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부터 쓰던 299리터 냉장고는, 지금은 LG의 G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예전의 금성제품이다.
23년간이나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이 냉장고가 드디어 수명을 다했다. 동백꽃 떨어지듯 아무 예고없이 어느 한순간에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그저께였다.
새 냉장고가 집으로 들어오기 전 급하게 마지막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 그린 토끼그림, 묵나물 해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종이, 신문에서 오린 간단한 레시피, 세계사 연표 등이 안쓰럽게 붙어 있다. 이 냉장고는 가족이었다. 냉동, 냉장 보관 기능에다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정보와 지식, 딸아이의 재롱까지 모두 담고 있는 듬직한 가족이었다. 23년 동안이나.
결혼 전 한때는, 내가 출근한 사이 새언니가 와서 냉장고 청소와 더불어 밑반찬을 해놓고 간 적도 있었다. 결혼 후, 시어머님과 함께 살 때는 시어머님의 고된 손길이 많이 닿았었다.
300리터에서 1리터가 모자라는 이 냉장고가 작다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김치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김장김치도 다 수용했었으니, 김치냉장고를 사용한 후부터는 공간이 여유로울 때가 많았다.
80년대 초반 무렵, 그때는 전자제품하면 금성을 최고로 치던 시절이었다. 수명이 제일 오래간다고 해서 우리집에서는 무조건 금성제품만 사용했었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
잘가라. Gold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