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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빨간 얼굴 질루와 부끄럼쟁이 물고기 (개정판) 책마중 문고
질 티보 지음,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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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이 키우는 동물,에 대해 생각한다.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함께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사람과 함께 살아 행복한 동물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동물들도 있을 텐데, 거기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 사람들과의 관계, 뭐 그런 것들. 

우리집에도 동물이 있다. 작은 수족관에 조용히 바닥에서 생활하는 코리들. 체리새우 몇 마리. 어제는 처음 우리집에 온 코리가 5년이나 함께 살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새삼 경건해 졌었다. 작은 물살이들이 역시 작은 수족관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걔네들이 태어난 곳도 자연은 아니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일. 애초에 들일 때부터 무척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이 책에는 빨간 물고기가 나온다. 예전 책이라 물고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개정판도 그렇다. 아마 요즘 새롭게 나오는 책에도 물고기라는 단어를 쓰겠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기'라는 단어의 쓰임.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튼 책에 나오는 빨간 물살이는 물의 온도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 다행이다. 부끄럼쟁이 질루는 '빨간 물고기'와 생활하면서 조금씩 부끄러움을 떨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빨간 물고기'를 데리고 방을 구경시켜 주고 산책을 하고 놀이터에 가고 학교에도 가는 질루가 부러웠다. 그렇다. 부러웠다. '빨간 물고기'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부모도 부럽고, 야단치지 않은 선생님도 부럽다. 질루의 부모나 선생님보다, 나는 무엇보다 질루가 되고 싶다. 부끄럼을 타서 선생님의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지만 물살이 친구를 통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과 대화를 트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그 아이의 용기가 가장 부럽다. 동화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모습에 내 모습을 겹쳐보는 일이 잦아졌다. 꼭 나 같구나. 그런데 동화 속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용감해지고 당당해지는데, 현실 속의 나는 쭈그러들기만 한다. 그래도 작가의 소개글을 읽으니 위안이 된다. 어릴 때도 혼자 그림 그리는 게 편했던 작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조용히 있는 걸 즐기고 음악을 듣고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나도 혼자가 편하다.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의 모든 부끄럼쟁이들에게'이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이라 부끄럼쟁이 질루가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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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16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정말 그러네요~고기를 왜..소한테도 살아있을땐 소고기라고 안하는데, 무심코 받아서 이어가는 것들이 많네요. 관심갖을수록 더 보이는것 같아요.저도 부끄럼쟁이과라 조용히 그림그리고 친구들한테 주곤했었는데 생각하니 웃음납니다ㅋㅋㅋ

난티나무 2021-02-16 17:47   좋아요 1 | URL
저도 어릴 때부터 부끄럼쟁이...ㅎㅎㅎ 지금도...ㅎㅎㅎㅎㅎ 혼자 잘 놀아요.ㅎㅎㅎㅎ
 
[eBook] 각방 예찬 -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부 침대에 관하여
장클로드 카우프만 지음, 이정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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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침대에서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은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결혼하면서 ‘당연하게’ 더블침대를 사고 이불도 깔개도 2인용으로 샀다.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넘쳐난다. 잠을 푹 자야 일상생활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부부라는 이름 아래 무시되기 일쑤다.


“우리는 분명 그 사람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며,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할 말은 해야겠다. 이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사랑하는 그 사람이 코를 골기 시작하고, 발이 차갑다고 하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고, 나는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옆에서 덥다고 난리를 치고, 돌아누우면서 찬바람을 일으키고(또 그걸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옷을 둘둘 말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을 때면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적으로 느껴진다고 말이다.” 


프랑스에서의 첫 1년을 보낸 집은 최소한의 가구가 있는 스튜디오(원룸)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는 낡은 더블침대가, 헤드도 없고 매트리스는 아이들이 올라가 방방 뛴다면 더없이 좋아할 만큼의 푹신함을 자랑하며 놓여있었다. 그 땐 그나마 젊어서? 어려서? 허리가 몹시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몸무게가 거의 내 두 배 가까이 나가는 옆지기가 침대 한쪽에 누우면 그 옆의 나는 한쪽이 기울어진 바닥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가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침대가 화제에 오르면 내가 옆지기 쪽으로 데구르르 굴러내려간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렇게 자는 잠이 편할 리가. 


아이가 생기면서 옮긴 두번째 집에서는 더블침대를 새로 구입했다. 출산 후 침대는 나와 아기의 잠자리이자 생활터전이 되었다. 그러려고 산 더블이었다. 2시간에 한번씩 밤에 깨어 우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느라 내 하루하루는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의 이음이었고 옆지기는 자연스레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1인용 침대를 두 개 산 것은 몇 년에 걸쳐 한두 번의 이사를 거친 뒤였다. 조금 큰 집으로 가게 되면서 손님방을 만들어야 했고, 사용하던 더블침대를 손님용으로 넣었다. 그리고 나와 옆지기의 방에는 싱글침대 두 개를 붙여놓았다. 잠귀가 밝고 소리에 민감한 나는 누가 방문을 열어도 깨고 옆자리에 와도 깨고 누워도 깨고 코를 골아도 깨고 뒤척여도 깨고 아무튼 깬다. 새벽에 한번 잠을 깨면 다시 잠들기도 어렵다. 옆지기는 잠에 관한 한 나와는 반대의 성향이라, 머리를 베개에 대고 정확히 3초 후면 가르릉 잠이 들고 옆에서 뒤척여도 웬만해선 깨지 않는다. 그러니 함께 자는 생활에서 손해인 것은 늘 나다. 


“라플뤼마스케(닉넴)는 혼자 소파에서 자는 게 꿈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이런 새로운 욕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한 그녀는 한 침대를 쓰는 것이 어째서 부부간의 의무여야 하는지 반문한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하고 밤을(또 삶을) 나눈 지가 거의 11년째에요. 그런데 이제는 함께 밤을 보내는 일이 견디기 힘들어요. 나는 잠이 아주 얕아서 남편이 깨어나는 순간 바로 그 소리를 들어요. 밤에 조용히 자기 위해서 둘이 함께 쓰는 이 침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질 뿐이에요. 하지만 이런 희망은 마치 상대방을 저버리거나 사랑이 식은 것처럼 아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죠. 함께 자야 한다는 이 신화는 어째서 이렇게 깨기 힘든 건가요?” “ 


붙여놓은 1인용 침대에서 자면서 수면의 질은 조금 나아졌다. 각자 이불을 따로 덮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옆에서 뒤척일 때 침대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뒤척이는 소리는 들리고 가끔 코고는 소리도 들리며 방을 드나들며 내는 소음이 함께 하니까. 그래도 그 당시에는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서 자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컸다. 진작 이렇게 할 걸 싶었다. 


“이제 부부는 서로 붙어 있고 싶지 않을 만큼 서로에 대한 욕구가 약해진 것일까?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한다. 다른 이유를 든다. 줄리의 이유는 이렇다. “숨결 때문이에요. 숨결이 정말 거슬리거든요. 입 냄새나 입김, 코골이(남편은 코를 많이 안 골아요)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남편 숨결이 얼굴로 불어오면 정말 괴로워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단지 그 때문에 등을 돌리는 거예요.” 그웬은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 숨결을 넘어서서 남편 얼굴 때문에 잠을 설친다. “남편이 내 쪾으로 누워서 입을 벌리고 숨까지 세게 쉬면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요.” 이런 때 등을 돌리면 자신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자신의 자세와 잠자리 애착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한밤에 잠결에 무언가 훅 찬기운이 느껴져 소스라치며 잠에서 깬다. 싱글을 두 개 붙인 침대의 가로 길이는 180cm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 누우면 거리가 생긴다. 그런데 잠을 자다 보면 그 거리가 심하게 가까워질 때도 있다. 나는 잠버릇이 얌전하고 옆지기는 조금 활발(?)하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한밤의 콧구멍찬바람이다. 위의 인용한 부분을 읽으며 뼈에 사무치게 공감했다. 입냄새도 가끔 너무 싫을 때가 있는데 특히 저녁에 생양파를 먹었을 때는… 


그러니까 10여년 동안 싱글 둘을 붙인 침대생활을 했다. 약간의 변화는 코로나 때문에 왔다. 2020년 초, 학교와 관공서, 레스토랑 등 생필품매장만 제외하고 전부 문을 닫는 상황에서 우리집에서는 유일하게 옆지기만 출근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아픈 것이 무서웠던 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고, 내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작은넘 방으로 피신을 했다. (그렇다, 초창기엔 그랬다.ㅠㅠ)  작은넘은 코를 골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아 가끔 뒤척이다가 발로 벽을 꽝 차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수면 파트너로서 나쁘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는 시간도 비슷했다. 나는 잠을 아주 잘 잤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돌아갈 시기를 차일피일 미룬 것을 인정한다. 그동안 잠을 아주 편하게 잘 잤으니까.


“사랑은 각자의 침대와 공통의 침대, 즉 침대 사이를 오가며 구축된다. 이는 일회적인 일도 웃어넘길 일도 아니다. 부부가 새로 탄생한 세계에서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침대가 지나치게 유일하고 지속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이는 역설적으로 들린다. 우리는 삶의 그 어떤 때보다 사랑 초기에 1+1은 1이어야 한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중의 움직임에서 진실을 찾아야 한다. 둘만의 새로운 세계를 확실히 만들어 가되, 이 세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 옆에 개인적인 공간, 즉 또 다른 자기만의 공간을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이렇게 되려면 몇 달 내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 


“니니의 잠이 얕은 것은 분명히 사실이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할 것이다. 게다가 남편의 말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지만 그때 자고 있던 것도 아니다. 이런 점들이 인식된 것은 훨씬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가려 주던 커플의 열정적인 융합은 이제 드문드문 나타나고, 그 대신 이제 새로운 형태의 애정 관계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은 상호 이해와 애정으로 이루어진 세계, 각자에게 편안한 영역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는 세계를 새로 창조해 내야 한다. 이것은 아주 미세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특히 침대 속에서는 더 그러해야 한다.” 


돌아갈 방을 정리하면서 가구 배치도 이리저리 다시 해보았다. 침대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침대 사이의 거리라도 좀 띄워보자 싶었다. 따로도 잤는데 띄우는 게 안 될 게 뭐람? 고정관념 따위 버려보자구. 침대를 양쪽 벽에 하나씩 뚝 떨어뜨려 붙여놓았다. 거리는 글쎄, 지금은 그 모양이 아니라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2미터가 조금 안 될 것이다. 


“둘이 함께 사는 일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상대방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상대방 몸짓의 리듬, 사물을 만지는 방식 등 무수한 것에서 상대방이 자신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이 더욱 어려운 이유는 부부라면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휴가 계획, 자녀 교육 방식과 같은 일에 관해서라면 의견이 실제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은 좀처럼 변화시킬 수 없는 일상의 무의식(프로이트의 무의식과는 아무 상관없음)에도 자기 존재를 깊이 기입해 놓는다. 이 일상의 무의식은 사물들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그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반응을 모조리 기억해 놓는다. 바로 이 때문에 병따개든 빗자루든 집 안에 있는 모든 평범한 사물이 신비로워진다. 이 물건들이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단순한 사물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내부로부터 우리를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침대 위치가 또 바뀌었다. 가구들이 어지럽게 들어와있어 복잡했던 방을 정리하면서였다. 침대를 다시 붙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잖아? 거리만 좀 줄여보자, 하여, 지금은 침대 사이의 거리가 60cm 정도 된다. 붙여놓았을 때보다 방이 좀 틔어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그동안은 침대 주변이 정리되지 않아 책을 얹어둘 공간도 없었다. 집 비우기를 조금씩 실천하면서 가구를 빼고 침대를 띄우고 양옆으로 작은 책꽂이를 놓아 각자의 물건들을 넣어둘 수 있게 만들었다. 읽던 책과 노트들을 쌓아두고 밤마다 아침마다 침대에서 슥 꺼낼 수 있어 새로 만든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든다. 


“코골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자주 심하게 코를 곤다. 하지만 이해심이 훨씬 부족한 쪽도 남자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두 상징 세계가 대립해 왔다. 즉 남자는 화염과 전쟁의 이미지를, 여자는 신체와 집을 보살피는 존재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싸움을 좋아하고 쉽게 흥분하고 거만하고 외향적인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트림을 해도 쉽게 용서해 준다. 반대로 여자들은 수세기 동안 자제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이상화된 고정관념 속에서 여자는 코를 골면 안 된다. 하지만 여자들도 코를 곤다. 남편들이 이를 인정하기 힘들어할 뿐이다.“ 


고정관념 때문에 침실에 대한 생각, 밤에 대한 생각이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오 진짜 그렇네, 이노므 가부장제 문화는 속속들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구나 싶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잊으서는 안 된다!’며 자기만의 방을 언급하는 부분도 좋았고.


“배우자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잘 자는 배우자인 경우엔 더 그렇다. 그가 나와 똑같은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 친구들을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언젠가 친구들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더러 미쳤다고, 부부관계가 끝장난 거라고들 하더군요.”” 


오, 그렇지 않아요. 부부관계는 함께 잠을 자야만 유지되는 그런 게 아니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죠. 의사소통. 정신적 교류. 몸의 대화는 거기에 따라와야 하고 또 따라오는 거예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삶. 억울하다. 사랑은 혼자 깨우쳐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사실을 함께 사는 사람은 짐작조차 못한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그렇게 자란 남자와 그렇게 자란 여자의 그런 삶. 이젠 좀 둘 다 벗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노력 노력 또 노오력.)


밑줄을 너무 많이 그었다. 인터뷰한 말들과 어우러져 길어서 인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 아쉽다. 애초에 인용구를 중간중간 넣으려고 한 것이 잘못인 듯하다. 읽을 때는 이 책을 권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글을 쓰며 다시 보니 그럴 만 하다.


침대가 소재인 책이지만 침대와 침실을 둘러싼 커플의 여러 문제들(수면, 일상, 관계의 의미, 욕구, 섹스, 동의와 거부, 사랑, 정체성, 개인 공간 등등)을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짚어내고 있다. 책의 제목은 다분히 자극적이라 생각한다. 무조건 각방을 예찬하는 내용이 아니다. 둘이 함께 쓰는 침대, 한방에서 각각 쓰는 일인용 침대, 각자의 방에서 쓰는 침대, 각각의 경우에 생겨난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고 그러지 못해 헤어지기도 하고 각자에게 맞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다양성을 보여주면서, ‘함께 살기를 꿈꾸’는 동시에 ‘자기 삶의 유일한 주체이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을 이야기한다. 원래의 제목은 ‘둘을 위한 하나의 침대/둘이 쓰는 침대(Un lit pour deux)’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침대를 사용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 법은 없다. 문제점을 짚다 보면 결국 해결책이 보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수는 없으므로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 모양새랄까. 

나는 부부의 각방을 예찬하는 입장이다. 지금은 한 방에서 각각 1인용 침대를 사용하지만, 조만간, 각자의 방을 사용하고 침대는 각각 더블로 바꾸기로 합의(?)를 했다. 각방을 쓰겠다면서 침대는 왜 더블로 바꾸는가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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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1-02-04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건이 된다면 중정을 두고 두 집에 나눠사는 것도 괜찮을것 같아요! 늘 만남이 데이트가 될듯!흐흐흐☺😆

난티나무 2021-02-04 20:23   좋아요 1 | URL
아!!! 완전 좋아요!!!!!!!!!!!!!! 집 지어야 되겠다. 철푸덕.

라로 2021-02-04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희는 남편이 난티님 같은 과에요. 예민해서 잘 깨고, 깨고나면 잘 못자고,,, 그 짓을 25년이 넘게 했는데도 다른 방에서 잘 생각을 안 하네요. ^^;;; 가끔 서핑 갈때 저 깨울까봐(저 안 깹니다만;;) 그전날만 큰아들 방에서 자요. 암튼, 재밌는 책이네요. 장바구니 척!ㅋㅋ 혹 땡투 들어오면 저라고 생각하세요.ㅋㅋ (난티님께 땡투 자주 하는 일인 올림)

난티나무 2021-02-04 20:54   좋아요 1 | URL
책에도 나옵니다. 각방 쓰자고 하는 쪽은 대부분 여자라고.ㅎㅎ 남자들은 대체로 먼저 따로 자자고 하지 않는대요. 이유는 아시겠죠? ㅎㅎㅎㅎㅎㅎㅎㅎ
땡투, 어우 감사합니다!! 제가 종이책 사는 데에는 라로님의 땡투도 있었네요!! ^^

라로 2021-02-05 02:49   좋아요 0 | URL
ㅎㅎㅎ네 이유를 알 것 같아요. ㅋ 그렇지만 저는 절대 따로 자고 싶지 않아요. 이불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난로 같은 남편, 더구나 따뜻한 그의 발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아마도 제가 남편분처럼 잘 자는 타입이고 남편이 난티님 같은 사람이라 그런가봐요. 제가 쫌 이기적이죠. 🤣

난티나무 2021-02-05 04:50   좋아요 0 | URL
라로님께는 남편분이 보온물주머니로군요! 서로가 불편하지 않으면 되는 거죠~^^

다락방 2021-02-0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 너무 좋네요. 이 책도 제가 사겠습니다. 제가 코를 심하게 고는 여자라서 말이지요. 이만 총총.

난티나무 2021-02-04 23:2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죄송합니다.ㅋㅋㅋㅋ 살 책을 얹어드렸네요.^^;;;;;;; 📚
 
육식의 성정치 - 여혐 문화와 남성성 신화를 넘어 페미니즘 - 채식주의 비판 이론을 향해 이매진 컨텍스트 68
캐럴 J. 아담스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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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 고기를 구워먹는 예능의 흔한 장면을 보고 있던 옆지기가 물었다. 그런데 육식이랑 페미니즘은 관계가 있나? 어떻게 연관이 되는 거야? <육식의 성정치>를 절반 정도 읽은 상태였던 나는, 아직 정리 안된 머릿속을 열심히 헤집었다. 정리가 안 되었으므로 말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나왔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일목요연하게 정리 안 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육식이 가부장제 문화를 상징하는 한 가지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얼핏 스쳐본 그 예능에서는 몽실몽실 귀엽게 움직이는 양을 무슨 이유인지 데려다 놓고, 그 옆에서 불판에 소고기를 구워먹었다. 


몇달 전, 또 어느 프로그램에 채식하는 할머니 연예인이 나와 무척 반갑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일 수도 있을 거야. 편견이라 할 수도 있지만, 채식과 페미니즘이 크게 다른 방향의 것이 아니라는 걸, 뭘 모르면서도 어렴풋이 느꼈던 듯하다. 어떤 것이 먼저든 그 두 가지는 언젠가 만날 것이라는. <육식의 성정치>에는 내가 몰랐던 그 이유가 나온다. 


생각 없이 하는 말들과 욕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욕을 싫어하고 욕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큰소리로 마구 욕하는 사람은 더 싫어하는데, 그런 내가 하는 최고최대의 욕(?)은 개뻥 개빡침 같은 '개' 붙은 말들과 아주 드물게 지랄, 정도. 일상에 만연해서 욕으로 들리지 않는 말들이지만 이젠 그것도 되도록 자제하기로 한다. 동물에 빗대어 무언가를, 사람을 비하하지 않기. 동물비하표현 뿐만 아니라 욕의 어원들을 찾아보면서 그 뜻에 한번 더 경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육식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또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읽으면서도 같은 이유로 놀라웠었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이 책에 언급된 많은 작품들을 모두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는 이 책 뿐만 아니라 지금 읽고 있는 앨리스 워커의 책 <엄마의 정원을 찾아서>에도 나온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할 것도 없다. <육식의 성정치>의 국내 초판 제목은 <프랑켄슈타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였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또한 찬찬히 다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에 올랐다. 


육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많은 요인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저자는 그 그물망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헤치면서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준다. 권력, 젠더, 차별과 혐오, 전쟁, 신화, 문학작품, 상징과 언어와 침묵, 폭력과 억압 등등. 심지어는 스쳐지나가는 문장이나 인용구 하나도 화두를 던진다. (ex. "스포츠는 전쟁을 위한 예행연습일까?" "여성은 유행-식욕-의 노예이고, 남성의 노예이며, 특히 의사의 노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여성이 '대상'이라는 점이다. 동물과 같이, 동물처럼 도살되고 해체되고 먹히는, 대상. 사람인데도 사람으로 보지 않(을 수 있)는 그 기술은 어떻게 그렇게 쥐도새도 모르게 연마되는지. 집에서, 거리에서, 직장에서, '여자'인 나를 대하는 그 기술적인 시선들, 과거였으며 현재이고 아마도 미래일, 나의 '몸'. 언뜻 어려운 단어처럼 보이는 '부재 지시 대상'의 뜻은 그래서 쉽게 이해된다. 살면서 겪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 새삼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사족 같지만 덧붙여보자면, 19세기 여성들이 채식을 반긴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고된 부엌일에서의 해방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대해, 몇개월의 짧은 경험을 토대로 대체로 동감하는 바이다. 19세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적용이 될 수 있는 말이다. 식사 준비를 오래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고기요리라는 것이 가끔은 그냥 소금만 뿌려 굽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불고기가, 두루치기가, 탕수육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고기 요리를 하더라도 '고기만' 먹지는 않는다. 밥도 반찬도 있어야 한다. 채소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불고기에도 두루치기에도 탕수육에도 채소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고기를 준비하는 부분을 뺀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밑간을 해서 두어야 하는 경우 길게는 하루 전부터 요리를 준비해야 할 때도 있다. 채소로 요리하는 경우 하루 전부터 준비해두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닭고기는 기름기 제거를 위해 뜨거운 물에 한번 데치게 되는데 거기에 껍데기를 벗기는 일까지 추가되면 걸리는 시간은... 그리고 나서 이제야 본격적으로 요리 시작이다. 불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무엇보다도 기름기가 남기는 온갖 흔적을 청소하고 씻는 일이 무척 괴로운 일이었음을 이제야 새롭게 깨닫는다. 바닥까지 기름이 튀는 게 싫어서 오븐에 고기를 구울 때에도 어마어마한 기름을 처리하고 닦아야 했고, 고기를 구워 먹는 날 그릇들과 씽크대는 그야말로 기름범벅이 되어 휴지로 일일이 닦은 후에도 뜨거운 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볶음 요리도 나오는 기름의 양은 같아서, 하수구로 흘러내려간 녹은 기름들은 관속에서 다시 굳어 관을 막아버렸다. 요즘은 볶음요리에도 기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더럽게만 느껴졌던 씽크볼이 뽀송뽀송하게 느껴질 정도다. 주방세제를 덜 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기름기 없는 설거지 너무 좋다! 세척기 사용도 마찬가지다. 세제 양을 1/2로 줄여도 되고 아예 안 넣을 때도 많다. 친환경세제를 만들어 쓸 때도 양을 조절해 적게 사용한다.) 내가 고기요리를 안(못) 하게 되면서 가끔의 고기요리를 도맡게 된 옆지기도 육식 식단이 채식 식단보다 더 힘들고 오래 걸린다는데 동의한다. 


탈육식과 관련하여, 결국 윤리적인 이유는 따라오게 되는 듯하다. 몇개월 전, 처음 육식을 끊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어느 정도 건강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소화가 잘 안되는 배를 끌어안고 고생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들이 축산업의 실태를 보여주기도 했으므로 막연히 안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안좋은 것,으로 바뀌었다.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고기'를 위해 갇혀 사는 동물들과 죽어서도 '해체'되어야만 하는 동물들에 감정이 이입되었다. 평생의 사회화는 무서운 것이어서, 꺼려지는 마음이 단번에 증폭되기는 어렵다. 내 경우에는 그 마음 먹기에 여러 책들이 큰 역할을 했고, 어느 정도의 과도기를 거쳤으며, 지금도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순간순간 의지가 약해지기도 한다. 강을 건너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모호하게 머물지 않고 계속 걸어가 반대편 기슭에 올라서야 하는 또다른 이유를 이 책은 알려준다. 육식을 거부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윤리적 이유에서의 거부가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의 육식 거부는, 그동안 읽은 페미니즘 관련 책들과 무관할까? 내 결정의 이유에 대해 나는 오래 생각할 것 같다. 



(덧붙임) 이 책이 절판되지 않고 계속 나오면 좋겠다. 이렇게 다른 의미를 알려주고 그래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들이 계속 나오면 좋겠다. 널리 많이 읽히면 좋겠다. 아 그러려면 책을 마구 사서 여기저기 뿌려야 하는 것일까.. (2006년판으로 읽었으나 2018년판 책에 글을 쓴다. 구판의 무수히 많은 맞춤법 틀림과 이해하기 좀은 어려운 번역의 문장들이 2018년판에서는 개선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의 의미는 어디로 나아가는가? 언어로 구성된 체계라는 점에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면, 의미들은 어디로 가는가? 아마 여성의 의미는 자신들이 스스로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말해질 것이다. 음식을 입으로 내뱉는 반대 또는 거부의사를 표명하는 일종의 언어로 볼 수도 있을까? 서구 문화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주로 여성이고 고기는 남자의 음식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채식주의는 침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의 언어에 의해서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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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1-2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두근두근 했습니다!
너무 잘 정리해주셔서 <육식의 성정치>읽는 동안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 나네요.👍

난티나무 2021-01-27 00:11   좋아요 1 | URL
앗 두근두근!!!^^
좀 두서도 없고 중구난방인 느낌인데 정리는 더 못 하겠고 해서 에라이 하고 올려버렸어요.^^;;; 과찬 고맙습니다, 미미님~~~~!!

다락방 2021-01-27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난티나무님 리뷰 너무 좋습니다. 게다가 제가 갸웃했던 부분까지 잘 정리가 되어있어요. 이를테면 육식을 요리하는 부분이요. 집에서 고기 구워먹을 때면 저도 모르게 ‘고기는 나가서 구워먹자 치울려면 너무 힘들어‘ 했었는데, 맞네요. 단순히 익히고 굽는 과정을 너머서도 또 다른 과정들이 남아 있었던 거에요. 게다가 말씀하신것처럼 고기를 먹을 때는 고기만 먹지 않죠. 함께 먹을 야채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런 점을 지적해주셔서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른 분이 쓰신 글을 읽으면 새롭게 알게 되는게 있어서 진짜 짜릿해요.

저는 이 책을 읽었지만 완벽히 정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난티나무님도 비슷한 감상을 적으신 것 같아요. 계속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이 리뷰를 읽고나니 이 리뷰를 읽은 후에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이 더 독서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또 이렇게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1-01-27 21:2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역시 뭔가 정리 안되는 느낌 어쩔 수 없구요.^^;;; 저는 옆지기와 가끔 이야기를 하면서 책에서 읽은 이론들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좌절과 동시에 글과 말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요. 읽은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 너무 어렵고요. 흑.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또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북플 댓글 길게 달기 어려워서 컴터 켜면 댓글 달아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 켜서 ㅎㅎㅎ 그냥 북플로 써요. 엄청 불편하고만요. 위에 쓴 것 다시 보기도 어려워요.ㅋ
그냥 슝!!

공쟝쟝 2021-01-3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좋아요 천개. 책보고 이거 다시 또 읽어 보니까 더 좋아요 ㅠ 진짜 찐 리뷰다. 제 하트 받으세요 ❤️❤️❤️❤️❤️❤️❤️

난티나무 2021-02-01 05:45   좋아요 1 | URL
와! 좋아요 천개! 느무 좋아요!!!! 헤헷
하트 받고 저도 ~~~ ^^
❤️🧡💛💜💚🧡❤️
 
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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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채식이라는 말은 육식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사용된다. 채식이라 하여 '풀만' 먹는 것도 아니고 육식이라 하여 '고기만' 먹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채식주의자야?라는 말에는 경멸과 무시의 눈빛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지만, 육식주의자야?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경멸과 무시의 눈빛보다는 찬탄과 공감의 눈빛을 더 많이 쏘아대는 것 같다. 


사실 채식은 우리가 늘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식습관이다. 밥과 국, 찌개, 여러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밥상이 우리에겐 익숙하다. 여기에서 동물성 식품이 빠지면 그게 그냥 '채식'이다. 모두가 이미 어느 정도의 채식은 하고 있다.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 하는 사람도 상추쌈을 먹을 것이고 김치를 먹을 것이고 밥을 먹을 것이다. 사람들이 늘 대하는 밥상에서 고기와 달걀을 빼는 것이 왜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볼 일인지.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채식'이라는 단어가 지금 이렇게 쓰일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 채식해,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나는 지금 고기를 비롯한 동물성 식품과 달걀, 유제품, 해산물을 거의 (되도록) 먹지 않는다. (되도록)이라고 쓴 이유는,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평생 몸에 익은 습관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은 법, 그것이 특히 식습관이라면.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자주 체해서 제대로 못먹기를 반복하다 보니, 더이상 아프기가 싫어졌다. 고기, 달걀, 유제품, 해산물을 안 먹는다고 안 체하고 안 아프지는 않겠지만 그 횟수는 엄청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내가 음식 먹고 체하는 것은 99%가 스트레스 때문이다. 그에 더해 주로 고기나 문어류를 먹었을 때 체하는 확률이 높았다.) 식습관과 건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육식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올곧은 윤리주의자는 못되지만, 개인이 무엇인가를 먹지 않는 행위로 환경문제해결 등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채식의 경우, 어떤 것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어떤 것을 먹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동안 읽은 책들에서도 한결같이 채소와 곡물의 맛을 다시 느끼게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양념에 무뎌졌던 미각이 살아나는 느낌. 그리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의 세계에 눈을 뜨는 느낌. 한 가지 채소로 여러 조리법을 연구(?)해보는 재미. 처음 보는 채소를 먹는 일에 도전하는 호기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스리슬쩍 들기도 한다. 고기를 먹고 싶어지지는 않지만, 가끔 생선은 먹고 싶다.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 한달에 한번 정도는 어류나 조개류를 사서 요리해 먹는다. 정말 먹고 싶어지거나, 어쩔 수 없을 경우가 생기면 고기를 먹을 수도 있으리라. 참으면서 괴롭기보다 가끔 한번씩 먹고 덜 괴로운 게 나으니까. 지금 나는 '잘 먹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니까. 


[비거닝]은 이런 요즈음의 나에게 시기적절한 책이었다. 이제는 다양한 경로로 채식과 비건, 환경 이야기를 접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조금 덜 완벽한 채식생활 이야기를 책으로 보고 싶었다.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라는 부제가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그리고 그 기대는 충분히 채워졌다.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고 작게라도 행동할 수 있으면 괜찮다고, 채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행위라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선택할 수 있는 '특권'임을 잊지 말라고, 그렇게 이 책은 나에게 말한다. '채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에 눌려 아직 어느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재생종이와 콩기름 비율을 높인 잉크 사용에도 후한 점수를 준다.) 



영국 산지 농장에서 생산되는 소고기 단백질 1kg이 643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같은 곳에서 생산되는 양고기 단백질 1kg은 749kg를 배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동물에서 나온 단백질이든 1kg이 내뿜는 온실가스의 양은 누군가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많은 것이다. (‘고기라는 질문‘ - 조지 몽비오) - P56

유럽 사람들이 이 정도로 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근데 왜 지금 이렇게 채식 바람이 불까? 채식은 동물 복지 문제, 건강, 환경 문제 등 우리 삶 전반의 여러 문제와 촘촘히 맞물려 있다. 특히 최근 유럽의 채식 유행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절감하는 서양인들이 행동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축산업이 지구 전체 탄소 배출의 약 14.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기후변화의 큰 요인으로 공론화되고, 이제는 말 그대로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와 돼지, 닭을 키우면서 배출한 탄소의 양이 전 세계 자동차와 기차, 항공 산업의 배출량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은 놀랍다. (‘3분의 1 채식, 누워서 식은 죽 먹기‘ - 박규리) - P111

나는 그래서 현재의 ‘비건‘ 운동이 ‘자연식물식‘ 운동으로 진화하길 바란다. ‘자연식물식‘은 자연 상태의 식물성 식품을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식물성 기름과 설탕, 고도로 가공된 식물성 식품(식물성 고기류) 또한 최대한 배제하는 식단이다. 영어로는 ‘Whole-Foods, Plant-Based(WFPB) diet‘라고 부르며, 이런 지향에 맞게 생활하는 것을 ‘자연식물식 생활 WFPB lifestyle 이라고 부른다. ‘비건 지향 생활‘과 비슷하다. 자연식물식 생활을 하면 비건 지향 생활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추가적인 이득이 있다면 건강까지도 100%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식물식 생활‘은 ‘비건 지향 생활‘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지만, 동물성 식품을 흉내 낸 비건 가공식품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단이자 삶의 태도다. (‘지속 가능하다, 건강하다면‘ - 이의철) - P141

채식은 다층적이고 복잡한 현실을 놓치지 않고 마주하게 한다. 먹는다는 행위는 원초적이고 관계적인 행위이며 반복되는 일상인 만큼, 내가 누구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매번 자각하게 된다. 내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이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지고 다가가는 행위인지 사유하게 만든다. 낯섦과 불편함부터 동질감과 반가움까지 다양한 순간을 만난다. 나는 어떤 현실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채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선택권의 문제부터, 다른 존재의 삶에 연루된다는 것과 그 안에서의 책임을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채식 혹은 음식이라는 것은 너무나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채식을 권하는 것은 물론, 채식주의자라고 말하는 것도 자주 조심스럽다. (‘연결성을 넘어 위치성으로‘ - 조한진희) - P150

그러나 앞서 보았듯 누구나 채식을 ‘선택‘하거나,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채식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특권‘에 가까운 것이다. (p.157)

나는 처음으로 종차별에 연루되어 있음을 깨달았을 때의 혼란과 떨림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채식을 한다는 것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보다 민감해지며, 더 많은 질문을 품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채식이 트렌드나 라이프스타일이 된 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을 넘어야 자기만족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 (p.159)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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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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