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에 나오는 게. 게의 껍질을 나타내는 '갑(甲)'이라는 글자가 과거시험에서 최고 등급을 나타내는 '갑'자와 같다고 하여 합격을 기원하며 그림에 게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하필 왜 게일까. 앞을 보고 당당하게 걷는 게 아니라 옆으로 슬금슬금 걷는 모습에서 뭘 닮으라는 것인지...게다가 겁은 얼마나 많은지 제 구멍에서 함부로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게를 나타내는 멋진 별명인 횡행개사(橫行介士)는 옆으로 걷는 강개한 선비란 뜻으로 천하를 마음껏 주릅 잡으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겁이 많아 눈치보기 바쁜 게에게 이런 멋진 이름을 붙여주고 합격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쓰고 있다니...
수능을 앞둔 딸에게 먹이라고, 오늘 옆자리의 동료에게서 게장을 선물로 받고, 게가 상징하는 바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수능 1등급도 좋고 천하를 주름 잡는 것도 좋지만, 겁이 많은 게의 속성이 먼저 생각을 사로 잡는다. 조심조심, 혹여 바람이 불세라, 감기가 들세라, 사고가 날세라, 그간 쌓은 공부가 날아갈세라, 조심스레 사방 팔방에 걸쳐 눈치를 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미역줄기볶음을 먹으면서도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날들이다.

권샘,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