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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오후 2시 -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 이야기
김미경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2월
평점 :
책 한 권 읽기가 버겁다. 일상이 만만치 않다. 0교시 수업에 에너지를 퍼붓고, 나머지 수업은 에너지를 배분해서 쓰러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여분의 에너지를 각종 평가지와 숙제 검사에 소모하고 나면 하루 분량의 에너지가 완전 연소된다. 다시 충전을 위해 1시간을 걷고, 저녁 밥 해먹고 대강 치우고나면 잘 시간이 된다. 아침에 보다가 밀쳐둔 신문은 그대로 분리수거장으로 향하거나, 제대로 읽어야 칼럼 한두 편 정도이다.
대통령이 없는 나라, 교장이 없는 학교, 시어머니 없는 가정을 꿈꾸는 내 가당찮은 바람은 달콤한 수면을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읽어도 간밤에 꾼 악몽 때문인지 별다른 흥미가 일지 않는다. 경쾌함 속에 숨겨진 고달픔, 슬픔, 괴로움 등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짐작되는 바, 차라리 즐거운 비명을 듣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터. 그나마 이 책은 구질구질한 일상을 드러내지 않아서 안심이다. 하소연이나 넋두리는 책을 읽고 투정대거나 빈정거리는 나 같은 독자의 몫!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좋은 책이건만 내내 시큰둥하게 읽었다. 낯선 곳에서의 삶이 부러웠나? 솔직하고 대범하게 풀어놓는 이야기에 주눅들어서 그런가? 아, 그렇다. 이 책에는 대통령도 교장도 시어머니도 없었다.
그렇게 읽어나가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영어몰입교육 대 찬 성!?>이라는 글이다.
(184쪽) 지금의 세계 파워 구조 속에서 세계와 소통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외국어 몰입교육? 좋다....그런데 세계의 파워 구조가 미국의 독주에서 유럽권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이렇게 세 개의 핵심 파워 간에 균형을 이루어갈 것으로 예측되는 현 시점에서 왜 유독 영어에만 그렇게 몰입해야 할까?..나를 '한국인'으로 알기보다 '아시안'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뉴욕에 와 살면서 나는 한자와 일본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던 우리 학교 교육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미국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가 배우다 만 한자 실력을 미국인들이 따라오려면 수백 년간 땀을 뻘뻘 흘려도 힘들 것 같아 보인다...그래서 훨씬 쉽고 가깝게 익힐 수 있는, 영어보다 천 배나 배우기 쉬운 중국어나 일본어에, 온갖 아시안 언어에 함께 몰입하도록 해주면 좋겠다...우리가 아시안이기 때문에 가진 경쟁력, 천 배 쉽게 아시안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이 엄청난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영어만으로는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는 세상이 이미 열리고 있는데 말이다.
안에서 떠드는 것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이 목청 돋운 주장이 반갑고 반가웠다. 목청 밖으로 나와서 소리가 되어 주는 건, 밖으로 나간 자의 경험과 깨달음에서 나온다. 비로소 이 책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 미묘한 차이가 있는 표현: make an appointment-공식적 성격의 예약, 이를테면 채용 면접 인터뷰 예약, 회사에서 미팅 시간 약속, 병원 진료 예약 등 /// make a reservation-개인적이고 놀이성 예약, 호텔 예약, 스키장 예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