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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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이야기를 꺼내며 불공평하다고 하면 으레 나오는 소리가 있다. "나는 돈을 벌잖아." (너는 돈을 안 벌잖아.) "나는 직장에 나가잖아." (너는 집에 있잖아.) "네가 나가서 돈을 벌어온다면 내가 살림을 도맡아 할게." (너는 어차피 지금 나가서 돈 못 벌잖아. 그러니 집에서 살림이나 해.)

이런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 만약 돈으로 환산이 된다면 얼마만큼일지, 환산금액을 들이민다 해도 식구들이 그걸 얼마나 피부에 와닿게 느낄지도 의문이다. 그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머릿속의 기획들을 설명하고(언제까지?) 자잘한 일들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맡겨버리고(그걸 보아낼 자신은 있고?) 일정한 규칙을 정해 지키도록 만들고(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나?) 가끔은 파업도 선언하고(과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을까) 그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면 자꾸만 하찮은 일인 것 같은 그것들을 하찮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고,정,관,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고! 약해지지 말고!


나는 돈 벌잖아, 이런 말은 남편들만 하는 말은 아니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한다. 직장 다니는 여자와 전업주부, 기묘함이 흐른다. 밖에 나가 돈을 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회의 모습이다. 오래 전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만난 친구가 밥값을 계산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돈 벌잖아." 너는 돈을 안 버니 돈을 버는 내가 네 몫까지 살게. 너 돈 없잖아. 식당에서도 까페에서도 나는 계산을 할 수 없었다. 네가 밥을 샀으니 커피는 내가 살게 하면 어김없이 "나는 돈 벌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돈 벌어, 하면 "나는 직장에 다니잖아."가 나왔다. 처음엔 괜찮았으나 들을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지금 생각하니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들의 말과 그 친구의 말이 비슷한 것이었네.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에다가 너는 돈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 너는 당연히 나에게 의존해야 하는 사람, 나는 네게 베푸는 사람, 너는 당연히 나를 존중해야 하는 사람, 돈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따라서 네가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하는 일보다 가치 없는 것,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너는 그런 사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

그 친구가 악의는 없었다는 걸 잘 안다. 나를 위해주는 것이었다는 것도 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절친도 나를 만나면 절대 내가 밥에 돈을 쓰지 못하게 했다. 절친은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그러니 '돈이 없을 나'를 완전 위해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친구의 말에 기분 나쁨을 느꼈으며 절친에게도 가끔 약간의 서운함 같은 애매모호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 옆지기가 그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일을 하잖아."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이 별거 없어 보인대도 엄청나게 수고로운 일이라는 걸 그동안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뜻밖의 말을 듣는다는 생각에 멍, 해졌다. 내가 집에서 하는 이 모든 일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회의에 빠진다. 심지어 옆지기는 프랑스 생활을 시작한 이래 몇 년간은 학생이었다가 최근 몇 년 전까지 프리랜서였다. 아주 가끔의 출장을 제외하면 24시간 동거. 웃음이 나는 걸 어쩌면 좋지. 이것저것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옆지기 입장에서는 엄청 기분나쁠 일이겠으나 나는 어이가 없다.

이런 생각의 차이를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지 때로는 갑갑하기도 하다. 나도 또한 고정관념의 틀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 살림 분담과 관련된 내용의 책을 읽을 때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누가 좋은 방법 좀 가르쳐줘요 자세로.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동안 읽은 페미니즘&성차별 책들에서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이라기보다 방향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찬찬히 생각했다. 내 방향을 찾는 것은 내 몫, 방향을 따라가다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도 내 몫.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없다. 내가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나부터, 내가 갖고 있는 죄책감, 내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좋은 엄마상, 이런 거 다 내다버려야 한다.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럴 수밖에,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책을 읽으며 반짝 불이 켜지는 것처럼 깨닫게 된 것은 없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을 만들어나갈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 살짝 위축은 된다. 여전히 "나는 일하러 가잖아."에 대응하는 문장을 찾기 어려운 상태에서 내가 얼마나 강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미셸 오바마도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ㅠㅠ) 

그러나, 그러니 읽자. 계속 읽자. 읽다 보면 방향은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방법도 떠오를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책의 표지에 왜 비닐봉지가 있는 것일까. 단순한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신경과학자인 엘리엇에게 전화해 내가 조사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당장 생각나는 불가피하거나 선천적인 요소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만화 주인공처럼 귀에서 연기를 막 뿜어낼 듯이 말했다. "핵심만 얘기할게요. 인간 행동 중에서 타고난 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으로 형성되죠. 성별 노동 분담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은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편리한 방편이에요." - P122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일은 인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자의 문제로 인식된다. 2018년 소설가 로런 그로프는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남자 작가가 이 질문을 받을 때까지 정중히 답변을 거절하겠다"고 답했다(네티즌들은 그로브의 거절에 대해 갈채를 쏟아냈다)." 2014년 할리우드의 여성Women in Hollywood 행사 연설에서 배우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제니퍼 가너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일을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공연 사업에 종사하는 당시 남편은 그런 질문을 한 번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P171

도이치는 연구 대상자 중 여성이 주양육자 역할을 맡는 불평등한 가족을 추려내고 이들 부부의 남편을 세 부류의 보조 양육자, 즉 도우미형, 나누미형, 태만형으로 나누었다. (중략) 전부 불평등한 가정을 연구하면서 도이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여자의 일정이 남자보다 자유롭다고 가정한다. 항상 엄마의 시간을 뺏는 게 더 수월하다. 엄마는 침해당하는 사람이다." - P185

사회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아빠들의 육아 참여율이 느리게 변화하는 현상을 두고 평등을 이룬 결과로 오인해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대체로 성공적인 남자의 저항"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변화가 왜 그렇게 느린지 묻지 말고, 대신 왜 남자가 저항하는지 물어라. "한마디로 그렇게 해야 남자한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콜트레인은 이렇게 썼다. 그 저항은 "남성적 이상을 뒷받침하는 성별 영역 분리를 강화하고, 여자보다 남자에게 특권을 주는 성 질서를 영속화한다." 파기되어가는 계약을 유지하려는 특권 계층의 철야 농성이고, 오늘날 벌어지는 비도덕적이고 냉혹한 일이다. 결혼 생활에서 이 저항이 성공하려면 남자들도 여자들의 노동을 할 능력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거부하면서 이를 철석같이 지켜나가야 한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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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29 2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급노동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을 아내의 의무라 하고 가정은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 지불방식이 존재하질 않으니까요. 뉴스에서 주부의 노동에 대해 월급여로 어느정도인지 계산해 준적이 있는데 마침 제 짝꿍과 같이 봤더랬죠. 그 계산대로 해보니 당시 결혼기간으로 측정해 1억이 넘었어요ㅋㅋㅋㅋ거기서 일단 논리가 형성됐고 <보이지않는 여자들>에서 읽은 사례들 중 일부를 한번씩 입력시키고 다른 여성학책들의 적당한 포인트로 주입... 저도 공부가되고 짝꿍도 놀라면서 이것저것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남자는 가장일꺼란 전제하에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게되고 여성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덜받게되고요.
‘주부는 집에서 논다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인데(가사도우미 부름 얼만지 한번 알아보라고 해보세요ㅋ) 여성들도 그리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이래저래 자꾸 읽고 짝꿍 비롯 주변인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끈기있게 퍼트리는것이 제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반복에 장사 없더라구요. 세상은 못바꿔도 가까운 사람들 몇 명에겐 영향을 미칠 수 있잖아요.
난티나무님 파이팅~^^♡

난티나무 2021-05-29 23:40   좋아요 4 | URL
미미님~^^ 저도 일단은 그것이 목표예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 미치기! 같은 집에 사는 남자들은 확 변했으면 좋겠고요.ㅠㅠ 그런데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포기는 못 해요. 그러면 이제 제가 너무 힘들어요.ㅎㅎㅎ
미미님처럼 계속 반복! 주입! 퐈이팅!!! 페미니즘 책을 같이 읽는 부부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기도 해요.ㅋ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2021-05-30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집안 일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겠습니다 예전보다 바뀌었다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하네요 집안 일을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하면 많은 돈을 받을 텐데, 그런 걸 생각해야 하는데... 바깥에서 일하는 걸 더 대단하게 여기는군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해도 조금이라도 말해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런 거 힘들 것 같지만...


희선

난티나무 2021-05-30 18:38   좋아요 2 | URL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저도 평생을 그런 줄 알고 살았으니까요. 알 수 없는 불만만 가득한 채로, 왜 그런지는 모른 채로. 여자인 저도 그런데 남자인 옆지기는 오죽할까요.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생각조차 할 필요 없었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울 거예요. 그걸 아니까 늘 고민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가끔 싸우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계속 싸우게 될 것 같습니다.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레이스 2021-05-30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을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난티나무 2021-05-30 18:38   좋아요 1 | URL
옳습니다~!!!!!!!!!!!!

- 2021-05-31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가장 어려울 옆지기와의 어려운 조율 ㅠㅠ 진짜 많이 바뀌어야할텐데요.. ㅠㅠ 난티님 밥 잘 챙겨드시구 더 읽으세요! 분명히 어느지점에서 난티님만의 방법을 찾으실 거예요! 응원합니다!!

난티나무 2021-06-01 04:51   좋아요 1 | URL
매일 얼굴 보는 사람이 제일 어렵네요. 매일 봐서 어려운가 봐요. 하긴 가끔 만나는 부모나 동생도 만나고 좀 지나면 어려워지더라고요? 예전엔 몰랐는데 이젠 말 안 통하는 지점이 엄청 늘어남... 아 웃프다.ㅠㅠ
공쟝쟝님의 응원에 힘입어 밥도 열심히 잘 먹고 걷기도 좀 늘리고 으쌰으쌰 계속 더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메리, 마리아, 마틸다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75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메리 셸리 지음, 이나경 옮김 / 한국문화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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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단 말이다. 재미가 없는 소설은 재미없단 말이다. 읽는 맛이 있어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의식의 흐름 기법에는 완전 꽝이란 말이다. 연극 무대에서 읊조리는 것 같은 말투는 오글진단 말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훌륭하신 메리 언니들, 별 다섯은 무리란 말이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너무 짧은 생을 살다 가서 내가 다 억울하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는 일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니까? 동시에 목숨을 거는 일이라니까? 이런 일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 어마무시하게 중요한 일이므로 지극히 정성스럽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임산부는 환자가 아니다. 환자 취급하지 말고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 작가 메리가 딸 메리를 낳고 얼마 후 후유증으로 죽었으므로 이런 이야기를 해본다. 오래 살았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을 것인가. 

또한 사후에 소설들을 모아 출판한 것이 그의 남편 고드윈이라는 점, 난 이거 삐딱하게 보겠어. 첨삭이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과연? 소설 중 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나오면 의심의 여지 없이 의심이 피어올라서 ^^;;;;; 


1. [메리]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선행과 신앙심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메리의 캐릭터는 어딘가 앞뒤가 안맞는 모양새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기는 했다. 그래도 너무 들쑥날쑥 아닌가? 그리고 남을 위해 사는 삶이라니. 나는 어디 가고? 동정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동정하는 것이 과연 마음으로부터의 동정인가, 가슴 아파하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어느 책에선가 그것은 동정이 아니라는 말을 봤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 좀더 작가 메리의 생각을 소설 속에 풀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말에 이르러서는 왠지 급하게 끝을 맺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종종 보이는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특권의식이 엿보이는 부분들.. 이래서 더 앞뒤가 안맞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니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평생의 친구 찾기가 이토록 힘든 것이다. 어떤 이야기라도 서로 할 수 있고 내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위로할 줄 알며 보듬어 줄 수 있는 평생의 친구. 


"메리는 손을 내저으며, 견딜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앤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제게는 다른 친구가 없어요. 앤을 잃는다면, 제게 세상은 사막과도 같을 거예요." "친구가 없다니." 모두 함께 되물었다. "남편이 있잖아요?" 

메리는 뒤로 물러나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붉어지기를 반복했다. 메리는 부적절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대답을 말하지 않고 이성을 되찾았다." (p.50) 


친구가 없다니, 남편이 있잖아요? ㅠㅠ 결혼하면 남편이 평생의 친구가 될 줄 알았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온세상의 (거의) 모든 여자들이 알 것이다. 알아서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채 아는 사람도 있다. 남편을 평생의 친구로 만들려면? 일생을 노력해야 한다. 그러고도 안 될 확률 매우 높음. 친구란 무엇인가 의미를 따지는 일부터 생각이 다름. (아 물론 예외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ㅠㅠ)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독특한 시험을 받는다. 그리고 괴로움은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찾아간다. 감수성은 미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성이 통제하지 않는다면, 감수성은 미덕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악덕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기독교만이 제멋대로 구는 감정과 마음의 충동을 다스리는 적절한 원칙을 제공할 수 있다. 아무리 선한 기질도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칠어지고 만다. 하지만 삶의 모든 문제가 거기 달려있다고 알면서도 마음을 부지런히 다스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략)" (p.100)


소설 전체에 흐르는 기독교에 대한 믿음은 그렇다 치고 이 부분은 뭐지 싶다. 

이밖에도 걸리적거리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 중 압권은 아래 구절이 아닐까 한다. 


" "저는 앤의 대리인이라 앤을 위해서 할 일이 있어요.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생각해 두면 돼요. 이미 마음은 정했지만요." 

"너무 서둘지 말아요, 내 아기." 헨리가 말을 막았다. (하략) " (p.72) 


오마이갓. 내 아기라니.@@ 아기야, 가자!도 아니고 뜬금없이 저기서 내 아기가 왜 나온담? 아기라니. 어처구니가. 흐름상 마이 베이뷔 나올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여담이지만 저 헨리라는 이름, 나만 그런가 모르겠다. 자꾸 티브이에 나오는 그 헨리가 생각나 이름 나올 때마다 죽는 줄 알았네.ㅋㅋ 왜 이럼.ㅠㅠ) 이런 단어나 구절을 만나면 이것이 과연 작가가 그냥 쓴 것일까, 일부러 쓴 것일까, 무슨 의도를 갖고 쓴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답을 모르겠는 상태가 된다. 허허. 



2. [마리아]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 소설은 제대로 다듬어지기만 했다면 훨씬 완성도가 높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아쉽다. 더군다나 미완성. 뒷부분에 나오는 제미마의 파란만장한 삶도 또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원치 않는 결혼에서 빠져나온 건 용감했다. 용감했으나 또한 방법이 어리석었다. 내가 이렇게 용감했다 어리석었다 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일이지만. (돈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어려웠을 테지. 결국 숙부의 존재가 그를 살린 거나 마찬가지네. 음. 숙부가 없었다면 남편이 결혼하려 하지 않았을 테니 그건 또 어땠을까 싶다. 어렵다 어려워. 남편 나쁜 놈!


마지막 마리아의 변호 편지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서 그래, 이렇게 써야 어울리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했다.^^;; 사상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새삼 느낀다. 


"아들들은 집안에서 문이 없는 기둥으로 간주되긴 하지만, 딸들이야말로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존재이니까. 딸들은 병든 부모를 간호하느라 자기 건강과 기력을 낭비하기 일쑤이지. 그래 봐야 부모는 딸들에게 비교적 적은 유산을 남기지만 말이다. 효심을 다해 아버지의 눈을 감긴 뒤, 딸들은 무의미한 가족의 성을 후손에 전달하는 큰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잖니. ..." (p.216~217) 


"... 세상에서 여자들이 높은 지위를 얻을 유일한 길이 남자들의 방탕을 조장하는 것밖에 없으니 사회는 여자들을 괴물로 만들고, 그들의 비열한 악덕을 지력이 열등하다는 증거로 내세운단다.(p.219) 


"... 어째서 여인은 남자보다 더 참을성 있게 처신을 제대로 못하는 남자를 견뎌야 하며, 넓은 마음으로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여성이 존중받고자 하는 것이 교만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사랑한다는 약속을 한 뒤에는 그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말을 듣기 때문에 정중한 부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 (p.228~229) 


"남자들이 만든 부당한 법이 그렇단다. 재산의 소유에서 비롯하는 편안함이라는 문제 속에서 여성의 종속적인 입지만을 강조하다 보니, 남자가 아내의 애정을 잃을 때보다 여자가 남편의 애정을 잃을 때 훨씬 큰 피해를 당하게 되니까." (p.241) 


" "권력을 남용하여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시신에 묶어놓는 폭군들도 영원히 낙인찍히지 않는가? 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마음을 철석의 족쇄로 묶어놓는 법이 훨씬 더 비인간적이다! 애정을 죽이거나, 오명을 마주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대안도 없는 비참한 상태와 견줄 것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 (p.255) 



3. [마틸다] - 메리 셸리 


메리 셸리, 아 <프랑켄슈타인> 읽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한글책도 없다.ㅎ) 시작하기가 두렵다. 왜냐하면... [마틸다]에서처럼 끝없는 감정 묘사의 향연이 펼쳐질 것 같아서.ㅎㅎㅎ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으나 마틸다의 감정을 따라가고 이해하기가 조금은 힘들었음을 시인한다. 너무나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고 보니 꼭 그랬어야만 했니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드는 게... 아아 어렵도다. 이 문제는 특히 더 어렵다. 그러나 근친상간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싶기는 하다. 


"우리는 이 드넓은 세상이 무슨 의미인지 모릅니다. 선과 악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는 까닭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 태어났고, 살면서 희망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너머 어딘가에 우리가 찾아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입니다. 불운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불운을 옆으로 치워두고, 우리의 본질이 바라게끔 하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와 같이 미래에는 선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준비인지, 저는 모릅니다. 혹은, 그것이 그저, 우리가, 신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청지기로서 후손들의 길을 닦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 그리고 후세를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의 경우처럼 지금 그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후세가 알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제 말 믿어주세요. 그들에게도 나름의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은 불행하기 때문에 슬퍼합니다. 당신이 구하는 것은 행복이지만, 그것을 얻는 것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에게 단 한 시간의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누구나 그럴 능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하략)" (p.422) 


소설 말미 우드빌의 말이다. 인용 앞부분은 작가가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만 우드빌은 "제 말 믿으세요"라는 문장을 반복하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이하 생략.) 

뒷부분은 또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대목인데...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살아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일까? 이 부분을 마틸다가 아니라 우드빌이 말했는데, 작가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닐까?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더군다나 자살. 많은 화두를 던지는 소설이다. 




* 덧붙임 : 책의 만듦새에 대해 불만이 있다. 아마 없을 수 없을 것이다.ㅠㅠ 글자 크기가 커서 책이 덩달아 커진 것은 장단점이 있겠으나 굳이 하드커버의 큰 책으로 엮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글자 크기 더 줄여도 잘 보이는데 말이다. 종이도 절약하고 일석이조 아닌가. 

무엇보다도 맞춤법 틀린 부분이 너무 많다. 앞뒤가 안맞는 부분도. 처음 오타나 띄어쓰기 발견할 때는 일일이 적어야지 했는데 너무 많아 못 적겠다. 플래그 붙인 모양만 사진으로 남긴다. 슬슬 대충 읽은 부분들도 있어서 저것이 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교정 안 보시나요. 좀 심하네요. 아 맞다. 내 책은 인쇄도 불량이었지. 그새 까먹을 뻔. 페이지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인쇄되어 있다. 교환신청 안 했음. 빠진 페이지는 (다행히도) 없어서 그냥 왔다갔다 하면서 정신없이 읽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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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18 0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난티나무님 완독하셨네요.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인쇄 불량에 오타 작렬이라니.. ㅠㅠ 게다가 재미도 없었다니.. ㅠㅠ 6월 책은 훨씬 나은 책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막 시작한 터라 부지런히 따라갈게요. 근데 저 메리 너무 답답해서.. 하하핫

난티나무 2021-05-19 05:03   좋아요 1 | URL
답답하죠?^^;;; 생각보다 더해서 오히려 깜놀 했지 뭐예요.ㅎㅎㅎㅎ
오타 나중에는 음 여기도 틀렸네 음 또 나왔네 이러고 봤어요.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8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완독 축하드려요!!!! 아무래도 마틸다에 관심이 가네요. 저도 진즉 시작했는데 ㅎㅎ 이제 막 달립니다^^

난티나무 2021-05-19 05:04   좋아요 1 | URL
마틸다 기대했는데 음음... 저는 어쩌면 프랑켄슈타인도 음음 하게 되지 않을까 겁부터 나지 말입니다.ㅋㅋㅋㅋ 달려요~

청아 2021-05-18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때 페이지 뒤죽박죽이라고 올리신것 봤는데 교환 안하셨군요ㅠㅇㅠ하긴...에고 보느라 몇 배는 고생하셨겠어요. 대단👍
‘믿으세요 하는 사람치고‘..ㅋㅋㅋ너무 재밌어요!! 저도 ‘좋은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런 브렌드나 간판 도대체 왜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본인이 진짜 좋은 사람이면...(이하 생략ㅋㅋ)
완독 수고하셨어용~^^♡

난티나무 2021-05-19 05:09   좋아요 1 | URL
넵 미미님, 감솨합니다~
그냥 봤어요. 귀찮..... 원래는 책을 돌려보내야 하더라고요. 새 책 다시 받고. 너무 멀어 원 왔다갔다 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다시 받아도 오타는 그대로일 것 아닙니꽈! 흑흑. ㅋㅋㅋㅋㅋ
때로는 좋지 못한 사람도 됩시다, 착하기만 한 사람은 되지 말아요, 우리~ㅎㅎㅎㅎ

- 2021-05-31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편있잖아요... ㅋㅋㅋ˝ (저도 여기서 뽱터짐.)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전처럼 다음 페이지에 저 문장이 딱 등장하는 데, 200년전 울스턴크래프트 여사님 뭔가 귀여워 ㅋㅋ 전 <메리>가 제일 재밌었는 데 풍자 소설처럼 읽었던 것 같아요. 만약 해설대로 자전적인 소설이라면 자기가 자기자신을 풍자한 것일지도?
저는 이 책 재밌게 읽어보려고 프랑켄슈타인 먼저 읽었는데요, 솔직히 이거 세권 다 합쳐도 프랑켄슈타인은 못이겨요(!!!) 윌리엄 고드윈(아빠), 퍼시 셸리(남편), 바이런(칭구) 영국의 사상가 대문호 다 데려와도 메리 셸리가 짱임!! 메리 셸리 만세! 문득 댓글쓰다 보니 울스턴크래프트가 메리가 크는 걸 못본 게 너무 슬프네요.. 모녀 모두에게 정말 크나 큰 손실이야.🥲

난티나무 2021-06-01 04:43   좋아요 1 | URL
아아 프랑켄슈타인도 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직 안 읽었어도 이 세 이야기 합쳐도 못 이긴다는 거 완전 믿어요~!!!! ㅎㅎㅎ
남편 있잖아요, 이거는 책 읽기 전에 어느 분의 서평에서 본 적이 있어요. 어딘지는 기억 안 남...^^;;; 다시 봐도 진짜...ㅎ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일찍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벅차요. 크나큰 손실 맞고요.ㅠㅠ

초딩 2021-06-0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난티나무 2021-06-06 01:05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판을 짜는 사람들의 단단한 기획 노트 워커스 라운지 2
고선영 외 지음 / 보틀프레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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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나도 매일 기획을 한다. 기획,이라는 단어는 뭔가 거창하고 전문적이고 멋있어보이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것 또한 편견일 수도.) 그런데 내가 매일 하는 기획은 그렇지 않다. 종이나 컴퓨터에 쓰이지도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만 그려진다. 내가 하는 것은 살림과 돌봄 기획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매번 하는 기획이 식상하다는 점, 몇십 년을 경험해도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는 점, 그래서 기운 빠지는 일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그 기획력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점, 기획하고 실행한 만큼의 경제적 성과가 전무하다는 점. 기획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이랄까, 그것이 풍기는 뉘앙스를 좀 쉽게 생각해 보려는 노력의 한 방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쉬워졌느냐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라고. 

나는 가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대개 뭐야 그 어이없는 생각은, 이라거나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라거나 그건 안 돼 니가 잘못 생각하는 거 아님? 이라거나 실현불가능한 망상,이라거나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아예 입밖에 내어보지 않은 생각들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생각하는 데 그치는 것이 나의 특기이자 장기이므로 늘 생각은 생각으로 끝이 난다. 그렇게 파묻힌 ‘기획’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실행하는 힘이 없을까? 

그래서 이런 책을 보면 마음이 끌린다. <판을 짜는 사람들의 기획 노트>, 판을 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실행했을까, 어떻게 판을 짰을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까, 그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그렇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100% 인터뷰집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생각이 뻗어나가는 경험, 문제 해결의 방법, 기획에서 실행까지의,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많은 가능성들에 대한 이야기. 평소 좋아하던 제주 잡지 iiin(고선영)도 반가웠고 책과 관련된 콘텐츠 이야기도 좋았다. 책이라면, 책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지만 김미래의 [가루와 반죽]은 비유와 묘사가 돋보였고, 김세나의 [에디터가 플랫폼이 되면 벌어지는 일]에서 “세상의 모든 곳이 다 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눈에 쏙. 정말 그런데! 그렇게 되면 좋겠다! 건축과 부동산을 연결시킨 전명희의 [취향껏 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안내자]도 좋았다. 공인중개사,에 대한 관념을 바꾸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내용과는 크게 상관 없는 말이지만 낡은 집을 용도와 취향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일은 나도 하고 싶은 일이다. 실행할 수 있게 잘 만져볼 것,이라고 또 생각만 한다. 문제는 항상 이거다. ㅎㅎ 그러니 나도 어떻게든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획’으로 ‘판을 짜’ 보도록 하자! 아, 그리고 매일 하는 살림과 돌봄 기획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적절하게 나누는 기획을 기획하면 좋겠다는 바람.^^ (획기적인 기획이 나오면 좋겠다. 누구라도 좀 해주세요.)

나처럼 늘 생각만 많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13명의 일과 삶을 살짝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보다 아마 조금은 더 설렐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 작고 아담한 판형은 좋으나 종이가 너무 두꺼운 게 아닌가 싶다. 책을 펼칠 때 빳빳하다는 느낌이 들고 펼치고 있기가 조금 힘들다. 무겁기도 하다. 좀더 가볍고 책장 넘기기가 쉬우면 좋을 것 같다. 제작 단가를 조금 낮추는 게 어땠을까? 하고 책에 나오는 ‘제작 단가’라는 말을 써먹어본다. 

"손님들이 세렌북피티에 오면 물었어요. "여기 카페예요? 술집이에요? 서점이에요?" 저는 카페도 맞고, 서점도 맞고, 술집도 맞다고 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재테크 관련 도서를, 미용실에서 뷰티 관련 도서를, 약국에서 건강 관련 도서를 팔면 어떨까요? 관심 있는 분야인데, 책도 사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의 모든 곳이 다 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세나, [에디터가 플랫폼이 되면 벌어지는 일])
- P35

"글이라는 것은, 아니 글이기 전에 생각 혹은 감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손에 만져지지 않는 것, 속 시원히 잡히지 않는 것, 아직 정리된 적 없는 것 들이 어쩌다 새하얀 종이에 검정색 잉크의 옷을 입고, 이렇게나 가지런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움직일 수 없게 박제되어버린 걸까요. 종이 위 글자는 도통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움직일 수 없는 모양새로, 우리의 눈을 쉴새없이 움직이게끔 부리고, 제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이들 먹과 백은, 참 쉽게도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한 눈에서 다른 눈으로, 한 서재에서 다른 서재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으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김미래, [가루와 반죽])
- P70

" 졸업 후 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스태프로 참여했고, 거기서 ’재미있는 부동산’을 자처하는 도쿄R부동산을 만났어요. 간담회에서 낙후되었지만 잠재력 있는 공간을 직접 고치고 중개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건축과 출신인 그들이 건축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부동산이라는 수단으로 이루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건축물을 유통하는 일이고, 건축 바운더리 안에 있는 일이더라고요." (전명희, [취향껏 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안내자])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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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0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는 것은 살림과 돌봄 기획이다.˝ 앗, 너무 근사한 기획이라는 생각이드는 걸요~ 판을 짠다니 저도 어쩐지 거창한 단어의 나열이라 쑥스 부끄 하지만 우리의 살림과 돌봄이야말로 가장 거창한 단어들을 가져다 붙여야하는 훌륭한 기획이 들어가야하는 무한히 과대평가되어야하는...(더 거창한 말을 가져다 붙이고 싶다..) 암튼 저의 진심은 시혜적 올려치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티나무 2021-05-10 17:45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말씀에 무한대로 동감입니다. 앞으로의 시대정신,이라는 말도 좋으네요.^^ 아자! 그렇게 되는 날까지~!!!!!!
 
나이 듦을 배우다 - 젠더, 문화, 노화
마거릿 크룩섕크 지음, 이경미 옮김 / 동녘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3월에 읽기 시작한 책을 띄엄띄엄, 이제야 끝냈다. 얇지 않은 책이었으나 지루하지 않았고 잘 읽혔다. 이상하게도 책 제목이 외워지지 않아 꼭 책 표지를 보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렵지도 헷갈리지도 않는데 자꾸만 나이듦에 대하여,라고.

만약 내가 2~3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해 본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으리라. 50이 코앞이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숫자가 내 나이가 되었다. 흰 머리카락이 늘고 주름들도 함께 늘어가고 체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는 젊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항상 젊다. 이런 생각은, 젊음은 늙음보다 좋은 것이라는 사회의 환상에 절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엄마 아빠를 다시 생각한다. 스쳐지나간 인연의 언니들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한번도 나이든 사람들, 많이 나이든 사람들의 삶을, 상황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늘 비난만 하던 내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도저히 모르겠다고, 너무 싫다고, 몸서리쳤던 것을 조금은 후회도 한다. 함부로 내뱉던 말들. 늙어서 그래, 이제 너도 늙는 거지, 늙으면 으레 아픈 거야, 나이에 비해 젊네, 진짜 안 늙는다, 너도 나이들어 봐라...... 오마이갓. 이젠 안 할게요. 


노인과 여성이 의약산업의 최대 소비자이자 피해자라는 사실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과 <호르몬의 거짓말> 같은 책들에서 이미 여성 피해의 역사를 보았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피해를 본다. 양로원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어머니 아버지, 옆지기의 어머니 아버지도 매일 일정 분량의 알약을 삼킨다. 의사의 처방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어머니 아버지들은 무조건 신뢰를 하니 그 또한 슬프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권력도 없고 돈도 없고 아플 확률도 높은데 다른 사람까지 돌보아야 하는 나이든 여성은 최하위 약체이다. 여전한 성차별. ('젠더와 문화와 노화'는 복잡하게 얽혀 여성을 억압한다.) 내가 이미 속해 있으며 앞으로도 걸어들어갈 세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의 글자들이 무겁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향하는 목표는 있지만 이루어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인식이 바뀌는 일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널리 읽혀야 한다. 나이든 여성에 대한 책이 더 많이 쏟아져나와야 한다. 외국의 논문 번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얼마 전 알라딘 책소개에 <완경일기>가 떴다.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소개글과 목차와 인용구를 살펴보고는 조금 낙담을 하긴 했으나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완경,으로는 단 두 권이 검색된다. 한국에서도 완경 관련 많은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든 여성들의 인터뷰집도 종종 보인다. 구술사도 더 많아졌으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쓰여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으면. 책 말미에 나오듯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이듦에 대한 서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껏 궁금해하지 않았던,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 많이, 계속. 


이 책도 다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둔다. (안 읽으신 분들 읽읍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강박적으로 신경 쓰는 증세, 수동성, 광대짓, 노화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노인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통해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음을 주장한다."(Green, 141) 이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특성은 보통 개인의 성격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사실은 무력감의 반영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내면적 식민화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부모나 조부모가 자신에게만 몰입하거나 지나치게 유순하거나 노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이를 참지 못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늙었다’는 평가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조롱하느라 이 이면의 연유를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 P41

"엘리자베스 막슨Elizabeth Markson은 기억상실이 역할이 사라진 여성들의 적응 방식일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우리가 치매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보다 원시적이고 비사회화된 정서적 인지적 상태의 표현이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억상실은 "의미로 가득 찼으며 안식처라 불리던 과거의 우주"로 회귀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비슷한 해석도 있다. 그런데도 알츠하이머는 불치의 질병이고, 특히 85세 이상 노인은 대부분 걸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 연령의 여성 수는 남성에 비해 네 배나 많다." - P113

"그러므로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인생 후반기의 질병이 생물학적 근거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배양된 것임을 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가족이나 의사의 회의주의 혹은 무신경함에 직면하더라도 질병이나 사고, 질환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 기관이 병든 노인을 지원하도록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건강 유지나 증진을 위한 지원은 거의 없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또한 알고 있다는 뜻이다.
노인의 환자 역할이 유해한 까닭은 질병을 정상적인 것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할 뿐 아니라 사람을 의존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노인들은 종속적 위치에 있다. 그들은 건강이나 타고난 치유력보다는 허약함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는다. 늙은 환자가 완전하게 기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는 의사는 거의 없다. 질병의 심각성뿐 아니라 그것에 대처하는 전략과 회복 능력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기회를 갖는 환자도 거의 없다. 만약 늙은

여성이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분노를 표출한다면 정신착란으로 진단받기 쉽다. 이것이 가장 소란스러운 형태의 성차별이라는 생각은 미처 떠오르지 않겠지만, 그녀의 증세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향정신성 약물이 처방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젠더다." - P116

"양로원에서 수년간 일한 심리학자 이라 로소프스키는 회고록 <형편없고 잔인하고 오래도록Nasty, Brutish, and Long)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노인은(양로원에 있건 아니건) 의약산업을 위해 돈을 찍어내는 공장과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양로원 거주자는 하루에 열 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주로 소화제, 진통제, 심혈관제, 정신활성제 등이다." " - P145

"건강한 노화에서 종종 간과되는 본질적 문제는 건강한 선택과 습관이 중산층에게나 허락된 사치라는 점이다. 자기 건강은 자기 자신이 책임진다는 중산층의 편견이 노년학자들의 언설에 그대로 묻어난다. 중산층의 기준에 맞게 건강한 선택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야 하고, 미래 설계는 가치 있으며 적어도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반면, 빈곤층이나 노동계층은 삶의 조건이 당사자가 아니라 남의 손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장기 계획과 유예된 만족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략) 세심한 식사, 운동, 적당한 음주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에서 오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중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 - P217

"여성으로서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노인 여성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들의 요구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의료 전문가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노인 여성은 노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하고 질병과 정상적 노화를 구분할 만한 임상 경력도 갖추지 못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예방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 여성이 남성의 두 배가량 많고, "건강염려증에 걸려 넑두리하고 불평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환자 - 의사 관계에서의 젠더 차이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 여성 의사는 환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더 많이 허용한다. " - P232

"그러나 우선순위가 어긋났음을 탓하고 끝내기에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잘 챙겨 먹고 운동을 계속하라는 은근한 지시의 이면에는 개인주의가 숨어 있다. 개인이 사회적 분석의 기본 단위라면 부와 권력의 분배와 같은 구조적 패턴보다는 개인의 행동에 관심이 쏠리게 되고, 따라서 개별적 건강교육이 질병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확산된다. 건강은 개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은 "소수 인종 노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상호의존이나 집단책임"과 정면 배치된다. 개인주의 철학 덕분에 기업과 정부는 질병(환경오염)을 부추기고, 그것을 지속시키면서도 그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다. 기업과 정부가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받게 되는 영향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진다." - P249

"노화에서 젠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은 돌봄과 은퇴다. … 현재 미국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노인 돌봄의 80~85퍼센트를 무상으로 감당하고 있다. 돌봄은 같이 거주하는 식구에게 때때로 도움을 주는 것부터 24시간 돌봐주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때로 남성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인을 위한 재가 돌봄의 70~80퍼센트는 여성이 담당한다.(90~95퍼센트로 평가하는 조사도 있다.) 며느리가 아들보다, 여자 형제가 남자 형제보다 돌봄을 제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족 돌봄’은 여성의 일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 연로한 가족을 돌보는 것은 ‘정서적 구속’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 수명이 길어지고, 소규모 가족으로 바뀌고, 자녀 출산이 늦어지고, 이혼율과 혼합가족이 증가하는 등 몇 가지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돌봄의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가족 구성원 중 65세 이상 된 사람이 두세 명 정도는 있다 보니 60대나 70대 여성이 나이 많은 부모를 돌보기도 한다. 과거 40년 사이에 어머니와 같이 사는 50세 이상 여성의 비율이 37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현재와 과거 돌봄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의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마치 "무임금 돌봄 제공자 군대"가 가정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듯이 정책을 운영한다.

돌봄 노동을 하다 보면 일상적인 다른 집안일까지 맡아야 하지만, 그런 일은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돌봄에 적합하다는 가설은 여성 전용 영역이 따로 있다는 통념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여성이 경제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무기력증에 계속 중독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이슈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복잡하다. 많은 이가 여성에게 특별한 돌봄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전통적 돌봄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 측면이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그 역할이어야만 가능한 정서적 심리적 이점이 인정됨과 동시에 돌봄 노동자의 실질적이면서도 때로 감추어진 비용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돌봄이라는 고된 노동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무임금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실제로 엄청난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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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30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늙는 법˝ ˝죽는 법˝에 대한 내용인가보다 하고 난티나무님 리뷰 따라가다가 보니, 그제서야 ‘젠더‘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최하위 약체라는 말씀에 제 가까운 관계부터 돌아보게 되네요. 꼭 읽어볼게요!

난티나무 2021-04-30 01:22   좋아요 1 | URL
노년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이라고 할까요, 페미니즘 노년학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노년과 노화에 대한 문제들을 짚어내는 책이에요. 추천합니다.^^
 
비건 세상 만들기 - 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
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전범선.양일수 옮김 / 두루미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만약 누군가가 내게 왜 채식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왜 고기를 먹느냐고 되묻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신이 고기를 먹기로 '선택'한 것처럼 나도 고기를 먹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어느 쪽의 선택이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먹는 것이 나의 선택이 아니라면,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내 말과 행동이 자유로운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수 있듯 음식도 마찬가지. 이렇게 매일 새로운 질문은 늘어간다. 


비건은 옳고 정당하며 실천해야 할 무엇이라고 주장하기는 쉽다. 그러나 당장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라. 고기 안 먹고 어떻게 살아,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바로 그 사람, 당신의 친구이기도 남편이기도 어머니 아버지이기도 한 그 사람, 그들은 동물 윤리와 환경 문제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전략을 바꿔라. 완벽한 비건이 있을 수 없듯이 완벽한 설득 방법은 없다. 설득하려 하는 순간 그 사람은 등을 돌릴 것이다. 분노하는 순간 그 사람은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슈든 그 사람이 나와 다른, 반대의 입장이라면 그를 판단하거나 설득하지 마라. 융통성을 발휘해라. 


책을 읽으면서 뜨끔뜨끔. 내가 그동안 많은 잘못(?)을 저질렀구나 싶다. 비단 비거니즘 뿐만이 아니다. 이 책의 방법론은 페미니즘에도 정치에도 기타 여러가지 문제와 토론에 적용할 수 있고 무슨 주의 무슨 이즘 아니라 일상생활의 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결국 소통. 어떻게 소통하느냐의 문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먼저 공감할 것, 상대방에게 공감을 강요하지 말 것.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일. 나도 어려운데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육식/채식 문제로 토론 아닌 토론을 할 때 결국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지 않느냐, 나와 네가 다른 것이 무어냐. 반성. 어렵겠지만 태도를 바꾸어보자고 생각한다. 책 잘 샀다. '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쉼표를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뜻이 달라지는 의미심장함. 


한편으로 위안도 됐다. 완벽한 비건은 없다는 말이 그저 위로성 멘트로만 다가왔었는데. 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는 공장생산먹거리들을 일일이 따져 먹는다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한발짝 뒤로 가는 것도 나쁜 짓(?)은 아니라는 말. 먹고 싶을 때, 먹어야만 할 때도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완강하게 버티는 것보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는 말. 어떤 방식이든 자신의 것을 찾아나가고 중심을 잃지만 않는다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낫다는 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평소에 먹고 싶었으나 달걀분말가루가 들어가 애써 외면했던 과자를 한봉지 까먹었다.(몇개월 동안 정화(?)된 나의 몸은 예전의 그 맛을 그대로 느끼지 못했고 더부룩한 느끼함을 남겼을 뿐이지만, 이렇게 그 과자와 바이바이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니 그걸로 됐다.)


여러 유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비건 지향인들, 아마도 거부반응을 견디지 못하고 들이받게 될 초심자들을 위한 책, 이미 오래 비건이지만 아직도 주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있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책, 비건 지향이지만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어쩌면 포기해버린 사람들에게도. 


* 책 실물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재생지인 듯한 종이 질감도, 페이지 위와 양쪽 여백을 최대한 줄인 것도(아래쪽도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았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면 이런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건의 명사(비거니즘, 비건, 비건들)는 형용사(예; 비건 식사)에 비해 어렵다. 명사는 이분법적인 용어다. 당신은 비건이거나 비건이 아니다. 비건들이 이러한 흑백 논리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완전한 비건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명사 '비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베지테리언이나 파트타임 비건이라면, '비건'이라는 명사로부터 배제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당신은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비거니즘'은 당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것이다. 명사는 '배타적'이다. 그것은 당신을 배제한다. 

'비건 식사' 또는 '비건' 제품에서의 형용사 '비건'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에게 비건 식사를 먹거나 비건 제품을 사용하라고 제안하는 것이 "비건이 되어라"고 하는 요구는 아니다. 누구나 비건이 되지 않아도 비건 식사를 하거나 비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훨씬 포용적이다. 형용사는 당신을 포함한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베지테리어니즘을 비거니즘보다 열등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베지테리언'은 '비건'보다 더 입에 맞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연구에 따르면 베지테리언에 비해 비건이 갖는 추가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다.(하략)" (p.80~81) 

(*식사를 먹거나 -> 식사를 하거나) 



"사람들은 무엇을 먹느냐가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건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덧붙인다.) 물론 선택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어떤 색의 벽지를 고를까 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물의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히 파란색이냐 초록색이냐의 문제가 아닌 고통의 문제이자 생사의 문제이다. 물론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지만, 베지테리언-비건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의 논리가 더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 합리적인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일반 대중이 무엇을 먹을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대형 마트나 생산자, 식당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정부 보조금이나 정책이 특정 음식의 접근성과 가격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제품의 가격과 광고 메시지에 의해 움직인다. 개인이 가족, 국가,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가 자의적으로 식습관을 결정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우리 모두는 멜라니 조이가 육식주의라고 명명한 신념 체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략)" (p.175~176)



"분노는 강력하고, 심지어 중독성이 있는 감정이다. 우리는 동물 학대범, 동물의 고통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 쓸모없는 정치인, 대중의 무관심, 잡식주의로 돌아가는 비건에게 화를 낼 수 있다. 이해한다. 공포는 어디에나 있고, 분노는 위로가 되며 힘을 주기 때문이다. 

도덕적 분노는 역사의 중대한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공동의 분노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에는 비건의 수가 너무 적다. 이 현실은 언젠가 바뀔 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분노를 조심해야 한다. 분노가 운동에 대한 신념의 표시, 열정과 에너지의 근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 계속되는 분노는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소통에서 효과적이지 않다. 우리는 화가 나면 단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또한 사실을 과장하고 상대를 적대시하면서 힐난하고,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라면 그런 사람 주위에 있고 싶겠는가?" (p.2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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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4-29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걀분말가루가 들어간 과자도 안드셨군요, 와~
미국에 있을때 채식주의자인 한 미국인 남자 아이가 한국 라면이라면서 컵라면을 즐겨 먹는 것을 보았어요. 쇠고기 분말 가루 들어가 있다는 얘기 해줄까 말까 망설이다 말았지요.
저는 윤리나 환경 이런 의식 없이 그냥 고기가 싫어서 안먹고 있는 사람인데 예전엔 지금보다 더 해서 아주 특이한 사람 보는 듯한 시선을 많이 느끼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은 단지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상을 말해주는 것 같아 관심이 가네요.

난티나무 2021-04-29 18:38   좋아요 1 | URL
밀가루 소화를 잘 못 시키다 보니 과자도 엔간하면 안 먹는데 아주 가끔 당길 때가 있더라고요. 성분표 훑어보면 대부분 달걀분말이나 우유분말이 들어가요. 기타 첨가제들도 많고요. 그러면 저는 아 동물성 성분이네 보다는 아 느끼하겠다 소화 안 되겠다 생각합니다.^^;;;; 반반일 때도 있고요.
예전에는 정말 지금보다 훨씬 더했겠지요. 지금도 뭐 많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