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호되게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위염. 두 차례에 걸쳐 직장 근처의 내과에 들러 진료를 받았으나 호전되는 기미가 없다. 할 수 없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20년 넘게 다닌 단골의원을 찾아갔다.

 

23년 쯤 된 단골의사는 '요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느냐?'고 묻는 것으로 진료를 시작하는 게 습관인데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걱정거리를 묻는 안부인사로 맞이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은 안부인사쯤으로 흘려들었을 이 물음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오늘 내가 이 병원에 온 건 이 안부인사를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근처의 단골약국을 찾아갔다. 머리가 하얀 늙수그레한 약사할아버지에게서 약을 받아들며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속이 안 좋아서 받은 처방인데 이게 모두 속 아픈데 먹는 건가요?"

 

약사할아버지가 살짝 웃으며 하시는 말씀,

 

"네, 모두 속 아픈데 먹는 약이군요."

 

짐에와서 살펴보니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이 두 가지 들어 있었다. (요즘에는 약봉투에 약품명과 함께 약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단골의사와 비단골의사의 차이점. 속이 아픈 것만을 다스리는 비단골의사에 반해 단골의사는 마음까지 더듬어 볼 줄 안다.

 

단골약사와 비단골약사의 차이점. 약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본분으로 여기는 비단골의사에 반해 단골약사는 그까짓 설명 쯤 웃음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단골이라는 단어는 훨씬 덜 사무적이고 좀 더 인간적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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