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배우다 - 젠더, 문화, 노화
마거릿 크룩섕크 지음, 이경미 옮김 / 동녘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3월에 읽기 시작한 책을 띄엄띄엄, 이제야 끝냈다. 얇지 않은 책이었으나 지루하지 않았고 잘 읽혔다. 이상하게도 책 제목이 외워지지 않아 꼭 책 표지를 보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렵지도 헷갈리지도 않는데 자꾸만 나이듦에 대하여,라고.

만약 내가 2~3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해 본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으리라. 50이 코앞이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숫자가 내 나이가 되었다. 흰 머리카락이 늘고 주름들도 함께 늘어가고 체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는 젊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항상 젊다. 이런 생각은, 젊음은 늙음보다 좋은 것이라는 사회의 환상에 절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엄마 아빠를 다시 생각한다. 스쳐지나간 인연의 언니들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한번도 나이든 사람들, 많이 나이든 사람들의 삶을, 상황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늘 비난만 하던 내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도저히 모르겠다고, 너무 싫다고, 몸서리쳤던 것을 조금은 후회도 한다. 함부로 내뱉던 말들. 늙어서 그래, 이제 너도 늙는 거지, 늙으면 으레 아픈 거야, 나이에 비해 젊네, 진짜 안 늙는다, 너도 나이들어 봐라...... 오마이갓. 이젠 안 할게요. 


노인과 여성이 의약산업의 최대 소비자이자 피해자라는 사실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과 <호르몬의 거짓말> 같은 책들에서 이미 여성 피해의 역사를 보았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피해를 본다. 양로원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어머니 아버지, 옆지기의 어머니 아버지도 매일 일정 분량의 알약을 삼킨다. 의사의 처방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어머니 아버지들은 무조건 신뢰를 하니 그 또한 슬프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권력도 없고 돈도 없고 아플 확률도 높은데 다른 사람까지 돌보아야 하는 나이든 여성은 최하위 약체이다. 여전한 성차별. ('젠더와 문화와 노화'는 복잡하게 얽혀 여성을 억압한다.) 내가 이미 속해 있으며 앞으로도 걸어들어갈 세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의 글자들이 무겁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향하는 목표는 있지만 이루어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인식이 바뀌는 일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널리 읽혀야 한다. 나이든 여성에 대한 책이 더 많이 쏟아져나와야 한다. 외국의 논문 번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얼마 전 알라딘 책소개에 <완경일기>가 떴다.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소개글과 목차와 인용구를 살펴보고는 조금 낙담을 하긴 했으나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완경,으로는 단 두 권이 검색된다. 한국에서도 완경 관련 많은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든 여성들의 인터뷰집도 종종 보인다. 구술사도 더 많아졌으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쓰여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으면. 책 말미에 나오듯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이듦에 대한 서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껏 궁금해하지 않았던,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 많이, 계속. 


이 책도 다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둔다. (안 읽으신 분들 읽읍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강박적으로 신경 쓰는 증세, 수동성, 광대짓, 노화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노인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통해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음을 주장한다."(Green, 141) 이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특성은 보통 개인의 성격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사실은 무력감의 반영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내면적 식민화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부모나 조부모가 자신에게만 몰입하거나 지나치게 유순하거나 노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이를 참지 못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늙었다’는 평가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조롱하느라 이 이면의 연유를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 P41

"엘리자베스 막슨Elizabeth Markson은 기억상실이 역할이 사라진 여성들의 적응 방식일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우리가 치매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보다 원시적이고 비사회화된 정서적 인지적 상태의 표현이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억상실은 "의미로 가득 찼으며 안식처라 불리던 과거의 우주"로 회귀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비슷한 해석도 있다. 그런데도 알츠하이머는 불치의 질병이고, 특히 85세 이상 노인은 대부분 걸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 연령의 여성 수는 남성에 비해 네 배나 많다." - P113

"그러므로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인생 후반기의 질병이 생물학적 근거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배양된 것임을 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가족이나 의사의 회의주의 혹은 무신경함에 직면하더라도 질병이나 사고, 질환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 기관이 병든 노인을 지원하도록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건강 유지나 증진을 위한 지원은 거의 없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또한 알고 있다는 뜻이다.
노인의 환자 역할이 유해한 까닭은 질병을 정상적인 것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할 뿐 아니라 사람을 의존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노인들은 종속적 위치에 있다. 그들은 건강이나 타고난 치유력보다는 허약함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는다. 늙은 환자가 완전하게 기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는 의사는 거의 없다. 질병의 심각성뿐 아니라 그것에 대처하는 전략과 회복 능력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기회를 갖는 환자도 거의 없다. 만약 늙은

여성이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분노를 표출한다면 정신착란으로 진단받기 쉽다. 이것이 가장 소란스러운 형태의 성차별이라는 생각은 미처 떠오르지 않겠지만, 그녀의 증세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향정신성 약물이 처방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젠더다." - P116

"양로원에서 수년간 일한 심리학자 이라 로소프스키는 회고록 <형편없고 잔인하고 오래도록Nasty, Brutish, and Long)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노인은(양로원에 있건 아니건) 의약산업을 위해 돈을 찍어내는 공장과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양로원 거주자는 하루에 열 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주로 소화제, 진통제, 심혈관제, 정신활성제 등이다." " - P145

"건강한 노화에서 종종 간과되는 본질적 문제는 건강한 선택과 습관이 중산층에게나 허락된 사치라는 점이다. 자기 건강은 자기 자신이 책임진다는 중산층의 편견이 노년학자들의 언설에 그대로 묻어난다. 중산층의 기준에 맞게 건강한 선택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야 하고, 미래 설계는 가치 있으며 적어도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반면, 빈곤층이나 노동계층은 삶의 조건이 당사자가 아니라 남의 손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장기 계획과 유예된 만족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략) 세심한 식사, 운동, 적당한 음주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에서 오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중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 - P217

"여성으로서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노인 여성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들의 요구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의료 전문가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노인 여성은 노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하고 질병과 정상적 노화를 구분할 만한 임상 경력도 갖추지 못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예방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 여성이 남성의 두 배가량 많고, "건강염려증에 걸려 넑두리하고 불평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환자 - 의사 관계에서의 젠더 차이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 여성 의사는 환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더 많이 허용한다. " - P232

"그러나 우선순위가 어긋났음을 탓하고 끝내기에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잘 챙겨 먹고 운동을 계속하라는 은근한 지시의 이면에는 개인주의가 숨어 있다. 개인이 사회적 분석의 기본 단위라면 부와 권력의 분배와 같은 구조적 패턴보다는 개인의 행동에 관심이 쏠리게 되고, 따라서 개별적 건강교육이 질병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확산된다. 건강은 개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은 "소수 인종 노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상호의존이나 집단책임"과 정면 배치된다. 개인주의 철학 덕분에 기업과 정부는 질병(환경오염)을 부추기고, 그것을 지속시키면서도 그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다. 기업과 정부가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받게 되는 영향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진다." - P249

"노화에서 젠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은 돌봄과 은퇴다. … 현재 미국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노인 돌봄의 80~85퍼센트를 무상으로 감당하고 있다. 돌봄은 같이 거주하는 식구에게 때때로 도움을 주는 것부터 24시간 돌봐주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때로 남성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인을 위한 재가 돌봄의 70~80퍼센트는 여성이 담당한다.(90~95퍼센트로 평가하는 조사도 있다.) 며느리가 아들보다, 여자 형제가 남자 형제보다 돌봄을 제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족 돌봄’은 여성의 일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 연로한 가족을 돌보는 것은 ‘정서적 구속’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 수명이 길어지고, 소규모 가족으로 바뀌고, 자녀 출산이 늦어지고, 이혼율과 혼합가족이 증가하는 등 몇 가지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돌봄의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가족 구성원 중 65세 이상 된 사람이 두세 명 정도는 있다 보니 60대나 70대 여성이 나이 많은 부모를 돌보기도 한다. 과거 40년 사이에 어머니와 같이 사는 50세 이상 여성의 비율이 37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현재와 과거 돌봄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의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마치 "무임금 돌봄 제공자 군대"가 가정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듯이 정책을 운영한다.

돌봄 노동을 하다 보면 일상적인 다른 집안일까지 맡아야 하지만, 그런 일은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돌봄에 적합하다는 가설은 여성 전용 영역이 따로 있다는 통념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여성이 경제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무기력증에 계속 중독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이슈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복잡하다. 많은 이가 여성에게 특별한 돌봄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전통적 돌봄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 측면이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그 역할이어야만 가능한 정서적 심리적 이점이 인정됨과 동시에 돌봄 노동자의 실질적이면서도 때로 감추어진 비용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돌봄이라는 고된 노동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무임금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실제로 엄청난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 P27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1-04-30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늙는 법˝ ˝죽는 법˝에 대한 내용인가보다 하고 난티나무님 리뷰 따라가다가 보니, 그제서야 ‘젠더‘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최하위 약체라는 말씀에 제 가까운 관계부터 돌아보게 되네요. 꼭 읽어볼게요!

난티나무 2021-04-30 01:22   좋아요 1 | URL
노년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이라고 할까요, 페미니즘 노년학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노년과 노화에 대한 문제들을 짚어내는 책이에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