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얼마 못 읽고 반납한 책을 다시 대출했다. 책은 그걸 읽을 때의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 똑같은 내용이 달리 느껴지는 법이므로 내심 기대를 했다. 정희진의 글은 거의가 매우 좋지만 때론 아주아주 가끔 와닿지 않을 때도 있거든. 지난번에 그랬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같다. 대출한 책 첫 페이지를 다시 읽는데 응? 분명 그때도 공감하며 읽었을 텐데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왤케 좋지? 뭐지? 막 좋아가지고 뭐든지 쓰려고~
"편파적이지 않은 가치는 의미가 없다." 사실 이 말은 동어 반복이다. 편파성 자체가 가치이고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협한 책 읽기'는 편협하지 않다. 모든 책이 편협할 뿐 아니라 편협(Partiality)을 기점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 전자책 5% 지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머리말 중
책을 읽거나 드라마/영화/티브이프로그램 등을 보고 난 후 쓰는 글이 편협하지는 않은가 늘 생각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습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더군다나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한다. 페미니즘 안경을 장착하고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드는 건 아닌지(솔직히 이러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호평 일색의 평들을 보고 의아했다. 내가 이상한가? 좋은 주제라는 건 알겠지만 그에 비해 입댈 것이 너무 많은데? 심지어 정희진의 책(<혼자서 본 영화>)에도 그 영화에 대해 내가 생각한 요소들은 나와있지 않았다. 이것이 지나친 생각인가? 어디가 얼마나 지나친가?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들이 거슬리는데? 아직도 그 영화 후기를 쓰지 못했다. 위의 구절을 읽고 그래서 반가웠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 네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다른 거라고, 의견은 원래 편협한 거라고,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말하라고. 당연한 말인데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알맞은 시점에 딱 맞는 글을 다시 본 셈이다. 편협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편협한 채로 써야 겠다. 일단은, 그 영화 후기부터?
"'사회적 약자'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 밤 야식을 두고 사투한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 전자책 20% 지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1장 중에서
어제 메일함에서 '못생겨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새긴 배지 이미지를 보았다. 이 말 자체가 외모에 대한 말하기이고 이미 잘생김/못생김의 사회적 기준이 들어있는 말이다. 뚱뚱해도 괜찮아, 키 작아도 괜찮아, 다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짧게 이 내용을 쓰면서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했다. 답은 한 가지.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 이 사회가 워낙 외모를 중시하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와 잘생겼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외모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잘생겼다 이쁘다,는 말 뒤에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가 숨어있을 테고 내 말과 행동이 그 열등감에 좌지우지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 몸에 대한 이 챕터에서 되도록 적게 말해야 한다는 구절을 만나니 (이 역시 나도 하던 말이고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속이 시원했다. 정신과 몸이 나눠진 게 아니라 하나라는, 몸이 곧 자아라는 도입부의 말도 역시 좋았고. 자꾸 봐야 익숙해진다. <몸의 말들>도 읽어야 할 리스트에 있었는데 얼른 읽고 싶어졌다. (이런 책이 너무 많다는 게...ㅠㅠ) 그리고, 배지를 본 글을 찾아 메일을 보내야 겠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크. 이걸 이젠 너무 확실히 알아버려서 내 인생 좀 어려워졌 ㅎㅎㅎ (그렇다고 이전에 쉬웠다는 말은 아님, 몰라서 괴로웠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낯설어지는 경험들을 하면서 그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고 있었던 나,들을 끄집어내서 찬찬히 살피는 일은 참 힘들다. 너 다 알잖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응 근데 그걸 언어로 풀어내니 참, 내가 과거에 어땠는지도 보이고 뭘 지나치게 하고 있는지 뭘 안하고 있는지도 보이고 그러더라고. 모른척 살아오기도 했고. 나는 나를 좀더 배워야 한다. 그러는 중이고 그러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알고 나를 알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친구들이 새삼새삼 새록새록 소중해졌다. 이렇게 막 마음이 부풀어오르도록 말이다.
지금 책 20% 정도 읽고 이렇게 횡설수설 떠들고 있는데, 책을 한 권 샀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잠깐 잊었다. 책 샀다. 장안의 화제작,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제목 갑자기 생각 안나서 급 검색하고 옴.ㅠㅠ 어쩔. 그나저나 제목도 느무 좋다~) 이 책을 사고 읽기 위해서 저는 3권을 읽으며 준비하고 있답니다. 기특하지 않습니까? 물론 시리즈로 확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까지는 아니고 창문 정도는 되었으나 저의 '위치'를 인식하는 바람에 딱 한 권, 신간 한 권만 일단 샀습니다. 구간은 중고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