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14일, 하루 자고 일어나면 일주일이 가버린 느낌으로 시간이 간다. 오늘을 기록하지 않았어, 어떡하지, 내 시간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어, 라고 안타까워하던 작가가 누구였더라, 울프였던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한 방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식구라 해도 그렇지만 아닌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오래전 그걸 피부로 느끼고는 도대체 왜 어려웠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다니러 가면 친구와 짧은 밤을 함께 보내곤 했다. 때론 친구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간 바닷가 펜션에서의 하룻밤이기도 했고 서울 호텔방에서의 이틀밤이기도 했고 친구네 집 안방 침대에서의 하룻밤이기도 했다. 그 밤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편안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친구네 집에서 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은 친구와의 스스럼없는 관계 때문이 아닐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내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말해도 괜찮은 사이, 알아듣고 이해하고 감응할 수 있는 사이.

몇년 전 유럽에 사는 나(만)를 믿고 여행을 온 다른 친구와 함께 방을 쓰던 첫날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옆 침대에 누운 그 친구가 계속 신경쓰였다. 불편했다. 왤까, 나는 그 친구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피부로 느껴지는 거리감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 불편한 거리감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함께 자는 마지막 밤에도 나는 그다지 편하지 못했던 것같다. 마음을 열지 못한 탓일까. 그때도 나는 유럽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뭣도 모르면서 여행가이드를 자청했고,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쉽고 모자랐던 기억이 많은, 그런 여행이 되어버렸고, 이 일이 어떤 계기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 친구와는 멀어져버렸다. 그렇게 잃고 싶지는 않았는데.


방을 잡고 함께 자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친구들에게 그래서 놀랐다. 우리 얼굴도 모르는데요. 초면에 같이 자는 거 괜찮아요? 결론을 말하자면, 완전 괜찮았다. 한 달도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책상 앞에 앉아있기를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의자도 아닌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몇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팽개쳐두고 자기 전까지 폰을 잊었다. 내 옆에 과자봉지들을 두고는 그걸 뜯어서 먹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이 외에도 잊은 것이 많을 것이다.ㅎ)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한 친구의 입꼬리 올라가며 나란한 이가 보이는 웃음을 보는 것이, 온몸으로 웃으며 즐거움을 표현하는 한 친구의 몸짓을 보는 것이, 좋았다. 처음 만난 사이 맞아? 이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피곤했던 친구들은 늦은 시간 침대에 눕자 이내 곯아떨어졌다. 코를 골지도 몰라요, 하며 내게 건넨 건 주황색 스펀지귀마개. 그것이 또 내 손에까지 들어온 것도 재미있었다. (찬조출연 알라딘 ****님.^^) 나는 그날 밤을 새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일찍 잠들어버리면 안 되니까, 오후 늦게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준비(?)를 했던 터라 ㅋㅋㅋ 잠이 오지 않았다. 밤에 두어 시간 간격으로 자주 깬다고, 한국의 직장인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라고, 그러니 그 때문에 내가 덩달아 잠을 설칠 수도 있다고 친구들이 말했는데, 나는 직장인이 아님에도 자주 깨는 그 경험을 너무 잘 알고 그래서 피곤한 다음날을 지내게 되는 일도 너무 잘 알았다. 그건 시간에 대한 압박감,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꼭 일어나야만 하며 그렇지 못했을 때 닥칠 예상 가능한 상황을 마주할 것이 싫은 데서 오는 압박감,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중에 생각했다. 출근 시간 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 있거나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대기하고 있거나 불안/스트레스가 쌓인 상태라면 두 시간에 한번씩 깨는 일은 다반사, 나도 모르지 않는 경험들.

새벽에 또 놀란 일 하나.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코도 골지 않고 자던 친구가 갑자기 또렷한 목소리로 옆친구에게 말을 거는데 분명 자고 있던 이 친구도 안 잔 것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거다. 그러더니 화장실에 다녀오던 친구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내 전자책을 보고는 부스럭부스럭 자신의 블루투스이어폰을 찾아 내 손에 쥐어줬다. 어둠 속에 누워서 생각했다. 저 두 친구는 잠자는 것까지도 스타일이 잘 맞는구나, 다행한 일이다. 조금 뒤에 생각했다. 잘 맞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구나. 내가 불편함을 1도 느끼지 않았던 것은 그런 배려심 때문이었겠구나.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배려.

아침 6시가 조금 넘었으려나. 늦게 잤어도 어김없이 일찍 잠 깨는 친구 1(숫자는 순서에 따른 것임)의 움직임에 설풋 잠이 들었던 나도 깨고 이어 친구 2도 일어났다.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앉아서 또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벽의 시간이, 아침의 한 시간이, 아니 1박2일의 시간 전체가 3박4일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담인가? 나 너무 질척?ㅋㅋ)


친구들과의 만남은 내가 그동안 많이 외로웠나 하는 생각에 무게를 더했다. 한번도 내가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입밖으로 단어를 내뱉는 순간, 한없이 외로워질 것을 직감했을지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그 필요를, 새삼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보는 일은 괴롭기도 하지만 겪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이제야 새삼 뼛속 깊이 한다. 괴로움이 적어지다가 사라지는(과연?)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어디에서든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그 날도 오기를 바란다. 또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날도 오기를 바란다. 그때쯤이면 지금 서툰 내 언행이 그동안 흐른 시간만큼 조금 덜 서툴기를. 나는 2022년 8월 빠리의 그날 밤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호텔방 사진도 없고 호텔 앞 거리 사진도 없고 ㅎㅎㅎ 북역이 보이는 저녁 거리 사진으로.)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2-08-14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4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8-14 2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상을 벗어난 며칠의 동행, 넘 좋아보입니다. 자신을 바라볼 땐 서툴다고 느끼지만 함께 있는 풍경은 아름답기만 할 겁니다.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8-14 23:48   좋아요 4 | URL
맞아요 오래 기억할 거예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얄라알라 2022-08-15 0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름~다워~~하면서 읽다가
후반부 쯤 난티나무님께서 ˝나 너무 질척?˝에서 ㅋㅋ반전 매력!
(두 친구분의) 배려가 삶의 자세임이 느껴지게 쓰셨을 뿐더러 실로 그러하실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찾아오신 두 분의 성향이.
그리고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8-15 01:4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반전 매력이라고 말씀해주시네요.^^
삶의 자세!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친구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
저는 뭐 아직 한참 멀었구요.^^;;;;

책읽는나무 2022-08-15 0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의 미담은 여기저기에서 끝이 없군요?ㅋㅋㅋ
캐리어에 배려의 선물을 준비해 가신 난티님도 감동이시지만, 그 밤과 새벽의 시간들 속 두 분도 천상 배려가 몸에 장착되신 분들이시군요.
내가 만약 겪게 되었다면 나는 그렇게 배려심 있게 다정한 환대를, 또는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주인을 편하게 해 주려는 배려를 저렇게 자다가도 옹냥옹냥~ 할 수 있었을까?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란 저런 모습일 수 있겠구나! 란 생각도 해 봅니다. 성향들이 잘 맞으셔서 좋은 추억 기분 좋은 추억이 되셨겠습니다^^

난티나무 2022-08-16 05:03   좋아요 3 | URL
아니 제 집도 아닌데 주인은 아니고…ㅋㅋㅋ
옹냥옹냥, 이 말 왤케 재밌어요?^^ 책나무님 말씀처럼 옹냥옹냥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ㅎㅎㅎ

mini74 2022-08-15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조용한데 티티타카가 맞는 느끼입니다. 난티나무님 말씀처럼 배려겠죠. 그것도 자연스럽게 몸에 벤... 그 밤의 평온함과 따스함이 부럽습니다. ㅎㅎㅎ

난티나무 2022-08-16 05:09   좋아요 2 | URL
평온함과 따스함,이라 하시니 그날 밤의 더위가 생각나고 ㅎㅎㅎ 새벽의 고요도 생각나네요.^^

청아 2022-08-15 1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인 시간을 무척 즐기지만 사람이 참 좋기도 하거든요. 난티나무님의 사람 좋아함이 뭉클하게 전해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사진 예뻐요ㅋㅋㅋ

난티나무 2022-08-16 05:13   좋아요 2 | URL
맞아요 미미님. 혼자가 좋은데 또 사람도 참 좋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군요?!!! ^^ 라고 적으며 여러 생각이…ㅎㅎㅎ

다락방 2022-08-1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_____________^

한국에 오시면 혹은 다른나라에서라도 우리 꼭 또 만나요!! 그 날의 환대에 대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난티나무 2022-08-16 17:30   좋아요 1 | URL
아니, 환대가 보답하는 거였나요?ㅎㅎㅎ
하지만 계속 주거니받거니 보답하고 싶어진다네에~~~~~~~ㅋㅋㅋㅋㅋㅋㅋㅋ

2022-08-1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6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6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08-16 1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퀴퀴하고 콘센트도 하나뿐이던 호텔마저ㅠ낭만적이었던 것 처럼 필터 껴져서 기억되는 매직—! 역시 친구는 글로 사귄 친구…?!? 가 최고네요! 이렇게 글로 보니 더 잊혀지지 않을 것 같고 막 그래요! 😉

난티나무 2022-08-16 17:44   좋아요 2 | URL
그 어마무시한 호텔 이야기는 다락방님이 쓰신다고 했으니 기대 중이고요.ㅋㅋㅋㅋㅋㅋㅋ
머릿속에만 저장하기 아쉬워서 글로 썼는데 음 매직이 너무 과해버렸나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