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계란을 생협에서 구입한다. 15개가 들어있는 유정란을 주로 사 먹는다. 장바구니에 담기도 적당하고 신선하고 맛도 좋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생협에 가야할 타이밍을 놓쳤더니 가뜩이나 텅 빈 냉장고에 계란이 달랑 두 개 남았다. 마침 코스트코에 가게 되어 계란을 사왔는데...

 

30개가 들어있는 한판을 주저주저하다가 사왔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0개 아니면 60개.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날 저녁, 말 그대로 휘휘휙 저어서 스크램블을 만드는데 깨는 족족 노른자가 두 개인 쌍알이다. 다음 날. 계란을 삶았더니 모두 노른자가 두 개 있는 쌍알이다. 다음 날 아침, 계란말이를 하는데 역시 쌍알의 연속이다.

 

딸아이는 징그럽다고 삶은 계란을 거부하더니(위의 사진) 그 좋아하는 계란말이(청양고추 듬뿍 들어간)를 한 점 먹다가 만다. 맛이, 그러니까 계란맛이 없다. 노른자의 고소함도 없고 흰자위의 찰진 맛도 없다. 생협 계란을 먹을 때는 몰랐는데 코스트코 계란을 먹어보니 그 차이를 알게 된다. 한마디로 코스트코 계란은 계란이라는 생물을 먹는 게 아니라 상품을 먹는 것에 불과하다.

 

그나저나 남은 계란을 어떻게 처치하나, 문제다. 그런데 어떻게 계란 한 판 30개 전부를 쌍알로 구성할 수 있을까? 겉포장에 한마디라도 써놓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 계란은 모두 쌍알로 구성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병휴직으로 1년을 쉬시면서 잠시 양계사업을 하신 적이 있었다. 200여 마리의 닭을 길렀는데 닭들이 알을 낳으면 동네가게에다 계란을 조금씩 팔았다. 장바구니에 넣어서 심부름을 다니곤 했는데 어쩌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계란이 땅에 떨어져 깨지곤 했다. 땅바닥에 깨진 계란에서 노랗게 도드라진 통통한 노른자가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아파지면서 눈에는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했었다. 특히 쌍알일 경우에는 가슴이 저려올 정도로 아파왔다. 60년 말에서 70년대 초쯤 되었을 때였다.

 

 

버릴 수도 없는 쌍알 30개. 코스트코, 너무 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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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책이 살살 녹는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아니한다. 너무 달콤해서. 단음식 대신 쌉싸름한 맛을 즐기는 내 식성 탓인지 단것엔 입이 짧다. 책도 그런 것 같다. 일단 내물렸는데 내내 이 한 구절이 남는다. 역시 쌉싸름한 맛 때문이다.

 

 

 

 

 

 

 

 

 

 

 

"병원이 건강의 장애가 되고 정당이 민주정치의 장애물이 되고 언론기관이 의사소통의 장애물이 되는 것처럼 학교는 진정한 교육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이반 일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일리히의 주요개념 중 하나는 반생산성이다. 산업사회 스스로가 자신의 원래 목적을 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구입비, 기름값, 교통체증을 포함하여 자동차에서 보낸 시간 등을 모두 합해 계산하면, 사람들은 1만 킬로미터를 이동하기 위해 한 해 평균 1,600시간을 썼다. 그럼 자동차의 진짜 스피드는 지금 속도계에 찍히는 바로 그 속도가 아니라 겨우 시속 6km밖에 안 된다는 것. 우리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바치는 대부분의 노동이 사실 진정한 생산성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을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현대사회의 구조를 평생 분석하고 해체하여 마침내 뛰어넘으려 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의 삶을 해체할 수 있는가.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자유라 믿는 모든  '안정감'이 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가짜 자유임을, 아프게 깨닫게 된다. 

 

'안정감'. 그 누가, 권력이나 재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을 메르스사태로 확인 또 확인하는 나날들이다. 이젠 지겹다. '삼성이 망해야 한다.'는 말도.

 

영화 <최종병기 활>......생존은 개인 몫이라는 마지막 멘트가 여운을 남겼었는데, 2011년이었다.

http://blog.aladin.co.kr/nama/499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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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만 15년이 되어간다. 아파트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럭저럭 내 고향이려니 여기고 살고 있다.

 

얼마전 바로 앞집이 이사갔다. 족히 6~7년은 얼굴 마주치며 살았다. 특히 여행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울 경우 온갖 우편물 수거를 부탁하곤 했었고, 마침 그 집 둘째딸과 우리 딸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수험생 부모의 심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한바탕 수다를 떤다거나 서로 오고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늘 바빴으니까.

 

앞집이 이사가던 날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새벽에 출근하기 때문에 이사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사가고 이사오는 아파트 풍경이지만 바로 앞집이 이사가는 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또 우리 라인에 살던 민경이네가 이사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경이와 딸아이는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민경이네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초창기 멤버였다. 특히 민경이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명절 무렵이면 늘 민경이 할머니께서 식혜를 한 냄비씩 주셔서 넙적넙적 얻어 먹곤 했다.

 

앞집이 이사가던 날, 딸아이와 나는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다들 이사가고 우리는 이제 완전히 원주민이 되었어."

"원주민 정도가 아니야. 영주권의 영자를 써서 영주민이 되었어."

 

퇴근하면서 혹시나 해서 들러본 민경이네. 벌써 이삿짐이 들어오고 있었다. 민경이 할머니께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씀도 못드렸는데 이를 어쩌나. 몹시 서운하다.

 

아는 얼굴들이 떠나간 아파트는 허전하기만 하다. 이젠 진짜 영주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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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호되게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위염. 두 차례에 걸쳐 직장 근처의 내과에 들러 진료를 받았으나 호전되는 기미가 없다. 할 수 없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20년 넘게 다닌 단골의원을 찾아갔다.

 

23년 쯤 된 단골의사는 '요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느냐?'고 묻는 것으로 진료를 시작하는 게 습관인데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걱정거리를 묻는 안부인사로 맞이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은 안부인사쯤으로 흘려들었을 이 물음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오늘 내가 이 병원에 온 건 이 안부인사를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근처의 단골약국을 찾아갔다. 머리가 하얀 늙수그레한 약사할아버지에게서 약을 받아들며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속이 안 좋아서 받은 처방인데 이게 모두 속 아픈데 먹는 건가요?"

 

약사할아버지가 살짝 웃으며 하시는 말씀,

 

"네, 모두 속 아픈데 먹는 약이군요."

 

짐에와서 살펴보니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이 두 가지 들어 있었다. (요즘에는 약봉투에 약품명과 함께 약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단골의사와 비단골의사의 차이점. 속이 아픈 것만을 다스리는 비단골의사에 반해 단골의사는 마음까지 더듬어 볼 줄 안다.

 

단골약사와 비단골약사의 차이점. 약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본분으로 여기는 비단골의사에 반해 단골약사는 그까짓 설명 쯤 웃음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단골이라는 단어는 훨씬 덜 사무적이고 좀 더 인간적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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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소. 5~6명으로 구성된 조별 청소를 시키고 있다. 대부분은 잘하고 있으나 꼭 이런 녀석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가 속한 조의 차례임을 알고도 모른척 도망가 버리는 녀석 말이다. 한두 번이 아니기에 모질게 마음 먹고 녀석과 녀석의 부모에게 동시에 문자를 보낸다.

 

다음 날. 부모에게 한소리 들은 녀석은 말없이 청소를 하는데....

 

"선생님은 왜 청소 안 하세요?"

 

임장지도. 청소할 때는 반드시 현장에서 청소를 지도하고 지켜보는 일을 일컫는 말(지켜보기만 하겠는가). 녀석에게 이걸 설명하는 일을 포기한다.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녀석에게는.

 

중2.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나이다. 아마도 부모에게 문자를 날린 사실을 마음에 두고 순간적으로 반격을 가했을 것이다. 녀석 또한 기분이 나빴을 테니까.

 

청소를 성실하게 잘 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는 말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씁쓰레한 미소를 짓는 수밖에.

 

학생과 선생 사이. 상처를 입고 입히는 사이.

 

 

2. 요즘은 교내체육대회를 하면 학급마다 반티를 만드느냐고 서로들 옥신각신한다. 인터넷에서 디자인을 고르느라 며칠에 걸쳐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그렇게해서 결정이 되면 몇명의 아이가 주최가 되어 돈을 걷고 신청을 하는데 며칠 내로 반티와 플래카드, 각종 응원도구들이 학교로 배송된다.

 

올해 역시 티격태격하며 반티를 골랐는데 무궁화가 크게 그려진 꽃무늬 티셔츠와 반바지로 아이들이 입은 모습이 산뜻하고 밝아서 좋아보였다.

 

한 학급이 반티를 신청하면 담임용으로 한 벌이 딸려오는 것이 보통이어서 올해도 적잖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회용짜리 반티지만 아이들과 같은 옷을 입는 맛도 각별해서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작년에 반티를 얻어 입지 못해 서운했었다. 주최가 된 아이가 일을 도맡아하면서 그 댓가로 돈을 내는 대신에 담임에게 돌아갈 옷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한 사실은 물론 아니다. 아이들에게 시시콜콜 물어보기도 싫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지나간 작년의 서운함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담임을 소외시키지 말아달라고. 누군가 '선생님꺼 꼭 드릴게요.' 라는 말도 했다. 그랬는데...

 

모두들 화려한 꽃무늬의 반티를 입고 룰루랄라하는 가운데, 담임에게 돌아갈 옷은 없었다. 돈을 걷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다. 계산 착오였는지, 아니면 누가 돈을 내지 않고 냈다고 했는지, 아니면 분실했는지, 얼마가 모자란다며 방과후에 긴 시간에 걸쳐 각료회의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일일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고 주최하는 아이들도 그것에 대해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해서 체육대회때 반티도 얻어 입지 못하는 인기없는 왕따 선생이 되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건 옆자리 젊은 선생도 반티를 얻어 입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위로라면 위로라고나 할까. 옆자리 선생은 우연찮게도 작년 우리반에서 반티를 주최했던 여학생의 담임을 맡고 있다.

 

어제는 어쩌다가 반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어찌 담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치사해서 말하기 싫었지만 꾹 참고 한번 던져 보았다.

 

위 글에서 "선생님은 왜 청소 안 하세요?"하던 녀석이 말을 받았다.

 

"선생님도 돈을 내셔야죠."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다. 선생과 학생을 동급으로 보는 평등사상이 몸에 밴 녀석이다. 솔직히 감당이 안 된다.

 

담임에서 손을 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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