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열다 페미니즘 총서 2
쉴라 제프리스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는 늘 나를 보면 입술 색이 그게 뭐니 립스틱이 싫으면 립글로스라도 색깔 있는 걸로 발라라 라는 소리를 달고 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엄마를 2년여에 한번씩 만나는지라 그런 소리들도 띄엄띄엄 듣는다. 옷이 그게 뭐니 얼굴이 어두워보인다 빨강을 입어라 얼굴색이 확 살잖니 좀 찍어발라라...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 좀 빼라는 소리는 안 듣고 대신 살 좀 찌워라 소리를 듣는다. 너무 말라 이뻐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아니 내가 괜찮은데 왜 찍어발라야 하냐고 되물으면 그래도 밖에 나가려면, 그래도 어쩌구저쩌구... 

흰머리가 보이면 할머니 취급을 받으니 곧 죽어도 염색을 포기할 수 없다는 엄마. 민소매를 입고 싶지만 절대로 살이 덜렁거리는 팔을 내놓고 다닐 수 없다며 더워도 긴 소매를 고집하는 엄마.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축 처진 엉덩이살을 내놓고 다닐 수 없다고 늘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웃옷만 입는 엄마. 이렇게 늘어놓다 보니 글쎄 엄마만 탓할 일이 아니네. 우리 엄마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ㅠㅠ 


문득 중학교 어느 때가 떠오른다. 가난의 문턱에 진입하기 직전, 혹은 이미 진입한 때로, 내가 즐겨입었던 목깃 달린 면티셔츠와 밝은색 청바지. 티셔츠 하나는 파란색, 하나는 진분홍색이었을 것이다. 다른 옷이 많이 없기도 했다. 아무튼 긴머리에 핀을 꽂던 초등('국민')학생은 중학생이 되면서 숏컷을 했고 이차성징이 진행 중이라 몸이 불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리라. 그 땐 이유도 모르고 내 얼굴과 몸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티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 게 더 '이쁘'다는 엄마의 권유를 번번이 묵살하면서 바지 위에 티셔츠를 덮이게 입고 집을 나서곤 했다. 여기저기 살이 붙은 엉덩이를 바지라인을 따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싫었다. 그 와중에 티셔츠를 넣고 거울 보고 빼고 거울 보고 했으니 그냥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ㅠㅠ 얘야, 안 그래도 돼. 한마디 해주고 싶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교생 실습을 나갈 때 주위에서 꼭 퍼머를 하라고 충고를 했다. 어려보이는 여자교생은 학생들에게 휘둘리기 십상이라고. 순진한 나는 첫 퍼머를 했고 긴 치마를 입었고 그래서 실습 내내 불편한 생활을 했다. 여학생들이 와서 남학생들의 나를 두고 찧고까붊을 몰래 이야기해 주었다. 누가 그러는지 알아챌 수도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얘야, 너를 살아. 한마디 해주고 싶네. 그 시절의 나에게. 


몇년 전, 가까이 살던 후배가 말했다. '언니, 왁싱하세요? 해야지, 서로에게 좋은 건데. 위생을 생각해서라도.' 왁싱 생각 1도 해본 적 없었던 나는 그게 왜 위생을 위한 건지, 서로에게 어떻게 좋은 건지 물었으나 후배는 대답을 아꼈고, 난 거기 털이 있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정말 네가 선택한 행동이라 생각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아는지? 


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는 경험이 계속된다. 아무 생각 없었거나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뒤집힌다. <코르셋>에서는 동성애가 그러했고, 하이힐과 전족이 그러했으며, 패션도, 크로스드레서도, 성형도 다른 수많은 미용 행위들도 그러했다. 새로 알게 된 쇼킹한 사실, 다른 관점들.

치마를 입기 싫어진다. 하이힐은 원래 안 신고 싫어하지만 더더욱 싫어진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몸에 달라붙는 옷들도, 피어싱도, 성형수술도, 보톡스도, 포르노도, 모두모두 더더욱 싫어진다. 그런데 여자들은 좋고 싫음을 떠나서 해야만 한다고 강요당한다. 아무도 너한테 강요하지 않았어,라고 말하지 말라. 엄마가, 아빠가, 친구들이, 직장동료와 상사들이, 인터넷과 대중매체가, 강요한다. 라디오와 TV에서 성형외과 광고가 흘러나오는 세상. 지하철과 버스에 성형미인 사진이 붙는 세상. 여자라고 하면 가슴 빵빵하고 엉덩이 톡 튀어나온 체형에 어떻게든 다 보이는 옷을 입히려는 실제 세계와 인터넷 세계.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할 지 암담하다. 50에 접어드는 나이에도 이럴진대 10~20대 여자들은 도대체 어찌 살라는 말인지, 더 어린 아이들은 또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런지. 화장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요즘의 TV 속 연예인 화장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남자들에게도 화장을 입히는구나. 입술이 빨갛거나 꽃분홍색인 남자들의 입술을 보며 왠지 모를 아니 어쩌면 알 것도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코르셋>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을 땐 온세상이 이상해 보인다. 시끄럽고 추악하고 암울하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또 끝없이 솟구쳤다가 그래서 씩씩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눈에 차게 들어오는 하늘과 나무와 꽃과 말없는 집들의 풍경이, 내 주변의 고요가, 

너무도 평온해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생각을 뒤집어본다. 이거 정말 평온인가. 

혼자 있고 현관문은 잠겼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나는 평온한가. 




--- 밑줄 : 가져오는 밑줄은 얼마 안 되지만 그은 부분은 엄청 많다. 읽어보길 권함. 목차만 봐도 대략 내용이 짐작되리라 생각한다. ---


"미용 관습은 여자의 순종을 표시한다. 여기에서 순종은 여자에게 성적으로 복무할 의지, 심지어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을 들일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단순히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굴종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미용 관습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여자가 구현해내야 하는 성적 차이difference가 바로 굴종deference인 것이다. 성적 차이/성적 굴종을 표시하도록 강요받는 정도는 남성 지배 사회마다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성적 차이/굴종이 무의미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남성 지배 사회 질서의 근간이 되는 것도 성적 차이/굴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지배 계급이고 누가 피지배 계급인지를 명확하게 표시할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남성 지배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서구 사회에서 그런 표식이 되는 것은 여자에게 강요되는 '아름다움'이다. 몸의 상당 부분을 노출함으로써 남자를 흥분시키는 옷을 통해, 치마를 통해, 몸에 달라붙는 옷차림을 통해, 메이크업과 머리 스타일과 제모를 통해, 때로는 수술까지 감수하며 이차성징을 뚜렷하게 전시하는 관습을 통해, '여성적'인 몸짓 언어를 통해 여자는 '아름다워진다'. 여자는 성적 차이/굴종이 존재할 수 있도록 여성성을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여남 차이란 다름 아닌 권력의 차이이며, 여성성은 피지배 계급인 여자가 지배 계급인 남자에 대한 굴종을 나타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행위인 것이다." (98~99) 


"왜 남자들이 여자에게 전족을 강요했는지,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딸에게 전족을 시켰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하이힐 착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족하는 이유 한 가지는 남자와 여자의 분명한 차이를 창조하기 위함이었다. ... 전족 관습이 남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성적 흥분도 중요한 이유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전족하면 질이 좁아져 '처녀'와 성관계를 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서구 남자들은 하이힐 신은 여자의 종종걸음을 도발적이라고 받아들이며 만족감을 느끼는데, 전족도 유사한 만족감을 주었다. 레비에 따르면 "아장거리는 발걸음과 뒤뚱거리는 엉덩이는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레비는 전족한 아내를 둔 남자를 인터뷰했는데, 그 남자가 생각하는 전족 발걸음이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 하이힐 걸음걸이에 대한 시각과 매우 비슷하다. ... 중국 남자들은 망가진 발을 갖고 놀고, 입을 맞추고, 쪽쪽 빨고, 입에 집어넣거나 페니스 주변에 갖다 대고, "발가락 사이에 수박씨와 아몬드를 끼워 먹고," 발 씻은 물을 마시는 데서 성적 쾌락을 얻었다. 로시에 의하면 전족으로 얻는 만족감 중에는 여자가 망가진 발에 생긴 '굳은살 벗겨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있었다. 이는 발 페티시를 가진 현대 남자가 하이힐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흡사하다. 남자들이 전족을 강요한 또 다른 동기는 여자의 모든 자유와 독립성을 제한해 '정조'를 지키려 함이었다. 전족은 일종의 '정조대'처럼 작용했다.

여자들은 전족이 초래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딸의 발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결혼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고, 발을 작게 하지 않으면 결혼할 남자를 찾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아내감으로 여겨졌다. 성매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어릴 때 가족에게 팔려 성매매 되는 용도로 길러지는 여자아이들도 존재했다. 당연히 이 아이들도 전족을 했고, 발이 작을수록 성매매 될 때 수요가 많고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이렇게 결혼의 형태건 성매매의 형태건 남자들이 서로 간에 여자를 팔고 거래하는 한 전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299) 


"립스틱 바르기는 역사적으로 성매매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미용 관습이다. 성과학자 해리 벤저민과 R.E.L. 매스터스는 '성 혁명' 초기에 성매매를 정당화, 정상화하려는 목적으로 쓴 책에서 립스틱 바르기가 성매매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중동에서 성매매 되던 여자들이 구강성교를 제공한다고 알리기 위해 입술을 붉게 칠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립스틱은 입술을 여자의 외음부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었으며, 립스틱을 처음으로 바른 건 페니스의 구강 자극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들이었다." " (26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1-03-30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읽을게요. 사회주의 페미니즘 끝내자마자 읽을거에요. 불끈!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난티나무 님의 이 책을 읽을 당시의 고통과 괴로움이 막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에서(제가 아마 포르노랜드 책 리뷰하면서 언급했을 텐데요), 여자주인공 두 명이 얘기하면서 ‘너 왁싱을 안하다니, 섹스할 생각이 없구나?!‘ 라고 대화하는 장면을 보았어요. 섹스를 할 생각이 있다면 왁싱을 하란 말인가... 그 장면이 너무 불쾌하고 괴로웠어요. 왁싱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이 원해서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언제부터 본인이 원하는 게 된걸까요, 그러니까 세상이 왁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성에게 어필한다고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도 사람들은 ‘내가 원해서‘ 몸의 털을 밀었을까요?


저도 읽어볼게요. 아마 저 역시도 밑줄 박박 그으며 읽게될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1-03-30 17:14   좋아요 0 | URL
아아 정말 괴로웠지만.... 읽기를 잘 했어요. 아마 다락방님도 그러실 것 같아요.^^ 늠 쇼킹합니다. 우웩우엑도 많이 했어요.ㅠㅠ 영화에서조차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쩌자는 말인지...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어려움에 조금 지쳐서 펼쳐들었는데, 이런 내용인 줄 몰랐...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에 나를 대입하고 내 생활을 돌아보고 가까운 미래를 상상해보는 일은 괴로운 일일까 다행한 일일까.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71) 


언제나 버거운 일, 기다림, 차별, 격하게 공감하면서 동시에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적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임신한 여자를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나 제각기 다르다는 게 비유의 본질을 흐릴 수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그는 가게에서 점원들이 부모님의 억양을 비웃는다는 것, 그리고 세일즈맨들은 그의 부모님이 마치 바보나 귀머거리라는 듯 고골리에게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93) 


할 말 없음. 아이들은 늘 나와 옆지기의 발음과 억양을 꾸짖(?)는다. 내가 들어도 어이없다. 발음과 억양만 문제면 다행이다. 문법도 엉망이다. 어려운 문장은 구사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조금만 어렵게 말하면 알아듣기 어렵다.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부끄러워 하는 게 느껴진다. 이 때 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바보'이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머릿속에 든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거. 분명히 바보는 아니지만 표현할 길이 없어 바보가 되어버리는 거. 프랑스에 살면서 가장 싫은 점이다. 그래서 말은 내게 두려움이다. 고골리 아버지 아쇼크는 대학교수다. 억양은 우스울 수 있어도 말은 잘 할 것이다. 교수라도 외국인으로 업신여김을 당한다. 우리는 교수가 아니며 교수도 아니다. 



앞부분에 아시마가 인도의 가족들에게 주려고 선물을 엄청 사서는 지하철을 타고 졸다가 물건들을 두고 내리는 사건이 나온다. (61~)  아시마는 자책을 하며 울었고, 남편 아쇼크는 집에 와서 지하철 분실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아시마는 혼자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나갔고 아직은 낯설 수 있는 외국에 적응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겁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마는 캘커타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아이들도 가르쳤다. 전공했다고 해서 회화를 잘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지하철 역에서 물어보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라도 자책은 했겠지만 지하철역 직원에게 물어보는 정도는 생각했을 것 같다. 뭣 때문일까. 아시마는 무엇 때문에 그냥 울면서 집에 갔을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이런 부분들이 소설 전체에 흩어져 있다. 모든 인물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을 갖고 있다. (특히 모슈미가 더 그렇다.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느낌. 상황에 잠식되는 인물.) 


아시마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잠시 의문을 가져보지만 그 질문은 곧, 나는 왜 이렇게 살까,로 바뀌고 이내 수긍하게 되고 만다. 어느 면에서는 너무 나 같아서 그만. 소설이니까, 그러지 않고 공부도 계속 하고 일도 하고 그랬다면 좋았을 걸, 하다가 그것 또한 삶이라고, 그렇게. 아시마처럼 주변에 모국어를 쓰며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내게도 많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시마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간 어떤 이는 한인타운에서 사는데 하루에 영어를 한마디도 안 하고 살 수 있다고, 영어를 쓰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고, 조금 다른 한국에서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인타운도 없고 주변에 한국사람들도 없지만 하루에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낼 수 있는 나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싶지만 이 또한 삶이라고. 그러나 오래 견딜 수 있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겐 아시마가 가졌던 가족 같은 이웃들이 이제 없다. 




" "목적론적으로 말해서, ABCD들은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발표자 중 한 사회학자가 이렇게 선언하였다. 고골리는 'ABCD'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미국에서 태어난 방황하는 데쉬 American-born confused desh'의 약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데쉬'라는 말이 '시골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동시에 '인도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모님과 부모님의 친구들이 언제나 인도를 가리켜 그냥 '데쉬'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골리는 인도를 한 번도 데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미국 사람들처럼 그에게 있어 인도는 그냥 인도였다." (156) 


아시마와 아쇼크의 첫아이 고골리에게는 내 아이들을 대입하게 된다. 외국에서 태어나 여기도 저기도 아닌 것 같은 중간 어디쯤에서 혼란을 겪으며 성장해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무엇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눌러앉았나 생각한다. 선택이 잘한 것이었는지 되물어도 답은 없다.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닌지도 분명치 않다. 유치원에서 입을 닫고 말하기를 거부했던 아이의 생활이 어떠했을런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돌이킬 때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자꾸만 어긋나는 고골리의 연애사와 결혼생활을 읽고 있자니 나중 내 아이들의 삶은 어떨런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벌써 마음이 아프다. 고골리가 엄마아빠의 나라 인도로 여행가는 것을 싫어했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그렇게 될까 생각한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잠깐 다녀오는 것 말고는, 가족들의 집에서 며칠씩 생활하는 것 말고는, 한번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도입부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내 경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전체를 두고 봤을 때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데, 나를 대입하다 보니 객관성이 흐려졌다. 그런 것 아닐까, 삶이라는 거. 두리뭉실하고 흐리고 뭔지 모를 아쉬움 같은 거. 그래서일까, 마냥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작가는 인물 설정을 일부러 이렇게 했을까, 아니면 이것이 한계였을까? 소설을 읽을 때마다 질문을 한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 인물을 이렇게 그렸을까? 이렇게 그린 이유는 뭘까? 질문을 뒤집어봐도 잘 모르겠다. 줌파 라히리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 겠다. 


- - - 


번역 이야기.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단어들. 잘못 표기된 단어들. 예를 들면 '상케르'(257)는 프랑스식으로 읽어야 하며 '상세르' 정도로 표기해야 한다. 역시 프랑스어 '도르세이 미술관'(299)은 '오르세 미술관' 정도로 표기해야 한다. 'ㄷ'은 앞에 뮤제musée 가 붙을 경우 전치사가 연음되는 것이다.(Musée d'Orsay) '오렌지 카드'(300)는 파리 지하철 '1주일권'을 가리키는데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알고 있다. 같은 페이지 '플랜 드 파리'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은 표현이라 아예 프랑스식 발음으로 '플랑 드 빠리'라고 적거나 아니면 '빠리지도'나 '빠리가이드' 정도가 맞는 듯하다. (작은 가이드북이라는 설명이 따라나온다.) '걸어 들어가는 옷장'(307)은 또 무엇인가. 드레스룸? '파케트 마루'(340)에서 파케트는 나무를 이어 만든 바닥이라는 뜻을 가진다. 마룻바닥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에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많이 나온다. 반대로 지나친(?) 한국어번역도 눈에 띈다. '섬형 조리대'(354)는 요즘의 아일랜드 조리대를 말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가 중간 즈음부터 체크하기 시작했기에 앞부분에도 이런 곳들이 있을 수 있다. 2004년판이니 번역을 손본 개정판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21-03-20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보가 아니지만 표현할 길이 없어 바보가 되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죠.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와 제 아이들 대입하며 읽었던 생각이 나네요.
번역은 별 생각이 없이 읽었는지 이런 부분이 있는 줄 몰랐네요. 걸어들어가는 옷장은 walk in closet을 그대로 번역한 듯? 말씀대로 드레스 룸이라고 하면 될 거 같고 ‘섬형 조리대‘는 진짜 좀 어색하네요. 한국에서도 아일랜드 조리대라는 말을 쓸 거 같은데.

난티나무 2021-03-20 19:31   좋아요 1 | URL
흑흑. 그냥 웁니다.ㅠㅠ
번역이 좀 그랬어요. 다시 번역되면 좋겠어요. 읽다가 자꾸 단어들이 걸리는 바람에 ㅎㅎㅎㅎㅎ (울다가 웃네요?ㅋㅋ)

라로 2021-03-23 00:44   좋아요 0 | URL
걸어들어가는 옷장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한 것일까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넘 심하네.ㅋㅋ

미미 2021-03-2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동안 기분이 묘하셨을것 같아요. 한국에서 바라볼땐 해외나가 살아보는거 너무 좋을것만 같은데 저도 어릴때 1년 안되는 동안 이국땅에서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 싶기도 하거든요. 적응좀 하려니 들어온느낌? 난티나무님의 경우에 불어는 더군다나 어려운 외국어라..ㅠ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혹시 안읽어보셨음 느닷없이 추천드려요. 헤헤 유쾌해서 이곳저곳에서 기분전환되실듯!

난티나무 2021-03-20 19:36   좋아요 1 | URL
음 그래서 책 읽는 동안 나와 이야기에 동시에 들락거리느라 정신이 좀...^^;;;;;;
저도 어릴(?) 때는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런 성격인 줄 알았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ㅠㅠ 나도 나를 모른다. 하아~
추천해 주신 책은 안 읽어봤는데 소개는 많이 봤고요, 목차나 인용구 훑어본,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느낌으로는 선뜻 손이 가진 않겠다,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지 했었던 거 같아요. 글쎄 이게 뭐랄까 설명이 힘든 묘한 감정이 있어요.^^;;;;;; 뭔 말인지...ㅎㅎㅎㅎ 추천 감사해요~ 기회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솔아 단편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줄 게 있어] 

위로의 위험한 방법.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위한 위로는 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고통은 누군가가 가져가야만, 그렇다고 믿어야만 덜어질 수 있는 것인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자기 방어. 


" "우리 영후가 참 멋지게 아프고 있구나." 

아버지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덴 것처럼 어깨가 뜨거워졌다. 나는 부엌으로 나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얼음을 쥐고서 어깨에 문질렀다. 입안 가득 얼음을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발바닥이 뜨거워 양말을 신고 다니기가 힘들어졌다. " (20) 





[병원] 

누구를 위한 사회보장인가. 법의 테두리. 부정수급. 소년소녀가장. 가난. 빈민자를 등쳐먹는 세상. 노동력 착취. 병원비 조달을 위해 미친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 


"미쳤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건데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증상은 환각을 본다거나 환청을 듣는다거나......" 

"환각과 환청만으로요?"

"그런 것들 때문에 일상생활이 망가지느냐 아니냐......" 

"제 일상이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정유림씨는 자신의 폭력성의 원인을 외부로 전가하고 있어요. 어떤 것들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나 어떤 것들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이 바로 잠재적인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징후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50) 




[다시 하자고] 

함께 생활한다는 것의 이면. 함께 하지만 다른 생각들. 동의하지만 반대였던 마음. 묘하게 너무도 알 것 같은 그 마음. 


"싫은 것을 의문형으로 표현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드는 버릇이 내게 있다고 지은이 말한 적이 있었다. 지은은 내가 그런 방식으로 매사에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한다고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말로 세이프 존을 확보해놓고 상대를 시험한다고 했다. 싫지만 싫다고 말할 수가 없거나 싫지만 양보가 가능할 때 사용하는 어법이었지만, 지은을 괴롭게 만드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지은에게는 내가 고쳐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은을 제외하면 내 의문형을 신경쓰는 타인은 없었다." (67)





[추앙] 

* 같은 놈들이 교수하고 작가하고. 선민의식 쩌는 놈들. 말이 험해 안 미안하다. 소설이 소설만이 아닌 것이 분통터지는데 현실은 이보다 더할 거라 더 분통터진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내가 도와주니까 좋지?' 선의를 가장한 조종과 감금과 정신폭력. 정상과 비정상. 제발 두 개로만 나누지 좀 말라고. 


"아프면 멀게 느껴졌다. 천장이 너무 높아 보였다. 방문이 너무 멀어 보였다. 물에 잠긴 것처럼 눈을 뜨고 있어도 초점이 흩어졌다. 소리들이 웅얼거렸다. 자세를 바꾸려면 공기를 밀어내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여야 했다.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걸 잊어버릴 수가 없없다. 아프다는 것은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112)




[신체 적출물] 

"'각자의 애원은 각자의 것을 지키려는 욕망이었다. 애원도 욕망의 일종이었다. 애원은 각자의 내부에서만 공명할 것이다. 은하는 애원이 무서워졌다. 유리병 속에 갇힌 애원이 무서워졌다. 애원의 고립이 가장 무서워졌다." (141-142)


어디까지 욕망하고 어디까지 애원할 수 있을까. 




[선샤인 샬레]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도망.(그거 정말 도망?) 아무도 나를 모르는, 한번쯤 상상하는 세상. 손님이었다가 시중 드는 사람이었다가 다시 손님이 되는 인생. 




[눈과 사람과 눈사람]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 알지 못하는 이면. 위로와 도움과 연대의 의미. 의미 뒷편의 의미. 


"...이십 년 동안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한 사람은 배에 칼을 맞았고, 화재사건 피해자와 연대해온 사람은 방화 때문에 집이 불탔고, 피해자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이민을 간 사람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194) 



*** 


첫 두어 편을 읽을 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가 점점 뒤로 갈수록 어 이게 뭐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사건의 잘 보이지 않는 이면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말이 이런 건 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싶다가 모든 단편을 다 읽은 후에야 수긍이 간다. 슬프고 힘든데 가슴이 뛴다. 모든 단편이 그렇다. 사놓고 제대로 읽지 않은 임솔아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꺼내온다. 소설을 읽기 전엔 대충 훑었던 시가 다시, 새롭게 보인다.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 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 예보 (전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나비클럽 소설선
민지형 지음 / 나비클럽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스트,로 검색하면 전자도서관 목록에 뜨는 소설이라 대출예정목록에 올려두었었는데 이웃님의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평을 보고 궁금해져 빌려서 후루룩 읽었다. 제목을 볼 때마다 내용이 궁금했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는 페미니스트. 제목이 정확히 그 남자의 시각을 반영한다고 본다. 그 남자는 일반적인 한국 남성이다. 유럽의 남성이라 해도 별다르지 않다. 30세건 50세건 별다르지 않다. 하는 말도 똑같다. 20대라고 다를소냐. 10대도 다르지 않던데. 구시대적 남성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말 쩜쩜쩜이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 나는 이 소설이 남자의 모습을 축소했다고 본다. 82년생 김지영,의 남편처럼, '보통'의 남자와는 다르게 살짝 미화된 느낌? 어떻게든 나쁘지 않게 만들려고 애쓴 느낌. 계속 문장을 썼다 지운다. 여기까지. 


연애하는 사이 뿐만 아니라 결혼해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연애하는 사이면 헤어지기나 하지, 결혼한 사이면 그것도 쉽지 않다. 매일 옆에 붙어있는 사람과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을 십년 이십년 겪어보았는가? 뒤늦게 깨우친 사실(혹은 진실)들에 얻어맞은 뒤통수가 너무 아파서 삶이 허무해진 적은? 

소설 속 그런 남자, 나도 너무 잘 알지. 나는 연애 아니고 심지어 함께 산다네. 함께 산지 20년이 넘었다네. 어쩜, 소설 속 남자의 말들 내가 들은 말과 다 똑같네?  

나와 옆지기의 최근 1년에 비추어 소설의 제목을 바꾼다면 <나의 미쳐가는 페미니스트 아내> 정도가 되겠다. 옆지기가 읽고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다. 읽는다면 말이다. 


별을 다섯 줄 생각은 없었는데... 다섯 찍는다. 이런 소설 많이 나오기를 바라며. 여러 형태로 나왔으면 좋겠다. 직설적이어도 좋고 우회해도 좋다. 마구 쏟아지면 좋겠다. 3~40대부터 7~80, 90대에 이르기까지 부부의 페미니즘 이야기도 듣고 싶다. 혼자 살면서 연애하는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70세 여자가 뒤늦게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다면? 반대로 부부 중 남자가 먼저 페미니즘을 '깨우쳤'다면?(오! 이런 경우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놀라워라~) 변해가는 여자의 모습도 반가울 것 같고 변해가는 남자의 모습은 더욱더 반갑겠다. 







" "사람들이 말하는 메갈은,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여자들이지. 그냥 그동안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게 편한데, 자꾸 이러쿵저러쿵 이건 불편하다느니 잘못됐다느니 큰 소리로 따지고 설치고 나대는 여자들."
...
"그리고 한남은, 여자들이 맞고 강간당하고 죽는 동안에도 내 기분이 나쁘니까 그런 얘기 하지 마라, 남자를 싸잡아 일반화시키지 마라, 여자들은 군대도 안 가면서 말이 많다, 무고죄나 강화해라, 요즘엔 역차별이 더 문제다, 그런 소리 하는 남자들이고."
"야, 내가 그런다고 생각해? 내가? 나 안 그래!" "

"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생각나네.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해 줘도 모르는 거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지속 가능한 삶, 비건 지향 - 14단계로 살펴보는 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
미지수 지음 / 팜파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젯밤, 노트에 끄적여놓으려고 제목을 적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속 가능한 삶, 비건 지향...뭐시기...라고 적었는데 오늘 보니 그것 그대로 제목이었다. 쉬운데 어쩌면 외우기 힘든 제목. 

절반 정도를 읽었을 때, 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지속 가능한 비건을 지향하는 나에게 약간의 자극이 필요한 때였다. 건강을 이유로 내세우고 막연한 윤리의식은 뒤에 숨겨버렸더니, 고기를 먹는 세 식구들 사이에서 가끔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본다. 혼자였더라면 고민도 간단하고 실천도 더 간단했을지 모르겠다. 가족 안에서 비건을 실천하고 있을 수많은 여성들, 수시로 발을 거는 식구들의 말과 행동들을 견뎌내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을, 그들은 괜찮을까. 나는 자주 괜찮지 않다. 괜찮아지고 싶어서 구입한 책인데 어째 2/3를 읽도록 제대로 와닿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책 끝부분을 읽으면서 그제서야 작가의 의도에 동의한다. 결국 공부. 계속 생각하고 찾아읽고 보고 비판하고. 어쩌면 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니까, 안다고 행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무엇이든 지속 가능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 나의 무의식은 누군가가 똭 정답과 방향을 내놓아주길 바랬는지도. (<해빗>을 읽는 중이므로, 노력을 '습관'으로 만들자!) 

이렇게 비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 것으로도 비건 세상을 향한 발자국 하나가 될 거라는 작가의 말이 위안이 된다. 각 장마다 소개된 참고 자료들을 모두 찾아볼 생각이다. 학술논문사이트도 북마크해 두었다. 그동안 목록만 적어둔 책들도 이참에 하나씩 빌려보아야 겠고. 꼼꼼이 읽고 기록도 남기고. 작가가 예를 든 대로 비거니즘 관련 책을 모아놓은 책방이나 도서관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래, 이렇게 비건 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더 많은 비건 책들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왔으면 한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서 읽고 리뷰 쓰는 일이 이어지면 좋겠다. '예술을 합시다!' 




"'생선'과 '새우'는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다. 사는 곳도, 생김새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는 육지의 동물에 비해 물속의 동물에 대해서는 더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살이는 우리가 물속에서 겪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고통을 겪는다. 숨이 막혀 뻐끔거리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나오며 물속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파닥파닥 몸부림친다. 그들의 비명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그들이 느끼는 생생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결과는 어류가 고통을 느끼고 피하려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갑각류가 정교한 신경계를 가졌다는 것 또한 밝혀저 스위스는 2018년부터 산채로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관행과 얼음에 넣어 수송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문어와 같은 두족류는 신경계가 온몸에 분산되어 있어 산채로 신체를 자를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여성의 몸을 가진 동물만이 젖과 알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여성성'을 착취당한다. 이에 <육식의 성정치>의 캐럴 제이 애덤스는 동물의 젖과 알에 '여성화된 단백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가부장제에서는 사람 여성이, 육식주의에서는 동물이 남성의 소유물, 억압과 재생산의 대상, 먹을 것, 신체부위 정도로 여겨지고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육식주의 세상의 동물들 가운데 특히 여성 동물은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다. 고기, 애완동물, 모피, 가죽, 깃털을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강제 임신과 출산을 당하는 동물들과 심지어 여왕벌과 일벌도 모두 여성이다. 남성 동물은 짧은 생과 한 번의 육체적 죽음을 겪지만, 여성 동물은 더 이상의 재생산과 생명유지가 불가능해질 정도의 수십 번의 신체,정신적 고통을 겪은 뒤 마침내 육체적 죽음을 맞는다."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되고, 어떤 동물은 먹으면 이상하고, 어떤 동물은 사랑하는 것처럼 동물의 종을 나누어서 차별하는 종차별(Speciesism)과 성차별(Sexism) 그리고 인종차별(Racism)은 그 대상만 다를 뿐 서로 이어져 있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잘못되었듯 종차별도 잘못되었다." 



" "When People Won't Listen to You, MAKE ART.(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에는 예술을 하세요)" - 에린 제너스 (Erin Janus)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