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소장하고 혼자 감상하는 건 그리 아름다운 행위가 아니다. 그림이 한 사람의 소유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를 생각해본다. 

위 그림은, 남편이 만들어 준 탁자에 대한 보답으로 김진희라는 화가가 준 그림이다. 나는 그냥 이 그림이 좋다. 요즘처럼 우울한 시절에 들여다보니 마음이 촉촉해지고 (따분한 어휘지만) 희망 같은 게 생겨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일본의 대재앙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그림 속의 빨간 점박이 우산이 참 아름답다. 접은 우산도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저 우산이 무언가를 막아줄 것만 같다. 

그림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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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이다. 1994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인 태호가, 반 아이들의 별명을 주제로 그렸다. 야옹이, 연탄, 말, 변기, 붕어 등등. 지금쯤 장가들을 갔을게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새삼 지옥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어르고 타이르기가 아니다 싶을 때 인정사정없는 험한 말을 뽑아낸 날엔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그것도 부족해서 부모와 고통분담 차원에서 한차례 통화라도 하고나면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오늘이 그랬다. 

고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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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마자 나눈 몇마디로 감정이 상해서 며칠 동안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는데... 

작가들 얘기를 하게되었다. 공지영, 이 사람은 80년대를 너무 값싸게 울궈먹어. 박완서, 이 노작가는 또 한국전쟁을 너무 울궈먹어. 이야기를 나눈 세 사람(A,B,C) 중에 두 사람(A,B)이 이렇게 말하니 나머지 한 사람 왈, 나이 든 작가는 그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한계 같은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으니 봐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옹호한다(C). 그래도 작가라면, 그것도 이름을 떨친 작가라면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해야되는 거 아니냐고 반박한다(A). 다시 C왈, 그렇다면 선생도 마찬가지 아니냐. 선생들도 나이 먹어서 끊임없이 발전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 작가에게만 그것을 요구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그런 너는 늘 새롭느냐?) 

옥신각신하며 각자 자기 감정에 충실해지는 순간, 분위기는 금방 싸늘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있다.

A,B,C는 모두 작가가 아니다. 그냥 늙어가는 선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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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1-0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분 다 국어선생님들이신가요??

nama 2011-01-05 22:20   좋아요 0 | URL
밝히자면 A는 영어선생, B는 가정선생, C는 국어선생이지요.

튤립나무 2011-07-0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나마님..잘못 오타내면 마나님이 되겠군요^^
알라딘에 오랜만에 들어와 책 구경하다가 나마님의 책 리스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책들이 모두 구미가 당기는 것들이어서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위 글의 A님아 아마도 나마님? 간혹 찾아와서 책 소개랑 글들 읽고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nama 2011-07-07 07:43   좋아요 0 | URL
마나님...좋은데요. 무수리 같은 삶인데 호칭이나마...반갑습니다.
 

걷다 보니 단순해진다. 

옷은 걷기에 좋은 옷과  좋지 않은 옷으로 나뉘어진다. 모양으로 달아놓은 단추 하나에도 허영과 사치가 배어있다. 

신발은 걸을 만한 놈과 걸을 만하지 않은 놈으로 나뉘어진다. 키 높이 신발은 쇼,쇼,쇼다. 

가방은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것.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가방이라야 내 친구가 된다.  

사람은, 책만 읽는 친구 보다 걷는 친구가 더 좋다. 물론 책도 읽고 걷기도 하는 친구라면 더 좋다. 

걸을수록 꿈도 단순해진다. 가볍게 가볍게 멀리 멀리 걷고 싶다.  

풍경 속으로 사라지는 소실점,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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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니다가 만 것이 학교 교육의 전부다. /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엄마는 슬하에 4남매를 두고 고생고생하며 키우셨다./난 겨우 딸 하나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고 젖먹이 딸을 시어머님께서 키워 주셨다.

엄마는 평생 밤낮으로 일하고 재산을 불려나갔다. 당신을 위해선 한 푼도 안 쓰셨다./난, 맞벌이로 버는 돈도 부족해하며 늘 카드명세서를 보고 자지러지게 놀란다, 불려놓은 재산도 없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안하셨다./난 하나 뿐인 중학생 딸을 공부하라고 제 방으로 몰아부친다. 

엄마는 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내 속옷까지 빨아주셨다./난 틈만 나면 아이에게 교복과 실내화를 빨게 한다. 자립심을 길러준다는 명목하에. 

엄마는 내게 한 번도 인상쓰고 말하신 적이 없다. 대신 슬퍼하셨다./난 교양이 있어 소리는 지르지 않지만 무언으로 아이를 조종하는 기술을 부릴 줄 안다. 

엄마는 큰오빠가 낳은 아들 녀석 둘의 대학 등록금을 다 대주셨다./난 TV 한 대 사드리지 못하는 큰오빠 내외를 속으로 무척 미워하고 있다. 내가 사드려야 하니까. 

엄마는 신문을 읽으신 적이 없다. 난 그걸 속으로만 흉보지 않았다./난 매일 신문을 읽는데도 세상 물정엔 늘 어둡다. 

엄마는 김치는 물론 고추장, 된장, 간장, 두부, 엿, 모찌떡 등을 손수 만드셨다./난 간편하게 돈으로만 해결할 뿐, 김장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엄마는 외국 여행 한 번 하신 적이 없다./난 늘 외국 여행할 기회를 창출할 줄 안다. 

엄마는 북에 두고 온 엄마의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사셨다./난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는다. 

엄마에게 나는 그냥 딸일 뿐이다./난 내 딸아이에게 내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엄마는 이 글을 읽으실 줄 모른다./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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