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쁜 자식인데 영어가 시원찮다. 영어가 오죽이나 어렵나. 다른 건 몰라도 영어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해놓아야 사람 노릇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살 때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게 했는데도 이렇게 되었다.

 

다른 사교육은, 7살 때 피아노 학원을 2개월 정도 다닌 게 사교육의 전부다. 외손잡이인 딸아이는 주로 오른손을 사용하는 피아노의 건반 연습이 힘겨웠던지 어느 날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툭 던졌다." 나 피아노 계속 하면 병원에 다녀야 할 것 같애." 이 말을 듣고 나는 단박에 결론을 내렸다."그래? 그래! 그러고보니 우리집안에 음대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네. 피아노 그만 해."

 

초등학교 때는 그 흔하디 흔한 학습지 한번 시키지 않았다. 소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일상이 바쁘다보니 학습지를 어떻게 시켜야하는지 방법부터 몰랐고 굳이 애써서 알아보지도 않았다. 단, 독서에는 좀 신경을 썼다. 주로 단행본 위주로 책을 고르고 필요한 책은 거의 구입해서 읽혔다. 전집류라고는 헌책방에서 구입한 위인전(효과는 전무)과 대만 작가인 채지충이 그린 중국고전만화(효과 만점)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오로지 영어 하나만을 시켰으니 영어 만큼은 잘 해주리라 믿고 있었다. 물론 딸아이는 영어 학원 하나 다니는 것 조차도 다니기 싫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투정 부리며 나를 들들 볶아댔다. 그런 불만을 귓등으로 들으며 영어학원을 중학교 1학년 봄까지 다니게 했으나, 끝내 딸아이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을 다녔으니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를 곧잘 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영어학원마저 끊었으니 사교육으로부터는 완전 해방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학습지 한번 시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2학년때 부터 수학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영어학원에 질렸는지 딸아이는 학원이라면 질색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으나 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수학공부방에는 다니겠단다. 그래서 친구가 다니는 공부방에 잠시 몇 개월 다녀서 수학 성적은 처음에는 올랐으나 이내 약발이 떨어졌는지 제자리 걸음을 치면서 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나마 공부방도 끊어버렸다.

 

그렇다고 딸아이의 전체 성적이 바닥을 친 건 아니었다. 중1때는 과학이 어렵다고 훌쩍거리기도 했으나 2학년에 올라가서는 스스로 이치를 깨달았는지 학년말에는 전체 1등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딸아이 말마따나 '저비용 고효율'운운하며 사교육 없이 그럭저럭 버티긴 버텼다.

 

그런데 문제는 고등학교 올라와서 시작되었다. 수학은 다행히(?) 생각을 바꿔 학원을 다니겠다고하여 역시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등록을 시켜주었고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학원 선택도 딸아이에게 맡겼다. 나는 정보에 둔하다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고나 할까. 게으른 엄마다.) 중학교때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영어가 문제였다. 여전히 학원을 거부하며 은근히 개인과외를 받고 싶어했다.

 

어디서 영어 개인교사를 구한단말인가. 내 주변에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도움 받을 만한 곳은 없었다. 역시 이번에도 딸아이가 해결책을 구해왔는데 다름아닌 길거리 광고였다. 달랑 전화번호 하나였다. 그래 해보자.

 

개인교사는 30대 초반의 법학과를 졸업한 총각으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단 하나, 흡연 습관으로 몸에 배인 냄새를 없애기위해 향수를 즐겨 사용하는 덕에 늘 진한 향수 냄새를 뿌리고 간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일주일에 이틀, 세 시간 배움에 25만 원을 주기로 했다. 주로 영어공부를 봐주는 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따로 문법책이 있었으나 진도는 더디게 나갔고 모의고사 문제나 시험 대비 수업을 했다. 그러나 수업에 활기가 부족했다. 딸아이의 표현에 따르면, "선생님이 나를 이끌고 가야하는데 그게 부족한 것 같아."

 

2개월이 흘러갔으나 영어공부를 하는 딸아이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이틀 공부하는 것이 영어공부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게으름의 원인을 은근히 개인교사의 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듯한 낌새를 보였다. 사실 무기력이라기 보다는 수업을 강력하게 이끌지 못하는 나약함 같은 거였다.

 

결단을 내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개월을 끝으로 개인과외를 끝냈다. 마지막 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이 총각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이 결정은 누구의 생각이신가요? 어머님이신가요, 따님이신가요?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평소에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데 무척이나 서툰 나는 곧이곧대로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딸아이의 생각입니다." 라고. 나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좀 무례하고 재미없는 성격이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참 어쩔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러고 얼마가 지났는데 여전히 딸아이는 영어를 힘들어했다. 다시 과외이야기를 꺼냈다. 학원은 절대 다니고 싶지 않단다. 마침 같은 교무실에 정년을 앞둔 선배교사가 있는데 그분의 남편이 윤선생영어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개인교사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이번에는 나이가 제법 든 아줌마 선생님이었다. 프로다운 면모를 보이는 분으로 직업정신에 철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업료는 먼저 선생님의 두 배인 50만원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과외를 시키면서 생각지도 못한 힘든 부분이 생겼다. 늦은 밤인 오후 9시 30분에 시작하는 과외시간이 되면 우리 내외는 안방에서 숨 죽이고 있거나 집 밖으로 나가있어야 했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쇼핑을 하거나 안방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했다.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운가. 에어컨은 절대 불가하다는 남편의 고집을 꺾고 드디어 딸아이방에 에어컨을 달아주었다. 모두 딸아이의 과외를 돕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렇게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문제는 딸아이였다. 영어공부를 따로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과외로 하는 영어가 전부였다. 그리고 과외선생님의 방식 하나하나가 내 눈에 비판적으로 들어왔다. 독립심을 키워주는 학습이 아니라 과외선생을 의존하게 하는 방식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시험 때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시험범위를 묻고는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단어를 모조리 뽑아왔다. 마치 '내가 다 떠먹여주마' 하는 식이었다. 따로 사용하는 교재를 살펴보니 이건 보통의 학생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설명 없이는 보기 힘든 어려운 책이었다. 역시 학생을 선생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책이었고 영어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도 한 번 가르친 적이 있어서였다고 하는데, 원래 개인교습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 다른 건데 가르치는 사람 위주나 편의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만화영화인 <슈렉>을 교재로 공부를 시켰는데,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만화 한편을 마스터하면 영어가 완성된다는 거였다. 물론 무슨 얘긴지는 알고있다. 뭐가 되었든 한 권을 마스터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요령도 생긴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슈렉>은 초등생이나 중학생 정도에 어울리지 어려운 지문을 읽어내야 하는 고등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과외선생님의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주장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나도 평생을 영어와 씨름하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는건가. 내가 소심한 건 아닐까 돌이켜보았지만, 끝내 신뢰감이 생기지 않았다.

 

잠정적으로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딸아이에게 또다른 과외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나서기로 했다. 아이에게 'The Giver'라는 청소년 영어소설을 여름방학 내내 읽혔다. 지난 겨울 내가 먼저 읽은 책이었다. 더불어 영어문법책인 <맨투맨>도 꾸준히 읽게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부릅뜨고 시간을 체크했고 나 역시 더위와 싸워가며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두 번째 과외도 끊었다. 2개월만이었다. 중단시킨 이유가 또 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따지면 따질수록 영어과외비는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달 내내 아이들과 싸워서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영어과외로 지불되는 액수는 훨씬 높았다. 노력 대비 대가가 너무 높다는 사실이 내 별 볼일 없는 자존심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9월 초에 딸아이의 모의고사가 있었다. 드디어 결과가 나타날 때였기에 속으로는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결과는, 영어는 영어듣기에서만 한 문제를 틀렸다고 한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은근히 나의 공이 크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는데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그래도 과외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애.  'The Giver'도 짱이었어."

 

딸에게 물었다.

"영어과외 또 할래?"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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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9일, 휴대폰을 바꿨다.

 

어언 8년을 사용한 휴대폰이 드디어 명을 달리했다.  휴대폰 대리점 직원 왈, 이렇게 오래 사용한 사람은 처음 본다나...

 

전자제품은 고장날 때까지 써야한다는 평소의 내 지론을 실천한 마당이어서 기꺼이 새 휴대폰으로 바꿨는데...흠, 자판의 글자가 기겁할 정도로 커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사용하던 습관을 수정해야하는 점, FM라디오가 시원하게 나온다는 점, 전자사전이 내 손끝에서 펼쳐진다는 점 등 내가 전화기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딱 요건데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한다.

 

한가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점은, 바로 벨소리. 벨소리 때문에 전화가 자주 걸려오는 것도 꺼려질 판. 급기야 국립국악원에서 해금연주를 다운 받았는데 제대로 저장되지 않는다. 딸내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자기 일 아니라고 대충 해보고 포기한다.

 

친구들에게 바뀐 전화번호을 알려줬더니 축하메시지를 보내온다. 드디어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었냐고. 스마트폰은 무슨. 내 이름 자체가 전화기의 발전과 운명을 함께 하는 이름인 걸 굳이 전화기까지...

 

친구1- "헐"

친구2- "역시"

 

아직 반응을 다 살피지 못했다. 효도폰이라고 굳이 밝힐 필요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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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일렬종대로 늘어선다. 대개는 가벼운 복장에 굽 낮은 샌들 종류의 신발을 신고 있으며 어깨엔 적당한 크기의 배낭이나 색을 걸치고 있고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순서가 조금이라도 뒤로 밀리거나 섞일까봐 앞뒤로 선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눈에 힘을 주며 기억하려고 애쓴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각자의 세계가 있겠지, 아마. 꿈도 있을테고. 그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어디로 가기 위해서일까? 머리는 이미 희끗희끗하고 눈도 침침하여 금세 눈을 찌프리고 있을텐데. 자, 여기는 00도서관 2층에 자리한 일반자료실. 시각은 오전 9시. 드디어 입장이다! 나는 이곳을 통과할 때마다 나직이 외친다. 자, 드디어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었다, 라고.(이 도서관 자료실 입구와 비행기 탑승 입구가 실제로 매우 비슷하다.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오늘로 도서관 출입 17일 째가 되었고 오늘을 끝으로 이젠 개학 모드로 들어간다.(매주 일요일과 정기 휴관일인 금요일을 빼면 실제 도서관에 갈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여릅방학 앞두고 왜 여행 계획이 없었겠는가. 하다못해(?) 중국이나 일본이라도 가려고 열심히 검색하고 여행사에 예약도 했건만, 남편의 의지는 확고했다. 중3짜리 딸아이는 죽어도 학원은 다니지 않겠단다. 부모된 자로서 여름방학을 허송 세월하겠다는 자식을 이제는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 내외는 소위 부부교사가 아니던가. 

너무나 확고부동한 제 아버지 의지를 어쩌지 못하는 딸아이는 얼마나 맘 상하고 속상했는지 제 아버지를 보고 넘버원이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제일 싫은 사람의 뜻으로 넘버원이라나. 그리고 제 어미인 나는 자연스레 넘버투가 되었다. 

처음 3일 동안 딸아이는 자료실의 넓디넓은 6인용 테이블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은 채 한 구석에 있는 반원형 소파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5시까지 말이다. 독한 놈! 

어찌어찌해서 딸아이의 마음에 눈물로 호소한 과정은 쓰지 않으련다. 때로는 쇼가 필요하다. 

10여년 전. 5년에 한 번씩 있는 직무연수를 받을 때였는데, 하루종일 8시간의 수업을 열흘 간에 걸쳐 들어야 했다. 몸에 무리가 갔는지 치질이 심해져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수술이라는 걸 했다. 특이한 경험이었다고나 해두자. 음, 10여년 전에도 내 몸이 공부를 거부했는데 이제 50이 넘은 나이가 된 내 몸이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20여년 전 순위고사(임용고시 이전의 제도) 준비하느라고 2개월 간 머리 싸매고 공부할 때도 새벽마다 위염으로 구토를 해대곤 하던 나였다. 마지못해 8~10시간 정도를 도서관에서 보내며 다시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답시고 하루종일 앉아 있을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식은 위대하다. (절대로 부모가 위대한 게 아니다.) 50대의 부모를 다시 도서관에 않힐 수 있는 건 자식 밖에 없으리.

교사들은 방학을 앞두고 매번 의례적으로 연수원을 써야한다. 출장이나 연수 혹은 방학 중 근무를 뺀 나머지 날짜를 자율연수라고 하여 일정한 장소를 선택하여 일정한 과제로 공부할 계획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야한다. 공부는 무슨, 하면서도 그래 써주마, 하고는 보통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을 적어놓고는 한다. 드디어 나는 처음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에 다녔노라고. 

딸아이가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지, 그건 모른다. 테이블에 엎드려 있기 일쑤거나 추리소설에 빠져 혼자 흐물흐물 웃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뿐이었다. 사실은 그마저도 대견하게 보였다. 테이블에 앉기까지 3일이나 걸렸던 만큼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주는 것만이라도 고마웠다. 저도 생각이 있으면 깨닫는 바가 있겠거니 믿어주고 싶었다. 시간이 걸리겠거니 하고 믿어주는 수밖에. 

이렇게 방학이 끝나간다. 

딸은 그렇다치고, 그러면 우리 내외는 무엇을 했나. 남편은 퇴직 후에 나무를 심겠다고 나무 공부에 빠져있고, 나는 매일 피곤하고 머리 아프다는 핑계로 각종 기행문에 빠져있다. 그래서 내가 이름을 붙였다. 남편은 '정착'을 위한 공부고 나는 '유목'을 위한 공부라고. 하다보면 어디선가 만나는 지점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도 3년 간 이렇게 도서관에서 버텨야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여름방학은 의미있게 보냈노라는 남편의 말에 내 가슴 저 밑바닥에 고인 슬픔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책은 책이고 여행은 여행이네." 

그러나, 집에 에어컨이 없는 덕에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확실한 피서법으로는 최고였으며, 하루 세끼 밥상 차리기를 꺼리는 나 같은 엉터리 주부인 경우에 한끼 3,800원(10장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3,500원씩)하는 매식은 과히 환상적이었다. 시원하지, 밥 해결되지, 만족스러운 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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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교실에서 언성을 높이지 않는 날이 없다. 단 하루도 조용히 흘러가는 날이 없다. 

급식 풍경이다. 힘 센 남학생 녀석들이 맨 먼저 밥을 타먹으려고 남 눈치 보지 않고 대뜸 식판부터 들고 달겨드는 것쯤, 그래 아침밥을 안 먹고 왔거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고 치자. 다 먹은 식판 까짓거 내가 버리지 않으면 누군가 버리겠지뭐, 냅둬, 하며 남의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사물함 위에 올려놓는 거, 그래 집에서 오냐오냐 제멋대로 자라서 저럴 수도 있겠지, 한번쯤은. 그래도 지가 먹은 건 치워야겠다 싶어서 힘 약한 아이한테 맡겨버리는 거, 그래 그것도 우정이라고 우기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일상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매번 소리지르거나 설문지 돌려 범인 색출하는 짓의 반복이다. 지겹다.  

그래도 위의 이야기는 오늘에 비하면 얘깃거리도 못된다. 사물함에서 두 개가 포개진 식판이 나왔다. 음식이 상할대로 상해서 냄새가 진동한다. 적어도 열흘은 지난 듯싶다. 어찌어찌해서 범인을 잡아냈다. 오늘 아침, 선생인 내 말을 가로채며 선생 노릇하던 녀석으로 한바탕 큰소리로 제압하고서야 제자리를 잡게 하던 녀석이었다. 그 못된 짓거리를 어찌 일일이 나열할 수 있으리오. 남에 대한 배려? 청소는 열심히? 숙제는 제대로? 말이 고와? 힘센 아이에게 빌붙어 야비한 행동 일삼기에 수업 시간에 선생들 열받게 하는 남다른 재주와 특기로 선생들 몸살 앓게 하는 놈이다. 

녀석 아빠와 통화를 했다. 벌써 세번째이다. 4년 전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았으며 초등2학년 때부터는 틱장애도 있었고 병원 치료도 받다가 중단했다 한다. 그 사실을 세번째 전화통화인 오늘에서야 말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믿고 싶은 게 나약한 인간 심리라는 거, 모르는 거 아니다만 그건 아니지. 선생이 부처님이냐고. 비겁한 학부모다. 처음부터 제대로 말해주었으면 좀 더 합리적인 방법을 강구했을 거다. 인정할 거 인정하고 들어가면 쉬워지는 법이니까.

녀석에게 반성문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다 싶었다. 그래 물었다. "너를 정상적인 아이로 생각하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줄까?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걸로 인정하고 너를 이해해줄까? 너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건 네 힘이나 의지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거든. 널 어떻게 생각해야하니?"......얼마 후...대뜸, 일주일에 한번씩 교육청으로 상담 치료 받으러 가는 다른 녀석을 따라서 교육청으로 상담 받으러 가야겠단다. 녀석아, 상담은 니가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줄 알아? 세상이 니 맘대로 움직이는 줄 알아?" 

녀석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걸로 생각하면 마음은 가벼워지는데, 문제는 그 이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거다. 휴....힘들다. 쓰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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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막걸리로 저녁을 때운다. 

남편은 술자리 약속이 있고 딸내미는 치아 교정을 위해 어금니 두 개를 뽑아야해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었다. 

누가 대한민국의 선생을 성직이라고 했나. 나와봐라. 우리 반 담임 한 번 해봐라. 

오늘도 네 녀석이 2교시에 땡땡이를 쳤다. 한 시간 내내 화장실에 있었단다. 그 땡땡이 친 시간은 제법 즐거웠는데 나중에 담임인 나한테 혼나면서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중 1짜리다.
 

한 녀석은 부모와 떨어져 산다. 부모는 외딴 섬에 살고 있고 녀석은 형과 나이 어린 외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의 손길 없이 사는 중1짜리 녀석만 나무라기에는 녀석이 너무 억울하다. 

한 녀석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삐와 살고 있다. 이 녀석은 20년 담임 경력이 있는 나에게도 참 황당한 녀석이다. 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나도 거를 줄 모르고 뱉어낸다. 상대방 기분을 헤아리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았다면 분명 이렇게 막 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다 참다 오늘 녀석의 아빠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역시 살기 바빠서 녀석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 1짜리는 아직 어리광을 부릴 나인데 이 녀석에게는 어리광을 부릴 상대가 없는 것이다. 녀석의 황당한 버릇없음은 일종의 어리광이다. 그걸 담임인 내게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두 녀석은 제발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한다. 이게 정상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녀석이라면 그래도 부모 생각할 줄은 안다. 이런 녀석들의 부모와 통화를 하면 담임의 고충에 대해서 미안해할 줄 안다. 제 자식 한 둘 갖고도 힘들어 하는 마당에 40여 명씩되는 아이들 담임 노릇하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그래도 생각해주는 여유가 있다. 

고달픈 하루를 한 잔의 술로 마감한다. 

한 잔의 술로 세상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막걸리도 제법 도수가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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