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지] 밑줄

3장 뒷부분.

지금까지 밑줄 그은 부분들 너무 많아 다 옮기지 못할 듯 싶다…@@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대상에게 돌리는 일은 단순히 특정 감정상태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여기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좋은가 해로운가 하는 판단이 들어 있다.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공리주의적 윤리는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일상의 주문이 되었다. 사라 아메드는 이 모든 ‘감정 단어‘ 가운데 행복이 윤리와 가장 가깝게 붙어있다고 보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삶은 행복한 삶이다. 선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최고의 사회는 가장 행복한 사회다." 따라서 행복의 논리 안에는 ‘불행의 원인이라는 말로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단순하게 보자면, 모성을 행복으로 재현할 때 모성은 여성에게 좋은 것이 되고, 임신중지를 불행으로 가정할 때 임신중지는 여성에게 나쁜 것이 된다. 모성적 행복과 임신중지의 애통함은 임신중지 여성을 모성적 주체로 만드는 일로 수렴한다.
‘애통한 임신중지‘와 ‘즐거운 모성‘이라는 감정경제는 아이를 갖지 않은 여성을 ‘아이 없는 childless‘ 여성으로 부르는 식의 담론을 통해 힘을 얻는다. ‘아이로부터 자유로운childfree‘이라는 대안적 명칭과 비교했을 때, ‘아이 없는‘이라는 말에는 아이 없이 사는 삶이 상실과 불완전에 가깝고, 아이가 있어야 완전함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이 없는‘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붙는 형용사인데, 완전함에 관한 전제가 특별히 젠더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이로부터 자유로운‘이라는 형용사는 양육할 때 생기는 시간•돈의 제약 조건을 인지하면서, 모성을 (이를테면 이전의 독립성에 대한) 상실로 다시 상상할 여지를 준다. 단언컨대 모성에 대한 후회나 상실은 사실상 입 밖에 낼 수 없는 감정이다. (전자책 44%)

모성에 대한 환상이 여성을 모성으로 끌어당겨 문화를 화학반응처럼 느끼게 한다. 임신중지의 감정경제는 모성적 행복이라는 약속과 임신중지의 애통함을 포함한다. 이것이 규범적 여성성에 대한 비슷한 정서적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전자책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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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7 0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겨우 서문인데도 밑줄 박박 그어요 ㅎㅎ 3장 이시라니, 곧 따라갈게요!

난티나무 2022-08-17 18:18   좋아요 1 | URL
밑줄 그은 목록에서 한없이 스크롤을 해야 하는 ㅎㅎㅎ(전자책이라서요^^)
저도 끝까지 아자아자!!!
그런데 머리가 너무 복잡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7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 장에서도 계속 밑줄 긋기가 되는 책이군요?
저는 서문에서만도 밑줄 도배를!!!^^
지금 현재로선 제일 우등생이십니다.ㅋㅋㅋ

난티나무 2022-08-18 03:35   좋아요 1 | URL
진도만 나가고 있어서 ㅎㅎㅎ
밑줄 너무 많죠?^^
 

(어쩌다 보니 계속 빠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럴 때 있잖은가, 꼭 뭘로 연결된 것처럼, 어제 본 건데 책을 펼쳐도 튀어나오고 사진을 봐도 튀어나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는데 또 나오는, 우연이 겹치는 그 순간들.) 


월요일 읽은 12장 플라뇌르, 또는 도시를 걷는 남자, 에서는 빠리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자들의 길 걷기(배회하기)에 대한 이야기지만 장소들과 그 시대의 모습, 역사의 단편들까지, 앞부분에 비해 더 재미나게 읽었다.(물론 이 남자들 때문에 빡치는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익숙(?)한 장소들이 나와! 익숙하다고 해서 그 장소들을 잘 안다거나 자주 가봤다거나 역사를 꿰뚫고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ㅎㅎㅎ 그러면서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장소들을 내가 조금만 더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빠리 뒤에 이어지는 장소는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다. 가본 곳의 거리 이름이 그리 반가울 줄.ㅋㅋ


12장 첫머리에 빠리의 겉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적잖이 공감했다. 카페가 '길거리를 바라보'도록, '길거리로 흘러넘치게 되어 있'는 것, '청동이나 대리석의 누드 여자들이 길거리 곳곳에 조각으로 세워져 있거나 부조로 새겨져 있는' 것, '큰 건물들은 공원을 안뜰처럼 둘러싸'는 것 등. 특히 누드 여자에 대해서는 ㅠㅠ 조각이나 부조 말고도 길거리에 서있는 '거의 누드' 여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체로 광고이미지들인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도 안 볼 수 없게 큰 크기이다. 예전에 내가 스치면서 본 것들은 주로 명품광고들이었다. 하나같이 여자를 물건으로, 성적대상화한 것들이었다.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런 이미지들을 봐야 한다는 건 고역이다.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도 마찬가지. 이런 이미지들을 의도와 상관없이 매일 접하고 살게 되는 사회... 반대합니다, 여성을 상품화/대상화하는 이미지들.



(빠리 한 카페 풍경. 좁은 길에도 이렇게 테이블과 의자를 빼곡히 놓는다. (출처: https://www.thefork.com/)



음 그러니까 여기서는 책에 나온 장소 이야기. 8월초 빠리에 갔을 때 걸었던 길에서 본 몇몇 장소가 책에 나와 반가웠다. 잠깐씩 짚어보자면, 먼저 아케이드. 

"아케이드는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 바닥은 대리석 모자이크 포석이고 좌우는 상점들이 늘어선 형태였다. 지붕은 강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자재로 되어 있었고 조명은 가스등이었다. 파리에서 가스등을 처음 밝힌 곳이 바로 아케이드였다. 아케이드는 파리에서 생겨날 대형 백화점의 전신으로서 (그리고 그 후에 미국에 생겨날 쇼핑몰의 전신으로서) 사치품을 판매하고 할 일 없는 배회자들을 수용하는 품격 있는 장소였다. 베냐민은 아케이드 덕분에 배회자에 대한 관심을 보다 마르크스주의적인 다른 주제들과 연결할 수 있었다."(439/704) 

오호, 그렇구나. 빠리에는 빠사쥬(passage) 혹은 갈러리(galerie)라고 불리는 아케이드들이 있다. 책에 의하면 대대적인 빠리 공사 때 상당한 아케이드가 사라졌다고 한다. 공사에서 살아남은 아케이드들은 지금 여러 식당과 상점들로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장소가 되었다. 이번에 아주 조금 아케이드를 걸었다. 예전 여행할 때 이런 빠사쥬들만 골라서 길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가게 구경, 식당 구경... 자연스레 느린 걸음이 되었다. 찍은 사진이 어디 있을 텐데 찾지를 못해서 펌으로 가져와본다.



(Passge des Panoramas 빠사쥬 데 파노라마)



(Galerie Vivienne 걀르리 비비엔느)



(Passage du Grand-Cerf 빠사쥬 뒤 그랑세르) 



(Passage des Princes 빠사쥬 데 프랑스) 



(Passage Jouffroy 빠사쥬 주프루아)


(사진들 출처 : https://www.parisinfo.com/)




다음으로는, 루브르박물관과 팔레 루아얄.

"(도시 재개발 이전의) 파리는 놀라울 정도로 계층 간 격리가 행해지지 않은 도시였다. 루브르 궁전의 안뜰에는 일종의 슬럼이 들어서 있었고, 팔레 루아얄 회랑 정원에서는 섹스와 사치품과 책과 음료는 유료, 구경거리와 정치 연설은 무료였다." (441/704) 

빠리는 재개발 시기를 지나면서 계층 간의 격리도 이루어졌는데 지금처럼 외곽에 하층민들이 살게 된 것도 그 때 이후라고. 2022년의 여름 35도의 땡볕 아래 들어선 루브르박물관의 드넓은 광장(?)에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와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한없이 길게 줄을 선 여행객들, 그늘을 찾아 건물 아래 모여앉아있는 엄청난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다. 웅장한 건물로 둘러싸인 그곳이 예전에 안뜰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 그곳은 낮이나 밤이나 늘 오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공간이 되었다.



(루브르박물관 풍경 일부) 


(루브르박물관 늦은 저녁 풍경 일부)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은 북쪽에서 걸어내려가면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좁은 통로를 찾아내어 들어서면 건물보다 정원을 먼저 보게 된다. 작은 분수와 분수를 따라 놓인 벤치들과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 길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의 뽀얀 흙길. 양쪽으로 늘어선 회랑에는 작은 까페도 있다.


(출처 : https://www.vmfpatrimoine.org/)



(출처 : https://www.vmfpatrimoine.org/)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인 팔레 루아얄. (출처 : https://www.culture.gouv.fr/)



(땡볕을 나무그늘이 가려준다. 정원의 일부.)



* 친구들과 짧고 굵게 걸은 길의 지나온 장소들을 책 속에서 보게 된 즐거움.^^ 그래서 한번 늘어놓아보았다. 의도한 것도 아니고 책도 나중에야 읽었는데, 책 속의 장소들과 묘하게 겹쳐서 놀라웠다. 훗. 


* 기타 :  "인기 있는 산책로로는 센 강 우안의 샹젤리제, 튀일리 정원, 아브뉘 드 라 렌, 팔레 루아얄, 불바르 데 이탈리엥, 그리고 센 강 좌안의 파리 식물원과 뤽상부르 공원이 있었다." (442/704) 여기서 말하는 '튀일리 정원'은 아마도 튈르리 정원을 말하는 것 같다. (Jardin des Tuileries) 이 단어만 영어식으로 읽은 건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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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7 0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꺅 >.<
파리에 만 하루도 있지 않았건만 언급하신 곳들(사진으로 올려주신 곳들) 다 제가 보고 왔네요! 아 뿌듯합니다. 너무 좋네요. 껄껄. 좋은 길로 안내해주셔서 감사해요! :)

난티나무 2022-08-17 18:21   좋아요 2 | URL
책 읽다가 깜놀했어요.ㅎㅎ 이런 우연이???
의도한 거 아닌데 간 곳이 나오니 기분도 좋고~ 헤헷

mini74 2022-08-1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만 봐도 거리들이 정말 예쁘고 걷고 싶네요. 길가다보면 민망을 넘어서 화가 나는 광고판 사진을 보게 되기도 하지요. ㅎㅎ 사진들로 눈호강합니다. ~~

난티나무 2022-08-17 18:22   좋아요 1 | URL
저는 자동차길 말고 한적한 동네 까페 테라스 자리에 앉아 멍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싶어요.ㅎㅎㅎ 그때의 단 하나의 방해물은 바로, 담배연기, 되겠습니다.^^;;;;;;;
광고사진들이 거개가 여성혐오를 담고 있어서 눈에 띄면 화가....ㅠㅠ

바람돌이 2022-08-17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분이서 이렇게 걸으셨단 말이지요. 아 저도 언젠가는 걸을 수 있겠지요? 다 가보고싶어 부러워서 눈물이....ㅠㅠ

난티나무 2022-08-17 22:25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도 곧 걸으러 오실 수 있기를~!!^^
저도 또 가고 싶네요. ㅎㅎㅎ

공쟝쟝 2022-08-17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그르니까 제가 걸어댕긴 곳들이네요?ㅋㅋㅋ 으히히히! 아케이드에 대한 설명이 매우 찰떡처럼 알아먹어지는 것이 보지 않았으면 몰랐겠죠? 게다가 베냐민 베냐민이라 ㅎㅎㅎㅎㅎㅎ 암 생각 없이 걷기만 했는 데 또 누구는 그걸 사색하고 ㅋㅋㅋ 인용된 책도 솔닛 책인 것!!! 추억 필터 입혀져서 또 아 진짜 넘 좋다 ㅠㅠ 넘 좋으네요 ㅠㅠ

난티나무 2022-08-17 22:40   좋아요 1 | URL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기획했었대요.(마지막 미완성 저서)
˝배냐민은 자기를 가리켜 ˝악어 아가리를 지렛대로 비틀어 열고 거기 들어가 사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문학을 제일 좋아했고 거의 일평생을 프랑스 문학에 나오는 조연들처럼 배회하면서 살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바로 프랑스 문학인 것 같기도 하다. 파리를 탈출할 시기를 놓친 것이 프랑스 문학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베냐민 죽음에 대한 일화도 나오고, 암튼 흥미로웠습니다, 베냐민 잘 모르지만서두.ㅎㅎㅎ
아렌트도 1960년대에 파리에 산 적이 있다네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 이 책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때 빠리 두둥 나와서 잠 확 깨는 기분.^^ 추억 필터 ㅋㅋㅋㅋ 맞습니다 맞고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8-17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빠리...자주 언급해 주시니 빠리가 친근해지고 빠리에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전 빠리 한 번 걸어보는 게 약간 소원이었는데 다락방님이 냄새에 허걱~ 하시어 진짜 지저분한가보네? 싶어 살짝 보류했지만 또 난티님의 사진을 보니...홍야홍야~^^

난티나무 2022-08-18 03:38   좋아요 2 | URL
지저분한 건 맞습니다만 ㅎㅎㅎ 저는 그래도 가끔 생각나고 가고 싶어지기도 해요. 무엇보다 맛있는 한식을 파는 식당이 많고(응?ㅋㅋ) 한국식 신식(?) 커피를 마실 수도 있어서요.ㅋㅋㅋ 주로 먹는 데 진심이네요 제가? 푸핫.

mini74 2022-09-0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당선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난티나무 2022-09-09 05:41   좋아요 0 | URL
앗 mini74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요~~~^^
 

빠리에서의 한나절, 매일 시장이 서는 골목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박물관을 찾았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옆지기가 어디서 봤는지 여성작가의 전쟁사진전이 열리고 있다고 알려줬다. 지난 달 읽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바로 떠올랐다.




(빠리 해방/드골 장군/장 물랑, 의 이름을 단 박물관.)




(입구 출입문에 붙어있는 전시포스터.)



책을 읽을 때도 울지 않기 위해 마음의 거리를 두고 읽어야 했기에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거리 생성, 울지 말 것. 그런 사진들이 없을 수도 있었다.






당시의 잡지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서술을 사진으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신중하게 고른 느낌이 들고. 세계대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전쟁들도 많았다...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우는 이 아이를 볼 때만 해도 거리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전쟁터에는 눈물만 있는 게 아니다. 폐허 속 아이들의 웃음. 웃음들조차 보는 이에게는 슬프게 느껴지지만 슬픔이라는 단어 하나로 (전쟁 속) 삶을 압축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알지. 


많지 않은 사진들을 주욱 보며 돌다가 결국 눈물이 터졌다. 죽은 아이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지나온 사진 속 여성의 눈빛, 무표정 뒤에 숨은 감정들,이 내가 만든 거리를 넘어올 것같아 남은 사진들은 더 먼 거리를 두고 스쳐지났다...


규모도 아쉽고 사진의 내용도 좀 아쉽기는 했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이 사진작가들이 공개하지 않은 사진들이 어마어마할 것같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존재, 참여자와 피해자와 증인으로서의 여성, 그들을 바라보는 여성작가, 이런 걸 사진으로 더 많이 보고 싶었다. 그래도 관람객이 많았다는 사실에 혼자 안도했다. 내가 워낙 모르기도 하지만 이 여성사진작가들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좀 슬펐고. 그럼에도 여전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작가들 : 

Lee Miller (1907-1977), Gerda Taro (1910-1937), Catherine Leroy (1944-2006), Christine Spengler (née en 1945), Françoise Demulder (1947-2008), Susan Meiselas (née en 1948), Carolyn Cole (née en 1961), Anja Niedringhaus (1965-2014)





(사진 출처 : https://www.museeliberation-leclerc-moulin.paris.fr/exhibitions/femmes-photographes-de-guerre)






Musée de la Libération de Paris : 4 Av. du Colonel Henri Rol-Tanguy, 75014 Paris, 프랑스


















(책과 연결되는 전시라 생각해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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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6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안타깝네요.

난티나무 2022-08-17 02:19   좋아요 2 | URL
사진 속 여성들이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우리 눈에는 보이는....ㅠㅠ

미미 2022-08-16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덕분에 멀리 빠리에서 하는 전시회 구경을 했네요! 폐허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아이들...

난티나무 2022-08-17 02:21   좋아요 2 | URL
아이들의 웃음이 어찌나 천진난만한지요.
복잡미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mini74 2022-08-1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이오 전쟁 사진전 본 기억이 떠오르네요. 전쟁은 장소만 바뀔뿐 그 처참한 모습은 똑같은거 같아요. ㅠㅠㅠ

난티나무 2022-08-17 18:25   좋아요 0 | URL
그쵸...ㅠㅠ 전쟁도 전쟁이지만 사진으로 남기는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전쟁은...> 읽을 때도 그랬고요.
 

오늘이 14일, 하루 자고 일어나면 일주일이 가버린 느낌으로 시간이 간다. 오늘을 기록하지 않았어, 어떡하지, 내 시간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어, 라고 안타까워하던 작가가 누구였더라, 울프였던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한 방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식구라 해도 그렇지만 아닌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오래전 그걸 피부로 느끼고는 도대체 왜 어려웠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다니러 가면 친구와 짧은 밤을 함께 보내곤 했다. 때론 친구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간 바닷가 펜션에서의 하룻밤이기도 했고 서울 호텔방에서의 이틀밤이기도 했고 친구네 집 안방 침대에서의 하룻밤이기도 했다. 그 밤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편안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친구네 집에서 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은 친구와의 스스럼없는 관계 때문이 아닐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내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말해도 괜찮은 사이, 알아듣고 이해하고 감응할 수 있는 사이.

몇년 전 유럽에 사는 나(만)를 믿고 여행을 온 다른 친구와 함께 방을 쓰던 첫날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옆 침대에 누운 그 친구가 계속 신경쓰였다. 불편했다. 왤까, 나는 그 친구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피부로 느껴지는 거리감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 불편한 거리감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함께 자는 마지막 밤에도 나는 그다지 편하지 못했던 것같다. 마음을 열지 못한 탓일까. 그때도 나는 유럽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뭣도 모르면서 여행가이드를 자청했고,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쉽고 모자랐던 기억이 많은, 그런 여행이 되어버렸고, 이 일이 어떤 계기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 친구와는 멀어져버렸다. 그렇게 잃고 싶지는 않았는데.


방을 잡고 함께 자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친구들에게 그래서 놀랐다. 우리 얼굴도 모르는데요. 초면에 같이 자는 거 괜찮아요? 결론을 말하자면, 완전 괜찮았다. 한 달도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책상 앞에 앉아있기를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의자도 아닌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몇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팽개쳐두고 자기 전까지 폰을 잊었다. 내 옆에 과자봉지들을 두고는 그걸 뜯어서 먹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이 외에도 잊은 것이 많을 것이다.ㅎ)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한 친구의 입꼬리 올라가며 나란한 이가 보이는 웃음을 보는 것이, 온몸으로 웃으며 즐거움을 표현하는 한 친구의 몸짓을 보는 것이, 좋았다. 처음 만난 사이 맞아? 이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피곤했던 친구들은 늦은 시간 침대에 눕자 이내 곯아떨어졌다. 코를 골지도 몰라요, 하며 내게 건넨 건 주황색 스펀지귀마개. 그것이 또 내 손에까지 들어온 것도 재미있었다. (찬조출연 알라딘 ****님.^^) 나는 그날 밤을 새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일찍 잠들어버리면 안 되니까, 오후 늦게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준비(?)를 했던 터라 ㅋㅋㅋ 잠이 오지 않았다. 밤에 두어 시간 간격으로 자주 깬다고, 한국의 직장인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라고, 그러니 그 때문에 내가 덩달아 잠을 설칠 수도 있다고 친구들이 말했는데, 나는 직장인이 아님에도 자주 깨는 그 경험을 너무 잘 알고 그래서 피곤한 다음날을 지내게 되는 일도 너무 잘 알았다. 그건 시간에 대한 압박감,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꼭 일어나야만 하며 그렇지 못했을 때 닥칠 예상 가능한 상황을 마주할 것이 싫은 데서 오는 압박감,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중에 생각했다. 출근 시간 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 있거나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대기하고 있거나 불안/스트레스가 쌓인 상태라면 두 시간에 한번씩 깨는 일은 다반사, 나도 모르지 않는 경험들.

새벽에 또 놀란 일 하나.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코도 골지 않고 자던 친구가 갑자기 또렷한 목소리로 옆친구에게 말을 거는데 분명 자고 있던 이 친구도 안 잔 것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거다. 그러더니 화장실에 다녀오던 친구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내 전자책을 보고는 부스럭부스럭 자신의 블루투스이어폰을 찾아 내 손에 쥐어줬다. 어둠 속에 누워서 생각했다. 저 두 친구는 잠자는 것까지도 스타일이 잘 맞는구나, 다행한 일이다. 조금 뒤에 생각했다. 잘 맞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구나. 내가 불편함을 1도 느끼지 않았던 것은 그런 배려심 때문이었겠구나.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배려.

아침 6시가 조금 넘었으려나. 늦게 잤어도 어김없이 일찍 잠 깨는 친구 1(숫자는 순서에 따른 것임)의 움직임에 설풋 잠이 들었던 나도 깨고 이어 친구 2도 일어났다.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앉아서 또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벽의 시간이, 아침의 한 시간이, 아니 1박2일의 시간 전체가 3박4일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담인가? 나 너무 질척?ㅋㅋ)


친구들과의 만남은 내가 그동안 많이 외로웠나 하는 생각에 무게를 더했다. 한번도 내가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입밖으로 단어를 내뱉는 순간, 한없이 외로워질 것을 직감했을지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그 필요를, 새삼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보는 일은 괴롭기도 하지만 겪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이제야 새삼 뼛속 깊이 한다. 괴로움이 적어지다가 사라지는(과연?)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어디에서든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그 날도 오기를 바란다. 또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날도 오기를 바란다. 그때쯤이면 지금 서툰 내 언행이 그동안 흐른 시간만큼 조금 덜 서툴기를. 나는 2022년 8월 빠리의 그날 밤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호텔방 사진도 없고 호텔 앞 거리 사진도 없고 ㅎㅎㅎ 북역이 보이는 저녁 거리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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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4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8-14 2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상을 벗어난 며칠의 동행, 넘 좋아보입니다. 자신을 바라볼 땐 서툴다고 느끼지만 함께 있는 풍경은 아름답기만 할 겁니다.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8-14 23:48   좋아요 4 | URL
맞아요 오래 기억할 거예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얄라알라 2022-08-15 0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름~다워~~하면서 읽다가
후반부 쯤 난티나무님께서 ˝나 너무 질척?˝에서 ㅋㅋ반전 매력!
(두 친구분의) 배려가 삶의 자세임이 느껴지게 쓰셨을 뿐더러 실로 그러하실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찾아오신 두 분의 성향이.
그리고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8-15 01:4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반전 매력이라고 말씀해주시네요.^^
삶의 자세!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친구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
저는 뭐 아직 한참 멀었구요.^^;;;;

책읽는나무 2022-08-15 0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의 미담은 여기저기에서 끝이 없군요?ㅋㅋㅋ
캐리어에 배려의 선물을 준비해 가신 난티님도 감동이시지만, 그 밤과 새벽의 시간들 속 두 분도 천상 배려가 몸에 장착되신 분들이시군요.
내가 만약 겪게 되었다면 나는 그렇게 배려심 있게 다정한 환대를, 또는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주인을 편하게 해 주려는 배려를 저렇게 자다가도 옹냥옹냥~ 할 수 있었을까?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란 저런 모습일 수 있겠구나! 란 생각도 해 봅니다. 성향들이 잘 맞으셔서 좋은 추억 기분 좋은 추억이 되셨겠습니다^^

난티나무 2022-08-16 05:03   좋아요 3 | URL
아니 제 집도 아닌데 주인은 아니고…ㅋㅋㅋ
옹냥옹냥, 이 말 왤케 재밌어요?^^ 책나무님 말씀처럼 옹냥옹냥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ㅎㅎㅎ

mini74 2022-08-15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조용한데 티티타카가 맞는 느끼입니다. 난티나무님 말씀처럼 배려겠죠. 그것도 자연스럽게 몸에 벤... 그 밤의 평온함과 따스함이 부럽습니다. ㅎㅎㅎ

난티나무 2022-08-16 05:09   좋아요 2 | URL
평온함과 따스함,이라 하시니 그날 밤의 더위가 생각나고 ㅎㅎㅎ 새벽의 고요도 생각나네요.^^

미미 2022-08-15 1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인 시간을 무척 즐기지만 사람이 참 좋기도 하거든요. 난티나무님의 사람 좋아함이 뭉클하게 전해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사진 예뻐요ㅋㅋㅋ

난티나무 2022-08-16 05:13   좋아요 2 | URL
맞아요 미미님. 혼자가 좋은데 또 사람도 참 좋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군요?!!! ^^ 라고 적으며 여러 생각이…ㅎㅎㅎ

다락방 2022-08-1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_____________^

한국에 오시면 혹은 다른나라에서라도 우리 꼭 또 만나요!! 그 날의 환대에 대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난티나무 2022-08-16 17:30   좋아요 1 | URL
아니, 환대가 보답하는 거였나요?ㅎㅎㅎ
하지만 계속 주거니받거니 보답하고 싶어진다네에~~~~~~~ㅋㅋㅋㅋㅋㅋㅋㅋ

2022-08-1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6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6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08-16 1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퀴퀴하고 콘센트도 하나뿐이던 호텔마저ㅠ낭만적이었던 것 처럼 필터 껴져서 기억되는 매직—! 역시 친구는 글로 사귄 친구…?!? 가 최고네요! 이렇게 글로 보니 더 잊혀지지 않을 것 같고 막 그래요! 😉

난티나무 2022-08-16 17:44   좋아요 2 | URL
그 어마무시한 호텔 이야기는 다락방님이 쓰신다고 했으니 기대 중이고요.ㅋㅋㅋㅋㅋㅋㅋ
머릿속에만 저장하기 아쉬워서 글로 썼는데 음 매직이 너무 과해버렸나요?ㅎㅎㅎ
 














전에 얼마 못 읽고 반납한 책을 다시 대출했다. 책은 그걸 읽을 때의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 똑같은 내용이 달리 느껴지는 법이므로 내심 기대를 했다. 정희진의 글은 거의가 매우 좋지만 때론 아주아주 가끔 와닿지 않을 때도 있거든. 지난번에 그랬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같다. 대출한 책 첫 페이지를 다시 읽는데 응? 분명 그때도 공감하며 읽었을 텐데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왤케 좋지? 뭐지? 막 좋아가지고 뭐든지 쓰려고~ 



"편파적이지 않은 가치는 의미가 없다." 사실 이 말은 동어 반복이다. 편파성 자체가 가치이고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협한 책 읽기'는 편협하지 않다. 모든 책이 편협할 뿐 아니라 편협(Partiality)을 기점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 전자책 5% 지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머리말 중 


책을 읽거나 드라마/영화/티브이프로그램 등을 보고 난 후 쓰는 글이 편협하지는 않은가 늘 생각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습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더군다나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한다. 페미니즘 안경을 장착하고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드는 건 아닌지(솔직히 이러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호평 일색의 평들을 보고 의아했다. 내가 이상한가? 좋은 주제라는 건 알겠지만 그에 비해 입댈 것이 너무 많은데? 심지어 정희진의 책(<혼자서 본 영화>)에도 그 영화에 대해 내가 생각한 요소들은 나와있지 않았다. 이것이 지나친 생각인가? 어디가 얼마나 지나친가?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들이 거슬리는데? 아직도 그 영화 후기를 쓰지 못했다. 위의 구절을 읽고 그래서 반가웠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 네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다른 거라고, 의견은 원래 편협한 거라고,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말하라고. 당연한 말인데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알맞은 시점에 딱 맞는 글을 다시 본 셈이다. 편협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편협한 채로 써야 겠다. 일단은, 그 영화 후기부터? 




"'사회적 약자'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 밤 야식을 두고 사투한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 전자책 20% 지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1장 중에서 


어제 메일함에서 '못생겨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새긴 배지 이미지를 보았다. 이 말 자체가 외모에 대한 말하기이고 이미 잘생김/못생김의 사회적 기준이 들어있는 말이다. 뚱뚱해도 괜찮아, 키 작아도 괜찮아, 다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짧게 이 내용을 쓰면서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했다. 답은 한 가지.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 이 사회가 워낙 외모를 중시하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와 잘생겼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외모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잘생겼다 이쁘다,는 말 뒤에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가 숨어있을 테고 내 말과 행동이 그 열등감에 좌지우지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 몸에 대한 이 챕터에서 되도록 적게 말해야 한다는 구절을 만나니 (이 역시 나도 하던 말이고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속이 시원했다. 정신과 몸이 나눠진 게 아니라 하나라는, 몸이 곧 자아라는 도입부의 말도 역시 좋았고. 자꾸 봐야 익숙해진다. <몸의 말들>도 읽어야 할 리스트에 있었는데 얼른 읽고 싶어졌다. (이런 책이 너무 많다는 게...ㅠㅠ) 그리고, 배지를 본 글을 찾아 메일을 보내야 겠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크. 이걸 이젠 너무 확실히 알아버려서 내 인생 좀 어려워졌 ㅎㅎㅎ (그렇다고 이전에 쉬웠다는 말은 아님, 몰라서 괴로웠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낯설어지는 경험들을 하면서 그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고 있었던 나,들을 끄집어내서 찬찬히 살피는 일은 참 힘들다. 너 다 알잖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응 근데 그걸 언어로 풀어내니 참, 내가 과거에 어땠는지도 보이고 뭘 지나치게 하고 있는지 뭘 안하고 있는지도 보이고 그러더라고. 모른척 살아오기도 했고. 나는 나를 좀더 배워야 한다. 그러는 중이고 그러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알고 나를 알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친구들이 새삼새삼 새록새록 소중해졌다. 이렇게 막 마음이 부풀어오르도록 말이다.

 

지금 책 20% 정도 읽고 이렇게 횡설수설 떠들고 있는데, 책을 한 권 샀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잠깐 잊었다. 책 샀다. 장안의 화제작,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제목 갑자기 생각 안나서 급 검색하고 옴.ㅠㅠ 어쩔. 그나저나 제목도 느무 좋다~) 이 책을 사고 읽기 위해서 저는 3권을 읽으며 준비하고 있답니다. 기특하지 않습니까? 물론 시리즈로 확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까지는 아니고 창문 정도는 되었으나 저의 '위치'를 인식하는 바람에 딱 한 권, 신간 한 권만 일단 샀습니다. 구간은 중고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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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11 0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편한걸 말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오는 작품의 역할은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한국사회처럼 보수적인 곳에서는 그런 발언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어쩌면 그래서 정작 시민사회의 토론문화는 부족하고 어쩌면 같은 이유로 사상가들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도 합니다.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수 있다고요. 다른 의견에 관대해지고 포용하는게 필요하다고. 저부터도 잘 못하고 있지만 덕분에 또 생각해봅니다.^^*

난티나무 2022-08-11 18:04   좋아요 1 | URL
토론문화부족에 동감합니다. 부정적인 낙인, 그걸 저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들이대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를 의심하는 습관도 좀 버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미미님 말씀처럼 관대와 포용의 자세를 기르기 위해,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고 용인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심합니다. 각자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건데 꼭 그 의견이 눈치보며 다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외모에 대한 지적은 참 공감하지만 저조차도 매번 화면 속에 등장하는 잘 생기고 이쁜 스타의 얼굴을 보며 저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또 상대를 그렇게 보는 건 아닌지 흠칫하네요~ 제가 쓴 글에도 그런 구석이 없는지 살펴보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어렵습니다^^;
저 책 저도 샀는데 1~3권 아직 읽지도 못해서...ㅎㅎㅎ 5권부터 먼저 읽고 거꾸로 읽을까도 싶네요.

난티나무 2022-08-11 18: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거리의화가님, 내 의견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외모 말하지 않기, 어려운 일이에요. 저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식하려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리라 생각해요.^^;; 지금은 말을 뱉고 주워담는 형국이라면 나중에는 말을 뱉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더 나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거꾸로 읽기도 좋네요! 저는 마구잡이로 읽기!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