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소. 5~6명으로 구성된 조별 청소를 시키고 있다. 대부분은 잘하고 있으나 꼭 이런 녀석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가 속한 조의 차례임을 알고도 모른척 도망가 버리는 녀석 말이다. 한두 번이 아니기에 모질게 마음 먹고 녀석과 녀석의 부모에게 동시에 문자를 보낸다.

 

다음 날. 부모에게 한소리 들은 녀석은 말없이 청소를 하는데....

 

"선생님은 왜 청소 안 하세요?"

 

임장지도. 청소할 때는 반드시 현장에서 청소를 지도하고 지켜보는 일을 일컫는 말(지켜보기만 하겠는가). 녀석에게 이걸 설명하는 일을 포기한다.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녀석에게는.

 

중2.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나이다. 아마도 부모에게 문자를 날린 사실을 마음에 두고 순간적으로 반격을 가했을 것이다. 녀석 또한 기분이 나빴을 테니까.

 

청소를 성실하게 잘 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는 말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씁쓰레한 미소를 짓는 수밖에.

 

학생과 선생 사이. 상처를 입고 입히는 사이.

 

 

2. 요즘은 교내체육대회를 하면 학급마다 반티를 만드느냐고 서로들 옥신각신한다. 인터넷에서 디자인을 고르느라 며칠에 걸쳐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그렇게해서 결정이 되면 몇명의 아이가 주최가 되어 돈을 걷고 신청을 하는데 며칠 내로 반티와 플래카드, 각종 응원도구들이 학교로 배송된다.

 

올해 역시 티격태격하며 반티를 골랐는데 무궁화가 크게 그려진 꽃무늬 티셔츠와 반바지로 아이들이 입은 모습이 산뜻하고 밝아서 좋아보였다.

 

한 학급이 반티를 신청하면 담임용으로 한 벌이 딸려오는 것이 보통이어서 올해도 적잖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회용짜리 반티지만 아이들과 같은 옷을 입는 맛도 각별해서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작년에 반티를 얻어 입지 못해 서운했었다. 주최가 된 아이가 일을 도맡아하면서 그 댓가로 돈을 내는 대신에 담임에게 돌아갈 옷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한 사실은 물론 아니다. 아이들에게 시시콜콜 물어보기도 싫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지나간 작년의 서운함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담임을 소외시키지 말아달라고. 누군가 '선생님꺼 꼭 드릴게요.' 라는 말도 했다. 그랬는데...

 

모두들 화려한 꽃무늬의 반티를 입고 룰루랄라하는 가운데, 담임에게 돌아갈 옷은 없었다. 돈을 걷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다. 계산 착오였는지, 아니면 누가 돈을 내지 않고 냈다고 했는지, 아니면 분실했는지, 얼마가 모자란다며 방과후에 긴 시간에 걸쳐 각료회의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일일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고 주최하는 아이들도 그것에 대해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해서 체육대회때 반티도 얻어 입지 못하는 인기없는 왕따 선생이 되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건 옆자리 젊은 선생도 반티를 얻어 입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위로라면 위로라고나 할까. 옆자리 선생은 우연찮게도 작년 우리반에서 반티를 주최했던 여학생의 담임을 맡고 있다.

 

어제는 어쩌다가 반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어찌 담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치사해서 말하기 싫었지만 꾹 참고 한번 던져 보았다.

 

위 글에서 "선생님은 왜 청소 안 하세요?"하던 녀석이 말을 받았다.

 

"선생님도 돈을 내셔야죠."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다. 선생과 학생을 동급으로 보는 평등사상이 몸에 밴 녀석이다. 솔직히 감당이 안 된다.

 

담임에서 손을 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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