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계속 빠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럴 때 있잖은가, 꼭 뭘로 연결된 것처럼, 어제 본 건데 책을 펼쳐도 튀어나오고 사진을 봐도 튀어나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는데 또 나오는, 우연이 겹치는 그 순간들.) 


월요일 읽은 12장 플라뇌르, 또는 도시를 걷는 남자, 에서는 빠리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자들의 길 걷기(배회하기)에 대한 이야기지만 장소들과 그 시대의 모습, 역사의 단편들까지, 앞부분에 비해 더 재미나게 읽었다.(물론 이 남자들 때문에 빡치는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익숙(?)한 장소들이 나와! 익숙하다고 해서 그 장소들을 잘 안다거나 자주 가봤다거나 역사를 꿰뚫고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ㅎㅎㅎ 그러면서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장소들을 내가 조금만 더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빠리 뒤에 이어지는 장소는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다. 가본 곳의 거리 이름이 그리 반가울 줄.ㅋㅋ


12장 첫머리에 빠리의 겉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적잖이 공감했다. 카페가 '길거리를 바라보'도록, '길거리로 흘러넘치게 되어 있'는 것, '청동이나 대리석의 누드 여자들이 길거리 곳곳에 조각으로 세워져 있거나 부조로 새겨져 있는' 것, '큰 건물들은 공원을 안뜰처럼 둘러싸'는 것 등. 특히 누드 여자에 대해서는 ㅠㅠ 조각이나 부조 말고도 길거리에 서있는 '거의 누드' 여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체로 광고이미지들인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도 안 볼 수 없게 큰 크기이다. 예전에 내가 스치면서 본 것들은 주로 명품광고들이었다. 하나같이 여자를 물건으로, 성적대상화한 것들이었다.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런 이미지들을 봐야 한다는 건 고역이다.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도 마찬가지. 이런 이미지들을 의도와 상관없이 매일 접하고 살게 되는 사회... 반대합니다, 여성을 상품화/대상화하는 이미지들.



(빠리 한 카페 풍경. 좁은 길에도 이렇게 테이블과 의자를 빼곡히 놓는다. (출처: https://www.thefork.com/)



음 그러니까 여기서는 책에 나온 장소 이야기. 8월초 빠리에 갔을 때 걸었던 길에서 본 몇몇 장소가 책에 나와 반가웠다. 잠깐씩 짚어보자면, 먼저 아케이드. 

"아케이드는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 바닥은 대리석 모자이크 포석이고 좌우는 상점들이 늘어선 형태였다. 지붕은 강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자재로 되어 있었고 조명은 가스등이었다. 파리에서 가스등을 처음 밝힌 곳이 바로 아케이드였다. 아케이드는 파리에서 생겨날 대형 백화점의 전신으로서 (그리고 그 후에 미국에 생겨날 쇼핑몰의 전신으로서) 사치품을 판매하고 할 일 없는 배회자들을 수용하는 품격 있는 장소였다. 베냐민은 아케이드 덕분에 배회자에 대한 관심을 보다 마르크스주의적인 다른 주제들과 연결할 수 있었다."(439/704) 

오호, 그렇구나. 빠리에는 빠사쥬(passage) 혹은 갈러리(galerie)라고 불리는 아케이드들이 있다. 책에 의하면 대대적인 빠리 공사 때 상당한 아케이드가 사라졌다고 한다. 공사에서 살아남은 아케이드들은 지금 여러 식당과 상점들로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장소가 되었다. 이번에 아주 조금 아케이드를 걸었다. 예전 여행할 때 이런 빠사쥬들만 골라서 길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가게 구경, 식당 구경... 자연스레 느린 걸음이 되었다. 찍은 사진이 어디 있을 텐데 찾지를 못해서 펌으로 가져와본다.



(Passge des Panoramas 빠사쥬 데 파노라마)



(Galerie Vivienne 걀르리 비비엔느)



(Passage du Grand-Cerf 빠사쥬 뒤 그랑세르) 



(Passage des Princes 빠사쥬 데 프랑스) 



(Passage Jouffroy 빠사쥬 주프루아)


(사진들 출처 : https://www.parisinfo.com/)




다음으로는, 루브르박물관과 팔레 루아얄.

"(도시 재개발 이전의) 파리는 놀라울 정도로 계층 간 격리가 행해지지 않은 도시였다. 루브르 궁전의 안뜰에는 일종의 슬럼이 들어서 있었고, 팔레 루아얄 회랑 정원에서는 섹스와 사치품과 책과 음료는 유료, 구경거리와 정치 연설은 무료였다." (441/704) 

빠리는 재개발 시기를 지나면서 계층 간의 격리도 이루어졌는데 지금처럼 외곽에 하층민들이 살게 된 것도 그 때 이후라고. 2022년의 여름 35도의 땡볕 아래 들어선 루브르박물관의 드넓은 광장(?)에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와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한없이 길게 줄을 선 여행객들, 그늘을 찾아 건물 아래 모여앉아있는 엄청난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다. 웅장한 건물로 둘러싸인 그곳이 예전에 안뜰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 그곳은 낮이나 밤이나 늘 오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공간이 되었다.



(루브르박물관 풍경 일부) 


(루브르박물관 늦은 저녁 풍경 일부)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은 북쪽에서 걸어내려가면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좁은 통로를 찾아내어 들어서면 건물보다 정원을 먼저 보게 된다. 작은 분수와 분수를 따라 놓인 벤치들과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 길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의 뽀얀 흙길. 양쪽으로 늘어선 회랑에는 작은 까페도 있다.


(출처 : https://www.vmfpatrimoine.org/)



(출처 : https://www.vmfpatrimoine.org/)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인 팔레 루아얄. (출처 : https://www.culture.gouv.fr/)



(땡볕을 나무그늘이 가려준다. 정원의 일부.)



* 친구들과 짧고 굵게 걸은 길의 지나온 장소들을 책 속에서 보게 된 즐거움.^^ 그래서 한번 늘어놓아보았다. 의도한 것도 아니고 책도 나중에야 읽었는데, 책 속의 장소들과 묘하게 겹쳐서 놀라웠다. 훗. 


* 기타 :  "인기 있는 산책로로는 센 강 우안의 샹젤리제, 튀일리 정원, 아브뉘 드 라 렌, 팔레 루아얄, 불바르 데 이탈리엥, 그리고 센 강 좌안의 파리 식물원과 뤽상부르 공원이 있었다." (442/704) 여기서 말하는 '튀일리 정원'은 아마도 튈르리 정원을 말하는 것 같다. (Jardin des Tuileries) 이 단어만 영어식으로 읽은 건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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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7 0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꺅 >.<
파리에 만 하루도 있지 않았건만 언급하신 곳들(사진으로 올려주신 곳들) 다 제가 보고 왔네요! 아 뿌듯합니다. 너무 좋네요. 껄껄. 좋은 길로 안내해주셔서 감사해요! :)

난티나무 2022-08-17 18:21   좋아요 2 | URL
책 읽다가 깜놀했어요.ㅎㅎ 이런 우연이???
의도한 거 아닌데 간 곳이 나오니 기분도 좋고~ 헤헷

mini74 2022-08-1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만 봐도 거리들이 정말 예쁘고 걷고 싶네요. 길가다보면 민망을 넘어서 화가 나는 광고판 사진을 보게 되기도 하지요. ㅎㅎ 사진들로 눈호강합니다. ~~

난티나무 2022-08-17 18:22   좋아요 1 | URL
저는 자동차길 말고 한적한 동네 까페 테라스 자리에 앉아 멍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싶어요.ㅎㅎㅎ 그때의 단 하나의 방해물은 바로, 담배연기, 되겠습니다.^^;;;;;;;
광고사진들이 거개가 여성혐오를 담고 있어서 눈에 띄면 화가....ㅠㅠ

바람돌이 2022-08-17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분이서 이렇게 걸으셨단 말이지요. 아 저도 언젠가는 걸을 수 있겠지요? 다 가보고싶어 부러워서 눈물이....ㅠㅠ

난티나무 2022-08-17 22:25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도 곧 걸으러 오실 수 있기를~!!^^
저도 또 가고 싶네요. ㅎㅎㅎ

공쟝쟝 2022-08-17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그르니까 제가 걸어댕긴 곳들이네요?ㅋㅋㅋ 으히히히! 아케이드에 대한 설명이 매우 찰떡처럼 알아먹어지는 것이 보지 않았으면 몰랐겠죠? 게다가 베냐민 베냐민이라 ㅎㅎㅎㅎㅎㅎ 암 생각 없이 걷기만 했는 데 또 누구는 그걸 사색하고 ㅋㅋㅋ 인용된 책도 솔닛 책인 것!!! 추억 필터 입혀져서 또 아 진짜 넘 좋다 ㅠㅠ 넘 좋으네요 ㅠㅠ

난티나무 2022-08-17 22:40   좋아요 1 | URL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기획했었대요.(마지막 미완성 저서)
˝배냐민은 자기를 가리켜 ˝악어 아가리를 지렛대로 비틀어 열고 거기 들어가 사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문학을 제일 좋아했고 거의 일평생을 프랑스 문학에 나오는 조연들처럼 배회하면서 살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바로 프랑스 문학인 것 같기도 하다. 파리를 탈출할 시기를 놓친 것이 프랑스 문학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베냐민 죽음에 대한 일화도 나오고, 암튼 흥미로웠습니다, 베냐민 잘 모르지만서두.ㅎㅎㅎ
아렌트도 1960년대에 파리에 산 적이 있다네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 이 책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때 빠리 두둥 나와서 잠 확 깨는 기분.^^ 추억 필터 ㅋㅋㅋㅋ 맞습니다 맞고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8-17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빠리...자주 언급해 주시니 빠리가 친근해지고 빠리에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전 빠리 한 번 걸어보는 게 약간 소원이었는데 다락방님이 냄새에 허걱~ 하시어 진짜 지저분한가보네? 싶어 살짝 보류했지만 또 난티님의 사진을 보니...홍야홍야~^^

난티나무 2022-08-18 03:38   좋아요 2 | URL
지저분한 건 맞습니다만 ㅎㅎㅎ 저는 그래도 가끔 생각나고 가고 싶어지기도 해요. 무엇보다 맛있는 한식을 파는 식당이 많고(응?ㅋㅋ) 한국식 신식(?) 커피를 마실 수도 있어서요.ㅋㅋㅋ 주로 먹는 데 진심이네요 제가? 푸핫.

mini74 2022-09-0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당선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난티나무 2022-09-09 05:41   좋아요 0 | URL
앗 mini74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