-30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 같이 운다 ㅠㅠㅠㅠ 저도요 제 눈물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이 넘어짐이 아픈데… 좋아요 ㅠㅠ

난티나무 2021-06-30 15:14   좋아요 1 | URL
같이 울어주셔서 고마워요~ 가슴 아프고 좋은 거.. 뭐라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흑흑.

공쟝쟝 2021-06-30 15:16   좋아요 1 | URL
웅 많이 울어요, 토닥토닥! 내맘 내가 잘 알아주면 돼죠 // 우리에겐 책과 글쓰기가 있다!!!

난티나무 2021-06-30 15:24   좋아요 1 | URL
뽜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